최근 대선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20대 대통령은 2022년 5월부터 5년간 임기를 수행한다. 시기적으로 기후위기 시나리오의 한가운데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선 후보 누구도 기후위기를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선거운동 기간에는 정책공약으로 뭔가 들어가겠지만, 출마 비전과 의지를 밝히는 무대에서 그 흔한 '위기'나 '비상'이라는 레토릭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감축계획을 재수립하고 있는 현 정부를 신뢰해서일까. 아니면 기후위기의 레토릭과 리얼리티의 괴리를 보인 정부보다 느슨한 상황인식을 공유해서일까.
기후위기는 사회적 드라마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류 모델링은 목표설정과 정책설계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 되었지만, 비판적 사고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현실을 시장과 기술로 재현함으로써 대안적 구상은 변방에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추상적 숫자를 보정하는 수준에서 보완대책이 나열될 뿐이다. 성장률이 아니라 감축률을 국정운영의 주요지표로 삼고, 탈탄소 정의로운 전환의 조건을 창출하는 생성-전환적 정치는 채굴-착취적 시스템의 '올드 노멀'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파워 엘리트들의 고요 속의 외침은 '뉴 노멀' 담론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거나 소극적으로 차용할 뿐이다. 정권 유지냐, 교체냐의 닫힌 프레이밍은 전환 사회의 적이다.
과거로 회귀할 때가 아니다.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를 실현할 생태민주주의의 영역을 확장할 시점이다.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준의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면서도 인간의 기본적,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 정치에서는 변방의 북소리지만,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저에너지 사용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 필요와 에너지 사용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연결고리를 확인하면 일정한 해답이 나온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공공서비스 질, 소득 평등, 민주주의, 전력 접근성 등의 요소들은 인간의 필요를 높이지만 에너지 사용량을 줄인다. 반면, 적정 충분성을 초과하는 채굴주의와 경제성장 등의 문제적 요소들은 인간의 행복과 만족도를 떨어뜨리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Jefim Vogel et al., 2021). 확대할 것과 축소할 것을 선택하는 전환전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태적 한계와 사회적 기초 사이의 균형을 찾는 <도넛 경제학>(학고재, 2018년)과 지구 한계(planet boundaries) 개념을 영상화한 <브레이킹 바운더리>(넷플릭스, 2021년)가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시스템 전환을 위한 전략적 선택은 전환 지향의 정치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불행히도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큰 기대를 갖긴 어려워 보인다.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의 합작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의 색깔은 그린(green)이 아니라 블루(blue)와 그레이(grey) 사이에 자리한다. 탄소중립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10월 국무회의 의결될 2030-2050년 감축 시나리오가 당면한 교착상태를 타개할 거의 유일한 제도적 방법인 것 같다.
탄소중립위원회는 다양성을 제한하지 않고 전환과정에서 대안 레짐 형성을 가능케 하는 경계 확장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감축 수치를 높이는 만큼 전환정책의 너비와 깊이에 대한 검토 방식 또한 바꿔야 한다. 개별 정책 차원의 '공정전환' 접근을 뛰어넘는, 비전과 목표, 전략과 정책, 소통과 협치를 포괄하는 광의의 '정의로운 전환'이 요구된다. 이와 동시에 맥락과 대상에 따라 향상 프레임과 예방 프레임을 구분하는 접근법을 통해 맞춤형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한다. 그리고 아일랜드(Ireland’s Citizens’ Assembly on Climate Change, 2016~2018년)와 영국(Climate Assembly UK, 2020년), 프랑스(France’s Convention Citoyenne pour le Climat, 2019~2021년) 등의 '시민총회'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정해진 선택지에서 자유로운 상황에서 위기 탈출 솔루션을 학습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경계 작업이 가능해야 한다.
탄소중립위원회의 국민정책참여단 운영을 포함해 다양한 전환 주체 혹은 대상과의 공론화에 집중해야 한다. 육하원칙(5W1H)에 맞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한 내러티브 없이 '퍼센트'와 '톤'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때와 비슷한 과정과 결과라면, 올해 제도권에서 가능한 카드는 더 이상 없다. 결국 공론화로 시작해서 공론화로 끝나게 되는 5년 동안 에너지전환, 그린뉴딜, 탄소중립 패키지는 의지도, 실력도 없음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듯 싶다. 어쩌면 거대 양당의 적대적 의존관계라는 올드 노멀에서 반복되는 정상상태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지배적 정치경제적 조건에서 전면적 시스템 전환의 어려움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기후위기보다 정치위기가 더 큰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 준비가 너무 늦었고, 그만큼 탈탄소 이행에 난관이 예상된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지만, 그 피해와 손실은 불평등하게 전가되었다. 기후위기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장 기반의 감축수단은 탄소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지불능력이 있으면, 감축하거나 상쇄하면서 다른 사람과 먼 나라의 탄소예산을 자기 것으로 취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거공간으로의 이동도 자유롭다. 오염 엘리트(polluter elite) 빌 게이츠가 구상하는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의 탈정치가 가져올 미래의 단면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치형 배출은 대폭 줄여야 하지만 생존형 배출은 적극 보장해야 한다.
부자만 오염 엘리트가 아니다. 잉여 가치를 추구하면서 잉여 배출을 활용하는 경제시스템이 근본 원인이다. 국가와 시장의 균형을 통해 "새로운 기후전쟁"을 제안하는 저명한 대기과학자 마이클 만은 나름 합리적인 관점을 보여주는데, 그의 정치적 메시지는 초당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와 달리 실제로 초당적 협력을 유지하는 한국의 기후정치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으로 읽힌다. 나아가 소비자 영역인 소비 기준 배출과 함께 생산자 영역인 생산 기준 배출도 중요하며, 국가 경계 기준의 영토적 배출 계산에서 국제무역의 탈영토적 배출도 고려해야 한다. 인권과 정의의 관점에서 기후위기의 동학과 쟁점을 파악하는 데 조효제의 <탄소사회의 종말>(21세기북스, 2020)과 한재각의 <기후정의>(한티재, 2021)가 도움이 된다.
민주화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경계가 확인된 마당에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은 선거 국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전환 사회에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때마다 기념하는 민주화처럼 탈탄소화를 기념할 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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