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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기 위해서도 온 우주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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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기 위해서도 온 우주의 힘이 필요하다"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⑤ 아메리카 인디언과 한살림, 생명공동체

1991년 7월 김종철은 대구에서 열린 한 문학강연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제 생각으로는 이제 생명공동체라는 개념이 퍽 절실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략) 인간공동체나 사회공동체가 불필요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념만으로는 우리의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굉장히 미흡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시의 마음과 생명공동체',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49쪽)

'시의 마음과 생명공동체'라는 제목의 이 강연에서 김종철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유한한 지구생태계가 무한한 인간 욕망에 의해 위기에 처했으며, 이제 '시의 마음'으로 '생명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녹색평론>의 창간 정신이기도 했다.

그는 하나뿐인 지구, 모든 생명체의 생존의 절대적인 터전이면서 동시에 유한한 체계인 지구가 물질적 생활 수준의 향상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에 의해 가장 비참한 재난에 처했다면서 근대 산업문명이 초래한 지구생태계의 위기는 우리 자신의 욕망의 문제가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정치적 변화와 함께 우리 자신의 인격적 쇄신, 즉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욕망할 수 있는 내면 에콜로지의 변화가 이루어짐으로써만 비로소 오늘의 위기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는 얘기다.

▲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김종철 지음, 삼인 펴냄). ⓒ삼인

"문제는 만물이 하나이고 형제라는 생각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생각보다는 감수성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인간공동체나 사회공동체라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는 그러한 상황이 되었다는 자각이 필요하고, (중략) 이제는 생명체 전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생명공동체의 개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시의 마음과 생명공동체',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59쪽)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이냐' 하는 근원적 질문에 대해 김종철은 "사람이 사람끼리 뜻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당대 인간의 삶만이 아니라 후대와 생태계를 위해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하며, 자신의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평화와 성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19세기 말 극심한 노동탄압 속에서도 (임금 인상이 아니라) 공장 안에 있는 오래된 느릅나무를 지키기 위해 파업투쟁을 벌인 미국 노동자들, 서울 한복판에서 오래 묵은 은행나무를 지키기 위해 단식투쟁을 벌인 한 시민의 예를 들면서 "나무 한 그루가 상처를 입으면 자기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고통을 같이하는 감수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감수성이 바로 '시의 마음'이다. 그리고 "시의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 누구나가 소유하고 있는 근원적 심성"이며 "시적 사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시의 마음을 지닌 대표적인 문화로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꼽았다.

"하다못해 가을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기 위해서도 온 우주의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 속에 하나로 맺어져 있다는 생각이 여기에 들어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시적 감수성의 본질이고, 시의 마음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견 다른 존재, 다른 생명으로 보이는 것들이 결코 나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내 생명의 일부라고 보고, 시인은 생명에 가해지는 상해에 마음 아파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메리카 인디언은 모두가 시인이라고 할 만합니다."('시적 인간과 생명의 논리',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61~62쪽)

김종철에 따르면 인디언은 자기 자식이 아프면 자기가 아프다는 뜻으로 말한다. 짐승을 죽일 때 결코 불필요하게 남획하지 않고, 버팔로 등을 사냥할 때 반드시 제사를 지낸다. 버팔로의 영혼이 인간의 영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디언들은 사냥한 버팔로의 살을 먹는 사람에게는 바로 버팔로의 영혼이 들어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먹는 행위를 통해 버팔로와 인간이 일체화된다는 경험을 갖게 된다. 어떤 인디언 부족은 집을 지을 때, 집도 생명체니까 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집터 바닥에 선인장 몇 뿌리를 반드시 파묻는다.

결론적으로 인디언의 문화에는 거의 경탄할 수밖에 없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겸손과 외경이 깔려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어떠한 반생명적 테크놀로지나 문명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세계관과 감수성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것이며 우주관, 자연관, 생명관에서 백인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위의 책 64쪽 참고)

김종철이 김우창 교수에게 미국 버팔로에서 '인디언에 대한 관심을 얻었다'고 답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발견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는 1999년 후배 문인 구모룡과의 대담에서도 다음과 같이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농민과 같은 토착민들의 경우에는 참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문화를 누려 왔던 것 같아요. 나는 요즘 안데스 농민 문화가 하도 좋아서 말끝마다 안데스, 안데스 하는데, 그들처럼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관계 속에서 생명력 넘치는 문화생활을 향유해온 인간 집단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회에는 땅이나 자연의 동식물이 타자가 아니라 자기 식구예요. 그게 그들의 일상적인 언어에 드러나 있어요. 가족을 가리키는 낱말 속에 사람과 신들과 땅과 동식물이 한꺼번에 다 들어 있어요. (중략) 안데스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토착문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생명의 거룩함과 평등성에 대한 뿌리 깊은 인식이 체질화되어 있고, 게다가 전부 다 생생한 구비문학이 있어요."('시적 인간과 생명의 논리',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126~127쪽)

'인디언의 발견'은 김종철의 세계 인식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의 주된 관심이 사회정의나 사회적 억압의 문제에서 생태적 위기로, 미국 흑인에서 인디언으로 옮겨간 것이다.

"예전에 좀더 젊었을 적에 나는 미국 흑인에 대해 꽤 관심이 있었어요. 미국 흑인의 운명은 제3세계의 억압받는 모든 민중의 전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국주의적 착취,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 자본과 노동의 갈등 같은 문제가 늘 시야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어요. 물론 사회정의나 사회적 억압의 문제는 아직도 중심적인 문제임이 틀림없어요. 그러나 생태적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인류 문명 자체의 존속이 의심스럽게 된 지금 그런 틀을 가지고는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결국 공평한 분배라는 것도 기왕의 산업주의적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상 생태계의 붕괴는 필연적이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지금은 미국 흑인보다는 토착 아메리카인, 즉 미국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거지요."

"흑인들만 하더라도 자기들의 독자적인 문화는 다 잃고 지금은 완전히 백인문명에 동화되어 버렸지만, 인디언들은 근본적으로 백인문명과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백인들의 세계에 절대로 동화될 수가 없었어요. 그들에게는 땅이나 자연 속의 동식물들이 팔고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라 거룩한 영혼이 깃들어 있는 생명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백인들의 가치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시적 인간과 생명의 논리',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139~140쪽)

칼 구스타프 융에 따르면 백인들의 세계에 절대로 동화될 수 없었던 인디언들에 대해 백인들은 마음 속 깊이 존경의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융이 쓴 <땅과 마음>이라는 글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현대 미국 백인들의 심층 심리를 면밀히 분석해보면, 뜻밖에도 그들이 내심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인디언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네가 사람 이하로 보면서 야만적인 폭력으로 거의 멸종시키다시피 해 온 바로 그 종족이 백인들 자신도 모르게 심층 심리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는 외경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백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백인들의 무자비한 무력행사 앞에서 죽어가거나 쫓겨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지만, 거의 완전한 패배 속에서도 의연히 위엄을 잃지 않았던 인디언들에게 백인들은 어쩌면 심한 열등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은 깊은 심층 심리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백인들 자신이 이것을 인정할 리는 없겠지요." ('인간, 흙, 상상력',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94쪽)

▲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한살림선언·한살림선언 다시 읽기>(모심과살림연구소 지음, 한살림 펴냄)과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장일순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한살림 선언과 장일순, 동학

그런데 생명 가진 존재들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의 유지를 중시하는 정신, 자연생태계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시키는 생활방식은 아메리카 인디언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토착전통문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사고방식이자 생활방식이었다. 다만 "한국 사람들 경우에는 개화 이래 서양 문화에 대한 깊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오면서 우리 자신의 토착 전통문화를 깡그리 내던지면서, 결정적으로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런 정신"이라고 김종철은 개탄했다.('시의 마음과 생명공동체'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68쪽)

하지만 이러한 생명사상, '시의 마음'이 한국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89년 10월 29일, 대전 신협연수원에서 열린 '한살림 모임' 창립총회에서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의 전환을 천명한 '한살림 선언'이 발표된 것이다.

한살림은 원래 1986년 유기농업과 함께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 간 농산물 직거래에 의한 조화로운 공동체 건설을 꿈꾸며 생활협동조합 운동으로 출범했다. 한살림 생협을 출범시킨 주역은 원주의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박재일 등이었는데, 이들은 보다 넓은 차원의 생활운동, 사회운동을 추구하기 위한 사상적 근거로서 '한살림 선언-생명의 지평을 바라보면서'를 발표하고 '한살림 모임'을 출범시킨 것이었다.(<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한살림선언·한살림선언 다시 읽기> 2010년, 모심과살림연구소)

장일순을 비롯해 시인 김지하, 최혜성, 오재일 등 주로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60여 명의 사회운동가들이 1년간의 공동 연구 끝에 최혜성이 집필한 '한살림 선언'은 무려 67쪽에 이르는 방대한 문서로, 현재를 '산업문명'이라는 자식이 '생명질서'라는 그 부모를 죽이는 패륜의 위기로 규정하고, 유럽의 새로운 과학사상과 녹색운동, 특히 우리의 전통사상과 동학에 의거해 새로운 살림의 문명을 추구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동학사상에 따르면 사람과 만물과 자연은 각자 그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으며(內有神靈), 이들 각자는 나름의 소우주이면서 동시에 우주라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생명체를 이루는 사회적, 생태적, 우주적 생명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란 '끊임없이 서로 관계하며 스스로 생성해가는 전체'이다. 사람은 하늘님을 모시고(侍) 길러(養) 살려내야(體) 할 거룩한 존재이며, 자기 외부의 누군가를 섬길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하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한다(向我設位). 나아가 생명의 문명을 위해서는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우주적 각성,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태적 각성, 내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영성적 각성이 필요하다.

인도의 한 명상가는 우주적 각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데, 사실 모든 인간과 만물과 자연이 하나의 생명의 그물망으로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태사상은 동학에만 특수한 것이 아니다.

"명상은 당신 자신 안에 있는 신을 보는 것이고, 사랑은 당신 곁의 사람 안에 있는 신을 보는 것이며, 지식은 모든 곳에 있는 신을 보는 것이다."(<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130쪽)

무위당 장일순(1928~94년)은 해월 최시형이 30년의 포덕 생활 끝에 관헌에 체포된 원주 근교의 피체 장소를 찾아내 기념비를 세웠을 정도로 동학사상에 정통한 분이다. 특히 서예가였던 그는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고, 만물은 나와 한 형제(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라는 글귀를 즐겨 썼는데, 김종철의 '만물은 하나이고 형제'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왔을 것이다. 즉 김종철의 녹색사상 형성에는 동학, 한살림, 장일순의 영향도 작지 않았던 것이다.

일례로 김종철은 <녹색평론>의 창간일을 1991년 10월 29일로 명기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한살림 선언' 발표일(1989년 10월 29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는 또한 <녹색평론> 창간 문제를 김지하와 논의하기도 했으며, 창간호의 창간사 다음 첫 번째 글로 '함께 사는 길 1 / 한살림 공동체운동의 실천과 사상'(천규석)을 실었다.(두 번째 글은 아메리카 인디언 '시애틀 추장 연설 /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또한 1992년 가을에는 장일순 선생을 처음으로 직접 만나 그 대담 기록 '한살림운동과 공생의 논리 / 장일순 선생을 찾아서'를 <녹색평론> 창간 1주년 기념호(7호, 1992년 11/12월호)의 머리기사로 실었고, 1996년 5월 무위당의 3주기에는 그의 이야기 모음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책을 펴내는 등 무위당의 사상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은 앞으로 4~5회 연재한 후 끝내고, 이후 '녹색평론 김종철 읽기' 연재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녹색평론>이나 김종철 선생에 얽힌 일화나 추억, <녹색평론>을 통해 배웠거나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으신 분은 inkyu@pressian.com으로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녹색평론 김종철 읽기' 연재를 통해 보다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생각과 느낌을 서로 나눠 가지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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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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