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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로 아들을 보낸 어머니의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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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로 아들을 보낸 어머니의 마지막 이야기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4월 장례이야기

"나를 왜 낳았어요?"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을 보며 누군가는 떠나야 하고, 누군가는 떠난 이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4월은 ㄱ 님의 어머니에게도 잔인한 날을 겪게 했습니다.

ㄱ 님은 사십 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기타 및 불상'입니다.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했고 수일이 지난 후 발견되어 사인을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례에 참여한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ㄱ 님은 군복무 도중 지뢰 폭발 사고로 손가락 두 개를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고 이후 보상금이 적지 않게 나왔는데 그 돈을 새어머니와 고모가 가로채면서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온전치 못한 손 때문에 취직이 쉽지 않았고 결국 삶을 비관하다 술에 빠지게 된 ㄱ 님은 술에 취해 종종 어머니에게 전화하곤 했습니다.

"나를 왜 낳았어요? 왜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어요?"

ㄱ 님은 아주 어릴 적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탓에 삶이 이렇게 된 것이라며 평생을 원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도 힘들게 사는 형편이었기에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ㄱ 님의 생활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밥 한 숟가락 외엔 먹지 않았다며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아사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어머니는 보행기에 의지해 승화원을 떠났습니다. "저도 죽으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어요. 국가에서 해줘야 해요. 아마 저도 무연고로 가겠지요." 무연고로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지막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옵니다.

▲ ㄴ 님의 유골함에 국화꽃잎을 뿌리고 있는 이웃 주민 ⓒ김민석

요양병원이란 이름의 감옥

일반 병원들의 경우 주로 치료 행위에 따른 ‘행위별 수가제’의 적용을 받습니다. 하지만 요양병원이나 정신병원의 경우엔 ‘일당정액수가제’의 적용을 주로 받습니다. 치료 행위와 상관없이,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도 입원 중이기만 하면 매달 입원비의 80퍼센트까지 건강보험공단에서 수가를 적용받는 것입니다.

이런 '일당정액수가제'를 악용하는 병원들이 종종 있습니다. 서울역이나 영등포 등 주요 노숙지에 나타나서 "술과 담배를 주겠다", "수급자로 만들어주겠다",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라는 말로 노숙인들을 데려갑니다. 필요하다면 술을 먹이기도 하고 지적장애인의 경우엔 강제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숙인들을 입원시키고 술과 담배를 제공하며 병원은 이들을 방치합니다. 퇴소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술로 회유하기도 하고 완강하게 말을 듣지 않으면 신체 억제대를 이용해 강박을 하고 강력한 신경안정제인 일명 ‘코끼리주사’를 놓기도 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이런 요양병원에 스스로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죽을 위기에 있는 사람은 살려 놓지만, 그 이후의 회복까지 지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급성 치료 후 선택지 없이 스스로 이런 병원에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ㄴ 님도 이런 요양병원에 4년 가량 입원해 있었다고 합니다. 장례에 참여한 쪽방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ㄴ 님에겐 심각한 술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탓에 젊은 나이에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입원한 곳이 제대로 된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이 아니었기에 알콜 의존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퇴원 후 쪽방에 살면서 폭음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ㄴ 님에 대해 쪽방 이웃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속에 화가 많아서 술만 마시면 싸움을 거는 통에 아무도 걔랑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았어. 동네에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가 술을 사다주면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시다 고꾸라져서 자곤 했지."

미혼이어서 자녀가 없었던 ㄴ 님에게 법적인 가족은 형제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도 건강이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신 위임서에는 "지병으로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라는 위임사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 장례에 참여한 ㄷ 님의 동료가 남긴 메시지 ⓒ김민석

"빅이슈 동료들이 늘 생각할게요"

4월의 어느 날, 서울시립승화원의 그리다 공영장례 빈소에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ㄷ 님과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조문을 온 것입니다. 준비한 헌화 꽃이 모자라고 새 술을 따라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ㄷ 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덕분에 빈소에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 찼습니다.

ㄷ 님은 잡지 ‘빅이슈’의 판매원이었습니다. 조문 온 동료들은 ㄷ 님을 ”사람을 참 좋아하고 모두에게 살가웠던 사람“으로 회상했습니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정을 바라보니 정말 사람 좋아 보이는 어르신의 모습이 액자 속에 담겨있었습니다.

ㄷ 님의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동료들과 빅이슈 직원들은 수 차례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답답한 마음에 구청과 병원을 직접 찾아갔고 그때서야 부고를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병원과 구청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부고를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동료들은 하마터면 장례에 참여하지 못 할 뻔했다며 아찔하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말수는 적지만 잘 웃고, 자신도 어려우면서 남을 먼저 돕던 사람. 그의 퇴원을 기다리던 친구가 수십 명이나 있던 사람. 성실한 잡지 판매원.'

공문을 통해 고인을 만난 나눔과나눔은 이후 보도된 기사를 통해 ㄷ 님의 삶의 모습을 좀 더 상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무연고사망자의 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마지막의 존엄함을 지키는 일이 너무도 수월해진다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됩니다. ㄷ 님에겐 그 존엄함을 지켜줄 수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류상 무연고였던 고인에게 수많은 인연과 가족이 있었음을 느끼게 되는 장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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