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는 비가 와야 제 맛이다. 띄엄띄엄 오는 소나기는 장마라고 할 수 없다. 바야흐로 장마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는 오지 않고 뜨거운 햇살만 등줄기에 땀을 만들고 있다. 이린 시절에 이맘 때 쯤 되면 하교하다 말고 발가벗고 개울에 들어가서 멱을 감곤 했다. 필자는 겁이 많아서 저수지에 뛰어들지 못했는데, 작은형이 억지로 집어 던져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잠수하면 뜨는 것을 배웠고, 그 후로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한강(섬강, 여강)까지 진출해서 수영을 하고 조개를 잡으며 놀았다.
‘멱’은 “냇물이나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거나 노는 행위”를 말한다. 필자 나름대로 정의를 한다면 팬티를 벗고 노는 것은 ‘멱’이고, 수영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수영장에서 폼 나게 자유형, 배영 등을 즐기면 ‘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수영의 사전적인 정의로는 “1.물속에서 헤엄침 2.물속에서 헤엄치는 실력을 겨루는 운동 경기”를 말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정의로 말하는 것이 더 정겹다.
흔히 등목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팔다리를 뻗고 바닥에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 주는 일”을 말한다. 원래 한자로 목(沐)은 ‘머리 감는 것’을 말하고, 욕(浴)은 ‘몸을 씻는 것’을 말한다. 합치면 목욕이 된다. 즉 “머리 감고 몸을 씻는 일이 목욕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등목이라고 하는 말은 원래 바른 표현은 아니었다. 등에 물을 끼얹는데 머리 감을 목(沐) 자를 쓰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등물’이라는 표현하기도 한다. 등물이라는 말도 사전에는 “바닥에 엎드려서 허리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는 일”이라고 되어 있으니 등목과 같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목물’이라고도 한다. 목물은 “1.바닥에 엎드려서 허리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는 일 2.사람의 목에까지 닿을 만한 깊은 물”을 말한다. 그러니까 등목, 등물, 목물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 이음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등멱이라는 말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멱’은 “냇물이나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거나 노는 행위”다. 그러므로 등에 물을 뿌리며 노는 행위에 가장 가까운 말은 등멱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휘구조상 어울리는 단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멱을 사전에서 찾으면 “1.'목물'의 비표준어 2.목물(바닥에 엎드려서 허리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표준어는 ‘목물’이고 등멱은 비표준어다. 그렇다면 등멱은 어쩌다가 비표준어가 됐을까 궁금하다. 그것은 바로 남‧북한의 언어 이질화에 의한 것이다. 즉 북한에서는 ‘등멱’이 문화어로 우리말의 표준어에 해당한다. 어휘의 구조상 ‘등멱’이라고 해서 하나도 틀릴 것이 없는데, 그저 북한에서 문화어로 규정하고 있으니 남한에서는 비표준어가 되었다고 본다. 물론 조금 과하게 표현한 것이 없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려서 즐겨 부르던 동요 중에 “동무 동무 내 동무 / 미나리 밭에 앉았다.”라는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동무라는 말을 참 많이 썼는데, 북한에서 계급을 없앤다고 모두 동무라고 부르니 우리 남한의 말과는 거리가 생겼고, 이로 인하여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60대는 동무라고 하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지만 동시에 북한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호칭임을 알고 있다.
얼마 전에 태영호 씨가 쓴 책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글을 읽다가 “참으로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다단계라고 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다계단’(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130쪽(이하 쪽수만 기입한다.))이라고 하고‘눅은 담배(싼 담배, 89쪽)’, ‘인차(곧, 92쪽)’, ‘가긍해 보였다(가련해 보였다, 382쪽)’ 등과 같이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많이 보인다. 이질화된 단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같은 말을 하는 같은 민족인데, 앞으로 한 세대만 더 지나가면 서로 대화가 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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