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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도심 철도가 혐오 시설인가?...부동산 욕망에 근거한 '철도 지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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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도심 철도가 혐오 시설인가?...부동산 욕망에 근거한 '철도 지하화'

[기고] 정세균 전 총리의 철도 정책 비판

선거철만 되면 빠지지 않았던 도심 철도 지하화 공약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 정세균 전 총리에 의해 다시 등장했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한 정세균 전 총리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도심을 달리는 철도를 지하로 넣어 국가 균형 발전 및 미래형 도심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밝혔다. 정 전 총리는 도심 철도 지하화가 시대적 과제라고까지 치켜세웠는데 이 시대가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철도가 도심을 가로질러 개발을 방해하고 발전을 가로막으며 소음, 진동, 분진으로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전 총리의 진단 결과 철도는 혐오 시설이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더라도 지하로 감춰야 할 대상이다. 과연 정 전 총리의 진단과 해결책은 이 시대가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만큼 타당한 것인가?

한국철도의 역사가 127년이다. 철도는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며 이제는 우렁찬 굉음으로 상징되던 디젤 시대를 서서히 마감하고 전기철도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또한 철도 건설 기술의 발달로 소음이나 진동, 분진도 줄어들고 있다. 철도 연변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 같은 경우 간혹 소음 피해를 호소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파트 건설사들의 책임이 크다. 일본은 열차가 달리는 역사 위 호텔도 운영하고 차량기지에도 맨션이 들어섰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진동과 소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100년 넘게 달린 철길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소음 피해로 철도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한국 사회 미세먼지의 주범은 도로 위 자동차다. 철도 분진에 대한 걱정이 크다면 도로교통을 철도로 이전시킬 때 얻는 환경적 이득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도심 지하화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붇는 것 보다 당장 필요한 지역 광역철도나 지역 간 철도에 투자해 철도 수송분담률을 높이는 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도 그렇고 이어서 개통된 경부선 역시 근대 도시 형성을 촉발시켰고 인구 집중을 불러왔다. 철도역과 선로를 따라 개발이 되고 도시가 형성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철도를 상수로 놓고 지역이 개발되거나 확장되었다. 철도가 도심을 갈라쳐 통합을 방해하고 개발을 방해한다는 논리는 개발을 통해 수익을 얻고 싶은 토건 이해관계자들의 전매특허였다.

만약 도심 속 철도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이었다면 세계 철도사의 한 페이지는 세계 주요 도시의 철도가 대대적으로 지하화되는 시기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손을 뻗으면 선로 옆의 아파트 빨래 건조대에서 옷을 건져 올리 수 있을 것 같은 도쿄 도심 철도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철도 덕후들의 필수 관람 영화 <카페 뤼미에르>는 도쿄가 배경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철도 매니아들을 열광시켰다. 도쿄 오차노미즈 역에서 다섯 대의 열차가 얽히고설킨 선로 위로 달려가는 모습이 엔딩 크레딧에 앞서 나온다. 도심 한복판 역, 서로 다른 선로에서 열차가 다리를 건너고 하천 변 둑 위의 승강장을 지나는 풍경이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카페 뤼미에르>의 한 장면.

베를린시내 운하를 내려다보며 달리는 독일 철도공사의 열차들은 베를린의 개발을 가로막는 주범일까? 파리 도심에서 동서남북에 펼쳐져 있는 프랑스 철도공사의 철도 노선은 파리와 파리 광역권은 물론 장거리 노선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인프라이다. 이런 나라들에서 도심 철도 지하화를 시대적 과제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도쿄 최대 시장인 우에노 시장은 철도고가 아래 조성되어 있다. 흔한 방음벽도 없이 2~3분 간격으로 달리는 열차가 시장 상인들과 방문객들 위로 질주한다. 그 자체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장치가 되어 있다.

이제 철도는 단순히 교통인프라가 아니다. 기후 위기를 헤쳐나갈 시민들의 벗이자 문화적 도구로서도 기능한다. 문학작품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해질 녘 도심을 달리는 열차의 풍경은 그 도시를 드러내는 상징적 문화 콘텐츠가 되고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서울역에서 열차를 탄 뒤 수 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어둠 속 땅굴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철도 여행자로서도 끔찍한 일이다.

전 정총리는 도심 철도 지하화 성공 사례로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경의선 연남동 – 용산구간을 들고있다. 그러나 이 구간은 현재 분 단위로 열차가 다니는 경부선 같은 구간이 아니었다. 상당 기간 간선 철도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구간으로 하루종일 몇 편의 화물열차가 다니다가 이마저도 운행이 중단된 사실상 폐선과 다르지 않은 구간이었다. 경의선 주 간선은 서울역 – 신촌 – 수색으로 이어졌다. 경의선이 전철화 되고 중앙선과의 직결을 통해 경기 서북부에서 서울을 관통, 경기 동부 지역까지 연결되는 광역화 과정에서 지하로 건설된 것이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철도 노선을 혐오 대상으로 규정하고 거대 토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시급하지도 않고 시민들의 삶에 기여하지도 못한다. 한국 사회는 훨씬 더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쌓여 있다. 교통 분야를 돌아보더라도 도로에서 철도로의 수단 전환을 위한 적극적 지원과 투자 정책이 우선이다.

철도 지하화는 부동산 욕망에 근거한 전형적인 토건 개발 공약이다. 정 전 총리는 철도 지하화가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개발의 단 열매는 사업 수주를 맡는 토건 재벌과, 부동산 투자자들 몫이 된다. 한국 사회 부동산 거품이 확산 일로에 있다. 정 전 총리는 여기에 기름을 부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국 5대 도심의 철도부지를 개발해서 수익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는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신촌민자역사 사업과 창동역 사업 등 황금알을 낳을 것 같던 역사나 역세권 개발은 수많은 피해자만 양산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심 지하화 사업을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발상이다. 마땅한 투자 재원이 없을 경우 쉽게 차용하는 방식이 민자사업이다. 한국 사회는 민자사업으로 시민들이 고통받은 기억만 남아있다. 정 전 총리 구상대로 전국 5대 도시에서 민자사업이 진행될 경우 수익이 나면 민간자본은 알뜰히 이익을 챙겨가고 손실은 그 사업에 얽힌 많은 시민들에게 덧 씌여질 것이다.

정 전 총리를 포털에서 검색하면 공공정책학 명예박사가 최종학력으로 나온다. 공공정책에 의거한다면 정 전 총리는 그동안 민자 사업이 파생시킨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어야 옳다. 도심 철도 지하화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울 때가 아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경제 대통령 영입이 아니다. 자칫 철도판 4대강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는 토건 붐 공약으로 미래를 열 수는 없다. 인류사적 과제와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성찰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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