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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해직 고발 '진동아굿' 이후 옥살이...그래도 "잘 놀아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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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해직 고발 '진동아굿' 이후 옥살이...그래도 "잘 놀아 보세"

[탈춤과 나] ⑥ 故 박인배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의 탈춤

[탈춤과 나] 여섯번째 글로, 지난 2017년 별세한 한국 연극계의 거목이자 증인인 故 박인배 선생의 2002년 글을 싣는다.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 시절인 70년대 초 탈춤과 연극을 시작한 고인은 엄혹했던 독재 시절 춤과 극을 통해 그 한을 해학으로 풀어내온 기억을 더듬었다. 편집자

1970년대 초 대학 연극반 시절, 처음 연습한 연극이 일제시대 유랑극단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극중의 작가는 무언가 민족적인 이야기를 써보려 했고, 극단의 이러한 시도는 일제의 탄압으로 내부의 분란만 가져왔다. 그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탈춤을 추면서 민족적 연극의 가능성을 깨닫는다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진다. 유치진이 1930년대에 “무언가 민족적인 것에 취하고 싶다”고 했던 그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연극반 활동을 시작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어떤 연극이 좋다, 라는 기준이 없었던 나는 그저 연극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받아들이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과 어떤 교감의 끈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그 마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이후 대학시절의 전공을 팽개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30년째 연극을 하고 있다.

처음 탈춤을 배운 것은 그 공연의 연습과정에서였다. 그러나 제대로 맛을 익힐 여유는 가지지 못했다. 그저 대본에 들어 있으니 며칠 배웠을 뿐이었다. 당시 대학 연극반에서의 연극연습은 대사연습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어서 탈춤익히기와 같이 몸을 쓰는 훈련보다는, 대사를 분석하고 그것을 읽어 익히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래서 그 이듬해 추석인가, 양주에서 양주별산대공연을 한다고 해서 보러갈 때에도 산대놀이대본집을 옆에 끼고 갔다. 양장본으로 제본된 큰 책이어서 상당히 무거웠다. 탈판의 거의 맨 앞줄에 앉아 귀에 들리는 대사를 대본집에서 맞추어가며 읽어 내려갔지만 그 의미는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마침 가면극연구회의 한 선배가 뒤에서 나를 불러내었다. 뒷산에 술을 가지고 올라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한 말짜리 막걸리통을 메고 한참을 올라가니 공연장이 손바닥만하게 내려다보이는 나무그늘 아래 이미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한참 술을 얻어 먹고나서야 저 아래 공연장이 한삼자락 나부끼는 춤판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무렵 연극반, 탈춤반 구별 없이 어울려 다니면서 탈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양주 기본, 강령 말뚝이, 오광대 문둥이춤 등을 조금씩 배웠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때는 박정희 군사독재가 유신헌법을 내어놓고 긴급조치를 남발하던 시대였다. 탈춤을 배우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그냥 기본춤만 익히고 있기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기자들을 대량해고하여 쫓아내었던 사건을 즉흥고발극 형태로 풍자하였던 ‘진(眞)동아굿’을(5월 22일 일어났다 하여 일명 ‘오둘둘 사건’) 계기로 그 이후 일련의 시위에서 주동자가 되어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감옥살이를 하였다. 몸이 좁은 구치소 감방에 갇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춤을 출 수는 없었다. 그 대신 <탈춤의 미학>과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간혹 꿈을 꾸었다. 철창을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는 불림을 소리 높여 외치고 용틀임으로 하늘높이 뛰어오르는 그런 춤사위를.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기자들을 대량해고한 사건을 즉흥고발극 형태로 풍자했던 ‘진(眞)동아굿’ ⓒ동아투위

이 ‘자유의 몸짓’은 이후 나의 창작과정에서 주요한 화두(話頭)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춤사위라기보다는 사회적․문화적 실천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자유!

탈춤을 추어본 지 몇 해가 되었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예의 그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곧 청량리역으로 나오라고. 기차를 타니 예전의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있었다. 대학생들의 겨울 농촌활동 마지막 날이라 그 동네에 가서 탈춤을 놀아주기로 하였다는 것이었다. 독무를 출 실력이 안 되니 사자탈의 뒷다리를 맡을 수밖에. 얼었던 땅이 조금씩 녹아 질척거리는 동네길에 하루종일 길놀이를 하였던 것 같다. 질척거리던 땅바닥만 기억에 남아있고 동네의 분위기에 대한 것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열심히 돌아다녔는지(?)를 반증한다 하겠다.

그날 저녁, 우리 연희단들에게는 “거나하게 술상이 차려진 방”이 배정되었다. 물론 실제 그 방은 우리가 서로 무릎을 부딪히며 앉아야 할 정도로 좁았다. 술을 마시면서 나누었던 얘기는 ‘탈춤의 민중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순간 방문이 안쪽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 뒤에는 황망스러운 표정을 미처 감추지 못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앞으로 엎어질 뻔하였던 자세를 바로 잡으며 “딴따라들은 어떻게 노는지 구경하려고 했는데…”하였다. 일종의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민중성이 어쩌고 하며 중얼중얼하고 있으니, 더 가까이 들으려고 문쪽으로 몸을 붙이다가 그만 ‘민중’들이 놀라 자빠지는 일이 생겼던 모양이다.

이와 같이 대중의 민중적 정서를 읽어내는 것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화두로 이어졌다. 그날 저녁에 우리들 스스로가 먼저 ‘화끈하게’ 잘 놀았더라면 그 아주머니들도 함께 어울려 신나게 놀았을 텐데… 여러 가지로 미숙했음이 분명하다.

그 ‘미숙함’의 낯뜨거움을 해결해보려고 지금까지 애써오고 있지만 ‘잘 놀기’는 정말 어려운가 보다. (2002년)

글쓴이 박인배 : 서울대 연극반 72학번, 연극연출가, 민예총 기획실장,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극단 현장 대표, 세종문화회관 사장 역임. 2017년 별세

▲박인배 선생이 연출한 1990년 극단 현장의 <돈놀부전>. 탈은 김남수 제작. 실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유명인들의 모습을 담은 탈이 독특하다. ⓒ극단현장
▲박인배 선생이 연출한 1990년 극단 현장의 <돈놀부전>. 탈은 김남수 제작. 실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유명인들의 모습을 담은 탈이 독특하다. ⓒ극단현장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원고 마감 : 2021년 9월 30일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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