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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NGO가 기업처럼 일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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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NGO가 기업처럼 일할 때가 아니다

[초록發光] 기업의 탄소중립을 위한 조건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화석연료 및 시멘트 기업 108개 사가 1751년부터 2018년 기간 동안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9.6%를 배출했다. 그 중 상위 20개 사의 배출량 비중은 30%에 달한다. 1965년부터 2018년 동안 전 세계 화석연료 및 시멘트 산업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 중 가장 큰 규모의 '탄소 메이저' 20개 기업의 배출량 비중은 35%에 이른다. 1965년부터 2018년 사이의 누적분 상위 10개 회사는 사우디아람코, 가즈프롬, 셰브론, 엑손모빌, 이란국립석유, BP, 로열더치셸, 인도석탄, 페멕스, 페트로차이나 순이었다.

여전히 반(反)기후위기 로비하는 글로벌 기업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었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여전히 기후위기 대응 시기를 늦추기 위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투자자 행동 이니셔티브인 기후행동 100+(CA100+)가 관리하는 전 세계 300개 기업과 15개 산업협회 중 91%의 기업이 파리협정에 맞지 않는 로비를 하는 산업협회에 가입해 있거나 기후대응을 미루기 위한 로비를 벌였다.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산업이 반(反) 기후위기 로비를 하고 있었으며, 자동차, 화학, 시멘트, 철강, 수송 등 산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에너지업계의 경우 엑손모빌, 셰브론, 로열더치셸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온 BP 또한 기후 변화 대응을 저지하는 로비를 펼친 산업협회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좌초자산 매각이라는 '꼼수'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최근 온실가스 다배출시설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투자사에 매각하는 '꼼수'도 발견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발표한 최근 온실가스 배출량 분석자료에 따르면, 석유산업 메탄 배출량 상위 10개 사 가운데 5개 사가 과거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소규모 기업이다.

세계 최대 석유가스 회사들이 이들 기업에 고 오염 자산을 매각하거나 사모펀드 기업들이 석유와 가스자산을 인수해 개발한 후 빠르게 되파는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핑크 회장은 최근 "대기업들이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지저분한 사업을 매각함으로써 녹색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변화의 지점도 목격된다.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글로벌 대기업의 15%는 탄소중립 전환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있는 공급업체와의 거래를 이미 중단하기 시작했다. 탄소중립을 이행하지 않는 공급업체와의 거래 중단을 시작하는 글로벌 대기업은 2024년 62%, 2025년에는 78%가 될 것으로 조사됐다.

키스톤 송유관의 종말

미국과 캐나다의 '키스톤 파이프라인XL' 건설 프로젝트가 최근에 완전히 취소됐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프로젝트 허가를 취소한 지 5개월여 만에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캐나다 기업 TC에너지가 지난 6월 9일(현지시간) 사업을 영구히 종료한다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환경운동가들의 역사적 승리"라고 평했다. 키스톤XL 사업은 캐나다 앨버타주 하드시티에서 미국 네브래스카주 스틸시티까지 하루 원유 수송량 최대 80만 배럴, 총길이는 1,897킬로미터에 이르는 송유관을 연결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2005년 계획이 발표돼 캐나다 정부가 2008년 사업을 승인했고 미국 에너지위원회도 2010년 승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처음부터 수질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을 우려하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에 직면했다. 오일샌드는 원유를 정제할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물이 필요하다. 수년 동안 각종 소송과 시위가 계속됐고, 오바마와 트럼프, 바이든 정부를 거치며 송유관 반대운동은 환경론자와 개발론자 사이의 첨예한 갈등의 상징이자, 세계 기후운동의 상징과 목표가 되었다.

엑손모빌, 기후위기 대응 이사진 선출

세계 최대 석유기업 중 하나인 엑손모빌 이사가 최근 교체됐다. '탄소 감축'을 강조하는 행동주의 펀드 '엔진넘버원'이 추천한 이사가 엑손모빌 이사회 총 12석 가운데 3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엔진넘버원은 엑손모빌이 기후위기에도 석유와 천연가스 사업 의존도가 크다고 비판해왔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이사진 선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엔진넘버원의 지분이 0.02%에 불과함에도 이 같은 결과를 이끈 데에는 엑손모빌의 18%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뱅가드, 블랙록, SSGA 등이 모두 엔진넘버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들은 탄소중립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et Zero Asset Manager Initiative)에 참여하고 있다.

"로열더치셸,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45% 감축해야"

또 다른 세계 최대 석유기업 중 하나인 로열더치셸은 네덜란드 법원에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친구들' 네덜란드 지부인 밀리우데펜시와 시민 1만 7,200여 명은 2018년 로열더치셸의 현재 사업모델이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세계 최초이자 글로벌 에너지산업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사건이다. 로열더치셸은 자체적으로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정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으나 법원 명령으로 목표치를 높여야 한다. 벤 판뵈르던 최고경영자(CEO)는 "법원 판결은 우리에게 변화가 아닌 전략 가속화를 의미한다"며 "배출량을 더 줄이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열더치셸은 2025년까지 전체 예산의 25%를 재생에너지 개발과 저탄소 기술투자에 사용할 예정이다.

기업의 탄소중립을 위한 조건

2019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20개 기업의 배출량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56.2%에 이른다. 최근 들어 이들 기업을 포함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ESG 경영을 선포하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친환경을 표방하는 광고들을 쏟아내고 있다.

포스코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어떻게 평가하고 감시할 것인지, '선언'만 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주요 대기업에 어떠한 압력을 가할 것인지, 최근 경쟁적으로 신설된 'ESG위원회'의 역할과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친환경 광고들의 '그린워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할 것인지 등 기업 및 산업의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와 NGO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정부와 NGO가 기업처럼 일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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