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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도 노동자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참으로 이상하지 아니한가: 가사노동자에 얽힌 진실과 오해 몇 가지

2021년 5월 21일, 한국 역사상 가사노동자 보호에 관한 최초의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몇 년 동안 가사도우미 사대보험 적용, 가사서비스 구매권 등 엇비슷한 내용이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드디어 가사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고조되었고 서로 다른 이해와 견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법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 정부의 적극 지원이 시급하다는 데에서부터 노동자 보호에는 매우 미흡하다는 견해, 가사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에 시의적절하다는 데에서부터 부유층에서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를 국가가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 종사자 고용안정과 고품질 서비스로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데에서부터 비용 상승으로 오히려 이용자와 종사자 모두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견해 등.

여기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사노동자는 누구인가? 왜 지금 이러한 법이 필요한가? 그동안 우리는 이들에게 어떠한 관심을 가져왔는가?

역사를 되돌아보면, 가사노동은 인류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가사노동이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개인과 가정의 의식주 관리 및 양육, 고령자 보호' 등 종합적인 돌봄을 말한다. 가사노동은 적건 많건 간에 항상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했으며, 과거에는 일가친척, 지역공동체의 품앗이로 이루어졌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에서 '가사서비스'로 공급되기에 이르렀다. 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공장으로, 타인의 가정으로 들어갔고 후자가 근대 '가사노동자'의 탄생이다. 공장에 들어간 여성들은 집단을 이루었고 근로기준법을 뒷배 삼아 투쟁을 통해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나게 된다. 타인의 가정으로 들어간 여성들은 개인으로 고립된 채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졌고 누구도 그들을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11조 가사사용인 제외'는 금과옥조가 되어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국가의 지도·감독이 미치기 어렵다'는 데에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어 산업과 직업이 흥망성쇠를 거듭해도 가정의 의식주를 관리하고 아이와 환자, 고령자를 돌보는 일자리는 증가 일로였고 노동자들도 계속 늘어났다. 1999년 재외동포법이 제정되면서 쏟아져 들어온 동포들 가운데 50대, 60대 여성들이 가정에 입주하여 노동함으로써 본격적인 이주가사노동자의 시대도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 주위에는 40여만 명에 이르는 가사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 중 약 10%는 이주가사노동자(주로 중국동포)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속적인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정부, 노동,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화두로 삼게 만들었다. 인구사회구조․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서비스바우처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필두로 공공영역의 돌봄노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장 수요의 확대는 민간시장에서도 그동안 종합적인 가정내돌봄이었던 가사서비스를 가사돌봄(일명 가사도우미), 아이돌봄(일명 베이비시터) 등으로 분화·발전시켰고 2015년 전후로 플랫폼 업체가 등장하는 배경을 이루었다.

하지만 어떤 용어로 불리건 가사노동자들의 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근로기준법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법이 포괄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 '이동노동자'등으로 부르면서 일부 사회보험과 쉼터, 교육이 제공되기 시작했지만 그 어디에도 가사노동자는 없었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정부의 '아이돌보미사업', '사회서비스 바우처사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만 민간의 가사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무수한 연구와 토론회를 통해 불안정 노동자, 비전형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부르짖고, 노동조합은 요양보호사, 사회서비스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나섰지만 그 어디에도 가사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인 고용산재보험도, 국민의 권리인 취업알선과 직업훈련 등 고용지원서비스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최저임금 인상, 연차 휴가 개선도 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나 YWCA 같은 비영리조직, 사회적 경제 기업에 속한 극소수의 노동자들만이 믿을 수 있는 취업알선, 교육훈련, 자조모임, 배상보험 등 자체 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러한 조직들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매우 적었다.

이상하지 아니한가. 왜 어떠한 연구자도 근로기준법 11조에 대해 소리 높여 의문을 표하지 않았을까? 왜 노동조합들은 이 대표적인 취약노동자를 조직하려 들지 않았을까? 아니, 심지어 진보단체들과 노조들마저 요양보호사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우리는 파출부가 아니에요'라고 홍보를 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파출부는 하찮은 노동자이고 요양보호사는 품위 있는 노동자여서일까? 아이돌봄이나 노인돌봄도 업무의 다수가 의식주 관리, 청결한 환경의 제공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것이 간접적인 대인서비스인 '가사돌봄'보다 더 전문적인(급이 높은) 서비스라고 인지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이상하지 아니한가.

몇 년 동안 가사노동자법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달린 댓글에는 "너희도 고용보험 가입하면 되지, 보험료 내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월급 200만 원 받아서 베이비시터 한 달에 150만 원 주면 어쩌라는 거냐", "4대보험에 퇴직금 주고 누가 고용할까, 차라리 직업소개소 이용하지", "그나마 있던 일자리 없애겠구먼"과 같은 부정적 내용이 많았다. 참으로 이상하지 아니한가. 가사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할 길이 원천봉쇄되어 있었다. 또 주5일, 부모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보는 베이비시터의 급여를 150만 원에서 더 낮출 수 있을까. 그리고 가사노동자법은 개인에게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들을 고용하는 제공기관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1953년 근로기준법의 제외 조항은 당사자뿐 아니라 국민들, 심지어 진보단체 활동가들에 이르기까지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라이더나 택배, 대리기사들과 달리 '가정'에 들어가 일을 하기 때문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돌봄, 노인요양은 필수서비스라고 생각하지만 가사돌봄서비스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실제로 보라! 가사돌봄의 주이용자는 30~40대 맞벌이 가구로 바뀌고 있다)이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가사노동자법의 가장 큰 의의는 그림자로 남아있던 '가사노동자'들을, 일부이기는 하지만, 법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법정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가사노동자법의 또 하나 의의는 드디어 많은 사람들이 호출근로, 불안정노동, 비공식노동의 실체를 접하고 다양한 논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논쟁조차 없었던 과거에 비해 얼마나 큰 발전인가!

더 많이 논쟁하자. 가사노동자를 학습하고 법을 뜯어보자. 이 법은 단순히 가사노동자뿐 아니라 유사한 형태의 호출노동자, 불안정노동자들의 보호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법이 효력이 있을 것인지, 정말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눈으로 보고 토론하고 고쳐나가자. 우리 머릿속 고정관념을 깨고 이제 현실을 보면서 이야기하자.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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