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은 지난 8일 성주 성산동 제48호분(대분)의 학술발굴조사를 위해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86호인 성주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를 대표하는 중심 고분군으로, 그 중 제48호분은 크기가 제일 커 ‘대분(大墳)’이라 불려왔다.
성주 성산동 고분군은 1917년 조선총독부의 ‘조선고적조사사업’ 일환으로 실시된 현장조사에 의해 그 분포와 위치가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며 발굴은 1918년과 1920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에 의해 1920년 제48호분이 조사됐으며, 당시 중심석곽에서 다량의 유물이 쏟아졌지만 단기간에 현장조사가 마무리되며 다행히 그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졌다.
유물을 수습하는 데만 급급한 야쓰이는 조사 내용을 전혀 보고하지 않았는데, 약보고서는 커녕 복명서도 제출하지 않고 발굴조사 역시 매우 거칠어 고분의 중심부를 찾아 천장을 파괴하고 인부를 들여보내 주곽 내부의 유물만 수거하고 봉토 내 부곽 등은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이는, 1920년의 발굴조사는 단기간에 주곽 내부의 유물에 치중한 발굴로, 고분의 축조방식은 물론, 주곽의 구조형식에 대한 실측과 기록도 누락돼 이번 학술발굴은 주곽의 구조형식에 대한 기록과 촬영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부곽에서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도 충분하고, 다행히 출토유물이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져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고, 당시의 조사 사진과 서류 역시 일부 보관돼 있어 대분에 대한 조사를 우리 손으로 마무리 할 수있다는 것이다.
성주군은 이를 통해 제48호분의 성격 규명과 나아가 성주 지역 고분문화 및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병환 성주군수는 “최근 경주 및 익산 등에서도 일제강점기에 발굴됐던 고분을 재 발굴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성주의 성산동 고분군 역시 또 하나의 값진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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