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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북한의 닫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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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북한의 닫힌 문

[창비 주간 논평] "우리가 할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회담이 결렬된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불과 1년여의 시간조차 견뎌내지 못하고 좌초된 것이다. 한동안 '하노이 노딜'의 책임 공방이 격화되었고, 이해당사국 사이의 비방이 난무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회담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북한에 깊은 내상을 남겼다. 분풀이라도 하듯 욕설에 가까운 북한의 성명서가 이어졌고, 힘겹게 만들어진 남북연락사무소가 공중분해되었다. 충격에 빠진 북한은 남한을 희생양으로 삼아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을 것 같던 2020년 초, 전 세계적인 재앙이 한반도에도 몰아쳤다. 갑작스러운 전염병의 확산은 사회 전체를 걷잡을 수 없이 바꿔버렸고, 모두가 바이러스로부터의 안전에 골몰하게 되었다. 한반도 평화가 결코 감각되지 못하는 거대담론의 영역에서 힘을 잃은 사이, 바이러스는 매 순간의 위협으로 우리의 몸을 관통하며 경험되었다. 평화의 불씨를 살려보려 북을 향한 인도적 지원이나 백신 교류 등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 내부의 북에 대한 태도는 더욱 냉담해져 갔다. 팬데믹 시대에 '협력'과 '지원' 같은 가치는 호사스러운 것이며, 생존을 위해서는 각자도생의 전략밖에는 없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될 것을 북은 알고 있었던 걸까? 각자도생의 북한식 표현은 아마도 '자력갱생'일 테니 말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경을 닫고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과거 북한은 부실한 의료 시스템과 열악한 식량 상황을 반영하듯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전염병에 과도할 정도로 대응해왔다. 사스와 에볼라바이러스의 경우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거나 공적 업무로 인한 방문객의 경우 2주 동안의 의무격리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치료약을 구하기 어렵고 전염병 감별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방역조치란 문을 걸어 잠그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되자 북한은 사람뿐 아니라 외국으로부터 오가는 물류까지도 통제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 비해 2020년의 북중 무역이 약 70퍼센트 감소한 것은 교역 자체가 크게 위축되었음을 나타낸다. 사람과 물자의 교통을 통제하자 시장경제의 중요한 자원이었던 밀무역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주지하듯 아감벤은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을 기회로 통제력을 강화하는 국가 권력의 위험성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전염병이라는 순간에 국가는 과학기술을 앞세워 통제를 강화하고 사회의 소멸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하물며 자유주의적 가치를 표방하는 국가도 이럴진대 인민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지도자의 존엄과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해온 권위주의체제의 상황은 오죽할까. 초반의 위기 이후에 중국이나 러시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방역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체제 전환을 거치면서 더욱 막강해진 국가 통제 시스템이 이면에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통제와 규율 없는 방역국가란 가능하지 않으며, 국가 간의 차이는 통제 시스템을 얼마나 세련된 방식으로 최대한 은밀하게 운영하는가에 따라 만들어질 뿐이다.

체제의 특성상 북한은 기존의 감시체계를 십분 활용하여 '성공적인' 방역국가를 구축했다. 직장, 학교, 지역, 단위 별로 구축된 조직체계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방역지침을 하달했고, 국가의 방역체계에 협조하는 것이 인민의 의무가 되었다. 감염시키고, 감염되는 것은 중대범죄로 처벌과 낙인의 대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방역으로 인한 경제 손실로 시민들의 저항이 가시화되었지만, 국제 제재와 주기적인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내핍적 경제생활에 익숙한 북한 주민이 정부에 저항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팬데믹은 누군가에게는 위기를 돌파할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팬데믹을 하노이 노딜 이후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를 복원하고, 국가 통제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계기로 삼는 듯하다. 북미회담에 기대를 걸었던 권력 내부와 인민들의 동요를 막아내면서, 외부와의 교역이나 교류를 최소화하여 국가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유지하려는 것이다. 2020년 8월에 '비상방역법'과 12월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이동통신법' 등을 제정함으로써 사회 통제를 법제화한 것이 중요한 예이다. 방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주민들의 이동과 정보 접근을 제한하고, 접경지역의 다양한 유무형 네트워크를 국가의 통제 영역으로 강제적으로 포섭하고 있다. 주민들이 '처벌'받는 것도 커다란 문제이지만 더 근본적인 위험성은 시장화 이후 조금씩 뿌리내린 비공식 영역 전반이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시장화된 북한 사회에서 가장 전향적인 성향을 지닌 집단으로 알려진 청년이나 여성의 희생과 충성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팬데믹 이후 지속적으로 발신되는 것도 징후적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척을 위해서도 현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이 핵협상에 나선 이유가 단순히 핵무기의 완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북한 사회에서 커다란 변혁을 만들어낸 시장화 세력의 압력과 변화된 인민들의 의식 및 욕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아래로부터의 힘이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state of emergency)에서 관리·통제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북한의 변화를 만들어낼 중요한 자원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북한의 위기는 인민에게 더욱 가혹했다는 사실이다. 굳이 선군정치라는 병영국가 아래 인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졌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북한의 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강화되었고, 누가 고통 속으로 내몰렸는지는 명확하다. 나아가 고난의 행군 시기 외부 세계가 북한의 상황을 외면하면서 국가적 위기가 결국 권력의 기회로 전환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그만큼 과거의 경험은 제재보다는 관여가, 고립보다는 협력과 소통이 인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국제 제재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살아가는 북의 인민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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