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새, 붕새를 타고 세계사 1000년을 조망한 이가 있다. 김상준(경희대 교수), 그는 대학 재학 시절 강제로 징집을 당하여 보안대에서 고문을 당했다. 팔이 마비되었다. 1986년엔 평자와 함께 노동운동 활동가로서 <민중의 함성>(거름 펴냄)을 썼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전술 핵무기의 실상을 폭로하였던 리포터(muckraker)였다. 1987년 6월엔 부평에서 군중의 시위를 이끌었던 실천가(revolutionary)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 세계사 호(號)의 진로가 이상하게 가고 있음을 간파한 김상준은 뉴욕으로 날아가, 문명의 진로를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문명 탐색은 끈질겼다. 30년 후 그가 타고 다닌 한 마리 새를 우리에게 내놓았다. 신화의 새, 붕새였다.
김상준이 붕새를 타고 소요하며 조망한 세계사의 시간대는 자그마치 1000년이다. 누군들 동양과 서양의 세계사를 모르지 않겠지만, 김상준의 조망은 특이하였다. 동양과 서양의 두 세계사를 하나의 보따리에 집어 넣어버린 것이다.
과연 김상준이 타고 다닌 붕새는 구만 리 장천을 날도록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을까? <장자> '소요유'에서 붕새를 비웃었던 매미와 비둘기는 이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이하 <붕새의 날개>)에서는 이영훈의 뉴라이트들이 된다. 그들 역시 김상준의 소요를 이렇게 비웃고 있을 것이다. "제까짓 게 보긴 뭘 봐? 헛것을 본 게지." 김상준은 뉴라이트의 매미와 비둘기를 위해 먼저 한 장의 통계표를 제시한다.(이영훈이 늘 요구하는 것이 데이터요, 통계이다) 서기 1000년부터 오늘까지 세계 GDP 총량에서 각국의 GDP가 점하는 비율을 그린 도표이다. 네덜란드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이 만들었고, 유네스코가 공인하였다. 뉴라이트의 매미와 비둘기를 위한 최상의 서비스였다.
그림은 어렵지 않다. 도표 X축의 맨 오른편에는 2030년 중국과 미국이 점하게 될 GDP 점유율이 그려져 있다. 중국이 19%, 미국이 18%이라는 거다. 뭐야? 지난 1960년 미국이 27%, 중국이 4%를 점하던 것과 비교하였을 때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거 맞나? IMF에게 물었더니 IMF도 고개를 끄덕인다. IMF 역시 2021년 미국이 22조, 중국이 16조를 점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미국 인구가 3억 5000명이고 중국 인구가 14억 명이니, 경제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미국과 중국의 GDP 역전은 2030년 이전에도 발생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앵거스 매디슨이 작성한 도표의 특징은 주요 국가의 GDP 점유율을 1000년의 시간대에서 그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X축을 따라 왼쪽으로 시선을 이동하자. 중국과 서유럽의 GDP 점유율이 역전하는 시기가 1860년대였다. 인도의 점유율이 급강하기 시작한 것은 1770년대였다. 그 이전의 시기엔 인도가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이었음을 도표는 보여주고 있다. 콜럼버스가 왜 인도를 찾아 항해하려고 했던지,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인도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친 것인지, 도표는 시원하게 보여준다.
이제 붕새를 타고 다닌 김상준의 '사유'(Thought)를 따라가 보자.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서세동점'의 시기(1800년대~1900년대)는 김상준의 사유에 의하면 근대세계사의 일부였다. 서구가 주도한 이 200년의 역사를 김상준은 '서구 주도 근대'(westernizing modern age)의 시기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서구가 과학기술 문명을 앞세워 전 지구를 식민지화하고, 전 인류를 수탈하던 시기 말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시대는 바야흐로 서구 주도가 소멸되고 있는 시기이다. 서양과 비서양이 공존, 협력하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시기, 이 시기를 '후기 근대'(late modern age)라 부르자고 김상준은 제안한다. '후기 근대'의 시대엔 식민지도 없고 직접적 수탈도 없다. 팽창(Expansion) 문명이 내장(Inpansion) 문명으로 전변하는 변화의 시기다.
김상준의 '사유'는 계속 전개된다. 그렇다면 '서구 주도 근대'의 시기 이전의 역사를 무엇이라 부를까? 이 시기를 '초기 근대'(early modern age)라 부르면 어떨까? 보통 근대라고 하면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를 말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도 총생산과 인구가 두드러지게 성장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있었고, 이 시대를 역사학자들은 '초기 근대'(early modern age)라고 부르지 않던가?
봉건신분제가 붕괴해야 근대가 온다. 그런데 봉건신분제는 유럽보다 동아시아에서 훨씬 일찍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중국 송나라가 선두이다. 그래서 김상준은 이 시기 중국에서 '초기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본격적인 '초기 근대'는 중·조·일 삼국이 평화의 시대를 구가했던 17세기~18세기이다.
유럽의 '초기 근대'는 '대항해와 아메리카 발견'의 시기 즉 16세기이다. '초기 근대'에서 '서구 주도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가 바로 18세기 '계몽주의'의 시기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1757년 인도의 플라시 전투 이후에서 1839년 아편전쟁의 발발까지를 '초기 근대'에서 '서구 주도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보자. 그렇다면 유럽의 '초기 근대'는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300년이고, '서구 주도 근대'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200년이다.
김상준이 이 근대사 담론을 가지고, 말을 걸고 싶어 하는 이들은 아직도 '근대화=서구화'라는 도식에 꽁꽁 붙들려 있는 매미들, 뉴라이트이다. 김상준은 말한다.
김상준은 이어 말한다.
서양이 앞서 있으면 동양이 배우고 동양이 앞서 있으면 서양이 배운다. 이것은 역사의 상식이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아랍어로 기록된, 잃어버렸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자기 역사의 연속성과 정체성 위에서 가능하다. 이것은 자명한 진리이다. 수용하는 주체가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수용한다는 말인가?
김상준의 붕새 소요를 반가워할 시인이 있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외친 김수영 시인이다. 1950년 어느 날, 우리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 앞에서 김수영의 영혼은 황홀하였다.
그렇듯이, 우리에게 또 다른 근대가 있음을 나는 김상준으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임란 이후의 조선사가 '초기 근대'이고, 강화도 수호조약 이후 일제 강점기가 '서구 주도 근대'로 해석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늘 괴로워했다. 단절된 역사, 잃어버린 전통의 문제로 말이다.
내가 뒤늦게 복학하여 만난 이가 이영훈이다. 나는 씨의 논리 앞에서 오랫동안 고민하였다. 조선인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철도를 놓아준 것은 일본인이었다는 주장 앞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박정희 개발독재의 정당화로 이어진다. 오랫동안 나는 신음하였다.
친일파가 우리에게 던진 미끼가 '근대화'였다. 친일파의 후예들이 우리 국민에게 던진 미끼가 '경제 성장'임을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성장주의의 술에 취해 살고 있는 시대에서 성장주의가 아닌 다른 가치를 제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정희 독재의 비인간성을 욕하기는 쉬웠으나 박정희 개발독재를 그리워하는 대중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2006년 <철학콘서트>(생각정원 펴냄)를 쓰고, 2015년 <역사콘서트>(생각정원 펴냄)를 쓰고, 2017년 <촛불 철학>(풀빛 펴냄)을 쓰면서 밤을 새워 고민하였던 문제가 '성장을 넘어선 가치'의 탐색이었다.
<붕새의 날개>는 뉴라이트와 벌이는 담론 싸움에서 막강한 우군이 될 것 같다. 21세기에 들어와 '서구 주도 근대'가 가고 있다는 김상준의 해석은 아직껏 '근대화=서구화' 도식에 붙들려 있는 뉴라이트에게 이념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결정타가 될 것이다. <근대화=서구화=문명화> 이 낡은, 시대착오적 사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뉴라이트, 너희야말로 양(New Right)의 탈을 쓴 늑대(Anachronistic Right)가 아닌가?
나는 이곳 광주에서 'After 30 years'라는 주제의 강연을 많이 하였다. 30년 후가 되면 동아시아 3국의 경제권이 북아메리카 경제권을 추월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게 되어 있는 우리의 미래이다. 지난 19세기를 영국이 이끌었고, 지난 20세기를 미국이 이끌었다. 2030년이 오기 전에 세계 경제의 주도권은 동아시아가 쥔다. 그런데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붕새의 날개>가 제기하는 물음도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붕새의 효용을 칭송하며 글을 맺겠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두꺼운 책은 죄악"이라고 말하였다. 900쪽이 넘는 <붕새의 날개>는 다르다. "두꺼운 책도 선일 수 있다"이다. 플라톤의 <국가>가 지식인을 위해 마련한 앎의 향연이었듯이, <붕새의 날개> 역시 한국인을 위해 준비된 문명 담론의 향연이다. 어서 와 거장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1. 하멜(보시우스) : 이곳(조선)은 철학자들만이 통치하는 플라톤적 공화국이다.(99쪽)
2. 재닛 아부-루고드 : 몽골제국이 형성한 아프로-유라시아 네트워크는 '13세기 세계체제이다.(129쪽)
3. 월라번 : <하멜표류기>에는 인종주의(racism)가 없다.(143쪽)
4. 토마스 홉즈 :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서로 늑대가 되며, 그러한 상태에서의 삶은 고독하고(solitary), 빈궁하고(poor), 끔찍하고(nasty), 거칠며(brutish), 짧다(short).(202쪽)
5. 안드레 군더 프랑크 : 서구는 번성하던 아시아 교역망에 탑승한 무임 승차자였다.(282쪽)
6. 카를 마르크스 : 광대한 식민지 획득을 통한 자원 확보, 인클로저를 통한 '토지 없는 노동력'의 확보, 이것이 영국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이다.(287쪽)
7. 김상준 : 1980년 광주항쟁 역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봉기였다는 점에서 해월과 동학혁명의 전통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공수부대를 물리쳐 몰아내고 광주에서 형성된 '완벽한 평화와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가 그것을 입증한다.(341쪽)
8. 슈펭글러 : 1차 대전의 당사자인 유럽에서는 전재의 참혹함을 경험하면서 기존 유럽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일어났다.(448쪽)
9. 월러스틴 : 소련, 동구권 모두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일부였다.(483쪽)
10. 칼 폴라니 : 인류학적 시각에서 보면 경제체제는 호혜경제, 국가재분배경제, 시장경제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시장경제가 지배적이고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재분배경제가 지배적이다.(484쪽)
11. 애덤 스미스 : 농업에 기초한 내부 시장 확대와 평화로운 국제교역을 강조했지 군사력에 의한 식민지 약탈이나 패권적 지배를 지지하지 않았다.(603쪽)
12. 케넌 : 미국에는 언제나 외부에서 단일한 악의 중심을 찾아서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여기에 돌리는 흥미로운 경향이 있다.(618쪽)
13. 홉스봄 : 1945~1973년의 시간대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보편적인 사회적 전환이 일어났다.(679쪽)
14. 피케티 :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불평등이 21세 들어 극점에 이르고 있다.(680쪽)
15. 월러스틴 :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다극화 균등화가 시스템 자체의 질적 변형을 가져온다.(691쪽)
16. 제러미 리프킨 :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본질적으로 통제권의 분산을 선호한다.(761쪽)
17. 프란스 드 발 : 이기적 본성론은 한동안 인간 본성에 관한 지배적인 생물학적 시각이었다. 도덕성이란 인간 본성의 얄팍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껍데기 이론은 무너졌다. 공감 능력, 이타성, 협동력의 증거들이 엄청나게 쌓여왔다.(770쪽)
18. 수잰 시마드 : 숲은 나무들을 연결하고 소통하게끔 해, 마치 지능이 있는 유기체와 같다.(777쪽)
19. 레베카 솔닛 : 재난 속에서 가려지고 묻혀 있던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가 되살아난다.(819쪽)
20.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인류는 최초로 나의 존재, 나의 가치, 나의 욕망 자체를 대상화하고, 나를 부정하여 새로운 자아에 이른다고 하는 인류 재탄생의 기적을 경험했다.(866쪽)
2021년 6월 1일
빛고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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