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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도 '별일' 취급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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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도 '별일' 취급받고 싶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별것 아닌 일'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특별하지 않은 일, 사소한 일이라는 뜻이다.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일, 작고 하찮은 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별것 아닌 일'로 채워지는 건 나쁘지 않다. 어느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하루 정도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하지만 나의 존재와 삶 전체가 '별것 아닌 일'처럼 여겨진다면 어떨까? "별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 "별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따위의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한다면 그 삶은 괜찮지 않을 것이다.

2018년,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출 것을 요구하면서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일 때의 일이다. 당시 청소년이 투표하면 안 된다며 선거권 연령 하향을 강하게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에 항의하러 찾아갔을 때, 우리를 막으러 나온 당직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예민하지 않은 문제이니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예민하지 않은 문제'란 무슨 말이었을까? 그 사람 말대로 선거권 연령 하향이 예민한 문제가 아니라면 왜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지지부진했을까? 예민하지 않다는 건 결국 '별것 아닌 일',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는 이야기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저항은 '별것 아닌 일'로 취급되곤 한다. 만약 청소년이 학교에서, 집에서, 일하는 곳에서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일이 알려진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세상이 원래 다 그래'라고 말한다. 두발과 복장, 용모를 단속하는 학교, 청소년 노동자에게 반말로 업무를 지시하는 현장, 사생활을 침해하는 가족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겨우 그런 게 뭔 인권이라고...' 하는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다 청소년으로서 겪은 인권침해를 공론화하며 인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내면 '버릇없는 애들' 취급하거나 '선동당했다'며 의심한다. 또는 청소년기에 겪는 문제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테니 지금은 좀 참으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듯 어떤 문제제기와 요구는 반대에 부딪힌다기보다는 아예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애초에 사소한 일로 취급하면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함께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주목해야 할 이슈가 되기 어렵다. 청소년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나중으로 미뤄지기도 한다. 그저 '몇몇 심각한 학교/시설/현장'의 문제, '그 사람이 운이 없었던 것'이라는 인식 속에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개별 사례로 흩어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반복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인권침해는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느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각목으로 위협하고 대걸레가 부러질 정도로 체벌을 한 사건이 있었다. 학부모가 이를 아동학대로 신고하였으나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훈육'이라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한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을 해온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를 조사한 교육청에서 '인권침해는 아니다'라고 판단하며 교사와 학생들의 화해를 권했다. '스쿨미투'의 가해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으며 피해를 고발한 학생들이 도리어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청소년인권 문제가 사소한 일, 개인적인 일로만 이야기되는 것은 제도적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법률인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는 오랫동안 응답받지 못했다. 학생인권법은 학생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이 보장되어야 하며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학생인권기구와 관련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법안 발의를 회피했고 교육부에서는 이런 사안은 교육청이 지방자치로 할 일이지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다며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강한 반대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하는 것과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결국 학생인권법은 10년 넘게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때 세상은 바뀐다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묻히곤 한다. 때로는 묻히는 정도를 넘어, 차별 경험을 이야기하는 소수자들이 사소한 문제로 불만을 늘어놓는 불편한 존재로 취급되기도 한다. 무시하지 말고 때리지도 말고 자유를 보장하고 같은 사람으로 존중하라고 외치면 '별것도 아닌 걸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사람이 되고, '고작 그런 일로' 다른 사람과 사회 질서를 방해하는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폭력 또한 워낙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져 왔기에 사회에서 인권침해로 인정되기도 어렵다.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묵인되어온 일일수록 이게 왜 문제이고 인권침해인지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별것 아닌 일'로 대하기 때문이다.

최근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되었다. 차별금지법은 한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존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인권기본법이다. 그러나 이 차별금지법 또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나중에' 하면 된다는 말로 오랫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다. 차별은 마치 몇몇 소수자만의 문제라는 인식도 여전히 많고, 어떤 차별은 너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하다 보니 "이게 왜 차별이냐"는 항의가 섞인 질문에 부딪히기도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은 우리 사회가 무심코 넘겨온 차별을 '중요한 일'로 재조명하는 활동이기도 한 것이다.

그때 자유한국당의 그 사람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선거권 연령 하향,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 좀 보라고, 우리 존재가 있다고 외친 것이다. '별것도 아닌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동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던 일을 중요한 문제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바뀌어왔다. '고작 그 정도 일'에 주목하여 여태껏 가시화되지 않던 차별과 폭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도 '별일' 취급받고 싶다. 나아가 그저 특이하고 이상한 일로 생각되기보다 평등하고 인권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모든 '별것 아닌 이야기'가 모일 때 세상의 변화가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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