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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보편적 인식체계' 형성 배경에 '동아시아 임팩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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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보편적 인식체계' 형성 배경에 '동아시아 임팩트' 있었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②] 김상준 경희대 교수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 후반에는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서구와 달랐나', '동아시아에 '유럽적 보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상의 씨앗이 있나', '협력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와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한 대담이 오갔다.

김 교수는 동아시아의 내장 근대와 서구의 팽창 근대라는 렌즈로 500년 근대 세계사를 살피고 향후 세계 역사의 진로를 탐색한 책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의 저자다.

한겨레 전 기자이자 도서평론가인 한승동 씨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수출 주도 경제 전략, 싱가포르의 약탈적 금융 등을 언급하며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정말 서구의 팽창(膨脹)과 구분되는 내장(內張)적인 것인가"라고 물었다.

특히 평화헌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일본과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에서 패권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국을 이야기하며, 두 국가의 내장적 성격에 대해 회의적 견해를 표했다.

김 교수는 "군사적 침략 없는 평화적 무역은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변경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서양 제국주의와 같은 성격의 것은 분명 아니지만, 현재 '높아진 세계인의 정의의 눈높이'에 비추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중국 역시 이 점을 의식하고 있고, 한국 외교는 '중국을 위한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성숙한 이웃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한국이 미국과 서구에 대해서도 동등한 파트너로서 당당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사적 상태에 도달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인규 '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은 자유민주주의 등 유럽이 만들어낸 '보편적 인식체계'의 막강한 힘을 언급하며 동아시아가 이를 뛰어넘은 인식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지 물었다.

김 교수는 "소위 '유럽 보편주의'의 바탕인 유럽의 계몽주의의 형성 과정에 동아시아의 영향이 컸음을 보아야 한다"며 "유럽 계몽주의가 이를 고양시켰던 것처럼, 이제 유럽 보편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지금은, 동아시아가 이를 인류적 보편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남북관계에 대해 김 교수는 '남북이 서로를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양국체제론'을 주장하며 이를 위해서는 종전선언을 통해 교전이 끝난 뒤 7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쟁상태를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1편 바로가기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내장(內張)적이었나

한승동 : 근대 500년사를 거시적으로 훑어보았다. 이제 구체적으로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대해 얘기해 보았으면 한다.

미국이라는 팽창문명의 대표자가 강제한 면도 있지만, 동아시아의 발전 전략은 수출 주도, 즉 외부로 뻗어 나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동아시아에서 수출 주도 전략이 실행되며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수탈당한 지역이 있다.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의 금융도 상당히 약탈적이다.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역시 내장보다는 서구 방식을 채택해 그 연장선상에서 팽창적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김상준 : 내장 체제는 무역을 부정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무역은 군사강점과 식민화를 수반했던 구 제국주의 체제에서의 무역과 다르다. 군사정치적 강제와 강압이 없는 내장형 무역조차 부정할 수 없다. 군사 행위 없는 평화적 무역이 21세기 들어 세계 지니계수를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 점을 봐야 한다. 무역 자체를 세계불평등의 원인으로 보면,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전 지구 차원에서 내장형 문명으로 문명 전환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더라도, 무역은 활발할 것이다. 다만 무역의 성격은 진화할 것이다. 운송에너지, 교역 산물에서 기후요인이 더 고려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물론 말씀대로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성장은 미소 냉전의 틀 속에서 이뤄졌다.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 군사기지 다 내주면서 한국과 일본이 성장했다. 그 지적은 맞다. 단, 팽창과 내장의 변증법이라는 개념 속에는 양자가 상호작용하며 배운다는 뜻이 있다. 동아시아가 서구 팽창 문명에 먹힌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일본은 평화헌법으로 비무장했다. 강요된 면도 있지만 내부 선택도 있었다. 그런 전제 위에서 평화적 교역에 치중한 거다. 그 후 한국, 대만, 싱가폴, 홍콩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동아시아가 2차 대전 이후의 무역 체제에서 강점을 발휘한 이유가 뭘까. 여기에 내장적 강점이 있었다. 처음에 미국이 일본을 키우면서 자국의 시장을 열어줄 때 일본을 우습게 봤다. '냅킨(napkin)이나 만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이 빠르게 반도체, 자동차로 성장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빨랐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로 빠를지는 아무도 몰랐다. 낙차에너지가 아니라 밀도에너지를 높이는 동아시아의 내장형 경제활동 패턴이 2차 대전 이후 산업화 패턴, 특히 3차 산업 혁명의 반도체 '칩 쌓기'와 같은 방면에서 특장(特長)을 발휘했다.

한승동 : 팽창과 내장이 상호작용한다는 것도 동아시아의 발전에 대해 가능한 설명인 것 같다.

그런데 저는 '평화헌법'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절대적 우위를 누리고 잘 먹고 잘 살 때는 말씀하신 평화헌법이 유지됐다. 그런데 지금 그게 흔들리고 있다. 전자, 조선, 철강 등 분야에서 일본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고 한국과 중국이 성장하니 평화헌법 9조를 없애고 군대를 갖자는 여론이 많아졌다.

또 CIA 자료로 보면, 일본의 전후 부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미국 주도로 이뤄졌다. 태평양전쟁 후 1951년 미국 등 연합국이 일본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맺으며 한국과 중국 등의 전승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회의에 초청조차 하지 않은 채 일본의 배상 대상국에서 뺀 것도 다 기획된 일이었다. 일본은 나쁜 말로 표현하면 미국의 앞잡이로 떡고물을 챙겼다.

일본을 동아시아 내장 근대의 한 축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김상준 : 책에 침략전쟁을 했던 과거 메이지 유신체제의 일본, 그리고 오늘날 그 과거를 되살려보고자 하는 일본 우익에 대해 내장적이라고 쓰지 않았다. 일본의 그 부분은 동아시아 내장적 전통에서 일탈하여 동아시아에 등을 돌리고 서구팽창주의를 추수했던 ‘이탈자’다. 이러한 일본의 팽창세력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일본의 자유주의, 전후 민주파의 한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나 일본 전체가 그렇지는 않다는 점을 아울러 강조했다. 오히려 메이지 유신 이전, 에도 막부 체제가 내장적 성격이 강했음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책에서 거듭 설명했다. 일본의 농민적 전통과 무사적 전통을 구분해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자가 몸체고 중심이다. 그리고 그 성격은 내장적이다.

일본을 한쪽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엄청난 영향을 발휘했던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과거가 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한승동 : 중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하고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내세우면서 한 일이 WTO 무역체제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미국 주도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참여해서 돈 벌고 성공했다. 지금은 중국이 G2라는 말도 나온다.

중국이 지금까지 발전한 게 내장 근대인지, 미국과 같은 팽창 근대인지, 혹은 내장 근대로 전환하는 상향인지를 봐야 할 텐데 최근 대만, 신장위구르, 티베트의 상황을 보면 서구의 팽창근대와 다를 게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중국이 팽창 근대의 철저한 희생자이고 그래서 서구와 중국을 동일한 출발선에 있다고 보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에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당한 동아시아의 피해국에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김상준 :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지금 중국이 동남아에 군대를 보내고, 군사기지 세워놓고 무역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동남아와 중국 관계를 과거 서양의 제국주의적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중국이 WTO 가입한 건 영리한 선택이지 않았나? WTO를 원론적으로 부정만 하고 있었다면 세계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중국만 아니라 인도, 동남아, 남미 등이 세계무역에 동참하면서 거대 빈곤층이 절대 빈곤에서 풀려난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그 결과 세계 불평등지수(지니계수)가 떨어진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개별 국가 내의 지니계수는 오히려 올라가지만, 세계 전체의 지니계수는 떨어지고 있는 역설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책에서 설명한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후자의 추세가 전자의 추세도 완화하거나 꺾어놓을 가능성도 있다.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세계화가 활발했던 1988년~2011년, 세계인을 소득 수준에 따라 100개 분위로 줄 세운 뒤 각각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얼마인지 나타낸 곡선. 이를 보면, 중국, 인도, 태국 등 신흥국가 국민(50~60분위)의 실질소득 증가율(70~80%)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서유럽, 미국, 일본 등 OECD 국가 국민(80분위)의 소득은 거의 늘지 않았다. 단, 세계 최고 부유층(100분위)의 소득증가율(60~70%)은 신흥국가 국민 못지 않다.

신장위구르나 티베트, 홍콩, 대만문제 역시 과거 서양 제국주의 행태와 동일시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침략, 식민지화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내부 문제다. 이걸 지워버리고 동일시하면 기존서방 패권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서방 언론의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 곡조에 맞춰 춤추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에서 보이는 강압성은 분명히 있다. 세계인이 그걸 느끼는데, 이건 그 모습이 과거 제국주의와 같아서가 아니다. 세계인의 정의감각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진 거다. 이 역시 세계의 내장화 현상의 하나다. 중국도 이 점을 예민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 패권으로 미국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미국 역시 과거와 같은 패권을 행사할 수 없다. 심지어 앞마당인 남미에서도 그렇게 됐다. 중국 역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그렇게 못한다. 하려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자기에게 손해다. 세계가 그만큼 수평화됐다.

내장적 세계와 팽창적 세계의 역(力)관계의 근본적 상이성을 봐야 한다. 과거 17세기 초반에서 19세기 초반의 동아시아 200년 평화기의 국제관계가 내장적이었다. 청나라가 대국이었지만, 주변국가를 서구 제국주의 방식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았다.

한승동 :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처럼 왕이 있는지 없는지 의식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 내장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장 자체가 패권이나 지배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김상준 : 내장적 세계에도 큰 나라와 작은 나라는 있겠지만, 큰 나라가 먼저 작은 나라를 존중해야 존경받을 수 있다. 사대(事大) 이전에 사소(事小)가 있다. 맹자가 일찍이 강조했던 점이다노자도 <도덕경> 61장에서 마찬가지 이야기를 했다.

요즘 중국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중국을 무조건 욕하기보다는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에 대해 한국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명, 청 시대에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할 말 할 수 있는 국가는 조선이었다. 공맹, 노장에 대해 아주 깊이 알았으니까 그런 게 가능했다. 당시의 '소중화(小中華)' 사상을 나쁘게만 봐서는 안 된다. 문명적, 사상적으로 조선이 중국보다 더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저자 김상준 경희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동아시아가 서구와 다른 보편적인 인식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박인규 : <프레시안>의 지향이 '관점이 있는 뉴스'다. 그 관점이 어떤 관점이냐가 문제인데 김 교수의 이번 책은 그 내용을 채워주었다는 느낌이다. 즉 이제까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온 유럽적 관점이 아니라 동아시아인의 시각에서 지난 500년을 정리했다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유럽인들이 16세기 이후 세계를 정복하고 수탈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굉장히 '보편적'인 인식체계를 만들었다. 유럽의 인식체계에는 인종주의적인 면도 있지만 굉장한 이념적 호소력이 있다. 지금도 신장이나 홍콩 문제 등과 관련해 터져 나오는 중국 비판이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강한 호소력에서 비롯된다. 기후위기 이야기도 서양에서 나왔다. 지구가 처한 여러 문제에 대해 아직도 서양이 의제(agenda)를 던진다. 저는 이게 무섭다.

10여 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 '세계체제론'의 임마누엘 월러스틴이 한국에 와 창비 백낙청 선생과 대담한 적이 있다. 월러스틴은 한국에서 1999년 출간된 <이행의 시대(The Age og Transition)> 등을 통해 이미 동아시아가 21세기를 이끌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대담에서 월러스틴이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일본에 세계인을 끌어들일 보편적 세계관은 없는 것 같다. 동아시아가 유럽을 뛰어넘는 보편적 세계관을 만들지는 못할 거다. 유럽의 보편적 세계관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즉 과거 500년간 유럽이 입으로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 자유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비유럽을 정복하고 지배한 것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보편적 인권과 자유, 민주를 실현하는 과제를 담당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른바 유럽적 보편주의에서 보편적 보편주의로 진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도 유럽인들이 만든 거대한 인식체계에 포박당한 면이 있다. 아직 미국의 수탈을 비판하는 건 소수다. 역사적으로 서양의 비서양 착취는 사실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양의 지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김상준 : 유럽적 보편주의를 보편적 보편주의로 확장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 이 책도 그런 취지에서 썼다. 이번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만 아니라 10년 전 출간한 <맹자의 땀, 성왕의 피>의 주제도 서구중심 보편주의를 넘어선 글로벌하게 확장된 보편주의였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변증법적이라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유럽 계몽주의가 표방한 보편주의란 실은 유럽 밖의 여러 사상자원을 흡수하여 고양한 것이었다. 이슬람, 페르시아도 있지만, 동아시아의 영향이 그중 가장 컸다. 책 전반부에 강조한 것이지만, 민본국가, 정당한 혁명, 세습 귀족신분제 부정, 능력주의에 따른 관료선발제, 종교의 사회지배에 대한 반대는 유럽이 동아시아와 중국을 알게 되면서 받아들인 것이다. 17세기부터 유럽에서 계몽주의가 나오고 세속주의가 나올 때 동아시아의 사상적 영향이 컸다.

예컨대, 계몽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국가의 목적이 신의 영광을 대리하는 군주의 영광이었다. 종교와 정치가 합체돼 있었다. 여기에 정치의 목적, 국가의 목적은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 이러한 정치의 목적을 거스르는 군주는 끌어내릴 수 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 같은 동아시아의 생각, 철학이 전해지면서 유럽의 지식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유럽적 보편의 기원을 따지면 동아시아의 영향이 있다는 얘기다. 그걸 그들 나름대로 다듬고 발전시켰다. 다시 우리가 그걸 많이 배웠다. 그러나 그 역사적 곡절을 잘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이뤄진 유럽적 보편을 이제야말로 한 단계 높은 인류적 보편으로 끌어올린 시간이 됐다. 동아시아만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동아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현실의 흐름이 그렇게 되고 있다.

이런 걸 서양의 진보적 지식인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월러스틴 선생을 개인적으로 알았지만, 그분 역시 동아시아의 진보적 자원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선생과도 이야기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선생 자신이 대표자인 '비판철학'에 대해 '비판'의 기원이 무엇인지, 비판철학의 기원이 동아시아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었다.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 만났을 때는 질문 자체를 이해 못하더라. 그럴 수가 없다고 봤던 거다.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비판전통이 나오나? 오늘날의 진보적 사유의 뿌리는 오직 유럽 계몽주의에만 있다'는 생각이었던 거다. 하지만 비판성의 근원은 인류에게 굉장히 깊다. 보편적이다. 서구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동아시아가 더 깊을 수 있다. '민(民)의 수평화'의 역사가 동아시아가 훨씬 깊다.

한승동 : 서양인들이 동아시아가 서구에 준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김상준 : 그뿐 아니라 동아시아인들 자신이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는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왔다'고 하면 농담하지 말라고 한다. '조선에 무슨 민주주의가 있었냐'고 화까지 낸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 정당이나 선거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지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뿌리와 줄기는 민(民)의 합의와 협력의 깊은 전통이다. 이런 시각에서 봐야 민주주의를 보편적이고 인류사적인 시각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의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예가 하나 있다. 동학혁명 때 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한 뒤 관과 협약을 맺고 '민관공치(民官共治)의 집강소 체제'를 만들었다. 봉기 농민군과 국가가 화약을 맺고 상당 기간 성공적으로 공치한 사례를 어느 혁명사에서도 찾기 힘들다. 이건 국가가 혁명군에 엄벌주의로 대처하는 것보다 훨씬 발전되고 세련된 방식이다. 혁명군 입장에서도 국가체제와 공치하여 자신의 요구를 구현한다는 것은 아주 담대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집강소는 성공했다. 민주주의의 중심이 선거가 아닌 '자기통치'라는 면에서 보면 미래적이기도 하다. '거버넌스(governance)' 즉 '민관공치'는 이제 21세기의 유행이지 않나.

그런데 이런 걸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다. 영어로 해야만 그럴 듯 한가. 한국에서 촛불혁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깊은 뿌리가 있다.

한승동 : 박 이사장이 한 이야기를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이 자기들 세계에 갇혀있긴 하지만, 그 안에 인류 전체의 대표 주자로서 사상적인 차원에서 인류가 직면한 첨예한 문제에 대해 고민한 세력이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보편주의가 현실적으로 압승한 면이 있다는 거다.

김상준 : 사상이나 이념, 철학의 영역에서 '압승'이란 좀 불편한 표현이다. 인류적 보편성은 우선 '지배'의 위치를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지금도 '인권' 사상이 지배의 무기가 된다면, 그건 인류적 보편성에 미치지 못한다. 민주주의에도 그 앞에 자꾸 무슨 수식어를 붙여 지배의 무기로 삼으려는 세력들이 있다. 여기에 반대한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족하다. 지금 동아시아가 인류적 보편으로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새로운 지배권을 세우기 위한 동작이어서는 안 된다. 내장적 문명 전환이란, 바로 그러한 여하한 종류의 패권의식으로부터 확실히 결별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인규 : 김 교수의 생각이 틀렸다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김 교수의 문제의식이 힘을 갖기 위해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을 물은 거였다.

김 교수의 문제의식이 대다수와 공유되려면 현실세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서구의 사상을 넘어서야 할 텐데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사회의 주류 학자나 경제인은 서구적 세계관에 물든 사람이 많다.

동아시아의 내장 문명이 가진 협동적 성격이 바람직한 세계상을 만드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새로운 문명을 지향하는 사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승동 : 그 문제에 대해서는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경제적 토대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미얀마에서 한국이 인기가 있고 한국인이 괜찮은 사람으로 비친다고 한다. 한국말을 하고 한국 기업에 고용되면 월급이 몇 배로 오르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수입의 크기에 따라 사람이나 국가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면이 있다.

제가 보기에는 경제적 관계가 역전되지 않으면 의식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이 백인을 높게 보고 유색인종을 고만하게 보는 것에도 경제 문제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김상준 : '경제적 차이'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적 서열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기업이 부의 수준이 좀 떨어지는 나라에서도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박 이사장이 '한국사회의 주류 학자나 경제인은 서구적 세계관에 물든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그렇다. 사실이다.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책의 주제를 다루었던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굉장히 큰 변화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막힌 것 같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이야기를 경청하려는 청중(audience)이 생겼다.

어쨌거나 저같이 학교에 있는 사람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책을 쓰는 것이겠다. 그래서 열심히 썼다. 희망은 있다. 저를 보시면 된다. 저야말로 젊을 적 누구보다 더 서구적 세계관에 깊이 물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조그만 결과라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책을 꼼꼼하게 끝까지 잘 읽어주시기 바란다. 사람이 나이 들면 생각이 잘 안 변한다. 이야기를 해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돌아서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좋은 책은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나이 든 사람도 바꾸어놓을 수 있다. 돌아서도 다시 읽을 수 있다. 책은 항상 제자리에 있으니까. 몇 번이고 읽어도 좋은 책이 정말 좋은 책이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도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한다.

또, 젊은이들이 많이 읽어주기 바란다. 젊은이들은 아직 생각이 굳어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책이 젊은이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학술 차원이 아니라 현실 관계 차원에서는, 서구인들에게 '서구적 세계관'의 문제를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 서구는 서구대로 세계를 본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대응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그 눈으로 자기 문제를 보려 하면 문제다. 그건 자기 중심이 없다는 것이니까.

그동안 서구에 대한 선망이 깊었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 깨져가고 있다. 이 책의 착상은 2013년에 했지만, 책을 쓸 수 있게 된 계기는 첫째가 촛불, 둘째가 코로나였다. 이 책의 첫 대목을 초고로 썼던 2013년의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얼마나 암담했나. 그랬는데 지금은 현실이 크게 변했다. 촛불과 코로나를 거치며 일반인들도 '프랑스보다 우리가 잘하네. 미국 별것 아니네'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이런 보통 한국인들의 자신감이 이 책을 마칠 수 있게 했다.

▲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저자 김상준 경희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남북이 협력을 통해 내장 문명으로의 전환에 기여할 수 있을까

박인규 :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책에서도 중요하게 언급한 냉전적 대결의 최전선이 남북 대립이라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해 그간 남북이 수없이 작성한 합의서에는 서로의 체제와 가치를 인정한다고 되어 있다. 말은 그런데 실제로는 한국 지식인 상당수가 '북한 체제는 망할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 교수는 평소 이 문제에 대해 양국체제론을 주장했다. 남북한이 서로를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한 바탕 위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남북관계의 바람직한 형태라는 주장으로 이해한다. 김 교수가 책에서 주장한 것과 연결 짓자면 서로 협력하는 세계를 만들려면 결국 남과 북도 서로의 체계와 가치를 인정하고 지키며 평화공존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남북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상준 : '코리아(korea)' 남북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 코리안(We, the Korean people)은 참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다. 당사자 간 교전이 끝난 지 70년이 다 됐는데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 어디 있나. 세계인들은 이 어이없는 사정을 모른다. 그렇다고 말하면 으쓱하면서 '넌센스!'라고 한다. '상식 탈출'이다. 전쟁부터 확실히 끝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코리아에 알파요 오메가라고 본다.

영국, 독일, 프랑스 과거에 다 서로 전쟁한 나라 아닌가. 그런데 전쟁 끝나면 어떻게 했나.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든, 수교하고 교류하며 잘살고 있지 않나. 지금 한국도 그렇다. 중국과도 전쟁했지만 지금은 수교하고 잘 산다. 일본과도 동학혁명 때, 의병전쟁 때 두 번의 전쟁에서 패해 식민지가 되었지만, 일본 패전 후 다시 수교해서, 어쨌든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 중국과 미국도 그렇고, 베트남과 미국도 그렇다.

그런데 왜 한국(ROK)과 조선(DPRK), 그리고 미국과 조선은 아직까지도 전쟁을 못 끝내고 있나. 아까 제가 '세계인의 눈높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정말이지 세계인은 이해를 못한다. 이런 세계인의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한승동 :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고 수교하면 되는 문제라는 이야기다. 냉전이 끝나고 한국은 당시 소련, 중국과 수교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미·소·중·일 등 한반도 주변 4국의 이른바 남북 '교차승인'이 그때 이뤄졌다는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김상준 : 북한이 미국에 수교를 제안한 게 1992년이다. 그때 미국이 받았으면 지금 북핵도 없었다.

한승동 : 형식적으로는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남북이 서로를 인정했다. 남북이 각각 유엔에도 가입했다.

김상준 : 2018년 세 번이나 만나 남북 정상이 합의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아직까지도 국회에서 비준 동의도 못하고 있다. 이것도 상식 밖이다.

한승동 : 남북이 각자의 체제를 인정하고 국가 대 국가로 교류하는 건 쉽게 될 것 같은데 하다못해 금강산 관광도 못한다. 한미연합사령부나 한미 '워킹 그룹'에서 제재 문제 들고 나오면 꼼짝도 못한다. '미국 말 안 들었다 삼성 망하면 어떻게 할래' 이런 말도 나온다.

북도 체제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자체 생존을 위해서도 그렇고 남과의 교류협력을 위해서도 그렇다. 남쪽 체제는 민(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변혁운동을 통해 재구성된 면이 있다. 북쪽 체제도 그런 면에서 내부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박인규 : 김 교수가 말한 내장 문명에 한국이 기여할 게 있다면 남한과 북한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공존관계를 만드는 것일 텐데 그게 남한만의 실력으로 안 된다. 미국이 들어가 있다. 북한은 생존해서는 안 되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중국은 '발전을 위한 길은 여러 가지'이며 다른 나라에 중국식 체제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말이 원론적으로는 맞다고 보는데 세계인에게 그다지 호소력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보편적 기준이며 그 외의 체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미국은 자신의 체제가 유일하게 정당하다고 믿으며 자신의 체제를 이식하기 위해 군사력 사용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비판은 그리 많지 않다.

김상준 : '세계인의 눈높이'로 보면, 미국의 패권적 군사력 사용에 대한 세계여론의 비판은 매우 높다고 본다. 그 '눈높이'에서는 집주인인 한국이 세입자인 미군에게 주둔비를 턱없이 인상당하고 있는 모습도 이해 못한다.

이제 남 탓하기보다 자신을 볼 시간이다. 비하가 아니라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도 될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촛불혁명과 K방역 이후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벨 같은 사람이 '중국 모델(China Model)' 운운했지만, 실은 '한국 모델(Korea Model"이 훨씬 말이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를 통해 남북문제도 풀 수도 있다. 이번 책과 함께 2019년 출간한 <코리아 양국체제>를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그 책에 쓴 길이 현재 두 코리아가 평화적으로 통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유일한'이라는 강한 표현을 쓴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뒀다.

▲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김상준 지음) ⓒ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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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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