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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서울 청년 얘기만 듣나요?"

[6411 사회극장 ③] 비수도권 청년이 말하는 '평등과 공정'

당신의 이야기로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당신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얻고 때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노회찬재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협력 운영하고 소셜 디자이너 '두잉'이 진행하는 '6411 사회극장'입니다.

'사회극'은 집단이 공유하는 문제를 탐색하는 작업입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에 기초해 역할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인식의 개선과 확산 때로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합니다. 심리상담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합니다.

'6411 사회극장'을 준비한 우리는 '사회극'을 통해 올 한해 여성,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조명하려 합니다. 이를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 합니다.

어쩌면 당사자들의 시선 속에 그들의 삶을 개선할 소중한 단서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기록은 비수도권에 사는 청년들과 함께 평등과 공정을 주제로 진행한 사회극입니다.

▲ 6411 사회극장. ⓒ노회찬재단&소셜디자이너'두잉'

무대에 의자 세 개가 놓였다. 하나는 정면을 향해 있다. 다른 하나는 뒤돌아섰다. 마지막 의자는 엎어졌다. 이 의자를 보고 누가 떠오르나? '6411 사회극장' 세 번째 주제는 2030이 말하는 평등과 공정이다.

'6411 사회극장'이 수도권을 벗어나 대전 세종 지역 청년들을 만났다. 지난 23일 대전 유성구 공유공간 벌집에 11명이 모였다.

사회극장엔 짜인 대본이 없다.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참가자도 사회자도 모른다. 각자 고민을 풀어놓고 타인의 처지에 서서 상상해보는 즉흥극이다. 최대헌 '심리상담 청자다방' 대표,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왜 서울 청년 얘기만..."

일요일 오후, 이들은 왜 낯선 이들을 만나러 왔을까?

"청년하면 항상 서울 청년들 얘기 듣는 거 같아요. 지방 청년들 의견 듣는다고 해서 왔어요."

"일상이 지겨워요."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난 게 오랜만이에요. 정보도 공유하고 심심함도 풀고 싶었어요."

"대전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용자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어요. 용자들과 대화해보고 싶었어요."

무엇이 말 못하도록 가로막나? 최대헌 사회자가 물었다. 곧 한 참가자가 반문했다.

"용기를 가로막는 게 있을까요? 혁명가들은 어떻게 용기를 내 혁명을 이뤘을까요?"

시작부터 뜨거웠다. 사회자가 구조적 문제에 방점을 찍자 참가자는 개인의 의지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오늘 대전, 세종시 청년들의 다양한 입장을 떠올려 보며 이야기해 봐요. 여러분 목소리를 통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달될 수 있다면 이 자리가 의미 있을 거예요."(최대헌)

쓰러진 의자를 보고 떠오르는 사람은?

참가자들은 무대 위 세 의자를 보며 떠오르는 대로 포스트잇에 써봤다. 뒤돌아선 의자 위엔 이런 낱말들을 붙였다.

"탈조선 꿈꾸는 청년", "코로나로 소외되고 있는 장애청년", "탈지방 꿈꾸는 청년", "늘 대표를 할 수 없는 여성 청년", "소득분위 조건 탈락으로 다시는 기대할 수 없는 미취업청년", "은둔 청년", "사회가 떠미는 꿈을 쫓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청년"

쓰러져버린 의자에 붙은 낱말들은 이랬다.

"성소수자", "이동권이 없는 장애인 청년", "공시 탈락 청년", "집 못사는 청년", "부양가족 많은 청년", "우울증, 트라우마"

참가자들은 정면을 응시하며 똑바론 선 의자를 보곤 이런 사람들을 상상했다.

"생활비 걱정 없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 청년", "정규직 정년 보장 청년", "집 있는 청년."

▲ 23일 대전 공유공간 벌집에서 열린 '6411 사회극장' 참가자들이 조별 활동을 하고 있다. ⓒ소셜디자이너 두잉

돌아선 의자는 말하네 "이제 기대하지 않아"

이제 구체적인 인물을 상상해볼 차례다. 당신은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은가?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명씩 역할 속으로 들어갔다. 엎어진 의자 그룹에 속했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냈다.

위선희 씨는 대전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뒤 마케팅 일을 하는 30대 계약직 노동자를 생각했다.

"좋은 직장이라고들 하는데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질 않는 거야. 자회사로 돌리더라고. 이제야 대리가 됐는데 월급이 고작 10만 원 올랐어. 내 꿈은 15평대 내 집을 갖는 건데 4, 50대가 되도 이룰 수 없을 거 같아."

김영우 씨는 장애인 학생이 돼 보았다.

"청년하면 많이 뛰어다니는 걸 상상해. 난 대전에서 대학생이 됐는데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어. 신호등이 너무 빨리 바뀌어 횡단보도 건너기도 어려워. 택시를 부르면 왜 미리 장애인이라고 알리지 않았냐면서 그랬다면 손님을 받지 않았을 거라고 해. 길거리 전동킥보드들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힘들어."

정면을 바라보며 똑바로 선 의자는 걱정이 없을까? 청년들이 상상한 '정면 의자'의 공통점은 정규직에 집이 있다는 점이었다. 김지훈 씨가 상상한 '그'는 정말 별 걱정이 없었다.

"급여 안정돼 있고 정년 보장 받아. 청약 통장을 만들었는데 부모님이 선물로 집을 해주셔서 해지했어. 기분이 좋으면서도 좀 아쉽네. 집이 두 채면 노후를 더 보장받을 수 있을 텐데."

여기저기 웃음기 섞인 감탄사가 나왔다.

"와, 부럽다."

문성남 씨가 상상한 '그'는 그래도 고민이 있다.

"직장도 괜찮고 집도 있어.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대전 세종에는 맘에 드는 학교가 없네. 간판이 안 좋으면 50대 때 밀릴 거 같은데. 서울에 사는 교수는 네트워크도 빵빵하고 사회진출도 유리할 거 같은데. 이사까지 가야할까?"

위홍신 씨가 상상한 남 부러울 것 없을 듯한 '그'에게는 고민이 있다.

"좋은 학교 나와 대기업 다니니까 사람들이 다들 뭐가 힘드냐고 해. 그런데 과로사 할 거 같아. 갑질 때문에 괴로워. 아이 교육 때문에 서울에 가야할지 걱정이야."

돌아선 '의자'들이 사는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팍팍한 건 매한가지다. 주승훈 씨는 부모님 소득 탓에 지자체나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는 청년 이야기를 풀어놨다.

"취업 준비 중인데 부모님이 차랑 아파트가 있어서 나는 청년 지원을 못 받아. 그건 부모님 돈이지 내 돈 아니잖아. 우리 집은 삼형제라 나한테 지원을 쏟아줄 수 없다고. 게다가 경기도는 재난지원금 10만원씩 주던데 대전 세종은 없더라. 답답해."

이선엽(가명) 씨가 '빙의'한 청년은 희망을 잃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부모님 지원 없이 하루 사는 것도 빠듯한데 결혼을 어떻게 해. 이런 저런 정책 이야기는 들었지만 삶은 안 바뀌어. 이제 기대도 하지 않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참가자들은 더 다뤄보고 싶은 두 역할을 골랐다. 이동권을 빼앗긴 장애인 청년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부모님 소득 탓에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 이야기도 꼽혔다.

독립하라면서, 왜 부모라 묶지?

참가자들은 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장애인 청년을 맡은 이영우 씨가 쓰러진 의자 옆에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이 의자처럼 상상해 봐요. 어때요?"(사회자)

"당황스러워요."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 거 같아요?"(사회자)

"깔보는 거 같아요. 출근 시간에 버스 타면 수근거려요. 민폐라는 소리 들어요. 제 존재 자체가 민폐라고 말하는 거 같아 두려워요."

이영우 씨가 앉아 있는 동안 부모님의 소득분위에 따라 지원에서 배제된 청년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주승훈 씨가 지원 탈락 청년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은 부모님이랑 살지만 언젠가 독립해야 하는데 답답해. 닥치고 일이나 해야지 생각해. 서울로 갈까도 생각해봤는데 집값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오피스텔은 꿈도 못 꾸고 반지하나 옥탑방으로 가야할 거 같아요. 소득분위 조건을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어요. 이 이야기를 대전 시장에게 하고 싶어."

그러자 즉석에서 대전 시장이 등장했다. 김지은 씨가 그 역할을 맡았다.

"예산이 안 되서. 코로나가 장기화되니까."

지원 탈락 청년 역할을 맡은 주승훈 씨 곁에 두 사람이 섰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인물의 목소리가 됐다. 이선엽 씨는 자신이 20살이 넘어 근로 능력이 생긴 탓에 부모님이 받는 수급비가 깎였다고 했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나는 난데."

위홍신 씨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의 사례를 꺼냈다.

"가정 불화를 견뎌왔고 지금도 부모님께 도움을 못 받는데 서류엔 잘 산다고 나와."

"20살엔 독립하라더니 왜 어쩔 때는 부모와 한 묶음이지?"

한 참가자가 말했다.

이들의 문제제기에 문성남 씨가 즉석에서 시장 권한대행을 맡아 답했다.

"우리 집 곡간을 봐야죠. 누구에게 쌀을 가장 먼저 줘야할까? 거리에 폐지 주는 어르신들, 대전 옆 앞에서 한 끼 드시려고 줄서는 어르신들 먼저 도와야 하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반박했다.

"시장님, 센트럴파크 투자하는 대신 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여러분이 다가올 선거에서 저에게 힘을 실어주신다면…."

시장 역할을 맡은 성남 씨는 목소리까지 흉내 냈다. 웃음이 터졌다. 위선희 씨가 대전시청에서 20년 근무한 공무원으로 등장했다.

"효과가 바로 보이는 정책에 예산을 많이 쓰죠. 공원, 트램 같은 것들이요. 여러분에게 팁을 하나 주자면 일단 힘을 키워야 해요.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해서 권력을 잡아요."

▲ 23일 대전 공유공간 벌집에서 열린 '6411 사회극장'에 참석한 청년이 쓰러진 의자 옆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셜디자이너 두잉

"먼저 목소리 내야" vs "그러기 전에 적극 행정을"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한 편에선 "목소리를 내는 게 먼저"라고 주장했고 다른 쪽에선 "그러기 전에 대전시가 적극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맞섰다.

"취업 준비해야지 공부해야지, 뭉쳐 목소리 내기에는 사는 게 너무 바빠."

"의견을 내야 알 거 아닌가? 원하는 걸 말하는 의지를 가져야지."

"6411 버스 타고 출근하는 '투명 인간들' 그 사람들한테 조명 비추는 게 정치인들이 할 일 아닌가? 그러라고 세금으로 월급 받는 거잖아."

이 논쟁 내내 장애인 역할을 맡은 이영우 씨는 홀로 떨어져 앉아있었다. 사회자가 그에게 느낌을 물었다.

"소외된 거 같아요. 화가 나요."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종이에 적어봤다.

'재미있게 예능처럼 즐겨라', '군중 집회', '서로 독려'

이어 둥그런 원을 그리며 섰다.

"뭔가 변화를 불러올 확실한 방법이 있을 거 같다는 사람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보세요."(최대헌 사회자)

11명 가운데 5명이 한 발을 내디뎠다.

"확실한 해결책이 나오진 않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자리였어요."

"오늘 만난 분들만 봐도 희망이 있는 거 같아요."

줄어드는 비수도권 인구, 청년이 더 많이 떠난다

- 일자리 양과 질, 모두 수도권이 우세

비수도권 청년이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오랜 사회문제다. 도서산간지역뿐 아니라 부산, 대전, 광주 등 비수도권 대도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청년이 살던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는 데는 교육, 문화, 의료 등 복합적 요인이 있지만 가장 주요하게는 일자리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9년 수도권 비수도권 2, 30대 인구 비중 54 대 46

인구 이동의 영향으로 수도권 인구가 증가하고 비수도권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청년층이 비수도권을 더 많이 떠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지역 청년인구 유출과 지자체의 대응방향>을 보면, 한국사회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비중이 50 대 50으로 같아진 것은 2019년의 일이다.

2, 30대 수도권 인구 비중이 같은 연령대 비수도권 인구비중을 앞지른 시기는 이보다 16년 전인 2003년이다. 젊은 층이 비수도권에서 빠른 속도로 떠났다는 뜻이다.

2019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2, 30대 인구 비중은 54 대 46으로 벌어졌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이 지난 12월 발표한 <청년인구 이동에 따른 수도권 집중과 지방 인구 위기>에도 비슷한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 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19~34세 인구의 수도권 순유입은 8만 6661명이다. 그 밖 연령대 인구는 오히려 3920명이 수도권을 떠났다.

19~34세 인구의 수도권 순이동률(전출 인구 대비 전입 인구 비율)은 전북(-25.6%), 강원(-21.7%), 경북(-20.7%), 전남(-19.4%) 등 순으로 높게 나타나지만 부산, 광주, 대전 등 비수도권 대도시에서도 수도권으로의 19~34세 인구 순유출은 일어나고 있다. 예외는 세종뿐이다.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도권 평균 고용률, 일자리 질도 수도권이 높아

청년이 비수도권을 떠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주요하게 지목되는 것은 일자리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기준 전국 청년 고용률은 42.6%다. 수도권의 청년 고용률은 인천 47.6%, 경기 44.5%, 서울 42.6%로 이를 상회한다.

비수도권에서 전국 평균보다 높은 청년 고용률을 기록한 광역시도는 충북(43.1%)과 대전(43.9%)뿐이다. 전북(30.3%), 세종(34.2%), 대구(36%), 경북(38.9%), 전남(39.3%), 울산(39.3%)의 청년고용률은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자리의 양뿐 아니라 질도 수도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9년 3월 발표한 <일자리 질 지수를 통해서 보는 지역별 일자리 분포>를 보면, 자체 지수에 따라 252개 시군구의 일자리 질 지수를 조사한 결과 39개 상위 지역으로 분류됐고 이 중 32개(82%)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분포했다.

최용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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