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가깝고도 먼 두 세계의 만남, 접경지역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가깝고도 먼 두 세계의 만남, 접경지역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접경지역의 경제지리학

2016년 2월, 필자는 처음으로 북‧중 접경지역에 위치한 대표적인 도시인 중국 랴오닝성(辽宁省) 단둥(丹东)을 방문했다. 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沈阳)까지 이동한 다음, 선양-단둥 간 고속철도를 타고 단둥역에 도착했다.

단둥역에 도착한 때가 오후 8시 반 경이어서 날은 이미 어두웠다. 단둥 시내에 위치한 숙소로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긴장된 마음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신의주 시내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다.

단둥 시내는 도시의 불빛으로 밝았지만, 신의주 쪽은 거의 불빛이 보이지 않아 캄캄했다. 야간에 한반도와 그 주변을 촬영한 위성사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의주 시내의 모습은 다음 날 아침, 압록강 변을 따라 걸으면서 비로소 볼 수 있었다.

북한의 무력 도발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그 후로 필자는 북‧중 접경지역을 연구하기 위해서 2017년 2월과 7월, 두 차례 더 단둥을 찾았다. 하필 필자가 처음으로 단둥을 방문했던 2016년 2월 즈음부터 북한은 잠시 멈췄던 핵실험을 재개했으며, 다양한 수준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했다.

구체적으로 2016년 1월 6일에 북한은 네 번째 핵실험을 단행했고, 같은 해 9월 9일에 다섯 번째 핵실험을, 2017년 9월 3일에 여섯 번째 핵실험을 계속해서 실시했다.

핵실험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2016년과 2017년 사이에 여러 차례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단행했고, 2017년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해당하는 화성 14호와 화성 15호를 발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사회를 향한 북한의 무력 시위가 계속되자,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제재와 압박을 결의해왔다. 예를 들어, 2016년 3월 2일에 채택된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제2270호는 무기 제조나 군사적 전용 가능성, 또는 대량살상무기 제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자의 수출입이나 금융거래만을 차단하고, 민생과 관련이 있는 물자에 대해서는 거래할 수 있도록 빈틈을 두었다.

하지만, 2016년 11월 30일에 채택된 제2321호 대북제재 결의안부터는 제재 대상 기관 및 개인의 범위와 수출입 금지 품목의 범위를 더욱 확대했고, 대량살상무기 제조와 무관하더라도 수출입을 금지할 수 있도록 제재 수준을 강화했다.

2017년 12월 23일에 채택된 제2397호 대북제재 결의안은 종전보다 수출입 금지 품목을 확대했으며, 무엇보다도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결의안이 채택된 시점을 기준으로 24개월 이내 북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점도 못박았다.

북한의 무력도발과 그에 대응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소식은 단둥에서 현지 조사를 진행하려던 필자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었다. 북‧중 접경지역 연구를 위해서는 대북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현지 기업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 심층면담을 진행해야 했는데, 대북제재로 인해 북‧중 간 공식적인 교류가 차단되면서 사전에 면담에 응해주기로 한 기업들이 약속을 취소하거나, 명백히 대북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전혀 무관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거짓으로 답변하는 경우가 많아 연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바로 이러한 점이 접경지역만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 아닐까? 특히, 단둥처럼 대북한 사업 및 교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대북제재 결의안에 담기게 될 제재 내용과 수준에 대해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는 접경지역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 못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서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접경지역은 '상호작용/교류의 공간'이라기보다 '단절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컸다.

그런데 막상 단둥에 와서 보니, 그동안 필자가 접경지역에 대해서 얼마나 단편적인 접근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현장 연구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어려움 탓에 역설적으로 필자는 접경지역의 특징을 몸으로 느끼면서 배울 수 있었다.

북‧중 간 무역규모의 변화

북‧중 간 무역규모는 대북제재 결의안의 내용에 따라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면서 변화되었다. 그림 1을 보면, 2000년에 약 4억 4800만 달러에 지나지 않던 북한의 연도별 대중국 무역규모는 2014년에 약 68억 달러로 크게 증가하였다.

▲ 그림 1. 북한의 연도별 대중국 수출과 수입, 무역규모의 변화(2000~2019년, East-West Center and the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그런데,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러 차례 발표된 2016~2017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중국 수출 규모가 크게 떨어졌고, 이로 인해 전체 대중국 무역규모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를 월별 자료로 파악해보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대중국 수입보다 수출이 더 큰 타격을 입었음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그림 2). 특히,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2397호 결의안 채택 이후, 북한의 대중국 수입이 적어도 1~2억 달러 내외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중국 수출은 100~200만 달러 수준으로 급감하였다.

▲ 그림 2. 북한의 월별 대중국 수출과 수입, 무역규모의 변화(2017~2019년, East-West Center and the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북‧중 접경지역 연구에 대한 지리학적 관점

필자는 이와 같은 북‧중 접경지역에서의 초국경적 상호작용(cross-border interactions)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적 틀로 '위치성 전환(switching positionality)'을 제안하고자 한다.(1) 국경을 마주한 접경지역의 변화는 위상학적 관점에 토대를 둔 '위치성 전환'으로 보다 잘 설명될 수 있다.

실제로 접경지역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므로 기하학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국경이 갖는 의미나 인접 국가 간의 정치‧외교적 관계 변화에 따라서 차별적인 관계성을 갖게 된다. 만약 국경이 차단된다면, 실제로는 거리상 매우 가까울지라도 위상학적인 측면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전원 스위치를 켜고(switch-on) 끄는 것(switch-off)처럼, 접경지역을 둘러싼 지리-경제학과 지리-정치학 간의 변화에 따라서 접경지역의 공간적 성격도 변화된다.

'위치성 전환'은 단순히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과 같이 국경이 갑작스럽게 열리고 닫힌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위치성 전환'은 근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자가 2017년 7월, 마지막 단둥 답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교통편에서 연구 노트에 적어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둥이라는 도시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겹겹이 쌓여 있는 포장들 때문에 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긴장과 완화가 반복되는 접경지역 도시에서의 삶이 단둥사람들의 모습을 이와 같이 만든 것 같다. 계속 어제 복장(의류)업체 사장의 알 수 없는 표정과 진실을 말해주지 않으려는 태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안과 밖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지금도 단둥의 정체성은 생동하듯이 변화하고 있다.

도린 매시는 지난 역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역사가 중요하다고 했다.(2) 그리고 여행한다는 것은 공간을 통해서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여러 연결들을 만들거나 끊어버리는 과정에 지속해서 동참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단둥을 떠난 시점 이후, 단둥의 정체성은 계속 변화될 것이므로, 기록에 남겨진 단둥은 실제와 같지 않다. 압록강 단교로는 앞으로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것이고, 단둥 시민들은 여름 저녁 선선한 바람을 만끽하러 신의주가 내다보이는 압록강 변에서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대화하며 걸어 다닐 것이다.

아마 우리가 단둥에서 만났고 심층 면담했던 업체 사장님들이나 주변 관계자분들, 심지어 그냥 스쳐 지나갔던 북한 사람들과 호텔 복무원(종업원)들은 우리의 이동과 관계 만들기로 인해 조금이나마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온 연구팀들이 단둥에 오면 이쪽 업계에 소문이 금세 퍼진다고 하는데, 그렇게 퍼져서 영향을 미치었든 다르게 영향을 미치었든 간에 그들의 사회적 관계의 묶음이 변화하는데 우리도 조금이나마 이바지한 셈이다"

필자는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이 우리의 연구를 차별화시킬 수 있는 관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동안 북‧중 접경지역 연구는 경제학, 정치학, 북한학 등을 전공한 학자들이 주도해왔는데, 이들의 연구에서 공간은 단순히 사건이 발생하는 장(site)이나 배경 정도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이제 앞으로 공간에 대한 폭넓은 상상력을 토대로 한, 북‧중 접경지역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 주석

(1) Sheppard, E., 2002, “The Spaces and Times of Globalization: Place, Scale, Networks, and Positionality,” Economic Geography, 78(3), pp. 307~330.; Kortelainen, J. and Rannikko, P., 2015, “Positionality Switch: Remapping Resource Communities in Russian Borderlands,” Economic Geography, 91(1), pp. 59~82.

(2) Massey, D., 2005, For Space, Sage Publications.

□ 필자 소개

김부헌 박사는 현재 서초고등학교에서 지리교사로 재직 중이며, 포스트 사회주의 체제전환의 지리학과 북‧중 접경지역의 지리, 북한의 시장화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

1997년 11월 한국 지리학내 전문학회로 발족한 한국경제지리학회는 국내외 각종 경제현상을 공간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연구 역량을 조직화하여 지리학의 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는 연 2회 정기 학술 발표대회와 국내외 석학을 초빙해 선진 연구 동향을 토론하는 연구 포럼, 학술지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