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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던진 '고졸 청년'과 '대졸 청년' 화두,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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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던진 '고졸 청년'과 '대졸 청년' 화두, 가볍지 않다

[기자의 눈] 왜곡된 노동구조 속 청년 문제 해법 고민해야

동양 최대 중국음식점으로 평가받는 하림각. 남상해 회장이 1987년에 세웠다. 1938년 경남 의령 출신인 남 회장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해방 후에는 귀국해 충남 보령에 정착했다. 시대가 그랬듯이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남 회장을 포함한 11남매는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채독 굶주림으로 남 회장은 4명의 형제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열 살인 남 회장이 무일푼으로 서울로 향한 이유다.

서울 생활도 쉽지는 않았다. 신문팔이, 구두닦이 물장수 등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그래도 배고픔은 잠자리는 해결되지 않았다. 집도 절도 없는 남 회장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노숙을 하고, 창신동 땅굴에서 생활하면서 잠을 해결했다.

결국, 그런 삶을 견디지 못한 남 회장은 중국집 '뽀이'로 취직하면서 잠도 식사도 일거에 해결됐다. 그때부터 남 회장은 중국집 배달일을 시작했고, 이후 주방 보조 일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10년 넘게 경력을 쌓은 끝에 남 회장은 워커힐 조리부장으로 취업했다.

그리고 1967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대한극장 뒤편에 11평짜리 중국집 '동승루'를 열면서 그의 평생 꿈이던 중국음식점 주인이 되었다. 이후, '신해루' '열빈' '다리원'을 거쳐 동양에서 가장 큰 중국집 하림각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남 회장의 성공 신화는 규모만 다를 뿐,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중국 배달원들의 로망이자 실제 부단한 노력을 하면 이룰 수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중국집을 운영하는 사장들의 상당수가 배달원으로 시작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도시에 와서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에 감사하며 철가방으로 부지런히 자장면을 배달했다. 틈틈이 주방에서 양파 벗기고 야채 채를 썰면서 곁눈질로 요리를 배우면서 주방장이 되고, 중국집 사장까지 되었던 것이다.

ⓒ연합뉴스

2021년 한국사회에서 하림각이 나올 수 있나

지금은 어떨까. 하림각 같은 이가 나올 수 있는 사회일까. 우리 사회를 두고 평등한 곳은 아닐지 모르지만, 공정한 기회는 가질 수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키우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계급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필요한 건 노력이라고 말한다. 즉,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계급에 남겨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꼭대기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공정’의 요체다. 과연 그럴까.

부모의 종착점이 자식의 출발점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정환경, 즉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부모가 부유하면, 자식에게는 실력을 쌓기 위한 다양한 혜택과 선택권이 주어진다.

가난할 경우는 이와 반대다. 혜택은커녕, 가정사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린다. 물론, 그런데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갖추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자본을 갖춘 청년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달린다면, 이들은 리어카를 끌고 '실력'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사례를 발굴하고, 독려하면서 일반화한다. 하림각이 그런 일반화의 표본이다. 더구나 2021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례는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적다.

그러나 실력주의가 공정 내지 평등의 기준이 되면서, 사회적 자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청년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멸시가 정당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4일 경기도청에서 고졸 취업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은 의미가 남다르다.

"대학을 가면 장학금도 주고 온갖 지원 해주는데 대학 안 간 사람은 왜 지원 안 해주냐. 똑같은 국민이고 똑같은 세금 내는 이 나라 국민인데 대학 가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잘 모르겠어요. (중략) 그래서 저는 대학을 안 가는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에게도 대학 지원에 상응하는 뭔가 지원을 해주면, (지원이) 상당히 많을 텐데, 그들의 역량도 발굴하고 좋은 인생경험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이런 협약을 통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동료 친구들이 4년간 대학 다녔다가 졸업하고 다시 현장에 합류했을 때 4년 동안 현장에서 기술을 쌓고 노력한 결과의 보상이 4년 동안 대학 다녀온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 없거나 하면 훨씬 나을 수 있다는 믿음만 준다면 누가 우회로를 택하겠나 생각합니다."

신분이 다른 대졸과 고졸 청년들

출발선이 다른 대졸과 고졸 청년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대학 4년과, 직장 4년 생활을 동일하게 대우해주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지사의 이런 발언은 "세계 여행비를 1000만 원씩 대학 안 간 대신에 지원 해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발언이 부각되면서 사실상 묻혔다.

국민의힘과 야당에서는 "허경영을 초월한다. 돈 쓸 궁리만 한다"고 이 지사의 발언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정작 현재 위기에 놓인 청년들을 위한 대안이나 논의는 뒷전이 됐다.

사태가 커지자 이 지사는 6일 자신의 SNS에 다시 글을 올리며 진화에 나섰다.

"오늘날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기회와 미래가 없는 최초의 세대이다. 어디까지 공부했냐, 출신이 무엇이냐를 따져가며 편가르기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절박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삶을 받쳐줄 모두를 위한 유리바닥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노동 구조는 크게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뉘었다. 이때는 고졸이라 하더라도 정규직이 가능했다. 지금은 어떤가.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도식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구조 안에서 고졸 청년들이 선택할 폭은 거의 없다. 더구나 한 번 사회에 진입할 때 선택한 자신의 '신분'은 다시 재조정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고려시대 '육두품'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우리 사회 노동 구조 속에서 여야를 가르지 말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문제를 풀기 위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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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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