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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만 군대에 간다? 4년만에 모병제 도입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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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만 군대에 간다? 4년만에 모병제 도입한 미국

[정욱식 칼럼] 모병제 도입의 필요성(중)

모병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 가운데 하나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데에 있다. 징병제에선 원칙적으로 학력이나 소득과 관계없이 남성은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 반면 모병제를 도입하면 고학력자와 부유층 자제는 군대에 안 가고 저학력자와 빈곤층 자제만 군대에 가게 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모병제가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폐해로 거론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모병제를 통해 군인이 괜찮은 일자리가 되면, 중산층이나 부유층 자제도 군대가 가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4년만에 완전 모병제 도입한 미국

이와 관련해 미국의 사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69년 모병제 검토에 착수해 1971년에는 징병제 폐지 법안을 제정했으며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1973년 1월에 완전 모병제로 이행한 국가이다. 검토에서 도입까지 4년이 걸린 것이다. 2020년 정규군 규모는 1973년보다 60만 명 정도 줄어들었지만, 더 강력한 군대를 구축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모병제 도입은 안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을 때 단행되었다. 1969년에 착수해 1973년 1월에 완료된 모병제 도입 기간은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달할 때였다. 또한 소련과의 군비경쟁도 격화되고 있었고 중국은 핵무기 증강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할 때였다. 중남미에선 사회주의 혁명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고 한반도 정세도 매우 유동적이었다. 한국에선 안보 환경이 모병제를 봉쇄하는 근거로 작용해왔다면 미국에선 거꾸로 안보 환경의 급변이 모병제 도입의 근거로 작용했다.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미국이 1970년을 전후해 모병제를 도입한 배경으로 베트남 반전 운동을 주목한다. 이 요인도 작용했지만, 다른 요인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2006년 모병제를 평가한 보고서에서 반전 운동 이외에 네 가지 추가적인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입대 연령의 젊은 남성수가 급증하면서 필요한 병력수를 크게 상회하였고 이에 따라 모든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인구학적 현실이었다. 둘째는 모병제를 도입하는 데에 예산상의 부담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셋째는 징병제로는 군인들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변화를 희망한 미군 수뇌부의 요구였다. 넷째는 국가가 개인의 동의 없이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권리 침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징병제는 하위 계층에게 경제적 기회비용을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오늘날 한국과 비교해보면 주목할 만한 함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우선 미국은 입대 자원이 넘쳐날 때 모병제 착수에 들어간 반면에, 한국은 입대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병제 도입을 꺼린다.

둘째 미국은 모병제 도입을 재정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긴 반면에 한국에선 재정상의 부담을 이유로 모병제 도입을 반대한다.

셋째 미국은 개인의 권리 및 하위 계층의 경제적 기회비용을 고려해 모병제를 도입한 반면에, 한국에선 병역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여전히 불온시하고 징병제의 사회경제적 부작용에 둔감하다. 끝으로 미국은 군 수뇌부가 모병제 도입에 적극 찬성한 반면에, 한국에선 육군 수뇌부가 모병제 도입을 가장 강력히 반대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들은 또 있다. 1973년 모병제 도입시 미국 내에서도 저학력 지원자가 많은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고졸 이상의 지원병 비율 목표를 45%로 잡았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지원병의 90% 정도가 고졸 이상이다.

또 모병제 초기에 미국에선 "가난한 흑인과 백인이 군인이다", "해병대를 보라. 당신이 보는 얼굴은 흑인이 대부분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저소득 계층이 지원병의 상당수를 차지했었다. 이는 "군인이 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들어 주목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지원병의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지원병 가계의 소득 수준은 8만 7,000 달러로 비지원병 가계보다 약 1만 달러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0년 미국 국방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원병의 상당수가 중산층에서 충원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부유층은 17%, 빈곤층은 19%를 차지한 반면에 중산층의 비율은 64%에 달했다.

아울러 정규군의 결혼률이 1973년 40%였던 반면에 2000년대에는 50% 가까이 높아진 것이나, 여군 비율이 1973년 사병 2%, 장교 8%였던 것이 2018년에는 각각 16%와 19%로 높아진 것도 주목을 끈다.

이러한 미국의 사례는 한국의 모병제 논의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우선 모병제가 저소득 계층에게 중산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모병제 도입시 저학력·저소득 계층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일 수 있다. 아울러 젠더 갈등을 완화하고 결혼률과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희망고문'이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우리 사회에선 '해방이후 처음으로 자녀가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년 빈곤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계층 이동의 기회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고 학력과 부의 세습은 심각해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청년 문제 해결을 약속해왔지만, 많은 청년들에게 이는 '희망고문'이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희망이 있어야 자리엔 절망과 분노로 채워지기 일쑤이고, 문제 해결 지향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군 문제에 대해서도 오히려 문제 유발적인 대증요법이 유행하고 있다.

기실 징병제에 따른 '기회비용'은 빈곤층에게 더 클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병역에 따른 생계·부양·학업의 손실적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격적으로 모병제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빈곤층의 '기회비용'을 직시했던 것이 주효했다. 우리도 정의와 공정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모병제가 계층 상승의 '기회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통계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정부가 발표한 '기준 중위소득'은 3인 가구 기준 월 398만 원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산층 기준을 중위소득의 75~200%라고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모병제를 도입해 월 30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하면 빈곤층에 있는 해당 군인이나 그 가족은 대부분 중산층이 될 수 있다. 중산층에 속하는 지원병의 소득 수준도 대부분 높아질 수 있다.

모병제 도입시 지원병의 연령대는 대부분 20대 초반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30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하면, 대학생, 아르바이트 종사자, 회사원 등으로 있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회 생활자보다 평균적으로 고소득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직종에 비해 고용 안전성도 높다. 지원병이 괜찮을 일자리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괜찮은 일자리는 연봉과 고용 안정성만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모병제는 군대 문화와 근무 여건 개선에도 강력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가기 싫은 군대'를 '가고 싶은 군대'로 만들어야 지원병 확보가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모병제를 도입하면 돈 없고 못 배운 사람만 군대에 갈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주장은 자신들의 직간접적인 경험에 기인한 것이다. 정당한 보상도 못 받으면서 개고생을 한 기억과 경험담이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징병제에서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도 못한 모병제에 적용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와 다르지 않다. 기성세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모병제를 주저하거나 반대할 것이 아니라 군대를 '괜찮은 일자리'로 만드는 데 앞장서 보는 것은 어떨까?

※ 다음에 이어질 글 : 돈과 안보가 걱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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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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