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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트럼프는 사라졌다…북핵 협상 대본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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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주인공 트럼프는 사라졌다…북핵 협상 대본 바꿔야"

[위성락-정욱식 대담] ② 한국 정부가 정말 '협상 촉진자'라면…

<프레시안>은 '미중 대결, 남북 불통, 한일 갈등' 이라는 외교적 현실 속에서 한국의 대외적 여건을 진단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5일 박인규 이사장의 진행으로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대담을 마련했다.

최근 외교 개혁과 북핵외교 및 4강외교에 대한 정책제언을 담은 저서 <한국외교 업그레이드 제언>을 출간하기도 한 위성락 전 본부장은 현 시점에서 한국이 처한 대외 관계의 악화를 막기 위해 우선은 미국 정부와 대북 정책 조율을 명확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위 전 본부장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구성원들의 성향과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발언 등을 종합했을 때 "새롭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대북 정책이 나올 가능성은 적어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우리 쪽으로 견인하려고 했다면 2018년 이후 우리의 북핵 및 협상 접근법을 재검토했어야 했다"며 "트럼프와 같은 주인공이 예기치 않게 없어졌으면 스크립트(대본)를 고쳐야 한다.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성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위 전 본부장은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이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있는 만큼, 이들을 설득하려면 이들의 주요 관심사에 부응해주는 기술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중국과 일본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하고 이를 미국과 심도 깊게 논의하여 접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러다 만약 북한이 군사적 도발이라도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며 "만약 앞으로 북한의 도발이 있고 그 언저리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그 정상회담은 우리가 미국에 끌려가는 회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북핵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 상황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틀은 6자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남북, 북미 대화가 잘 되지 않고 한일 관계는 엉망이고 미중 패권 경쟁에 대한 걱정이 높은 것이 현 상황"이라며 "그런데 여기에 대한 공통점은 모두 6자회담과 관련한 국가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6자회담을 통해 각계 문제들을 다 풀 수는 없지만, 이 문제들이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더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완화하고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대화 틀로서는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한일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해 위 전 본부장은 한국이 대선을 앞두고 있어 관계 개선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외교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비춰 보면 일본과 우리가 힘을 모으면 얻게 되는 편익이 많다"며 관계 개선의 실익이 있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을 설득하는 측면에서 한일이 손을 잡으면 결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 혼자 설득이 잘 안되던 것도 한일이 힘을 모으면 쉽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은 한일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 들어줘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

[위성락-정욱식 대담] ① "미중 대립 회피하는 정부...한국 외교에 좌표가 없다"

▲ 왼쪽부터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이재호)

바이든-김정은의 담판 볼 수 있을까

프레시안 :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핵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나? 문재인 정부 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진전을 볼 가능성은?

정욱식 : 안타깝지만 북핵 문제는 악화되지 않을까 싶다. 바이든 정부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 시즌 2'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바이든 정부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지만 말이다.

협상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있으면 나설 동기가 생기겠지만 미국의 거의 모든 전문가, 관료들이 북핵 해결은 불가능하거나 장기적 과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협상의 동기부여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비핵화 협상이 성공한다고 해도 성공의 역설이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확립되고 북미수교가 이뤄지고 경제제재 해제까지 수반된다면 이건 동북아 지역의 굉장히 중요한 현상 변경인데, 미국 주류, 심지어 바이든 본인도 부통령 시절 (동북아) '현상 유지'를 입에 달고 살았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현상 유지 관리'에 방점을 찍고 있었는데 거기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는 대북 협상의 성공을 추구할 전략적 동기가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 여론이 북핵을 해결하라고 요구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으나, 현재 미국 여론도 북한 핵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지금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그나마 대미 외교에서 지렛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남북 관계를 잘 풀어서 바이든 정부에 북한의 속내를 전달하는 것인데 이것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북한식의 '전략적 인내'와 바이든 정부의 '전략적 인내 시즌 2'가 만나면서 대화 없는 긴장과 대결 상태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위성락 : 미국이 대북정책을 재검토 하는 국면이다. 과거 경험을 비춰서 현재 상황을 진단해보면 이렇다.

실무자로서 미국과 대북 정책 조율에 참가해봤는데, 한 번은 1998년 페리 프로세스 때였고 또 다른 한 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 이후 정책 재검토 과정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월에 취임하자마자 부지런히 서둘러서 빨리 만들었다는 것이 6월 초였다. 그 때 백악관에서 반 페이지 가량의 성명서가 나왔다.

당시 구절 중에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개선하여(improved) 이행하겠다(implementation)'는 내용이 있었다. 이 말이 나온 이유는 당시 네오콘들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무부 대화파들이 이들과 엄청나게 대립했다. 이런 가운데 국무부에서 우리에게 중간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한국이 반대해 주기를 기대할 정도였다. 이런 극심한 대립 속에 마지막에 극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되면서 그 대안으로 위와 같은 문구가 들어간 것이다.

이번 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과정은 이보다는 빠르다. 그 이유는 첫째, 네오콘들과 국무부의 대립 같은 내부 분열이 아마도 지금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더라도, 예컨대 싱가포르 합의를 놓고 미국 정부 내에서 어떤 논란과 반전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둘째, 당시 네오콘은 오랜 기간 동안 업무를 다루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지만, 4년 전 북핵 문제를 다뤄본 바이든 정부 사람들은 이 문제에 익숙하다. 즉 균질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든 정부 사람들은 이미 북핵 문제에 대해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누구 말을 듣는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가 '트럼프와 싱가포르·하노이 회담 해보니까…'라고 이야기하면 아마 귀 기울여 듣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와 한국 정부 간에는 상호 접촉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당시 대북 정책 검토와 관련해 한미 양국은 차관보, 국장, 과장급이 모두 모여서 반나절 내내, 어떨 때는 하루 종일 회의하는 체계적인 중간 브리핑이 있었다. 미국이 조만간 한미일 3자 외교장관회의를 열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지금 이 상태라면 한국과 상호 접촉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대북 정책이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흐름과 더불어 조 바이든 대통령,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이 새롭고 창의적이고 유연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비핵화 목표로 단계적‧점진적으로 접근한다, 제재‧압박과 협상을 병행한다, 제재는 쉽게 완화하지 않는다는 수준의 원론적 접근으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우리 쪽으로 견인하려고 했다면 몇 가지 선제적으로 했어야 할 일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2018년 이후 우리의 북핵 및 협상 접근법을 재검토했어야 했다는 점이다. 즉 2019년 베트남 수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된 이후 기존의 북핵 정책을 재검토했어야 했다. 물론 이건 우리뿐만 아니라 북한, 미국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재검토 없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 벌어진 상황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스크립트(대본)가 딱 하나인 셈인데, 트럼프와 같은 주인공이 예기치 않게 없어졌으면 스크립트를 고쳐야 한다.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즉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성찰했어야 했다.

또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이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있는 만큼, 이들을 설득하려면 이들의 주요 관심사에 부응해주는 기술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중국에 대해서는 '민감하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하지 말고, 이에 대한 입장을 서로 심도 있게 논의하여 접점을 찾았어야 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미국이 한일 관계의 개선을 바라고 있으니, 회담 언저리에 전향적인 조치를 내놓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었다.

북핵 어젠다가 우리에게 중요하다면 더욱 이렇게 했어야 했다. 상대는 강자고, 북한은 이 강자만 쳐다보고 있고, 이 강자가 한반도의 안보 카드를 다 쥐고 있는데 이 사람을 움직여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대화라도 붙여볼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정책을 재검토한 것도 아니고 미국의 재검토를 끌어올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한 것도 아닌 상황을 만들었다. 이래 놓고 우리 이야기만 했으니, 미국은 한미일 3자 회의를 소집해서 한국을 미국의 의도 쪽으로 당기고만 있는 것이다. 이러다 만약 북한이 군사적 도발이라도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의 도발이 있고 그 언저리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그 정상회담은 우리가 미국에 끌려가는 회담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북핵 협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조정됐어야 했다고 보나?

위성락 :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1차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을 보고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 비핵화의 순서로 작성된 공동성명은 북한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 좋은 방안이지만 미국이 이를 따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런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은 '트럼프'가 합의를 해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트럼프를 상대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미국 조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이것이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 지난 2018년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위치한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당시 남북 간에 소통이 괜찮았는데, 싱가포르 회담 이후에 우리가 북한에 이게 실제로 공동성명대로 이뤄지기 어려우니 최소한을 목표로 갖고 가자고 설득했어야 했다. 그게 협상 막후에서 일이 되게 하는 진정한 대화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싱가포르에서 하노이로 가는 과정 속에 미국 내에서 응당 있을 수밖에 없는 역작용이 발생하게 됐다.

실제 트럼프가 아닌 미국 실무자들은 싱가포르 합의 내용을 다르게 해석했다. 회담 이후 평양에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세 번째인 완전한 비핵화부터 빨리 진행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그 전에 신뢰 구축과 관계 개선. 즉 '새로운 미북 관계'가 먼저고 핵은 그 다음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이 하노이까지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협상의 '촉진자'였다면 북한과 미국 양쪽이 실현 가능한 가장 긍정적인 협상 결과를 추구하도록 조정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걸 1,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하지 않았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 왔는데도 같은 스크립트를 들고 대처하고 있으니 곤란하다고 본다.

정욱식 : 김정은이 성공의 저주에 빠지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남북이 싱가포르 이후에 자화자찬을 한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대북 정책 협의를 하고 있다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에서는 종전선언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게 실효적 카드가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종전선언보다는 '평화협정 개시 선언'과 같은 요소가 더 실효적이라고 본다.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떤 논리와 정보, 근거를 가지고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바이든의 외교안보팀이 이걸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나?

또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합의문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회담 성공에 기여한 굉장히 중요한 모멘텀이 있었다. 트럼프가 기자회견을 통해 별도로 약속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 정부에 대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를 계승해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예외로 보는 것 같다.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했던 아주 중요한 모멘텀이었던 한미 훈련 중단은 뺀 상황에서 공동성명을 가져가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남한, 문재인 정부 할 수 있는 일은

프레시안 : 한국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 관계의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악화를 막기 위한 방법은?

위성락 : 일단은 바이든 정부와 대북 정책 조율이 가장 중요하다. 기존 접근 보다 새로운 접근법으로 정책 조율을 해야 하고, 이는 중국과 일본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전향적인 움직임 없이는 쉽지 않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중국과 일본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바이든 정부와 치열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이 몇 달 내로 군사적 도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여유 시간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일단 바이든 정부와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어디서든 동력을 찾을 수는 없다. 미국과 기초적 작업을 한 다음에 그 위에서 힘을 받고 북한과 만나야 한다.

이게 잘 안되면 우리 정부는 중국을 동원하려고 할 것이다. 시진핑 방한이나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 계기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입장을 정하지 않고 이벤트를 잡으려는 생각만 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이러한 성향은 지금 정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정부가 다 보여줬던 경향이다. 소위 '한국식'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박정희의 7.4 공동성명도 유신을 하기 위한 이벤트성이 짙었다. 그래도 지금 정부는 '촛불 민심'을 받아서 세워진, 개혁성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정욱식 : 현 상황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틀은 6자회담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북미 대화가 잘 되지 않고 한일 관계는 엉망이고 미중 패권 경쟁에 대한 걱정이 높다. 그런데 이 상황의 공통점은 모두 6자회담과 관련한 국가라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6자회담을 통해 각계 문제들을 다 풀 수는 없지만, 이 문제들이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더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완화하고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대화 틀로서는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바이든 정부도 북한을 이대로 방치하면 곤란하다. 북한이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이나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바이든 정부는 적어도 단기적으로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전략적 관리를 선호할 텐데, 여기서 6자회담의 유용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은 남북, 북미 대화에는 관심이 없지만 6자회담은 다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어느 정도 설득하고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틀이 있기 때문에 북한도 고려해볼 수 있는 안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신(新)냉전' 이라는 현 국면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에 있었던 것을 다시 활용하는 측면에서 볼 때 6자회담의 재개를 통해 한반도 문제, 동북아 문제 등을 다뤄나가야 한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하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위성락 : 6자회담의 프레임은 공감하는데, 북한의 거부감이 커졌기 때문에 현실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은 6자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6자회담을 해본 결과, 5대 1로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여긴다. 김계관 당시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회담 초기에 이게 무슨 재판정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북한을 제외한 5개 국가가 검사가 되어 북한을 피고처럼 다룬다는 뜻이다.

특히 북한이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의 정상 간 담판에 맛을 들였기 때문에, 다른 형식에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1,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도취된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6자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다. 바이든 정부도 협상의 포맷은 미북 양자일 수밖에 없겠다는 기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중국을 어떻게든 건설적으로 기여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은 미북 양자 회담을 기본으로 하고 양자 전후에 중국과 회담을 통해 중국을 끌어들이는 방식, 또 하나는 한미일 3자를 미북 협상에 링크시키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미일과 중국을 미북 협상 구도에 긴밀하게 결합시키는 형태다.

물론 6자회담의 장점은 있다. 특히 중국을 의장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중국의 책임성이 늘어났다. 또 러시아도 '키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6자 틀을 통해 일정한 책임이 있게 행동하게 하는 점도 있다. 일본도 합의가 나온다면 그 이행 과정에서 유용성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중국이 류샤오밍(劉曉明)을 신임 6자회담 수석대표(정식 명칭은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를 임명했다는 점이다. 이는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신호까지는 아니겠지만, 이전보다 적극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

정욱식 : 6자회담이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현 구도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 든다. 마지막 6자회담이 열렸었던 2008년 12월까지 북한의 핵 보유는 '있는 듯 없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50개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부분에서 러시아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역할을 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러시아는 핵을 파기해 본 경험이 있는 국가이자 핵 군비 통제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정확히 규명할 수 없으나, 주북한 러시아 대사가 공개적으로 6자회담을 언급했고 중국이 6자회담 수석대표를 임명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가 북한에 전이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이재호)

한편으로 정부가 안 되는 일에 너무 힘을 빼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분간 남북관계는 제로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남한에서 어지간한 제안을 하더라도 북한은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여정 담화에 나오는 것처럼 일종의 '문재인 정권심판론'이 북쪽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여정이 9.19 군사 합의에 대한 파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는데, 그런 방향성을 잡았으면 빌미를 찾으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구실은 아마 8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해서 9.19 합의 파기 선언을 하면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우리가 내년 국방비를 최대로 올릴 가능성도 있다. 내년 3월 대선에서 국방비를 최대로 높이면서 역대 최강의 군사력을 만들어 놓았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그렇게 되면 현 정부뿐만 아니라 다음 정부도 남북관계 풀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8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겹쳐서 실시 여부도 불확실하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8월 연합 훈련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내년 국방비도 줄이지 못한다면 최소한 동결이라도 해서 내년에는 차기 정부가 상황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디딤돌을 놓아줘야 한다.

일본과 손잡아야 미국 설득 쉬워진다

프레시안 :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악화되고 있는 한일관계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양국 관계의 악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양측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협력할 가능성이 있을까?

위성락 : 한일관계 개선이 어렵지만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는 한국의 입지를 위해서는 일본과 관계 개선을 당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길은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자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는 미국에 굳이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를 만들지 않아도, 미국을 정점으로 한미‧미일‧한일 관계가 원만한 협력으로 지속된다면 충분하지 않냐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관계가 나쁘면 한일 관계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3자를 엮으려고 강요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협상은 미국의 권유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지 않을 수 없게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이전부터 있었던 사안이고 완전 해결이 어렵다. 피해자들은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일본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취임 이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특이한 입장을 내놨다. 이건 피해자 단체도, 피해자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실제 한일 정상회담이 박 대통령 취임 이후 2~3년 가까이 열리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국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라는 여론이 생겨났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놓은 말이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하려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서둘러 해결하려고 하다가 그런 합의가 나왔고, 일본은 이런 점을 간파해 완전히 해결하자고 나온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인권과 존엄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자 인도적, 인권 측면에서 중차대한 문제다. 그걸 정부 대표의 '펜대'로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또 이건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해결 했는지를 떠나 국제 사회에서 이미 이슈가 된 사안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인권회의를 하면 항상 거론되고 그 계기에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합의 당시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당시 합의를 점검하면서 합의의 결과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등 기술적인 조치를 취했으나, 이러한 접근보다는 보다 근본적 문제를 짚었어야 했다. 즉 '위안부 문제는 인도적‧인권적 범죄이기 때문에 일본이 완전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정 하에서 정부가 불가역적인 해결에 합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는 남는 것이다'라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2018년 강제 동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는데, 이 판결에 대해 정부는 3권 분립과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내세워 확실히 판결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 문제는 마무리됐다는 입장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서 이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올해 1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주권 면제를 배제하는 판결이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은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사실 이런 입장은 2018년 판결 당시 나오는 게 좋았다는 생각이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된 셈인데, 우선 협상을 할 때 일관성 있는 입장을 보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에서 협상 공간은 나오지 않는 상태다. 이대로 가면 미국으로부터 압력이 계속 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강제동원 배상과 관련해 수정안을 냈는데 일본이 다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이 너무 지나치다고 판단하고 있어, 우리 정부도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뒤로 빠지고 초당적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현인 회의를 추진해 이 회의에서 안을 내고 정부가 여기에 따라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물론 최근에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배출 문제까지 나오면서 한국 정부가 더 유연하게 움직이기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다.

▲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그런데 우리가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일본에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기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위성락 : 정치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을 거라고 본다. 특히 한일관계를 왜 풀어야 하냐는 정서적인 질문들이 국내에 많다. 그러나 외교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비춰 보면 일본과 우리가 힘을 모으면 얻게 되는 편익이 많다.

특히 미국을 설득하는 측면에서 한일이 손을 잡으면 결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 혼자 설득이 잘 안되던 것도 한일이 힘을 모으면 쉽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은 한일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 들어줘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이번에 우리가 일본과 관계를 어느 정도 완화시키고 북핵문제에 대해 일정한 '포뮬러(해결 공식)'를 만들어 바이든에게 초기에 던졌다면 반영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네오콘들이 너무 강경하게 나오니까 한일이 한목소리를 내서 이것이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이렇듯 한일이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한국의 외교적 공간, 특히 대미 외교에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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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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