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역, 기차는 떠났다. 황망하게 길을 잃었다. 새 길을 찾고자 멀리 떠나온 차였다. 본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하루 이틀의 소망이 아니다. 중2때부터 오래 품었던 꿈이다. 외교관이나 장교가 되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하고 하루 15시간씩 공부했다. 그럼에도 한 번, 또 한 번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설상가상으로 외무고시 자체가 폐지되었다. 10년 공든 탑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하필 그 무렵에 정서적으로 의지하던 강아지마저 잃어버렸다. 자칫 폐인이 되겠기에 부랴부랴 직장부터 구했다. 학원 영어 강사로 일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먼저 눈길이 향한 곳이 유럽이다. 국제정치에 관심이 컸기에 EU법도 솔깃했다. 유학 준비와 답사를 겸하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산티아고를 순례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의지를 다지고 싶었다. 비행기 티켓과 유레일 패스만 끊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라시아의 서쪽 끝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어제도 일찍 떠난 기차가 오늘은 더 일찍 출발한 것이다. 계획해둔 일정이 제대로 헝클어지고 말았다. 심리적으로 힘들어 멀리 떠나온 낯선 나라, 걷고 또 걷느라 이미 엄지발톱 두 개가 다 빠져 양말마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대고 그만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펑펑 목 놓아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남자였다. 이탈리아는 부러 가지 않으려고 했던 나라였다. 이탈리아 남성들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았다.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어쩐지 꺼림칙한 나라였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온 젊은 친구였다. 그 또한 기차를 놓쳤다고 한다. 어떻게 할 거냐, 어디로 갈 거냐, 자꾸 귀찮게 말을 걸었다. 엉뚱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타는 속을 달래려고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태껏 마신 가운데 콜라 가운데 가장 시원하고 상쾌하고 청량한 경험이었다. 기록해 두고자 카메라를 꺼내들어 찍어두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더니 '너희 너라는 콜라가 없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잠자고 있던 애국심이 불끈 솟아올랐다. 나 한국 사람이야, 너 한국 몰라? 쏘아붙였다. 그런데 모른단다. 무식한 놈이다. 편의점에 갔더니 이번에는 초콜릿을 사서 건넨다. '이게 초콜릿이야.' 하고 내미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남자는 나를 뭘로 보는 것일까? 탈북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걸까? 몰골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북한 또한 모른다고 한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도통 무지한 유럽의 젊은 사내였다.
인문사회에 관심이 덜했던 반면으로 과학과 공학에서는 천재적인 친구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과학 고등학교 출신이다. 유럽, 아니 세계 최고의 과고에서 공부했다. 대학도 이탈리아 최고 명문이라 할 수 있는 파도바 국립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방학을 이용해 배낭여행을 다니던 차이다. 어차피 일정도 틀어진 김에 이탈리아의 본인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과연 이탈리아 남자들은 유난히 밝히는구나,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짓궂은 미소 너머 눈빛이 한없이 맑았다. 걱정은 하지 마란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란다. 산티아고에 갈라치면 제대로 챙겨먹고 깨끗하게 씻고 준비를 잘 해서 가야하지 않겠냐고 설득한다. 차림새가 영 딱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얼떨결에 이탈리아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인생의 반려가 되는 여행길이 될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대가족이었다. 부모님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큰형 작은형에 누나 등등 식구가 여럿이었다. 번듯한 집안이기도 했다. 외가로는 변호사가 많았다. 그런데 딱딱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법률가만도 아니었다. 농업 법인을 만들어 사회적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설립자였다. 알고 보니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폐허가 된 시골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베네토 주의 아주 유명한 농장이었다. 이 농장에 대한 박물관도 만들어져 있을 정도이다. 농민들이 이렇게 잘 살 수도 있고, 농업이 이렇게 매력적이고 멋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주중에는 베니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주말농장 삼아 많이들 놀러왔다. 농장에서 기른 토마토 소스 파스타에 농장에서 재배한 포도주를 곁들인 근사한 저녁 식사는 과연 일품이었다. 나라 사랑이 유별났던 고로 한국의 농촌과 비교해보게 되었다. 고된 노동으로 시달리고 궁상맞은 살림살이로 피폐해진 어르신들이 절로 떠올랐다. 스마트팜이라고 바가지를 잔뜩 쓰고 손해만 보고 있는 청년 농부들도 떠올랐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농장을 잘 배워서 한국의 농촌과 농민과 농업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궁리하게 되었다. 학원 강사직을 그만두고 농장에서 근무하기로 결심한다. 거처와 직업 모두 단숨에 바뀐 것이다.
훗날 남편이 되는 토스케티 지안 마리아는 탁월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발명가의 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건축학과 교수로 기계 관련 특허만 수십 개에 달한다. 농장의 지하실은 온갖 공구와 기계설비가 갖추어진 공장이기도 했다. 농업과 공업의 융합을 가업으로 전수받은 셈이다. 이탈리아는 휴가가 길기로 유명하다. 야생의 자연 속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조난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구조견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구조견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던 친구였다. 대학생 시절부터 구조로봇의 다리 모듈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밋밋한 공장 바닥이 아니라 험한 산지를 오고갈 수 있는 로봇을 만들려면 특별난 기술과 디자인이 필히 요청되었다. 그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를 대학생 시절부터 궁리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로봇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한국의 농촌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노령화가 한국처럼 급속도로 진행되는 나라가 없다. 인구소멸이 농촌의 자연소멸을 이끌고 있다. 농촌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인공 농민'이 필요했다. 귀국을 넘어 귀촌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만 해도 부산과 서울 등 도시서만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탈리아 남편과 로봇을 장착하여 산촌에 이르게 됐다. 두 사람을 만난 곳도 강원도 산골짜기였다. 원주에는 로봇을 개발하는 연구소가 있었고, 평창에는 로봇으로 농사를 짓는 농장이 있었다.
때는 3월 말, 아직 파종하기 전이었다. 말끔한 정장 코트 차림에 뾰족한 구두를 신고 계셨다. 이렇게 예쁘게 치장하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드물단다. 작업복과 장화가 평상시 옷차림이다. '웃픈' 에피소드가 많았다. 평창에 구한 땅이 동계올림픽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KTX 역 근방이었던 모양이다. 동네 주민들이 수군거렸다. 중국 여자와 러시아 남자가 역사를 지으러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180㎝에 가까우리만큼 키가 훤칠하셨다. 북방에서 온 여자라고 오해를 살만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인 모양인데 특히 중국 여자는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며 화제가 되었단다. 실은 한국 사람이고 이탈리아에서 온 공학자 남편과 로봇을 개발하여 임업을 혁신하겠노라고 포부를 밝히노라면 아서라 만류하는 할머니들이 많았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도시 아가씨와 외국인 청년의 결합에 아뿔싸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다. 처음 올 때는 예뻤던 얼굴이 갈수록 새까맣게 타간다며 우리 딸이라면 당장 돌아가라고 했을 거라는 식이다. 하루는 화장실에 갔더니 흙 묻은 시커먼 장화만 보고 여자화장실에 웬 남자가 들어와 있다며 난리가 났던 일화도 있다. 하소연하는 아내에 지중해 출신 남편은 자그마한 리본을 장화에 달아주었다.
그러함에도 단 둘만으로 버티고 또 견디었다, 집도 없고 아기도 없이 오로지 로봇 개발에 혼신을 다했다. 쉬는 날이나 쉬는 시간이 따로 있지 않았다. 모든 날과 모든 시간을 오롯이 투자하고 투신하여 로봇처럼 일했다. 모자라는 돈은 영어 강사를 하고 코딩 교육을 하고 산불 방재 활동을 하거나 지게차를 끌면서 닥치는 대로 충당해왔다. 그러나 그 고됨의 토로가 투정이나 푸념으로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만만했고 패기가 넘쳤다. 그만큼 기술적 완성도와 독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특허출원은 이미 마쳤고, 올 하반기에는 정식으로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모터스를 경쟁사로 여길 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농협중앙회에서 기대를 크게 걸고 있다고 한다. 평창 농장에 차린 컨테이너 하우스에는 이들의 야심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도 붙어 있었다. 아마존도, 애플도, 구글도 출발은 미미했다.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해 오늘의 빅테크를 일군 것이다.
4월, 농사를 시작하면 섬섬옥수 고운 손도 카드를 내밀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단다. 농사철이 아니라서 한껏 멋을 낸 네일아트에도 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Agri-Tech for You"라는 비전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농업과 기술을 결합한다. 로봇과 사람을 연결한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으로 자연과의 공존을 도모한다. 자연선택의 결과로 사람이 나왔다. 인간의 인위적 선택으로 가공의 존재를 만들어내었다. 그 인공적인 존재가 이제는 이 땅을 대표하는 작물인 산양산삼을 키우게 될 것이다. 로봇공학과 임업의 결합, 인공지능(AI)과 무위자연의 결합, 활물과 생물의 융합, 최신의 공학기술로 한국을 대표하는 산삼을 재배하는 K-애그리테크의 프런티어, 심바이오틱 김보영 대표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병한 : 반갑습니다. 설렘을 안고 강원도에 왔습니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해볼까요? 왜 평창을 선택하셨던 걸까요? 평창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했거나 혜택을 베풀었는지요?
김보영 :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노지형 로봇을 제대로 만들려면 삼림이 많은 현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민들이 필요한 기술이 무엇일지를 체득해야 한다고 여겼어요. 고객의 니즈를 온몸으로 파악해내는 것이죠. 그리고 그 기술 개발이 상용화되고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이걸 우리가 직접 다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산이 많은 지자체를 찾아다녔고, 평창으로 과감하게 귀촌하게 된 배경입니다.
버려진 땅이 꽤 많았어요. 평창이 올림픽 유치를 세 번이나 시도했잖아요? 그때마다 건물을 짓는 답시고 투기바람이 한참 불다가 유치에 실패하면 땅값도 떨어지고 부도가 나는 등 부작용이 컸다고 합니다. 버리고 간 땅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건축 폐기물 같은 쓰레기도 땅 속에 엄청 파묻어두고 가버린 거예요. 지자체도 수습이 어려워 쉬쉬하고, 그 땅을 누가 손대서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죠. 저희는 그 엉망이 되어 버려진 땅을 되살려내서 우리의 첫 번째 농장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파묻혀 있던 쓰레기를 다 캐내서 분리수거 하고 폐기물도 처리하고 돌도 파내고, 그 모든 과정을 둘이서 맨손으로 해냈어요. 정말 안 나오는 물품이 없더라고요. 침대 매트리스며, 의자며, 변기까지. 그렇게 3년을 꼬박 투자해서 1,500평 되는 부지가 이제는 저희 땅이 된 것입니다.
이병한 : 이탈리아에서 하면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요? 근사한 농장도 이미 마련되어 있고요. 집안부터 학벌까지 이탈리아에서 아주 잘 나갈 수 있는 젊은 청년이 헝가리에서 우연히 한국 처자를 만나서 여기 대한민국하고도 강원도 평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사랑의 힘일까요? (웃음)
김보영 : 사랑의 힘이겠죠? 강원도의 힘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지형이 광활해요. 토지가 판판한 편이죠. 토성도 한국과는 매우 다르고요. 저희는 처음부터 기술만 개발해서 로열티만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영역을 망라한 패키지 전략을 추구했어요. 그만큼 시장 또한 개척해야 했고요. 무엇보다 이곳 강원도 땅에서 기술 고도화를 이루어낸 다음에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병한 : 지금은 기술입국, 기술대국이 되는 게 가장 큰 애국이기도 하겠죠. 현대모터스가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했잖아요? 보행로봇인데다가 다족로봇인지라 심바이오틱의 로봇과 겹치는 점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문제점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특허를 출원했다며 자신만만하신데, 어떤 점이 그런 걸까요?
김보영 : 특허는 작년 6월에 이미 출원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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