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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탐욕'과 '무사안일'이 빚은 낙동강 '페놀 사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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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탐욕'과 '무사안일'이 빚은 낙동강 '페놀 사태' 교훈

[손호철의 발자국] 17. 경북 구미(김천) : 페놀은 사라졌지만 낙동강은 얼마나 깨끗해졌나?

'인류의 99%는 이미 중독됐다.' 충격적인 카피에 놀라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영화 '다크 워터스'를 보러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젖소들의 연이은 죽음, 기형아의 출생, 암에 시달리는 주민들. 대기업을 대변하는 법률회사의 한 변호사가 1998년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 듀폰이 독성폐기물 PFDA을 유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골리앗을 상대로 20년 간 싸운 실화를 다루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이 물질이 우리도 모르게 프라이팬 코팅, 콘택트렌즈, 아기 매트 등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듀퐁의 환경 파괴에 대항해 싸운 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다크 워터스 포스터.

코로나19 등으로 흥행에 실패한 이 영화와 달리, 비슷한 주제지만 줄리아 로버츠의 열연으로 대히트를 치고 아카데미상을 휩쓴, 또 다른 실화 영화가 <에린 브로코비치>이다. "그는 반란자이며, 투사이며, 엄마이고, 여성이고, 당신이고 나이기도 하다." 실제 주인공인 에린 브로코비치의 주장처럼, 이 영화는 두 번 이혼하고 아이 셋이 딸린 싱글맘이 직장까지 잘린 절망적 상황에서 변호사 사무실 직원으로 들어가, 끈질긴 노력 끝에 1996년 미국집단소송 사상 최대액인 3억3300만 달러를 받아낸, 한 여성의 성공스토리로 주로 읽히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다크 워터스'와 마찬가지로 PG&E라는 에너지 대기업이 독극물을 마음대로 버려 마을 사람 600명을 병들게 한 환경 재앙에 대한 영화이다.

"상수도사업본부지요?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듀폰 사건이 있기 7년 전이자 역사적인 PG&E 판결이 있기 5년 전인 1991년 3월 14일,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대구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상수도사업본부에 폭주했다. '한국판 다크 워터스', '한국판 PG&E 사태'라고 볼 수 있는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KBS지요? 수돗물이 이상해요. 며칠 전부터 악취가 나기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냄새가 심해져 도저히 마실 수가 없어요! 취재 좀 해주세요."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페놀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던 정수장 직원이 염소 소독을 강화했고, 이는 페놀과 반응해 악취를 수백 배 강하게 만든 것이다.

일요일 상수도사업본부로 달려간 당직 기자가 페놀이라는 독극물이 수돗물에서 검출됐다는 얘기를 들어 대대적 보도가 시작됐다. 단순한 수돗물 악취 소동으로 끝날 뻔 했던 것이 한 기자의 보도로 국내 최대의 독극물 유출 사건으로 발전한 것이다.

페놀은 농도 1ppm이 넘으면 암 또는 중추신경장애 등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독극물로, 이를 마신 주민들이 구토, 복통, 설사, 피부 가려움증 등을 호소했고, 일부 임산부들은 유산을 경험했다고 한다. 수돗물로 재배한 콩나물과 수돗물로 만든 두부 등도 다 버려야 했다. 주민들은 약수를 뜨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페놀의 피해는 대구 지역에 그치지 않았다.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하류로 흘러가 마산, 창원, 부산 등 구미 남쪽 영남 지역 전체 주민들이 피해를 봐야 했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정부는 여론에 밀려 뒤늦게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박정희 고향이라 대대적으로 공단을 세운 구미공단에 입주한 두산전자가 생산하는 전자회로기판에 사용하는 페놀 원액 저장탱크 파이프의 이음새가 파열되어 8시간 동안 원액 30톤이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출로 대구 지역의 상수원인 낙동강이 심각하게 오염된 것이다. 검찰은 두산전자와 환경처 직원 10여 명을 구속했고, 정부는 조사 결과에 기초해 두산전자에 대해 한 달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 구미에 있던 두산전자의 모습 ⓒ최열 환경재단이사장 제공

이는 제1막에 불과했다. 두산전자는 전자회로기판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며 정부에 선처를 부탁했고, 정부는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조업 재개를 허용했다. 충격적인 것은 조업 재개 보름 만에 다시 2톤의 페놀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검찰이 다시 칼을 빼어들었다.

검찰의 조사 결과, 두산전자가 1990년 6월부터 반 년 간 약 325톤의 페놀을 무단 방류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즉 일회성 유출 사고가 아니라 대구와 영남 주민들이 그 물을 마시든 말든 지속적으로 무단 방류를 해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페놀 폐수를 전량 소각처리해야 하는데도 소각로 2개 중 한 개가 고장 나자, 폐드럼통에 보관하다가 하루 2.5톤씩 무단 방류한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이윤만을 생각해 환경과 주민들의 건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불법 행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저질러 왔는가를, 그리고 정부는 무사안일주의와 기업과의 유착으로 이를 눈감아 왔다는 점을 가장 웅변적으로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다.

두산전자는 조업 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 이외에도 상수도 요금 감면 등의 명목으로 대구시에 13억여 원을 지불하고 시민 1만 여명에게 11억 원, 환경분쟁조정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3억5200만 원 등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그룹회장이 물러나야 했다. 뿐만 아니라 두산전자가 페놀 유출 사실을 상당기간 은폐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등 환경단체들이 두산그룹의 대표상품인 오비(OB)맥주를 양동이에 쏟아 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불매운동을 벌였다.

▲ 환경단체들이 페놀 사태에 대한 항의로 OB맥주를 양동이에 부어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이사장 제공
▲ 페놀 사태 후 어린이들이 맑은 물 캠페인을 하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이사장 제공

그 결과 만년 2등을 하던 하이트가 1등을 하는 이변이 일어났고, 오비맥주는 엄청난 매출 감소로 타격을 받았다. 두산그룹은 페놀 사태로 1천억 원 가량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페놀 사태는 대기업도 환경문제를 등한시하다가는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열 공추련의장(현 환경재단이사장)는 경고했다.

페놀 사건이 가져온 중요한 결과는 국민적인 환경 의식의 발전, 특히 환경부와 환경단체의 발전이다. 당시는 환경단체들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전으로, 가장 큰 환경단체였던 공추련이 환경처의 페놀 배출 기준인 5ppm의 페놀에 금붕어를 넣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금붕어들이 3시간 반 만에 죽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되면서, 국민들에게 페놀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국내 최대의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이 출범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상수도 관리 업무를 건설부에서 환경처로 이전했고, 환경처를 환경부로 격상했다.

▲ 페놀 사태를 주제로 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포스터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 페놀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그러나 실화를 살려 사회고발성이 강했던 '에린 브로코비치'나 '다크 워터스'에 비해 이 영화는 페놀 오염 사건을 다루면서도 훨씬 오락성을 가미해 사실성 면에선 떨어진다.

페놀 사건을 답사하러 구미로 향했다. 금오산을 뒤로 하고 한 때 오염됐던 낙동강에 이제 페놀은 사라졌지만, 대신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나빠진 채 흐르고 있다. 여전히 구미의 여러 공단에는 다양한 기업들이 가득했지만, 문제의 두산전자 구미공장은 이제 문을 닫아 찾을 수 없다. 이 공장은 가까운 김천으로 이전했다.

두산전자 김천공장 앞에 서자 페놀 사태가 우리 환경 문제에 끼친 영향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물론 두산공장의 페놀 사태는 기업의 폐수 문제에 대한 기업과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움으로써, 나아가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이 성장하게 만듦으로써, 환경문제 개선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구미에서 이제는 김천으로 이전한 두산전자 공장 ⓒ손호철
▲ 두산전자가 독성물질 페놀을 방류한 구미의 낙동강. 강건너 구미공단과 아파트 등이 보인다. ⓒ손호철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페놀 사태가 빛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늘도 있다. 페놀 사태의 부정적인 결과는, 한 연구자가 '치명적 유혹'이라고 부르는 생수의 일상화이다. 그 이전까지 정부는 수돗물에 대한 불신조장과 사회적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내국민에 대한 생수 판매를 금지했었다. 페놀 사태와 연이은 폐수 유출 사고는 깨끗한 생수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국민적인 요구로 발전했고 얼마 뒤 정부는 생수 판매를 허가했다.

▲ 페놀 사태의 중요한 결과인 '생수의 일상화'와 관련해, 생수의 위험을 고발한 책

페놀 방류 등 기업의 탐욕, 그리고 이를 거르지 못한 정부의 공공수도 정책과 환경 정책의 실패의 결과로, 공공재였던 물이 생수라는 자본주의 최고의 상품으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환경 재앙으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 환경청에 따르면, 생수는 수돗물에 비해 생산비가 2000배 이상 들고, 용기 제작, 채취, 운반 등 수돗물에 비해 2000배 이상 에너지를 소비하며, 원천수 오염 등에 따라 유명 생수에서 오염물질이 발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돗물과 달리 수질 공개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생수를 담은 페트병 자체가 심각한 환경오염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김천을 떠나며 나는 물었다. 과연 페놀 사태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 낙동강을 비롯한 우리의 하천들은 얼마나 깨끗해진 것인가? 우리가 먹는 음식,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가 30년 전보다 과연 건강해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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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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