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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은 단순한 기삿거리로 소비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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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은 단순한 기삿거리로 소비될 수 없습니다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월 장례이야기

유골은 못 내어 준다면서 시신위임은 할 수 있다?

70대 초반의 무연고 사망자 ㄱ님은 지난 해 12월 말 서울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망했고, 지자체로부터 무연고자로 확정되어 2021년 1월 초 공영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 공영장례 전용빈소에서 진행된 장례에는 한 여성이 참석했고, 고인과의 관계를 물으니 자신을 '올케'라고 밝혔습니다.

"직계가 아니라 유골을 내어줄 수 없다고 하대요. 그런데 직계가 아닌데 시신위임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여성은 고인예식이 끝난 뒤 빈소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ㄱ님은 30년 전 남편과 사별했고 슬하에 자녀는 없었습니다. 가족으로 남동생이 있었지만 이미 사망해 남아있는 연고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형님(ㄱ님)이 김치가 없다고 하셔서 담가 놓을 테니 가져가시라고 전화를 드렸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수소문을 해봤더니 사시던 동네에 산책을 나가셨다가 길에 쓰러져 있는 걸 누군가 발견해서 신고를 했다고 해요."

ㄱ님은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건강에 이상(고혈압)이 생겼고, 사고를 당한 후 요양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이미 의식이 없었습니다.

"작년 추석 때도 얼굴을 봤어요. 사는 동안 오며가며 잘 지냈는데……. 혼자 지내다 저렇게 되니 안타까워요."

직계가족이 없는 경우 사망 후 무연고자로 확정이 되면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이 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인데, ㄱ님의 경우에는 한 지자체에서 올케에게 시신위임 절차를 받은 후 ‘화장 후 산골(유택동산에 유골을 뿌림)’로 확정되었습니다. 서류상의 가족이 아니라 시신위임을 할 수도 없을 텐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고인과의 관계를 증명하면 ‘장례주관자’로 지정받아 유골을 모셔갈 수 있는데, 그에 관한 안내는 받지도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2018년 5월 서울시 공영장례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제대로 된 추모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절차상의 시행착오가 계속되고 있어 이렇듯 유감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여성분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많은 눈물을 쏟았고, 화장이 끝나고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공영장례를 진행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복 받는 일이예요."

▲ 마음꽃을 통해 촬영했던 ㄴ님의 영정사진 ⓒ부용구

마음꽃 행사 때 찍은 영정사진을 무연고장례에서 만나다

지난 1월 초 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있기 전부터 고인의 지인으로부터 수차례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 친구가 무연고자가 되었는데 공문이 들어갔나요? 장례는 언제 확정되나요?"

하루라도 빨리 친구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 지인의 전화는 장례가 확정되기까지 몇 차례 더 계속되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고 장례절차가 진행되기까지 평균 한 달 가량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니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집니다. 장례를 준비하는 동안 지인께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사진을 부탁드리니 이미 영정사진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장례 당일 지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사진을 본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눈이 커졌습니다.

'마음꽃!'

나눔과나눔은 지난 몇 년 간 서울시의 한 지자체와 함께 홀로 지내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마을장례에 관련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먼저 결연장례(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러주기로 약속) 어르신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왔고, 다른 한 편으로는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행사도 진행했습니다. 몸놀이 전문가, 사진촬영, 의상 및 헤어메이크업 등 많은 자원활동가들이 품을 내어 참가했던 ‘행복한영정사진’ 행사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참가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팔십 먹은 노인네가 상주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 거야." 친구의 영정사진과 위패를 들은 지인들은 한껏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ㄴ님과 중고등학교시절부터 친구라는 지인들은 혼자 지내는 ㄴ님과는 평생을 곁에서 지냈고,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지방의 한 요양병원의 관계자와도 지속적으로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이했던 점은 일반적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은 서울시 공영장례 대행업체의 운구차에 모시는데, ㄴ님의 경우는 요양병원에서 준비한 리무진에 모셨습니다. 많은 무연고 장례를 치러오면서 흔치 않은 광경이었고, 지인들은 마지막까지 친구를 제대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는 동안 오랜 시간 홀로 외롭게 지냈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함께해 행복했던 장례였습니다.

문 없는 곳에서의 고립사

ㄷ님은 한 건물의 계단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셨습니다. 경찰조치 및 의견에 따르면 2019년 가을부터 섭식이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폐질환 때문에 입원하신 적도 있었는데 건강이 망가져가는 와중에도 술과 담배를 놓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로 건물 계단에 홀로 계셨고, 그 곳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부디 임종의 순간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았길 바랍니다.

흔히 고립사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닫힌 문의 방안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1월에는 문이 없는 개방된 공간에서 임종을 맞이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지하철 인근의 벤치, 지하철 역 건물 아래의 공간, 한 건물의 계단 등 많은 무연고 사망자 분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며 고인들이 느꼈을지 모를 외로움이 걱정되었습니다. 문이 없는 공간이기에 어쩌면 소리를 내어 죽음이 임박한 자신의 상태를 알릴 수도 있었을 텐데…… 세상과 유리되지 않은, 열려 있는 공간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은 상상만으로도 외로움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 시민봉사자가 직접 수놓아 보내준 배냇저고리. ⓒ부용구

사람의 죽음은 단순한 기삿거리로 소비될 수 없습니다

아기 무연고 사망자 ㄹ님의 장례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시신을 위임한 ㄹ님의 생모가 장례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췄기에 나눔과나눔은 미리 예정되어 있던 방송사의 취재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장례에 참여하는 가족이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고인을 떠나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례 당일 날 예상치 못한 기자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사전에 어떠한 연락도 없이 장례에 온 것이기에 나눔과나눔의 활동가는 정식으로 취재요청을 하기 전까진 장례를 기사화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기자도 당연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나눔과나눔의 요청을 무시한 채 다음날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그 기사에는 어떠한 대안 제시도 없었습니다.

ㄹ님의 장례는 많은 분들의 참여로 치러졌습니다. ㄹ님이 안치되어 있었던 병원의 직원들은 털모자를 씌워주었고, 한 시민은 직접 수놓은 배냇저고리를 보내주었습니다. 장례 당일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ㄹ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기사를 통해 ㄹ님의 장례를 유독 슬프고 쓸쓸한 장례로 묘사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애도가 무시된 것입니다.

요즘 아동학대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란은 물론이고 방송과 신문에서도 연신 ‘부모의 학대로 인한 영아사망’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쉬운 지점은 많은 기사가 대안 제시에는 관심이 없고 사실관계의 자극적인 나열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타오를 때 그 불빛으로 제도의 사각을 비춰야 할 기자들이 장작만 패서 더 큰 불을 피우는 데에만 열중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 유골을 직접 산골하는 ㅁ님의 누나 ⓒ부용구

200만원만 있었더라면... 너무 늦은 제도의 손길

ㅁ님은 간경변을 앓고 있었습니다. 복수가 계속 차고 상태가 악화 되었지만, 형제들 중 누군가 선뜻 나서서 병원비를 내겠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ㅁ님의 동생은 일용직 노동자였고, 작은누나는 지난해 9월부터 실업 상태여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고시원의 방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큰누나는 나이도 많고 가정을 꾸려야 하니 그냥 술 먹지 말라는 잔소리만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ㅁ님의 치료를 위해 수급자 신청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ㅁ님은 돌아가신 날이 되어서야 수급자 지정통보를 받았습니다.

"돈 200만 원만 있었어도 병원에 보내서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술을 그만 좀 마시라고 했는데, 그렇게 술을 마시더니만…."

"저는 고시원에 살고 있는데, 작년부터 일거리도 없어서 몇 달째 방세도 내지 못하고 있어요. 형제들도 어려우니, 아는 사람한테 겨우 빌려서 한 달 치만 냈어요."

200만 원이 없어서,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서 50대 초반의 남성이 고립사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랑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취약계층에게 복지의 사각을 더욱 크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ㅁ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통은 더욱 심해지지만 병원 치료는 받을 수 없고, 밥을 먹으려 해도 먹히지 않고, 삶은 막막해지기만 하니 결국은 다른 도리 없이 술을 벗 삼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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