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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외국인이 '혐오 정치'의 핑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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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외국인이 '혐오 정치'의 핑계인가?

[서리풀 논평] "과학과 인권 두 가지 축으로 인종주의 가능성에 대항해야…"

일부 지자체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가 말썽이 났다. 이럴 줄 몰랐을까? 외국 대사들이 항의하고 인권위원회가 조사에 나서는 등 비판이 거세지자 서울은 명령을 철회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조치를 고수하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관련 기사 : MBC <뉴스데스크> 3월 20일 자 '지자체 '외국 노동자' 검사 고수…빗속에도 긴 줄') 뭔가 더 급하거나 강력한 압력이 있나 보다. 그래도, 이 '논평'이 나갈 때쯤은 차별과 인권 침해를 부추기는 조치를 멈추고 제대로 된 예방과 방역체계를 갖추기 바란다.

먼저, 이번 사태는 돌출하거나 우연히 그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외국인, 특히 외국인 노동자에게 흔히 '해외 유입' '방역 사각' '밀집 지역' 등의 꼬리표가 붙었다. 의도하든 아니든 그 효과는 분명했고 지금도 지속한다.

분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과 언론 모두 객관적인 사실을 전하는 듯 행동했지만, 말을 이어붙이는 것만으로 외국인이 감염의 온상인 듯한 프레임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판단도 이러한 '관점' 또는 사회적 '이해'에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비슷한 일이 다시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차별과 인권 침해가 우연이 아니라면 어떤 구조적 이유가 작용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코로나19 유행이 지속하는 동안뿐 아니라 그 후도 같은 위험이 되풀이될 수 있다.

어느 쪽이건 외국인 노동자들에 검사를 의무화하는 것은 여러 차원에서 모두 틀렸고 좋지 않다. 과학도 아니고 윤리도 아니라는 뜻이다.

첫째, 실제 유행 억제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가 특별히 무증상 감염일 확률이 높다는 근거가 없고, 설사 실제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를 검사하는 것으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인가? 그들 각 개인의 확진 여부만 알 수 있을 뿐, 직장과 지역사회에 어떤 방역 조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

어떤 지자체는 '안전한 근로환경'을 조성할 목적이라고 발표했는데, 모두 검사해서 음성임을 확인한 다음에는 어떻게 안전할 것인지 대책이 있는가? 한국인 노동자는? 만약 외국인 노동자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비율로 확진자가 나오면, 필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다시 차별과 혐오를 키울 뿐이다.

둘째,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구조적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조치다. 마스크나 재난지원금은 지난 일이라 하더라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지금도 불리한 노동조건, 주거, 생활, 위생, 보건, 의료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다.(☞ 바로 가기 :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3월 10일 자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 집단 감염? 이유 있었다')

검사로 전파를 예방하고 확산을 억제하려 한다고 하지만, 이는 검사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환경과 조건부터 좀 더 안전하게 바꿔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검사 결과로 할 수 있는 일은 취업 거부, 격리, 추방 같은 것뿐 아닌가. 이른바 피해자 비난하기.

이는 다시 이런 조치가 큰 의미가 없다는 '실효성' 문제로 이어진다. 뻔히 예상되는 결과를 두고 어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검사를 받겠는가? 숨고 숨길 뿐이다. 그보다는 구조를 바꾸고 환경을 조성해야 모두가 더 안전해진다.

셋째, 정말 중요한 것으로, 혐오와 차별, 나아가 '인종주의'라는 구조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이런 조치를 하나씩 더할 때마다 길(경로)이 만들어지고, 길은 점차 넓어지며 탄탄해진다. 한번 만들어진 경로를 따르면 쉽고 편한 법, 과학적 효과와 타당성에 무관하게 다음에도 이런 정책을 떠올리고 요구하게 된다.

지식과 마음도 익숙해진다. 조치와 정책은 시작일 뿐, 개인의 인식과 가치가 이 경로를 따르고 사회적 규범과 문화가 맞춰서 형성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주의'가 구조가 되면 조치와 정책이 이 구조를 따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자 '상호 강화'가 일어난다.

마침 어제(3월 21일)는 유엔이 정한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미국에서 아시아계 인종을 겨냥한 혐오 범죄가 잇따르고 한국 교민이 목숨을 잃는 사태를 떠올릴 것이다. 또는 점점 더 심해지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아시아계나 재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악명 놓은 인종차별이나 현재 진행형인 미국의 구조적 인종주의 또한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인류 보편의 가치 기준으로 확립되었다.

한국에서도 인종주의, 그리고 이와 연관된 혐오와 차별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정말 적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이런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다만, 인종주의와 차별에 무감각하거나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 자국 중심주의로 흐르거나 국력, 경제력, 선진국 담론과 결합하면 위험은 더 커진다.

코로나19 유행에서는 한 가지 더. 혐오의 정치가 걱정스럽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방역의 성공 또는 실패를 특정 국가, 인종, 집단 등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한둘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의 유능함과 정당함을 증명하려는 시도에도 흔히 차별과 혐오가 개입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요한 '중국 바이러스' 호명은 자신을 증명하려는 혐오 정치였다.

이번 일을 전화위복으로 삼으려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과학과 인권의 두 가지 축으로 인종주의의 가능성에 대항해야 한다. 가령 코로나19 유행에 더 취약한 삶과 노동의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과학이라면, 국적과 인종(또는 그 어떤 개인 특성)에 무관하게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인권이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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