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의 부정부패는 일개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쌓여온 과거의 적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국가 실패의 일반적 후유증이다.
근현대적 역사의 흐름을 뒤돌아보면, 봉건적 반민중적 관료제의 관비적 성격을 청산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가 서세동점의 국란 시기였던 구한말에 이루어지지 못하여 망국의 치욕을 치르고 매국적 성격을 더한 가운데, 해방공간에서도 점령자 미군과 이승만 연합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악화되었으며, 박정희에서 노태우 정부까지의 관료 사회는 군사 문화에 찌들고 권력에 종속된 하수인으로 철저하게 기회주의적 조직으로 타락하는 과정이었고, 87년 민주화 대투쟁을 통하여 형식적인 민간정부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무능과 야합적 성격으로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민주권적 통제가 실현되지 못한 채 여전히 주요한 역사적 청산의 과제 상황으로 남아 있다.
관료의 부패유형을 분류해보자면 위에서 언급한 역사·문화적 배경에 더하여, 1) 공직자가 갖는 제도와 지위적 권한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경우, 2) LH 사건에 보듯이, 시장 기제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밀스러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우, 3) 공익과 공공질서를 앞세우면서 재벌 등 특수한 이익을 공공의 이익에 우선하는 경우, 4) 관료사회가 자기 보호와 권한의 확대를 위하여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발생하는 경우 등 열거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통칭하여 제도와 지위 그리고 조직망을 악용한 '관료적 지대추구 행위'라 부르고자 한다.
행정과 사법의 관료들이 개인적으로 부패하고 비도덕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점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며 기득권 질서와 결탁하여 제도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거부한 주요한 사례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은 단순히 사감에 의한 김재규 장군의 총격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18년 군사독재 하에서 이루어진 일방적 특혜적 개발독재의 결과 중화학 사업의 과잉 중복 투자와 정경유착의 부패·비리가 심대하여 국가사회의 지속 조건을 유지하기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이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 일어난 것이며 연이어 터진 '광주 학살' 역시 같은 관점에서 당시 봉착한 사회·경제적 한계 상황을 광주시민의 항쟁을 구실삼아 군사적 물리력으로 해결하려는 기득권의 음모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군부와 기득권적 행정과 사법세력 그리고 수혜자인 재벌들 간에 암묵적 결탁이 가능했으리라 추측한다.
이후 실권을 장악한 군사정권과 행정사법 세력들은 특혜와 3저 호황으로 비대해진 재벌 등의 금력에 매수를 당하여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삼성그룹의 자동차 산업의 진입(당시 이미 기아차의 부실 등 중복 투자가 문제였다)을 승인하고, 한보같은 쓰레기 집단에 놀아나 각종 비리와 부패의 종합판인 수서 사건 등을 연출하며, 금융감독기구 역시 인맥과 부패의 고리에 포위되어 예건데 부실한 한라그룹 등에게 천문학적 은행대출을 허용하면서, 급기야 6.25 한국전쟁 이후 남한 민족의 최대 수난인 IMF 위기를 초래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재벌에 놀아나면서 정치판과 사법행정의 거대한 인맥의 조직적 비리와 부패라는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란의 위기 속에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며 DJP연합정권 하에서 JP계열이 경제정책을 주도하였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IMF 위기상황을 구실로 국민경제의 심장인 금융산업을 거의 통째로 신자유주의의 상징이자 악마적 수탈집단인 월가의 자본에 팔아넘긴 어처구니 없는 민주당의 실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관치와 비리의 온상이었던 금융산업을 선진화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려고 했다 하더라도 1~2개 정도의 민간 상업은행을 외국 자본에 넘겨 메기효과를 노리는 수준에 머물렀어야 했고 당연히 공적 기관인 대부분의 은행들은 정부 또는 시민자본의 통제하에 두었어야 옳았다.
이후 오늘까지 한국의 자본시장과 금융산업은 외국자본의 탐욕과 의도에 종속되어 국민경제의 중장기적 관점보다는 자본의 단기적 수익에 매달려야 하는 멍에 속에 갇혀버렸다. 개혁을 열망하던 국민들의 환희와 기대 속에 출범한 참여정부 역시 재벌들의 이해와 실적을 국민경제의 일반적 내용으로 동일시하는 패착을 두면서 삼성그룹(경제연구소)이 제시한 밑그림의 초안을 곧이곧대로 사회경제적 정책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자유주의의 고착과 양극화의 심화라는 초라한 성적을 결과하여 기어코 이명박이라는 사기꾼에게 정권을 넘겨주며 마감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관료사회는 안으로는 정치권력에 기회적 처신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기득권과 손을 잡으면서 김&장으로 상징되는 대형의 법무회계 법인들을 매개로 구조적이고 악질적인 관료적 지대추구 행위를 급속히 확대시켜 왔다. 이명박 정권이 정부 조직을 마치 개인소유의 사기업처럼 악용하고 무리한 4대강 사업의 강행과 해외자원 개발 투자 등 광란의 행진을 마구 벌리는데도 어느 부처, 어느 사법기관, 어느 공기업 하나 손을 들어 이를 저지하지 못한 배경에는 이렇듯 광범한 인적·조직적·구조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공동정범 내지는 방조범 역할을 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뒤이은 박근혜 정권의 어처구니없는 부패·부정에 대한 내용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기에 생략한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세계 경제는 미래적 전망과 좌표를 상실한 채 탐욕과 자본증식의 논리에 물든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세계화라는 구호 속에 이루어져 왔던 무역개방과 상호 호혜라는 그간의 세계 경제의 기본적 원칙을 폐기하고 지역주의 또는 자국 이기주의 및 패권적 경향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선진제국들은 가능한 양적완화라는 화폐금융정책 등을 통하여 타국의 불이익을 예상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연히 한국 정부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재정과 통화정책에 유연성을 가지고 위축되는 수출시장을 보상하기 위하여 OECD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사회 안전망을 대폭적으로 강화하면서 내수시장을 확장하는 수요 유발적 정책을 취했어야 했다. 이토록 사안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이어 문재인 정부조차 지난 2년 여간 '증세 절대불가론'을 고수하면서 긴축재정으로 일관하여 왔고 당연한 귀결로써 취약한 영역인 자영업과 중소기업은 생존의 한계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현재의 경제가 어렵고 자영업 등이 위기를 맞이한 것은 수구언론이 나발 불어대는 것처럼 불과 10조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 부담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주당 52 노동시간 도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무역 환경의 급속한 악화에 더하여 문재인 정부의 사회철학적 부재 및 행정관리적 미숙과 증세 거부에 따른 사회 안전망의 부실화 그리고 긴축재정에 따른 내수시장의 위축이라는 정책적 패착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역시나 기득권 세력과 결탁했거나 미리 이들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작동하는 관료사회의 기회적 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인다.
이렇듯 정언적인 시대요구를 진행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물로 작동하는 것이 구태의연한 행정과 사법의 조직으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공인이어야 할 이들이 보여주는 노회하고 비도덕적이며 기회주의적인 근성과 이들이 형성해 놓은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 그것이다.
세계사적 지각변동을 눈앞에 두고 반드시 겪고 넘어야 할 수많은 변혁적 과제를 지닌 한국 사회의 진로를 가로막는 현존의 관료사회는 행정과 사법적 연속성이라는 구실을 방패 삼아 여하히 기득권적 지위를 방어하고자 하는 보수적 속성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핑계는 레코드 판을 돌리는 듯 항상 반복되는 다음과 같은 귀절이다 '적폐청산은 법의 규정에 없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은 시행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기득권과 결탁한 관료들에게 새로움과 변혁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적 행위일 뿐이다.
공직자들의 개인적이고 사안적인 부패와 비리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사정기구의 경우처럼 이를 성공적으로 시행한 사례를 거울삼아 현재의 감사원을 행정부에서 분리시켜 시민 통제하에 있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발전시키고 책임과 권한을 동시적으로 엄중하게 관리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바람직한 시행성과가 가능한 사안으로 보인다.
문제는 위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에 광범하게 펴져나가 암적 존재가 되어버린 사법과 행정 관료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조직적이고 정책적이며 합법성을 가장한 패악질, 즉 위에 언급했듯이 지위를 악용하는 관료적 지대추구의 행위를 여하히 근절하느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서 볼일은 기득권과 연합한 수구 정권의 시기보다 민주당 등 중도개혁 정권이 들어서면 경제성장률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국가부패지수(CPI)도 대단히 개선되어 왔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가부패지수는 서유럽 수준에 접근하였으나, 곧 이은 이명박과·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아프리카 수준까지 밀려나고 있었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현격히 개선되어 왔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부패지수는 경제성장률과 긴밀한 관계성을 지니고 있어서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과 미국 공히 중도개혁 정권 시기가 보수정권(미국의 경우 공화당) 때보다 대체로 1~2%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LH사건은 단순히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70여 년간 공직사회가 무대의 장막 뒤에서 벌려온 온갖 부정·부패의 연장성에서 터져 나온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다만 LH 등 부정·부패와 투기의 사건은 착수된 시점과 이것이 표면화되는 시점과의 시차 그리고 우연적 계기에서 표출되고 폭로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촛불시민에 의해 국가운용에 대한 수임을 받았음에도, 역사적 과제 상황에 대한 정치적 의지는 실종되었고, 적폐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질서라는 이름으로 수구정치 세력과 타협에만 열중하였다. 이에 더하여 무능함을 노출하고 정책적인 방향성을 상실하여 표류하면서 기득권과 노회한 공직 사회에 포획되어 급기야 LH사건이 터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솔직히 질문해보자. 기득권과 결탁한 수구정치세력이 과연 민주당보다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부패를 다스리고 관리하는데 더 유능할까? 필자의 대답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위에 기술한 역사적 과정의 기록들이 이를 대변한다. 검찰 출신들이 해낸다? 근현대사를 가장 심하게 왜곡한 집단이면서 단 한 번도 자기고백과 반성을 하지 않은 집단이 바로 검찰과 사법 집단이 아니던가? 처가를 위하여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남용한 인사가 과연 부정·부패를 다스릴 수 있을까?
결론은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와 꼼수는 여와 야를 나누어 선택하여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수구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서로가 결탁하여 교묘히 은폐하면서 더욱 악화될 공산이 십중팔구이다.
불행하게도 진보적인 정책정당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2021년 한국의 현실에서, 유권자로서 시민들이 당장 선택할 방법은 출신 정당을 떠나서 출마자들의 역량과 도덕성을 꼼꼼히 따져서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길뿐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민 입법제를 도입, 직접민주주의를 점차적으로 실현해 가면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입법과 행정과 사법의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하고 처벌하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우리민족은 동학혁명 시절의 집 강소라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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