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프로게이머를 비롯한 13개 직업의 '직업 기능 표준'을 발표했다. 2019년 4월 프로게이머를 직업으로 정식인정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가 적극적으로 프로게이머들을 관리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의 경우는 국가가 아닌 사단법인 한국이스포츠협회(KeSPA)에서 e스포츠 종목 및 프로게이머의 자격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행보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과 중국 모두 게임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동시에 e스포츠 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부양책을 시도하고 있는데, 정부차원의 보다 강도 높은 개입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정한 세계 최초의 프로게이머들
한국에서 세계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회자되는 것은 신주영이다. 그러나 신주영은 본명도 아니었고, 직업이라 할만큼 장기간 활동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상징적 존재로 보아야 한다.
직업으로서의 지속성을 선행요건으로 놓고 본다면, 비교적 장기간 활동한 임요환, 홍진호, 김동수 등의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반, 직업도 없이 게임이나 하는 소위 'PC방 죽돌이'들은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2003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심각한 사회 부적응자, 도박 중독자로 오인받기도 했다.
프로게이머가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2000년 8월의 일이다. 문화관광부는 프로게이머 등록제도를 승인했다. 프로게이머가 직업으로 인정받게 됨에 따라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상금소득의 세율변경이었다.
일반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경연에서의 상금은 22%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초기의 프로게이머들은 22%의 세율을 적용받았다. 이후 프로게이머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게 됨에 따라 세율은 3.3%로 조정되었다. 세율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생겨난 직업군이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한국사회의 일부로 편입되었다는 데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스포츠 주도권 경쟁과 세계최초의 이스포츠법
2000년대 초반, 세계최초의 e스포츠 전문 방송국과 기업의 후원을 받는 e스포츠 팀이 등장하며 한국은 가장 먼저 e스포츠 산업의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때 태어난 KeSPA는 발빠르게 세계 e스포츠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행보를 보여준다. e스포츠의 스포츠 종목 인정, 그리고 국제적 표준화를 목표로 한 국제이스포츠연맹(IeSF)의 창설이 그것이다. IsSF는 2008년 대한민국을 주축으로 한 9개국이 모여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정확하게 100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대형 국제스포츠 단체가 되었다.
민간차원에서의 주도권 경쟁과 더불어,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존재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도 찾아보기 어려운 e스포츠 관련 법령, <이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이스포츠법)이 그것이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스포츠법은 관련 문화와 산업의 기반조성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법령으로 인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스포츠의 진흥을 위해 필요한 시책의 수립과 시행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부산광역시 부전동에 위치한 부산이스포츠경기장(BRENA)과 광주광역시 서석동의 광주e스포츠경기장이 이스포츠법에 의거하여 지어진 경기장들이다.
중국e스포츠 산업의 고속성장과 중국정부의 프로게이머 등급제 시행
최근 들어 중국정부가 e스포츠 산업에 손대기 시작한 배경에는 중국 e스포츠 산업시장의 급속한 성장세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국 e스포츠 산업시장은 2016년 7조 3770억, 2017년 12조 1120억, 2018년 16조 1420억, 2019년 19조 4000억, 2020년 기준 23조 2246억 원으로 성장했다. 5년새 몸집이 세 배 이상 커진 것이다. 과거와 같은 연간 6% 이상의 고도성장을 유지하기 어려운 중국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관리할 대상으로 발견된 것이다.
2020년 발표된 약 1710조 원이 투입될 중국의 '신인프라건설(新基建)'은 e스포츠를 포함한 5G, AI 등 첨단산업의 본격적인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로게이머 등급제 또한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의 결과물 중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또,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국가적 산업정책과 국위선양의 필요성이 프로게이머 관련 정부 시책에 긴밀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프로게이머는 앞으로 수상경력과 활약상에 따라 1~5등급으로 분류되게 된다. 이러한 정부차원의 관리가 향후 중국 e스포츠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프로게이머도 다른 종목의 선수와 같이 에이징 커브(aging curve)가 존재하기에 오랜 기간 정상의 기량을 유지하기 어렵다.
스타플레이어의 퍼프먼스와 연봉, 그리고 국가가 관리하는 등급기준간의 괴리는 필연적일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영역과 정부정책의 개입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지점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목해봐도 좋을 것 같다.
WCG Connected 2020과 e스포츠 종주국의 미래
게임계의 올림픽으로 불리기도 하는 월드사이버게임즈(World Cyber Games, WCG)는 작년 온라인 기반으로 개최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월드' 사이버게임즈의 참가국이 한국과 중국, 2개국뿐이었다는 점에 있다. 프로게이밍의 특성상 물리적 거리로 인한 네트워크 지연의 문제, 미약한 일본의 e스포츠 산업 등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세계 e스포츠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두 국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e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월드 챔피언십의 우승팀은 최근 5년간 한국과 중국에서만 배출되고 있으며, 글로벌 e스포츠의 대표격인 오버워치 리그에는 무려 4개의 중국을 연고지로 한 팀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당분간은 이러한 세계 최정상의 대결구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자본, 한국이 쌓아 온 막강한 e스포츠 인프라가 그 근간이다. 한국에서 치러진 2020 LCK 서머의 시청자 403만 명 중 약 67%에 달하는 약 270만 명이 한국 외부에서 접속했다. e스포츠에 있어 한국이 가지는 브랜드 파워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한국의 강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거대자본과 시장규모의 압력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시작된 시점이다. 지금 한국의 과제는 성급한 신규 프로젝트의 개발보다는 e스포츠 산업의 내실을 다지는 일로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지난 2019년 '카나비 사건'을 겪으며 드러난 취약점들이 제대로 보완되었는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2020년 마련된 '프로게이머 표준계약서'의 이행 여부 점검, 프로게이머 자격과 인증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 등이 보다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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