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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취재, 보도로 부정입사자 23명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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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취재, 보도로 부정입사자 23명 정리했습니다

[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은행권 채용비리 취재를 하면서 신용카드 2개를 새로 발급 받았다. 가입한 상품도 2개다. 부정입사자를 찾아 은행을 방문했을 때 바로 채용비리에 대해 묻지 않고, 은행 일을 하면서 넌지시 질문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불편한 질문을 받기 전까지 부정입사자는 친절했다. 상대가 기자라는 사실을 몰라 상품 가입을 권하기도 했다. 나는 추천해준 상품을 가입했다. 좋은 분위기는 채용비리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자 차가워졌다. 판결문을 내밀자 부정입사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채용비리 판결문에 나온 청탁자 ○○○ 씨가 아버지 맞으신가요?"

"네? 무슨 일이세요?"

부정입사자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대다수가 청탁자로 지목된 부모의 신원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정당하게 입사했다"며 채용비리를 부정했다. '모르쇠 전략'을 쓰는 것일 수도 있지만, 관련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는 표정의 사람도 많았다.

거액 거래처인 국군재정단 배경으로 2016년 우리은행 신입행원 공채에 부정입사한 신○○ 씨가 특히 그랬다. 판결문에 나온 대로 채용비리 연루를 물었는데, 그는 발끈하면서 "나는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뽑혔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나온 게 본인 졸업 학점인가요?"

"아니요. 이거 확실한 거예요? 제 학점은 훨씬 높은데요?"

그는 정말로 자기 노력으로 우리은행에 입사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최근 신 씨를 비롯해 대법원이 확정한 부정입사자 전원을 내보냈다.

<셜록>이 은행권 채용비리 보도를 시작한 작년 여름 이후, 20명 넘는 부정입사자들이 은행을 떠났다. 우리은행 19명, 부산은행 3명, 대구은행에서 1명 퇴사했다.

작년 9월, '부정입사자 1명이라도 내보내자'는 마음으로 기획을 시작한 걸 감안하면, 기대보다 높은 성과다.

2020년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가 은행권 채용비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여러 은행은 몇 년 전 채용비리 문제로 고개를 숙였지만, 별다른 후속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부정입사자를 내보내지 않았고, 오히려 채용비리 가담자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다.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대책은 당연히 마련되지 않았다.

<셜록> 부정입사자가 퇴출돼야 피해자 구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부정입사자 채용취소'를 기획 목표로 잡았다. 김보경 기자, <셜록> 교육생 박상연-최유진 기자까지 총 네 명이 함께 취재했다.

각자 담당 은행을 정해 자료를 정리하는 것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부정입사자의 신원과 가담자들의 보직을 파악하고, 은행 별로 채용비리 판결문을 모두 수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기자-교육생이 한 팀으로 부정입사자를 만나는 과정을 영상으로도 기록했다. 취재는 순탄하지 않았다. 은행은 <셜록>의 채용비리 취재를 완강히 거부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채용비리 관련 재판을 취재할 땐 은행 직원과 몸싸움도 벌어졌다. 우리은행은 신입사원 부정 채용 과정에 권광석 부행장(현 은행장)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셜록>이 보도하자 10억 원을 물어내라고 요구했다. 권 행장과 우리은행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 권광석 우리은행장. ⓒ연합뉴스

'권광석'은 이름은 1심에서부터 대법원까지, 채용비리 판결문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사실상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4일 우리금융지주가 차기 우리은행장 최종 후보로 권광석 현 행장을 단독 추천했다.

권 행장의 연임은 예고된 일이었다. 우리은행은 채용비리 연루자에게 유독 관대했기 때문이다. 채용비리 책임자로 징역 8개월 처벌을 받은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현재 고액 연봉을 받으며 우리금융지주 관계사 원피앤에스에서 일하고 있다.

아쉬움은 또 있다. 채용비리 유죄 확정 판결이 나왔음에도 광주은행 부정입사자 5명은 여전히 은행에 다니고 있다. 광주은행은 지난 2월 <셜록>에 "다른 은행의 사례를 관찰 중이며,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우리은행 등에서 선례가 나왔으니 따라가길 바란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셜록>은 3월 9일 기준 총 33개의 은행권 채용비리 관련 기사를 썼다. 우리은행-대구은행-광주은행-부산은행 부정입사자 59명 중 절반을 내보내는 데 힘을 보탰다.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부터 2020년 10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다.

<셜록>의 은행권 채용비리 보도는 잠시 쉬어갈 예정이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하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 채용비리 재판이 진행 중이라 관련 내용이 나올 때마다 보도할 예정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채용비리 특별법' 입법 여부도 살필 예정이다.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와 피해자 구제에 손을 놓고 있는 금융감독원에 대한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할 예정이다. <셜록> 자발적 유료독자 ‘왓슨’과 함께 감사 취지에 동의하는 성인 300명의 자필 서명을 벌써 다 모았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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