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FUTURE] 마린이노베이션 차완영 대표 인터뷰 ① '플라스틱 플래닛' 지구의 새로운 가능성, 바다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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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가 공교롭게도 울산에 자리했다. 울산이 어떤 도시인가. 한국형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공업도시다. 조선업과 자동차는 물론이요, 석유화학산업의 메카 같은 곳이다. 바로 그 울산의 자유무역 지역에서 해조류를 이용해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신생 스타트업 마린이노베이션이 분투하고 있다.
새파란 하늘 아래 한낮에도 하얀 연기를 연거푸 내뿜고 있는 공단을 가로질러 경공업 2동 건물에 당도했다. 2층으로 올라가 사무실에 들어서려니 "다음 세대를 위한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라는 푸른색 기업 사명부터 눈에 박힌다. 차완영 마린이노베이션 대표는 반듯한 마음으로 번듯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올바른 기업가의 전형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묵묵하고 꿋꿋하게 13년을 다지고 묵혀온 마린이노베이션의 일대기를 들어본다.
이병한 :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차완영 : 아닙니다. 저희뿐만이 아니라 대체 플라스틱 산업에 나서고 있는 업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경쟁사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협력하고 협업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플라스틱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병한 : 그러함에도 차별점 또한 확실한 것 같습니다. 여타 기업들이 육상에 있는 원료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면, 마린이노베이션은 기업명 그대로 바다의 혁신, 해양 자원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착상 내지 발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차완영 : 제 고향이 부산입니다. 부산 사나이로 자라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다와 가깝게 지냈지요. 해운대, 광안리, 송변 해변에서 수영하며 바다 속에 풍덩 빠져 살았습니다. 해조류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요. 그런 원체험들이 훗날 사업 아이템의 원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소재를 발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성인이 되어서는 현대 글로비스에서 근무했습니다.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파견 나갔어요. 3년간 머물면서 발리부터 롬복까지 여러 해안 지역을 둘러볼 수 있었죠. 해조류가 엄청나게 풍부하더라고요. 양식장도 적지 않았고요. 그런데 그 풍성함만큼이나 버려지는 해조류도 많았습니다. 저걸 재활용하면 어떨까,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까를 궁리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영감을 얻어서 현재의 사업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병한 : 고향도 해양도시이고 근무지도 해양국가셨군요. 그러함에도 소재산업의 원료로 해조류를 삼아야겠다고 결정하기까지에는 남다른 특징이랄까, 장점을 발견해서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차완영 : 시간과 속도에서 차원을 달리합니다. 가령 육지에 있는 식물 소재는 성장하는데 기본적으로 1년이 걸립니다. 목재는 평균 30년이 필요하죠. 반면에 해상 식물인 해조류는 거의 40일 주기로 생장해요.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의 따뜻한 바다에서는 1년에 5모작도 가능합니다. 훨씬 빨리, 훨씬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죠.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빨리 제품화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이병한 : 소재의 발견에서 사업의 착수까지에는 어떤 난관이 있었을까요?
차완영 : 소재 산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웹을 만들거나 앱을 개발하는 디지털이나 정보기술(IT) 등과는 성격이 다르죠. 일단 원재료를 대량으로 구비해야 합니다. 100톤, 200톤이 아니라 몇 천만 톤은 확보가 되어야 사업이 원만하게 굴러갈 수가 있습니다. 재료의 대량 확보 다음에는 공장과 설비가 필요합니다. 재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공간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죠. 여기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원료 구입에 필요한 돈만 해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저희 같은 스타트업으로서는 처음부터 설비를 갖추고 공장을 세우는 비용까지 감당하기는 힘들거든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으로 외주를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소재 자체가 낯설기 때문에 꺼려하는 사장님들이 많으셨어요.
설사 맡아주신다고 해도 저희가 원하는 품질이 잘 나오지 않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대개 목재 소재를 가공하는 설비에 해조류를 넣다보니 중간 중간 찌꺼기도 끼고, 냄새도 배는 예기치 못했던 문제도 생기더라고요. 그걸 청소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비용은 늘어나고 생산 속도는 떨어지는 것이죠. 결국 저희만의 독자적인 공장이 필요했습니다. 해조류 소재만 전담하는 별도의 장비를 구비하기로 결정했죠. 장비 구입을 위한 투자 유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올해 50억 투자를 유치해서 덴마크의 하트만 장비를 들여온 후에는 자체 생산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곳 울산에 입주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는 사무동인데, 바로 문만 열고 나가면 맞은편이 전용 공장이에요. 높고 크고 넓은 바닥에서 미역귀를 건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훅 하고 바다냄새가 끼쳐오죠.
이병한 : 해조류 부산물이 낯선 소재라고 하셨는데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인가요?
차완영 : 해조류 부산물을 원소재로 삼는 기업은 아마 전 세계에서 마린이노베이션이 유일할걸요? 추출물로 하는 기업은 몇 있습니다. 유튜브에 접속하시면 해조류 추출물로 상품을 만드는 이벤트성 동영상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단점은 비용적인 측면이죠. 추출물 자체가 원재료가 비쌉니다. 저희도 추출물로는 양갱을 만들고 있어요. 제품 포장에 일곱 마리 해양 동물이 등장합니다. 플라스틱으로 고통 받는 친구들을 상징하는 것이죠. 저 바다 친구들의 달콤한 하루, 양갱을 드시는 분들의 달달한 하루라는 뜻으로 '달하루'라고 브랜드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희가 주력하는 상품은 소재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추출물로는 양갱과 해초 샐러드, 후코이단을 생산합니다. 후코이단은 일본에서는 암치료제로도 쓰일 만큼 주목받고 있는 건강증진식품이죠. 그런데 후코이단도 추출하고 나면 다 버리거든요. 저희는 그 버려진 해조류, 즉 부산물을 재활용하고 재가공해서 환경에 이로운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부산물로는 계란판과 종이컵, 종이접시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 8월이면 종이컵을 100만개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병한 : 부산물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세계 유일이라고 하셨는데요. 그 원천 기술은 어떻게 확보하신 건가요?
차완영 : 제 전공이 본래 정밀기계입니다. 직접 설계해서 금형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신소재공학 쪽으로는 유니스트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고요. 연구개발(R&D) 직원을 많이 뽑고 있죠. 저희가 특허를 받은 기술이 몰드공법입니다.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공법이죠. 그 이전에는 제지공법으로 작업을 했거든요. 조폐공사와 함께 개발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초지기 라인을 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 대에 1500억 원 정도 하는 장비가 필요해요. 한솔제지에 그런 기계가 9대가 있죠. 스타트업이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몰드 공법으로 바꾼 것이죠. 몰드 공법으로 제품을 찍어내는 기업 또한 전 세계에서 마린이노베이션이 유일합니다.
이병한 : 몰드공법이 제지공법보다 나은 것은 순전히 비용 측면인가요?
차완영 : 아니죠. 훨씬 친환경적입니다. 제지공법으로 종이컵을 만들면 중간에 이음새가 있잖아요? 그 이음새를 코팅하기 위해서 화학물질이 첨가됩니다. 반면 몰드공법은 금형에서 찍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종이컵에도 이음새가 없습니다. 자연스레 별도의 화학처리가 필요하지 않고요.
이병한 : 이 종이컵과 종이접시들은 백퍼센트 해조류 부산물로 만든 것인가요?
차완영 :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조류 부산물만으로 제품을 만들면 강도가 많이 약해집니다. 제품에 따라서 7대 3, 6대 4 정도로 배합 비율을 달리합니다.
이병한 : 7이나 6이 해조류 부산물이고요?
차완영 : 아닙니다. 일반적인 종이를 만들 때 쓰는 펄프가 절반 이상은 들어가야 제품으로서의 강도가 확보됩니다. 펄프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소재잖아요? 목재의 생산 자체가 기후변화를 촉발하기도 하고, 기후변화가 다시 목재 생산에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30~40% 펄프를 덜 쓰는 것만으로도 그만큼의 비중으로 지구 생명에 이로운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병한 : 조금 더 두껍게 만들어서 다회용기로 만들면 어떨까요? 최대한 일회용기는 만들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차완영 : 거기까지 가려면 시민교육이랄까, 환경교육이 더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소비자 의식 전환의 저변이 그만큼 넓지는 않은 것 같아요.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위생 이유 때문에 일회용품 선호도는 더 높아진 것도 같고요. 소비자의 의식 고양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산물 비중이 클수록 해조류 특유의 색감과 질감이 더 많이 드러나기 마련이잖아요? 이걸 더 좋아하시는 분도 있지만, 기왕의 종이컵이나 종이접시처럼 아주 매끈한 상품을 선호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거든요. 종이컵에 커피가 들어가면 해조류의 질감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데요. 자칫 그게 뭔가 이물질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계란판도 저희는 계란이 깨지지 않을 만큼의 5대 5의 비율도 시도해 보았는데, 업체에서 7대 3을 요구하더라고요. 소비자들이 뭔가 흐물흐물하다고 느끼면 구입을 망설일 수 있다는 이유죠. 아무래도 국가가 정책적으로 강력하게 유인하고 유도하는 방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희로서는 소비자 취향이 달라져서 바다 식물의 색감, 내츄럴한 느낌을 선호하면 할수록 비용은 줄고 환경에는 더 이로운 선순환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병한 : 그간 상을 엄청 많이 받으셨더군요. 장관상부터 총리상까지 휩쓸다시피 하셨던데요?
차완영 : 2019년 1월 16일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퓨처플레이에서 투자를 받아서 회사를 차릴 수 있었고요. 곧바로 SK 이노베이션에서 5억 투자를 결정하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투자 방식도 이채로워서 화제가 되었지요. 와디즈펀딩을 통하여 임직원 250명이 200만 원씩 투자했거든요. 지금도 판매 채널 확보나 마케팅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SK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포스코와 함께 '행복 도시락'이라는 공익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도시락이라는 것이 결국은 다 플라스틱이잖아요. SK 종합화학에서 만든 플라스틱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올해부터 최 회장이 주도해서 대대적인 플라스틱 절감 사업을 펼친다고 합니다. 행복 도시락 사업을 계속 하면서도 사람에게 이롭고 자연에도 해가 되지 않도록 공익 활동을 해나가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도 도시락 시장을 다음 사업 아이템으로 겨냥하고 있습니다. 연간 500만개 정도의 시장으로 추정됩니다. 그 후로도 과학기술부 장관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국방부 장관상 등 6개 부처 장관상과 국무총리상까지 소셜벤처로는 드물게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이병한 : 그런데 그렇게 정부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고 나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요? 실질적인 도움이 되나요?
차완영 : 솔직히 말씀드리면 일시적인 홍보 효과를 제외하면 큰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이병한 : 후속 지원이 없나요?
차완영 : 지켜보시는 것 같아요. 저희로서는 설비 투자 등 자본 확보가 중요한데, 그런 쪽으로는 거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죠. 직접 지원이 힘들다면 상을 주신 부처에서 보증이라도 서주시면 좋겠어요. 정부 보증으로 대출을 받아서 설비 구입 등에 활용할 수가 있으니까요. 환경부와 중소벤처기업부에 제안은 해둔 상태입니다. 200억 원에 해당하는 보증서를 써주십사 하고 불러 두었어요. 장비도 2대 이상은 있어야 하고 공장도 있어야 하니까요.
이병한 : K-뉴딜의 한 축이 그린뉴딜인데요. 앞으로는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차완영 : 아직 현장에서 체감하지는 못합니다. 정부가 큰 목표를 세워두었으니 차차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갱생이 모자반이라고 있잖아요. 육지로 올라오면 악취가 심하죠. 그것이 중국에서 떠밀려와서 우리나라 주변의 해양 생태계를 크게 오염시켰습니다. 해양환경공단에서 연락이 와서 해결책을 마련해보자고 제안을 하시더군요. 어차피 해조류이니 저희 회사의 원재료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죠.
그런데 제안만으로 끝이었습니다. 저희가 다 수거하고 건조해서 써보라는 식이죠. 그걸 수거하는 것부터가 다 비용이지 않습니까?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걸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식의 후속 조치가 없더라고요. 어민 피해와 환경 파괴까지 고려하면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수거와 건조까지 해주시고, 그렇게 모인 해조류를 저희가 재활용하고 재가공해서 제품으로 만들면 국가와 기업과 국민이 윈윈할 수 있을 터인데, 일방적으로 맡겨만 두시더군요. 안타깝게도 손익이 맞지 않아서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린 뉴딜 선언 이후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주시하는 중입니다.
이병한 : 바로 어제도 상을 받으셨다고 하던데요?
차완영 : 네. 포장 패키징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협회에서 저희 기업과 제품을 높이 평가해 주셨습니다. 월드스타 상을 받았습니다. 기사도 다양한 매체에서 잘 나갔고요. 곧바로 상당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병한 : 축하드립니다. 그간 해외 엑스포에도 많이 나가셨더라고요?
차완영 : 자신감이 있으니까요. 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하고, 우리에게 그 솔루션이 있음을 외국에도 나가서 직접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체 플라스틱은 전 세계적으로 필요한 상품이 될 테니까, PPT도 잘 만들어서 철저하게 준비하죠. 국내에서는 낯선 소재라 꺼리고 망설이는 분위기가 없지 않아요. 고작 계란판이나 종이컵을 만드는 것이냐고 반응이 뜨뜻미지근할 때도 있고요. 워낙 일상적인 제품을 만들다보니 생물소재 신기술의 느낌이 덜한 것 같습니다. 반면으로 해외에서는 호응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병한 : 바비테크나 슬러쉬 등 세계적인 엑스포에도 참여하셨더군요. 싱가포르나 베트남에서의 엑스포에서는 우승도 하시고 결승에도 진출하면서 상도 많이 받으셨던데, 그쪽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나요?
차완영 : 두바이 엑스포에서 10만 달러에 달하는 상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수상과 함께 행사 기간에 제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요.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저희의 비전과 미션을 알리고, 실제 제품 구입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죠.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든다는 것이 단지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거든요. 돈이 목적이었다면 기왕에 근무하던 대기업에서 무언가를 해보는 편이 더 이로울 수도 있었겠죠. 제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자리에 기꺼이 달려가는 이유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오 플라스틱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널리 인간을, 자연을, 지구를 이롭게 하는 비즈니스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중도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병한 : 마케팅, 선전이라기보다는 선교이고 전도이고 교육에 임하는 자세 같습니다. '시장의 성화(聖化)'라는 말이 있는데요. 성과 속을 이분법적으로 딱 가르는 것이 아니라, 속을 통해서 성을 구현해가는, 시장을 잘 활용해서 영성을 실현해가는, 성과 속의 공진화라고 할까요. 그러나 선교나 전도에 비해서 '시장의 성화'가 더욱 어려운 까닭은 결국 제품의 품질로 승부해서 소비자의 간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품 자랑도 해주시지요?
차완영 : 종이컵부터 말씀드릴까요. 역설적이지만 마음껏 버리셔도 되는 제품입니다. 백퍼센트 생분해 되고, 백퍼센트 재활용도 가능합니다. 예쁘기까지 합니다. 해조류는 이미 많이 말씀드렸고요. 육지 식물의 부산물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색깔과 재질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 식물성 소재의 특징이 곧바로 종이컵의 색감과 질감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쌀겨나 옥수수, 커피 찌꺼기, 귤이나 사과, 생강 껍질 등도 활용할 수 있어요. 귤껍질 부산물이 들어간 종이컵은 산뜻한 느낌이 나고요.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한 종이컵은 은은한 느낌이 나지요.
이병한 : 어쩐지 한지의 느낌도 납니다. 저는 우뭇가사리 부산물로 만든 이 종이접시가 참 예쁜데요. 육지 식물과 바다 식물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종이컵이라 하면 어쩐지 지구의 상징 같기도 하고요. 바다가 7, 육지가 3이니, 7대 3의 비율로 배합하면 그 자체로 "Earth-Cup"이 아닐까요?
차완영 : 현재로서는 그 비율이 반대이기는 합니다. 해조류는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반드시 육지 식물성 소재로 보완해 주어야 하는데요. 기술적으로 3대 7을 7대 3으로 바꿀 수 있을지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가급적이면 해조류 부산물 상품을 선호해주시는 게 환경에 더 이롭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생장 시기와 속도가 다릅니다. 해조류 비중이 커질수록 그만큼 비용이 절감되고, 가격은 인하되고, 생태적 효과는 올라가는 것이죠.
바다 말씀하셔서 기억이 났는데, 저희가 부표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해서 지난달에 특허가 공식 등록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김이나 굴 양식을 참 많이 하잖아요. 그 양식을 하는 데 다 스티로폼 부표를 쓰거든요. 때문에 우리나라 앞바다의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부표 만드는 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하여 바다에서 나온 해조류를 이용해서 바다에 해가 되지 않는 친해양 부표를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부표보다 미세 플라스틱 배출량이 80% 이상 줄어듭니다. 특히 해양수산부에서 주목해 주시고 도움도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병한 : 바다만이 아니라 하늘도 주목하고 계시죠? 항공사와도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차완영 : 기내식을 비롯해 비행기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서비스에 일회용품이 쓰입니다. 바이오 플라스틱 상품으로 전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행기만큼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모빌리티도 없기 때문에, 항공사에서도 다른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일회용품의 생물소재화가 아닐까 싶어요. 장례식장에서도 일회용품을 많이 씁니다. 보람상조 등과도 협력해 보려고 합니다. 베스킨라빈스와 아이스크림 용기를 개발해 볼 수도 있고요.
저는 정부가 단호한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방향 전환을 전면적으로 선도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기업들도 보조를 더욱 빨리 맞추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기존의 플라스틱이 워낙 싸기 때문에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없으면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으로서는 선도적으로 바뀌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병한 : 계란판 5만 개를 캄보디아에 수출하셨잖아요? 동남아시아를 전략적 마케팅 지역으로 꼽아두고 계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차완영 : 캄보디아가 빈곤한 국가이기는 하지만 그 나라에도 상위 1%는 삶의 질을 따집니다. 친환경 상품 수요가 적지 않더라고요. 5만 개를 다 소화한 이후에 다시 5만 개를 수입하겠다고는 하는데, 현재는 남은 재고를 홍보용으로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외주 방식으로 진행했더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더라고요. 국내에서도 풀무원에 1500판을 시험적으로 공급한 적이 있고요. 압구정에 있는 올가 푸드에도 제공했습니다. 국내외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장비를 구입해서 자체적으로 직접 생산하려고 합니다.
이병한 : 동남아시아의 온라인 플랫폼에 주목하고 있는 점도 현명한 전략 같습니다.
차완영 : 가령 인도네시아는 전형적인 섬나라잖아요? 오프라인 네트워크의 한계를 디지털 플랫폼이 채워주면서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알리바바도 동남아와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인도양 전역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주목하고 있고요.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조류 5모작이 가능할 정도로 1년 내내 따뜻한 바다를 확보하고 있으니까요. 현지에서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고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전략적 현지화가 수월한 것이지요. 마침 한류 등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음은 반가운 일입니다. 저희도 K-바람을 적극 타오르고 싶습니다.
이병한 : CJ가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유라시아 곳곳에 진출해 있더군요. 1년에 두어 차례 주재원들이 모이는 전략회의를 싱가포르에서 열더라고요. 그곳에 초청되어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았더니 CJ의 푸드 마켓 규모가 굉장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다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탄소 내지 탈탄소를 도모하는 푸드테크만큼이나 그 만들어진 식량의 유통과 보급 방식의 혁신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린이노베이션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이지 싶고요.
차완영 :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면 너무 좋은 일이죠. 다만 저희가 부족한 점이 디자인 아이덴티티예요. 제품의 생산과 개발에 집중해 왔던지라 마케팅과 브랜딩 역량이 충분치 못합니다. 기술 인력은 충분한데, 시장과의 접점을 만들어 줄 전문적인 디자이너의 컨설팅과 참여가 꼭 필요해요. 한국디자인센터라는 곳에서 공모전을 열더라고요. 거기에 응모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급적 조금 더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손길의 세련된 디자인에 지구의 뭇 생명을 살리는 비즈니스라는 미래적 가치도 담아내고 싶습니다.
이병한 : K-뉴딜, 그린 뉴딜 등 정부도 부산한데요. 정책적인 지원은 어떤 걸 바라시나요?
차완영 : 선언과 구호는 참 많은 것 같은데요.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핵심은 결국 돈이 돌아야 하거든요. 투자가 이루어져야 생산도 늘어나고 탄소 절감 효과도 생기는 것이니까요. 소셜 벤처는 돈과 시간이 생명입니다. 올해부터라도 실질적인 지원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병한 : 지자체의 도움이 훨씬 직접적이지 않으신가요? 여기 울산 자유무역지대에 입주한 것도 혜택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차완영 : 일단 제가 현대 글로비스 근무 시절에 울산에서 지냈던 인연이 있고요. 울산 같은 석유화학 도시에 이런 친환경 신소재 스타트업이 등장했다는 상징적인 효과도 있지요.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공단의 다른 업체들은 지금도 탄소를 엄청나게 뿜어내고 있거든요.
실질적인 비용 절감 효과도 꽤 컸습니다. 서울이라면 공장부지 가격이 평당 5~10만 원은 하거든요. 1000평이면 5천만 원 이상이 소요되죠. 여기는 1000평을 다 써도 300만 원이면 족합니다. 그래서 입주 관련 심의가 꽤나 까다로운 편이죠. 산업통상부가 직접 관리하고요. 반면에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어요. 첨단 기술 확보와 브랜딩,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도 고급 인재들이 왕래하기 좋은 곳으로 옮겨갈 여지도 있습니다.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교통이 편한 곳이 좋겠지요. 제주와 부산, 전남 등 바다를 끼고 있는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지사부터 만들려고 합니다.
이병한 : 수도권과도 가깝고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도 괜찮을 법하네요.
차완영 : 그렇습니다. 강에서도 양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물이 풍부한 곳이라면 내륙으로도 이주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런 쪽의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의사가 있는 지자체와 단체장의 의지와 역량이죠.
저는 정부가 조금 더 근본적으로 더더욱 과감하게 방향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소재 산업은 ICT와 달라서 투자 회수가 빠르지 못해요. 벤처 캐피털이 모험적으로 투자하는데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정부의 정책 전환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플라스틱 규제가 강력하게 진행되면 될수록 저희 산업의 자본 투자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죠. 환경세나 탄소세 등 조세 정책도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하고요. 아무리 분리수거를 열심히 한다 한들, 생산 소재의 파괴적 혁신이 수반되지 않으면 근원적인 한계가 여전하거든요. 비닐과 플라스틱 같은 석유의 파생 상품 뿐 아니라, 석유 자체를 안 쓰는 방향으로 빨리 전환해야 합니다. 에너지의 원천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이 조금 비쌀 수 있지만, 사후의 폐기 비용부터 후세들이 감당해야 할 외부 효과까지 고려하면 전혀 비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훨씬 저렴하면서도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병한 : 지당한 말씀입니다. 제가 올해 6월말 춘천에서 생명문명을 화두로 삼는 국제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요. 생명산업 박람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CEO들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도 만들어 드리려고 하고요. 그곳에도 오셔서 좋은 말씀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외국의 유명한 엑스포를 여럿 다니셨잖아요? 혹시 조언을 구할 수도 있을까요. 박람회를 어떻게 구성해야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요?
차완영 : 기업에 당장의 혜택을 주는 면보다는 미래세대에 방점이 찍혔으면 좋겠습니다. 엑스포를 하면 주로 바이어와 투자자들이 많이 모이잖아요? 그런데 생명산업을 주제로 삼는다고 하면 어른보다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준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아무래도 상업적인 눈으로 접근합니다. 이 기술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기업에 투자하면 언제 얼마만큼의 이문이 남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려하겠죠.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세상과 앞으로의 세상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이병한 :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박람회를 일종의 체험 학습장, 교육 현장으로 꾸려볼 수도 있겠군요. 미래 직업 및 창업 교육이기도 하겠고요.
차완영 : 춘천은 자연 환경도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코엑스나 벡스코, 킨텍스 등에서 하는 흔하디흔한 엑스포와는 좀 다르게 해보면 좋겠습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친환경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등 체험형 전시회가 되면 정말 좋겠네요. 그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자녀와 손주의 장래를 위해서 관심이 훨씬 커질 수 있고요. 박람회 현장에서 가족들이 함께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서 소방공무원이나 질병관리청 공무원에게 보내는 이벤트가 있으면 아이들도 즐겁고 보람되지 않을까요? 손발을 직접 쓰면서 지구를 살리는 일을 실감해 볼 수 있는 참여형 박람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병한 : 춘천에는 대학도 많죠. 아이와 어른 사이, 요즘에는 '어른이'라는 말도 있던데요. 20대 예비 사회인들에게 진로 탐색에 대한 길을 열어주는 기회가 되어도 좋겠군요.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생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어스-테크(Earth-Tech)라는 말을 쓰는데요. 지구를 살리는 기술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이런 쪽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의 실제 라이프스타일이 몹시 궁금하거든요. 하루하루를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계시는지 호기심이 입니다.
차완영 : 저부터 웬만해서는 일회용 제품을 안 쓰려고 노력하죠. 직원들에게도 모두 텀블러를 쓰자고 독려합니다. 그래도 주말에 분리수거를 해보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적지 않아요. 당장은 친환경 포장을 하면 할수록 비용이 올라가니까 기업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도 화학업체들의 협업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화학물질이 조금만 더 들어가면 물성이 훨씬 더 좋아지고, 그만큼 상품으로서의 매력도 커질 것이라고 유혹하죠. 매번 숙고하고 고민하게 되는데, 최종 결론은 늘 안하는 것이었어요. 백퍼센트 친환경 회사로 가자고 직원들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우리만이라도 솔선수범해서 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큼은 화학 물질을 쓰지 말자고요. 그래야 소비자들, 국민들도 저희 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양심의 거리낌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도 재순환되고 재활용되는 제품을 만들어 드리려고 합니다.
사내 문화 자체도 친환경적, 친사회적, 친생명적으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사실은 저희가 창업하자마자 1년 후에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거든요? 돈을 잘 벌어서 나중에는 기부도 크게 하고 싶었는데 너무 일찍 생명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죠. 저희가 만든 종이컵부터 양갱까지 드릴 수 있는 만큼은 질병관리청에도 보내드리고, 대구경북 의료진에게도 선물했습니다. 소방공무원들에게도 지원해 드렸고요.
이병한 : 생존에 급급한 스타트업인데도 그런 선행까지 하셨군요. 착한 기업의 전범 같습니다. 혹 직원들의 우려는 없나요? 사장님이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직원들이 걱정하지는 않는지요? (웃음)
차완영 : 급여는 나중에 올리더라도, 일단 지금은 널리 알리자고 설득해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많은 직원들이 동의해주고 잘 따라주고 있고요. 감사한 일이죠. 직원을 뽑을 때부터 심성을 많이 봅니다.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죠. 나중에 사무실 지나가시면서 저희 직원들 얼굴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다들 선량한 인상일 걸요? (웃음) 앞으로는 더더욱 인성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발로 하는 일은 차츰 기계가 대체해가겠죠. 착한 심성의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잇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말에 봉사활동도 함께 하고 있어요. 사명감을 가지고 기업을 해야 합니다.
이병한 : 13년을 준비해 오셨다고 했잖아요? 그런 오랜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인도네시아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도 해조류 부산물이라는 아이템도 눈에 들어오셨던 것일 텐데요. 13년 전의 그 계기라고 할까,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릴 때 고향이 바닷가였다고 해서 다들 바이오 플라스틱 사업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2019년 마린이노베이션이 탄생하게 되는 진짜 전사(前史), 프리퀼이 궁금합니다.
차완영 :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될지는 몰랐습니다만, 질문을 하셨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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