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손에 잡힐 듯했던 한반도 평화가 다시금 멀어져 가고 있다. 남북, 북미, 한일 관계 등이 모두 교착과 갈등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고 한국에서는 강창일 신임 대사가 일본에 부임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일 관계가 주로 과거사 청산의 시각으로 조명되고 있지만, 이보다는 한반도 평화 구축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 일본 전문가이자 청와대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는 일본과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과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 1월 27일 남 교수를 만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일본의 상관관계, 그리고 양국 간 가장 민감한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 등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세 차례에 나눠 소개할 예정이다. (☞ 1편 : "남·북·일 '평화 삼각형' 만들어야 미·중 영향력 극복 가능")
일본은 왜 미일동맹 강화에 몰두하고 있나
프레시안 : 일본이 1988년, 1998년에는 적극 협조는 아니더라도 방해까지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2018년 이후, 그러니까 3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서는 적극적인 방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남기정 : 1988년 및 1998년과 2018년의 차이점이 있다. 일단 과거와 달리 우경화된 일본, 그리고 그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아베 개인의 성격과 일본 주류의 사고가 있다. 구조적으로 다른 점은 이전과 달리 2018년에는 일본이 무대 바깥에 놓인 신세가 돼버렸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명백히 일본을 관여시키려는 노력이 있었고 일본의 관여를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는데 2018년에는 그전에 비해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또 이전에는 한반도와 동북아를 같이 놓고 화해‧협력을 진행시켜서 평화를 이끌어가려는 것이었다면 2018년에는 한반도의 주체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측면도 있다. 미국을 직접 끌어들여서 남북관계를 먼저 풀려고 했다. 북미관계가 움직인 것은 커다란 성과지만, 남북관계를 안착시킬 동북아의 다자주의 협력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2018년 이후 프로세스에서도 동북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신북방, 신남방 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오히려 동북아를 더 확대해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2018년 프로세스가 너무 빨리 진행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동북아를 같이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 따라오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일본을 관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현재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에 의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최상의 안보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2009년 하토야마 총리가 동아시아인에 의한 동아시아 평화를 주창한 적이 있지만 이는 이미 흘러간 얘기가 되고 말았다. 일본 내에서 미일동맹 강화 외에 다른 대외 협력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나? 중국의 부상과 북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남기정 : 동북아에서 일본의 위상이 2012년 아베 2차 집권 전후로 많이 달라졌다. 중국의 부상과 북핵이 실제적 위협으로 나타나면서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안보 불안이 증폭된 시기가 바로 이때다.
적어도 하토야마 등 민주당 집권 시기는 그 정도의 위협은 아니었다. 그런데 201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했고, 희토류를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을 보였던 일본이 결국 센카쿠((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에서 중국에 무릎을 꿇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아베 내각 아래에서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동북아 질서 형성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2015년까지 일본의 안보 전략에 여러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났다. 법제 정비를 통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본 국내외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과잉 해석된 측면이 있다. 일본이 추구하는 것은 과거와 같은 침략 국가가 아니다. 즉 메이지유신 직후 아시아에 대한 군사 침략 또는 1930년대 군부의 폭주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그런 나라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전쟁 가능한 나라라는 것도, 아직은 평화헌법 아래 여러 전제 조건이 달려 있어서 쉽게 남의 나라에 가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쟁 가능한 나라가 되겠다는 것은 일본이 미일동맹을 제대로 기능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원하기도 한 사항이었다.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 일본이 돌아가고자 하는 과거는 1920년대다.
일본 입장에서 미일동맹은 불안한 동맹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일본의 실질적인 군사적 기여를 원하는데, 그동안 일본은 기지 제공이나 군사비 지원(1차 걸프전)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원하는 정도의 군사적 기여를 못한다면 언젠가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어왔다.
예컨대 한국전쟁 시기 일본은 미국에 기지를 제공했고 미국은 일본의 방위를 위해 한반도에서 피를 흘렸는데, 이 관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미일동맹이다. 피와 땅을 교환한 미국과 일본 사이의 동맹이 대등한 동맹이 될 수 없다. 미국은 일본에게 "피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어떻게 도와달라고 하느냐", "너네도 피를 흘려라, 군화 신어라"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일본 내에 늘 있었다.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가야한다는 일본의 속내는 여기에 있다.
일본이 유난히 국제법 준수를 강조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교 활동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후 일본 외교는 제도적 자유주의의 국제질서에 기대왔다. 즉 군사력을 외교에 투영할 수 없기 때문에 열심히 제도나 체제(레짐)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안정과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를 벌여온 것이다. 이게 일본 외교의 장기가 되었다.
일본이 국제법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 틀이 아니라면 자신의 이익이나 안전을 도모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국제 협력을 추진, 그 안에서 제도와 법을 만들고 거기서 일본의 이익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베 이후 군사적 현실주의로 경사하고 있지만, 아직 일본 국민 다수는 군사력을 동원한 이익추구 외교를 낯설어 한다.
실제 일본 국민의 과반 이상은 군사적 보통국가의 길을 확정하는 평화헌법 개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대신에 국제법에 대해서는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일본 스스로 법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나가면서 모든 국가가 법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 상황에서 일본의 이익을 확인하는 외교를 해왔다. 국제법 또한 힘에 의해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일본에게 미일동맹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여하를 떠나 일본은 한국이나 북한을 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역사적 정의에 입각해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이다. 또 중국과 러시아도 현재 조성돼 있는 국제법 질서를 부인하는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인식에서 보면 일본 주변에는 전부 법을 지키지 않은 나라들로 깔려있는 셈이다. 일본이 '법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더욱 매달리는 이유다.
이러한 사고의 기원은 1920년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 메이지 시기 이미 친 영국노선으로 방향을 잡은 일본은 앵글로색슨의 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이 가능했고 거기서 이익을 취해 왔다. 일본인들은 일본의 외교가 꽃을 피운 시절로 1차 세계 대전 이후를 꼽는데, 영미 진영과 함께 승전국이 된 일본이 유럽을 무대로 새로 만들어지는 국제 질서의 형성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이후 승전국을 포함한 참전국 대부분은 전후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승전국의 리더 국가라고 하는 영국, 프랑스 등은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됐고 미국은 윌슨이 나름의 세계질서를 주창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스스로 만든 국제연맹에서 빠져버렸다.
결국 1차 대전 이후의 국제 질서를 실제 이끌어가는 나라가 없었는데 여기서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 과실을 따먹은 일본이 질서 형성자 역할을 하게 됐다. 당시 일본은 5대 강국 중 하나였고 국제연맹 질서를 이끌어가는 유력한 국가로 외교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있다면 이는 사실 1920년의 이 과거다.
이 때 만들어 놓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일본이 100년 동안 영화를 누렸다. 1930년대 중후반 군부의 폭주로 중국 및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때를(1937-1945년) 제외하고 일본은 1920년대 이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안에서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해왔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꼭 100년 만에 이 질서에 위기가 오기 시작했다. 2017, 2018년을 거치면서 중국의 위상은 더 커졌고 러시아의 푸틴도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의 트럼프는 동맹을 흔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침 한반도에서 남북화해 움직임이 가팔라졌다. 이게 일본에게는 기존 질서를 유동화하는, 즉 일본이 기댈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도전 요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에 아베 주변에 있는 일본의 전략가들은 일본이라도 나서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고 일본이 중심되어 미국을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려면 미국이 요구하는 곳에 가서 전쟁도 해줄 수 있어야 하고 미일동맹을 글로벌한 동맹으로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그래서 아베 내각에서 그 동안 추진하던 두 가지 외교안보 전략, 즉 적극적 평화주의와 세계를 부감하는 외교라는 두 가지 개념을 하나로 뭉뚱그려 이를 전략 개념으로 만든 것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이는 물론 미국이 원하던 것이다. 이를 일본이 먼저 전략 개념으로 만들어서 미국에 팔았고, 미국이 의기투합했다. 이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기제로 미일동맹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인도-태평양' 전략의 원산지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미일의 전략은 결국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대상화하는 것 아닌가. 미국이라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즉 미국을 일원으로 참여시키면서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평화공동체를 만들 가능성은 없나? 이러한 구상을 하는 세력이 일본 내에 유의미하게 존재하나?
남기정 : 지금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동아시아 공동체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일본 안에서 한국과 함께 중견국 외교를 하자는 이야기는 최근 들어서 다시 조금씩 들려오는 것 같다. 물론 아베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고 있지만,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학 명예교수 중심으로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의 미들파워 외교론이 나온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는데, 아베 시기에 거의 사라졌다가 최근 일부에서 다시 이에 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일본의 위상이 위태로워지고 아베 노선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일본은 미일동맹이 기능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일본이 독자적으로 중국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 파트너가 미국이 아니라면 누구를 잡아야 할지가 고민인데, 유럽연합(EU)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전통적 자유주의 질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또 한편에서는 중국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미중 간 갈등이나 신냉전을 주로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주로 언급하는 반면, 일본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미일동맹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국도 일정하게 관계 개선을 해놓아야 한다는 식이다. 과거 미일동맹 일변도였던 것에서 조금 생각이 달라진 셈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일본이 먼저 양보해서 한국과 관계를 개선해보자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한일관계가 원칙 대 원칙으로 전개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EU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또 코로나 19 대응에서 유럽 국가들이 크게 실패한 상황에서 위상도 실력도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또 중국과 관계 개선도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지긴 어려워서 거기서부터 이익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일본 자민당 안에서는 친대만 반중 감정도 크다. 그래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우리가 이런 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 전환은 일정 부분 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한국의 노력이 미흡하다고 보나?
남기정 : 미흡하다기보다는 질서정연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투트랙 외교로 역사와 협력 현안을 구분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투트랙 접근이라는 건 트랙을 구분해서 각각의 논리로 트랙을 움직인다는 것인데, 현안의 협력 틀로 일본을 이끌어오기 위해서는 역사 트랙에서도 일정한 움직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종합적인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전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프레시안 : 현재 한일 관계는 사실상 대치 상태인데, 우리가 일본을 끌어오려면 일정 부분 양보가 필요한 것 아닌가?
남기정 : 꼭 그렇진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전략이다. 스가 내각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다. 스가 총리는 올해 중의원 총선과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업적이 필요한데, 사면초가 상황이다.
그런데 다른 과제들에 비하면 한일관계는 그나마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북일정상회담도 스가에게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아베 총리 집권 당시에는 한국이 문제를 풀기 전에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는데, 그게 효과가 없었고, 일본도 손해를 봤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지금도 일본이 발신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아베 시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방점과 뉘앙스가 좀 달라졌다. 한국이 뭔가를 해보자고 하면 일본도 고민해 보겠다는 식이다. 일본이 대화의 장에 나갈 수 있도록 한국이 이끌어달라는 것으로 들린다. 적극적인 대일외교로 한일관계를 전환하여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를 지체시키는 길이기도 하다.(3편에서 계속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