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쿠팡 천안물류센터에서 하청업체에 고용돼 일하던 P씨가 일하던 중 쓰러져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유가족은 P씨의 죽음이 산재 사망이라고 주장하며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대해재기업처벌법 제정 충남운동본부가 <프레시안>에 P씨 사망이 산재사망인 이유,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개선과제 등을 담은 세 편의 기고글을 보내왔다. 두 번째 글을 싣는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이 연이어 사망하고 있지만 정작 쿠팡은 노동자들의 사망에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한다.
지난 11일 새벽 5시경,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야간 집품작업을 하던 50대 여성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작년부터 이어진 쿠팡의 노동자 연쇄사망이 다섯 번째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0년 5월 27일 새벽 2시 40분경 쿠팡 인천물류센터 4층 화장실에서 40대 계약직 노동자가 사망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쿠팡은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 후 쿠팡천안물류센터 조리실에서 외주업체 소속 30대 여성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번에는 유가족이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라고 나섰지만 쿠팡은 유가족에서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자료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죽음도 외주업체의 책임이며 쿠팡은 이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12일 대구칠곡물류센터에서 새벽 4시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27세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번에도 고인의 유가족이 나섰다. 지병이 없는 건강한 청년이 쿠팡에서 일한 지난 몇 달동안 무려 15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빠지는 과도노동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쿠팡은 '사실왜곡을 중단하라'며 허위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달 뒤 11월 10일 쿠팡 마장물류센터에서 자동화설비(컨베이어벨트)의 검수와 시운전을 담당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정비 중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쿠팡은 사망 관련 언론보도를 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하청업체 직원에 대해 발주처인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 동탄물류센터에서 사망한 50대 노동자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한파주의보가 내렸던 새벽에 핫팩 하나로 버티던 노동자가 야간노동의 끝에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태도는 여전하다.
모두 코로나19 이후에 벌어진 연쇄사망사고이다. 코로나19는 쿠팡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황을 가져왔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건강한 신체가 버텨낼 수 없을 정도의 노동강도를 감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쿠팡은 자신들이 내건 '혁신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어떠한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부당노동행위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정노동시간을 지키고 임금체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업의 책임을 다했다고, 노동자들의 연쇄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 정도의 자신감이면 의혹을 제기하는 유가족들에게 죽음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고, 코로나19 집단감염의 피해자들과의 교섭자리에 나와 자신들의 입장과 근거자료를 제출해서 설득하면 될 일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사들의 기사에 일일이 대응하며 악의적 왜곡 운운하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할 일이 아니라 기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면 된다.
그러나 쿠팡물류센터에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코로나로 인한 집단감염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여전히 쿠팡의 책임을 묻고 있는 와중에 쿠팡의 대응은 구태의연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랑하는 데이터알고리즘과 자동화시스템은 수많은 불안정노동자의 피와 땀을 더 많이 뽑아내는 기계장치의 새로운 버전에 불과하다는 점 역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혁신기업으로 자처하는 쿠팡에 혁신이란 데이터알고리즘에 기반한 퇴행적 경영방식의 다름아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작업속도를 높이는 UPH(시간당 생산량)는 적정노동시간과 적정노동강도에 따른 적정노동량을 산출하기 위한 합리적인 셈법이 아니라 일용직, 단기계약직을 통제하고 작업속도에 옭아매기 위한 통제기제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쿠팡은 UPH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정당한 행위라는 일반론으로 반박한다.
쿠팡은 적어도 합법적일 뿐 아니라 합리적인 경영의 결과 노동자들이 잇달아 죽고 있는 원인을 스스로 밝혀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 쿠팡이 내건 혁신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들의 경영시스템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쿠팡 스스로가 점검하고 문제를 짚어내지 못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쿠팡 물류센터 전반의 실태를 점검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사망사고의 원인을 밝혀낼 필요가 있다.
쿠팡은 이미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인 이상 발생한 경우, 3월 이상의 요양을 요하는 부상자가 동시에 2인 이상 발생한 경우,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인 이상 발생한 재해를 의미한다. 애초에 인천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죽음을 '돌연사'로 치부해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정부는 쿠팡의 연쇄적인 사망사고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100여 명이 넘는 부천쿠팡 물류센터의 코로나 집단감염을 중대재해로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물류센터라는 새로운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을 앞서서 감독하지 않은 정부가 더 많은 죽음과 위험들을 방치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미 한참 늦었지만 물류산업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거대 공룡기업이 되어가는 쿠팡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따돌리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규제와 감독의 헐거운 망을 빠져나가 질주하고 있는 쿠팡의 고삐를 잡아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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