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쿠팡 천안물류센터에서 하청업체에 고용돼 일하던 P씨가 일하던 중 쓰러져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유가족은 P씨의 죽음이 산재 사망이라고 주장하며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대해재기업처벌법 제정 충남운동본부가 <프레시안>에 P씨 사망이 산재사망인 이유,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개선과제 등을 담은 세 편의 기고글을 보내왔다. 첫 번째 글을 싣는다.
쿠팡 천안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2020년 6월 1일 천안의 쿠팡물류센터 내 구내식당, 코로나19로 인해 물류량이 폭증하면서 식당이용자가 50% 이상 늘어난데다 5월말 부천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으로 인해 모두가 불안해하던 상황에서 조리와 청소를 담당하던 여성파견노동자 P씨가 급식실 바닥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또 쿠팡에서? 코로나 때문일까?"라는 의문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고인의 사인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는 부검결과가 나오면서 사건은 어느덧 뉴스에서 사라졌지만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임을 입증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 동시에 하루아침에 엄마 없이 아빠와 세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황망함 속에 내던져졌다.
사건 이후 경찰은 급성심근경색이라는 부검결과만을 근거로 A씨의 사망이 화학물질과 관련이 없다며 쿠팡의 과실에 대한 수사를 종결하려 했고, 고용노동부 역시 간단한 시료체취와 관련자 몇 명에 대한 면접조사 이외에 정밀한 사고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유가족은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산재를 신청했지만 고인의 죽음이 업무에서 기인한 것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많은 산을 넘어야 하고 그 긴 시간을 유가족들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뇌심혈관질환=업무시간?
산재보상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급성심근경색을 비롯한 뇌심혈관계질환 사건을 접할 때, 재해자의 업무시간을 가장 먼저 살펴본다.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같은 질환의 발병에 과로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어 있고 과로를 확인하기 가장 '편리한' 방법이 수치화되어 있는 업무시간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연관성 심사기준인 고용노동부고시 역시 업무시간을 근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또는 4주간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면 업무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며, 12주 평균 52시간~60시간 사이일 경우에는 시간에 따라 업무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식이다.
그러나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연관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업무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가장 편리한' 방법일 뿐 '가장 객관적인' 방법은 아니다. 한 노동자의 과로를 평가하는 데에는 업무시간만이 아니라 업무의 양과 강도를 포함한 물리적, 화학적인 영향, 환경적인 영향, 심리적인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고시 역시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되는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등에 대해서는 가중요인으로 인정하고 있고 갑작스러운 업무의 증가나 돌발적인 사건으로 인한 충격도 발병의 원인으로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고시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채 업무시간을 위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크다.
쿠팡 천안물류센터 사건의 가중요인
P씨는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일했지만 파견업체인 A업체 소속으로 구내식당을 위탁운영하는 B업체에 파견되어 1년여간 근무했다. 업무시간으로만 따지면 P씨는 과로인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간 이외에도 검토해야할 요인들은 너무나 많다. P씨는 조리와 청소업무를 하면서 락스, 오븐크리너 등의 세척제를 혼합하여 과다하게 사용했고 특히 사고발생 직전인 5월24일 부천 물류센터에서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방역조치가 강화되면서 세척제의 독성과 사용량은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P씨 사망 전 3개월간은 코로나19로 인해 택배물량이 급증하면서 하루평균 식당이용자가 250명에서 380명으로 급증했지만 인원은 충원되지 않아 P씨를 비롯한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해야 했고, 통상적인 퇴근시간이 30~40분 늦어졌다. 이외에도 P씨의 정신적 긴장을 높이는 요인들은 더 있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P씨는 입사 이후 2번이나 퇴직을 고려할만큼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하며, 사고 직전에는 부천물류센터 사태로 인해 천안물류센터에도 관계부처의 긴급합동점검이 실시되어 긴장된 상황에서 청소와 소독을 진행한 점, 점검결과에 따라 물류센터가 운영중단될 경우 파견노동자인 P씨의 상황에서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점 등이 업무연관성 판단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산재심사는 논쟁의 영역일지라도 고통은 엄연한 현실
한편, 산재피해자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보수적인 심사관행만이 아니다. 2018년 기준 뇌심혈관질환 산재심사에 걸린 기간은 105.6일이다. 더구나 P씨의 경우처럼 화학물질에 대한 조사까지 진행되어야 하는 경우 그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기약이 없다. 재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증장해를 입은 경우, 본인과 가족은 심사기간 동안 치료비나 생활비 등에 대한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도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 P씨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P씨의 배우자는 생계를 유지하고 세 아이를 양육하느라 본인의 무너진 몸과 마음을 돌볼 겨를도 없다. 다행히 지역 노동계가 뜻을 모아 엄마를 잃은 아이들의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고 후원을 위한 모금도 진행했지만 체계적인 지원정책이 전무한 상황에서는 그저 급한 불만 끌 수 있을 뿐이다. 어처럼 산재피해 가족에게는 피해의 인정만큼이나 조속한 산재승인이 절실하다.
산재보상보험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을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근로자복지를 증진'하기 위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에 비해 업무상재해의 심사기준과 절차는 법의 시행령도 아닌 '고용노동부 고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업무상질병에 대한 심사기준은 최대한 법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하며, 뇌심혈관질환을 업무시간만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불합리한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몇 년전 경영자총연합회는 근로복지공단의 심사에서 불승인된 뇌심혈관질환 사건들이 법원에서 승인받는 경우들이 많다는 통계를 두고 '법원의 온정주의가 공정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법원이 업무상질환을 근로복지공단보다 폭넓게 해석하는 것은 법원은 고용노동부고시에 지나지 않는 심사기준보다는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 '복지의 증진'이라는 법령의 목적과 취지를 더욱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를 '온정주의'로밖에 해석하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에서 산재피해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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