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법원은 SK 케미컬과 애경산업이 제조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가 'CMIT', 'MIT'라는 화학물질을 원료로 사용했는데 동물실험결과 이 물질은 코와 비강 등 상부 호흡기에 염증 등을 발생한다고 보았다. 반면 검사가 기소한 피해자 질환은 폐 질환과 천식과 같은 하부 호흡기 질환이었다. 그래서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피해자 폐질환과 천식이 발병했는지 여부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못했다고 무죄 판결했다.
그런데 모두 138쪽에 이르는 판결문 중에는 우리가 가슴 아프게 주목할 부분이 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검찰 공소장에 문제의 가습기 메이트만을 사용한 피해자로 제시된 사람이 과연 그 가습기 살균제만을 단독 사용한 지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적시했다.(판결문 127쪽) 이는 무슨 말인가? 검사가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만 사용한 피해자라 제기한 기본적 사실조차 법원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이는 보통의 형사 공판에서도 쉽게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검찰, 질병관리본부, 그리고 환경부는 2011년 우리 사회에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처음 인식되었을 때부터, 위 'CMIT/MIT' 성분 피해자들의 조사 요구를 한사코 외면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증상은 폐섬유화'라는 틀을 피해자들에게 강요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도 지적하였듯이, 폐섬유화로 대표되는 가습기 살균제 유발 폐질환은 'PHMG' 'PGH'라는 다른 화학물질이 발생시켰다. 이들을 원료로 쓴 옥시 가습기 살균제가 대표적이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번에 기소된 SK 케미컬과 애경산업 가습기 살균제는 원료 화학물질이 다르다. 그런데도 2011년부터 국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폐섬유화라는 등식을 모든 피해자에게 강요하였다.
그 결과, 나도 직접 목격하였듯이, SK 케미컬과 애경산업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상부 호흡기(상기도) 질환은 배제되었다. 그들의 요구는 검찰청 정문 앞에서, 질병관리본부 입구에서부터 가로막혔다.
무죄 판결에 분노한 가습기 메이트 사용 피해자가 내게 보낸 글을 그대로 소개한다.
이번 판결문에서 지적하였듯이, 환경부가 이번에 기소된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하여 동물실험을 시작한 때는 2017년이었다. 문제의 가습기 메이트가 출시된 2002년부터 15년이 지난 후였다. 너무 늦었다. 과연 누가 자신이 쓴 가습기 살균제 구입 영수증이나 빈 통을 그렇게 오랜 시간 보관할 것이며 기억할 것인가? 그 결과가 이번 무죄 판결이다. '만들어진 무죄'이다.
2002년, 가습기 메이트 제조 판매 회사는 제품 용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었다. '영국 'Hungtington Life Science에서 저독성을 인정한 항균제를 사용하여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입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15일 자의 <서울신문> 신제품 기사는 이 제품을 '인체에 무해한 항균제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실었다. 2005년 10월 25일 자 <머니투데이> 제품 기사는 '인체에는 안전하다', 그리고 다음 날 <중앙일보> 제품 기사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으로 온 가족의 건강을 돕는다'고 실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다른 참사와 구별되는 점은 가습기 살균제가 가족 건강에 좋은 줄 알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구입한 소비자의 적극적 선택 행위가 필수적 매개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후인 2012년에 문제의 원료인 CMIT/MIT에 대하여 '유독물에 해당함'이라고 고시하였다.
제조사와 판매사는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이라고 표시하여 소비자를 유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과해야 하며 배상해야 한다.
무죄 판결이 SK 케미컬과 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끝이 아니다. 검찰도 항소심에서 CMIT/MIT 성분에서 생기는 피해 질환을 중심으로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 항소심에서 정의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이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경제 폐단을 바꿀 수 있다. 그래야 공정한 활력경제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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