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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외·유예' 갈수록 후퇴…유가족 "죽음도 차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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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외·유예' 갈수록 후퇴…유가족 "죽음도 차별하나"

5인 미만 삭제, 50인 미만 3년 유예…법사위 법안소위 통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엉망으로 죽었다. 사무치는 한이 폭발할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자 저희(산업재해 유가족)가 나선 거다. 왜 우리가 자식을 잃고 이 추운 길바닥에서 이렇게 힘들게 하겠느냐. 다른 이들이 죽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이 심정을 모르는 것 아니냐. 국민들의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다치는데도 그들을 절대 이해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국회 본회의를 하루 앞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다루는 여야는 처벌 수준을 낮춘 데 이어 처벌 대상까지 대폭 줄이기로 합의했다. 여야의 합의로 중대재해법안 통과는 수월해졌지만, 법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후퇴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결국 7일 산업 재해 유족들이 국회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업 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이날 중대재해법 심사가 이뤄지고 있는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미숙 씨는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라며 "국회와 기업, 공무원이 안전을 그들만의 이익 구조로만 생각한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어 "국민들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다치는데도 그들을 절대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국민 71%가 이 법의 통과를 원하고 있는데 그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라며 비판했다.

이용관 씨는 "백혜련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만나 죽음에도 차별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왜 (처벌대상에서) 제외시켰는지, 집단 괴롭힘은 왜 (중대재해 범위에서) 제외했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이어 "왜 죽음에 차별이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유가족과 저희는 28일 차 단식, 32일 차 단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야가 합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중대재해 차별법'으로 전락시켜버렸다"며 "유가족이 굶든 말든 여기서 죽어 나가든 말든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어제부로 확인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논의 규탄 및 온전한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는 이날 오후까지 법사위 법안소위 회의를 진행해 법안을 전체회의로 넘겼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을 처벌 적용 대상에서 빼기로 하는 등 상당수 업종을 법 적용에서 유예하거나 아예 제외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총 3년의 유예기간을 갖게 됐다.

쟁점이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3년동안 법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정의당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사고재해 발생율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79.1%이고, 노동부에 신고된 중대재해도 50인 미만 사업장이 84.9%를 차지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중대재해가 이뤄지는 사업장인 50인 미만 사업장에 처벌을 3년 동안 유예해주기로 한 것이다.

백 의원은 이날 소위 의결을 마친 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법) 공포 후 3년 후에 (적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며 "이 법 자체가 공포 후 1년 후에 시행되는 것으로 돼 있는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만 시행 후 2년 더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위는 앞서 노동자가 아닌 시설 이용자가 피해를 보는 사고, 이른바 '중대 시민재해'의 경우 상시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장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음식점, 노래방, PC방, 목욕탕 등 다중이용 업소도 바닥 면적 1천㎡ 미만이면 법을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안전 조치를 미흡하게 해 노동자가 사망하더라도 '중대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된다. 정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가 전체 건수 가운데 20%, 종사자 수 기준으로는 40%에 달하는 만큼 상당수 노동자가 배제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해왔다.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는 재계의 주장대로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담당이사로 정해졌다. 사업주가 증거 인멸 등 산재 수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을 경우 등에 한해, 사업주 책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한 '인과 추정' 조항도 삭제했다. 공무원은 고용노동부 주장대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강력하게, '5인 미만 사업장 경우에는 중대재해 (처벌 대상에) 포함될 경우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며, "소위 위원들이 갑론을박 하다가 중기부의 의견을 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소위를 빠져나온 중대재해법안은 이날 오후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8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입법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백혜련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왼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 1소위원회의실로 향하는 동안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제정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입법 취지를 훼손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여야가 함께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실효적 법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여야 합의로 중대재해법을 의결한다는 점이 뜻깊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제정법이고 쟁점이 많았지만 여야 모두 법안 필요성을 공감해 속도를 높였다"며 "법사위와 정책위를 중심으로 숙의를 거듭했고 두 번의 정책 의원총회로 의원들 의견을 수렴했으며 산재 희생자 유족들 목소리를 경청한 데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 각계각층 의견도 들었다"고 강조했다.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법안 내용에 대해 여러 계층과 이해관계자의 걱정과 우려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민주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산업안전 예방을 위해 점검 처벌의 종합적 안전망이 마련되도록 후속 작업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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