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일 중소기업단체협의회를 만나 국회에서 논의에 돌입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업계 의견) 수용성이 높고 현실성이 높은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재계·기업인 등의 반발을 수렴하며 중대재해법의 취지가 후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비롯해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소상공인연합회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등 5개 중소기업 단체를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중소기업단체는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중대재해법이 과잉입법이 될 수 있다"며 적용 대상에 소상공인 제외를 요구했다. 이들은 △기업주 처벌을 반복적인 사망사고로 한정 △기업이 산재예방의무를 다하면 처벌 면제 △사업주 징역 하한 규정(2년 이상)을 상한 규정으로 바꾸는 내용 등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간담회 후 브리핑을 통해 "여러가지 우려되는 내용들에 대해 법사위 송기헌 간사가 충분히 설명을 드렸다"며 "수용성이 높고 현실성을 높게 해 어떻게든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김 원내대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단체 의견을 경청하고, 해당 업계 의견이 현실적으로 반영되도록 노력해 합리적인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고 홍정민 원내대변인은 전했다.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제정에 반대하는 재계·기업인 측 의견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법안 취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중대재해법 관련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달라"며 음식점, PC방, 노래방, 목욕탕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법사위원 등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민주당 법사위는 야당과 소상공인이 반발하자 정부 제출안보다 소상공인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안을 야당에 제안한 바 있다. 김 원내대표의 주문은 소상공인을 처벌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하자는 것이다.
중대재해법에 반대 의견을 표해온 양향자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한 사안은 더더욱 국민 상식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민께서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논의가 무르익었을 때 가능한 일들이다. 정치권에서만 이야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예시로 들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양 최고위원은 사실상 이번 임시국회 내 중대재해법 처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그는 이어 "조급함을 절박함으로 혼동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양 최고위원은 지난달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현실적으로 모든 안전관리 업무를 원청 회사가 맡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중대재해법의 핵심인 경영책임자 처벌에 반대의견을 표했다.
이같은 지도부의 움직임에 당내에서도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지난달 18일 박홍배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다수의 산재사망사고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한다"며 "'중소기업에 과도한 벌금형을 부과하고 경영 책임자를 구속하면 중소기업들이 망하게 된다'는 재계의 논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의당에서도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양향자 의원의 오늘 발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재계 민원 해결사로 의정활동을 하고있는 자기 고백"이라며 " 일터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내세워야 할 집권여당 지도부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양향자 의원의 입장과 다름을 확인시켜줘야 한다"며 "이제 집권여당이 결단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취지의 훼손 없이 오는 8일 임시국회 내에 법 제정이 이뤄지도록 집권 여당 지도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중이용시설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김태년 원내대표의 주장에 장혜영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모든 영세상공인이나 소규모 영업장에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과 업소의 이용자 규모나 면적을 기준으로 정한 다중이용업소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며 "2012년 부산 서면 노래방 화재사건,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 2018년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사건 등 다중이용업소에서의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보다 철저히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지난 30일 반대 의견을 표한 바 있다.
한편, 고(故) 김용균씨의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조사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 이행점검단은 이날 "중대재해법조차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법의 존재 자체로 재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위엄이 실린 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며 법안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의견서를 국회 법사위에 제출했다.
이들은 △책임 주체는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및 안전 보건에 관여한 사람일 것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 △안전 준수 감독, 인허가 공무원과 감독책임 공무원에게 법적 책임 규정 △직업성 질병자의 내용과 종류를 본법에 명시할 것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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