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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체제의 핵심은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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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체제의 핵심은 '평등'

[의제27 '시선'] 불평등 경제, 몰핀 경제의 악순환을 끝내자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자 하는 미국인은 사실은 덴마크로 가야한다'

'평등이 답이다'(원제: Spirit Level: Why Greater Equality Makes Societies Stronger)의 저자 윌킨슨(Richard Wilkinson)은 단언한다. 누구든 열심히 일하면 잘 살게 된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미국에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에서는 자식들이 얼마나 잘 사는가는 그 부모가 누구인가에 더 많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의 소득이나 학력에 관계없이 노력에 의해 잘 살기를 원한다면 그 꿈을 실현시킬 가능성은 덴마크에서 더 높아진다는 말이다.

리프킨(Jeremy Rifkin)은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중시한 유러피안 드림이 아메리칸 드림을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듯 도처에서 학자들이 미국식 사회의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는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토건과 재벌에 의존한 경제성장 이외에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정관경언 유착 세력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 미국식 사회를 쫓아가겠다고 대침체 이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한미FTA 비준을 발효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 미국식 사회를 쫓아가겠다고 대침체 이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한미FTA 비준을 발효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불평등경제, 몰핀경제, 거품경제, 부채경제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위험하다. 지난 20년간 소득 불평등이 계속 악화되어 왔으며, 그 결과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이 떨어지면서 한국경제는 반복적으로 침체상황에 빠졌다. 소득 불평등에 따른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정공법으로 처리하지 못한 채 미봉책인 경기부양책으로만 일관해 온 탓에 한국경제의 성장은 정부의 부양책에 의존하는 이른바 '몰핀경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몰핀경제는 거품을 조장하는 정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대기업의 부채거품, 기술주 거품, 신용카드 거품, 부동산 거품, 가계부채 거품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몰핀경제는 거품경제로, 거품경제는 다시 부채경제로 이어졌는데, 이를 통해 정부부채, 기업부채, 가계부채가 돌아가며 급증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97년 외환위기가 기업부채로 인해 터졌다면 그 이후에는 가계부채와 정부부채로 전이되었고, 이것은 결국 다시 기업부채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소득불평등의 악화를 근본적으로 막지 못한다면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경제위기를 악용하여 오히려 토건족과 재벌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빌미로 이용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는 그 결정판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경제의 건전성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미국경제의 100년 역사는 불평등과 경제위기의 관계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거품이 일었고, 그 결과 부채가 급증했으며 그 결과 1929년에는 대공황이 왔고, 2008년에는 대침체가 왔다. 그런데도 아직도 복지병 운운하는 전문가들이 판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2013년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2013년 체제는 시작되었다. 분노하는 대중들은 2012년을 점령하기 위해 나섰고, 그들은 2013년 체제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그 청사진의 핵심 가치로 평등이 자리잡고 있다.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연대하기는 힘들다. 역으로 연대하지 않는다면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연대를 수단으로 하고 평등을 목표로 하는 2013년 체제를 자리잡게 한다면 연대와 평등의 선순환을 달성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단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수단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기회균등선발제를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로 제시하고자 한다. 당장의 소득불평등도 중요하지만 그 소득불평등이 대물림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회균등선발제는 지금까지의 경쟁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모두가 국가대표 선수처럼 최고의 지원을 받으면서 경쟁에 나설 수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좋은 환경에서 좋은 코치에게 훈련을 받지 못한 재능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모든 선발과정에서 기회균등선발제가 시행된다고 상상해 보자. 가장 먼저 대학의 신입생 선발제도가 바뀔 것이다. 제도의 핵심은 가난한 가정의 수험생들은 그들만의 경쟁을 통해 대학을 가는 것이고, 부모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수험생들은 그들만의 경쟁을 치르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서울과 지역, 강남과 강북 학생들을 구분하여 유사한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들끼리 경쟁시키는 방식이다.

입학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필자는 일찍이 이 제도의 유용성, 정확하게는 무차별적인 선발시험의 부작용을 실제로 체험했다. 필자는 중학교는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했지만 고등학교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치르고 입학했다. 중학교 입학시 무작위로 배정받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중학교의 학생들이 더 우수하다고 볼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시 유독 한 중학교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더욱이 1, 2, 3등도 모두 그 중학교 출신들이 독차지했다. 후에 그 중학교 출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들은 사지선다형 문제를 하도 많이 풀었기에 사법시험도 사지선다형 문제라면 자신있다고 했다. 당시 다른 중학교와는 달리 학교에서 밤 늦게까지 계속 문제집을 풀었다고 했다. 반면 고등학교 입학성적이 제일 좋지 않은 중학교도 드러났다. 그 학교에서는 거의 학생들의 자율적인 공부에 맡겨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재학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 시절 자율적으로 공부했던 친구들이 상위권에 포진한 반면 가장 성적이 좋았던 중학교 출신 친구들은 뒤쳐졌다. 아무도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지 않았지만, 필자의 동창들은 대체로 이런 경향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현재 시골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혼자서 공부를 한다. 그들에게 대학입학의 기회는 매우 좁다.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도 서울 학생들처럼 사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평등을 향한 체제의 전환

공공부문에서의 모든 선발에 기회균등선발제를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 보자. 공무원은 물론 공공기관, 그리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관에 모두 기회균등선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을 비롯하여 대학 이후의 대부분의 선발제도에서 기회균등선발제도가 적용된다면 이른바 명문대학의 프리미엄은 크게 줄게 된다. 졸업 이후의 기회균등선발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입학시의 기회균등선발제는 또 다시 특권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평생 부여하는 것, 이는 반대로 명문대학 졸업생들에 대한 특권을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도 이제 학벌에 의존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처럼 경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제도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이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 평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지금까지 고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경쟁 개념이 의미가 있는 것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소득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경쟁은 가혹한 장치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특권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선발제도가 기능했다면, 특권이 사라진 이후에 무한경쟁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완화되면 경쟁에 뒤처지는 것이 지금처럼 처참한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게 된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상을 받는 체제가 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은 기회균등선발에서 비롯된다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이 지역 개발사업으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해결하는 데 있어 기회균등선발제가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세종시로 출근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굳이 서울 거주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교육문제 때문이다. 만약 세종시 출신 고등학생들에게 서울 학생들과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울 거주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공무원 선발에 있어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한다면 수도권 대학에 밀린 지방대학이 다시 원상회복될 것이다. 수도권 대학이 더 투자를 많이 했거나 더 교육을 잘 해서 지방대학을 밀어내서 상위권 대학으로 올라갔다는 증거는 없다.

미국에서 비용을 더 많이 들여서 다른 주의 지원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주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주립대학이 굳이 장학금을 지급하면서까지 다른 주의 학생들을 모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연대감을 생각하고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제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신사협정에 의해 각 지역이 유사한 정책을 채택한다면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지역마다 특정 학교 출신들의 배타적 기득권이 문제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순작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정부와 공공부문에서 이러한 선발제도 시행되면 서서히 민간기업으로도 파급될 것이다. 각 조직의 파벌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 전체가 연대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서, 활력과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제도로 정착할 수 있다.

변화는 시작되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예년과 달리 여성 후보, 청년 후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양한 계층의 민의를 대변한다는 의미이지만 실제로는 기회균등선발제를 이미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생각의 지평을 넓혀보자.

2013년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인 불균형 성장, 그 성장을 위한 불공정한 경쟁을 혁파하는 것이다. 그 불공정한 경쟁을 가장 공정하다고 여기게 한 기득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는 다음 기회가 또 있으니 이번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온 친구들에게 양보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2013년 체제, 우리가 꿈꾸는 것은 혁명이다. 연대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 혁명의 의미를 안다면 누구나 기쁨의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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