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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가해자의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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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가해자의 안부를 묻다

[블랙리스트에서 코로나19까지] 블랙리스트의 재발과 재확산

<프레시안>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에서 보내오는 기고글을 통해 블랙리스트부터 코로나19까지를 관통하는 실질적 문제와 쟁점들을 공유할 예정이다. 블랙리스트 권고안 전반에 대한 점검과 비판, 예술인권리보장법, 배제되는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목소리,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의 안부, 동물복지보다도 무관심하다는 예술인복지와 예술인고용보험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위기에 놓인 예술계의 문제를 사회 전반에 알리고 블랙리스트와 같은 국가폭력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편집자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대다수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힘들었던 한해였다. 문화예술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프라인 전시와 공연, 상영 등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폐쇄되거나 대폭 축소되었고, 대면이 불가피한 작업과 연습은 포기하거나 줄여야 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사정이 녹록치 않았던 문화예술계지만, 2020년은 분명 특별히 더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올 한해 문화예술인들을 힘들게 한 것이 코로나만은 아니었다. 지난 1월, 김기춘과 조윤선 등의 직권남용죄에 대한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은 새해 벽두부터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사기를 꺾었다.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이어,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면서 죄수복을 벗고 정장을 차려 입기 시작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정권 교체로 인한 희망보다는 체제 존속으로 인한 절망만 커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권은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법 제정 약속을 지금도 지키지 않고 있다. 블랙리스트라는 초유의 국가폭력을 잊지 않겠다며 약속한 사회적 기억 사업 예산도 확보하지 못했다. 권리보장과 처벌을 위한 법 제정도, 기록과 기억을 위한 사업도 미뤄지는 가운데,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의 삶은 점차 ‘회복’을 넘어 ‘도약’을 넘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 폭력이라는 사실에 대한 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블랙리스트 가해자는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과 같은 핵심 개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라는 기관 자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과거 정권에서 직접적으로 부역하지 않았다고 해서, 현 정권이, 현 정권의 공직자들이 이 폭력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작성과 지원배제 또한 ‘정책’이라고 정당화하던 자들은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에 이어 이제는 국민의힘으로 신분세탁을 하면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자신들이 촛불항쟁의 주체이고 정권 교체의 주역인 양 착각하는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블랙리스트라는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의 책임자가 이제는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이대로라면, 박근혜가 평생을 독방에서 보낼지언정, 제2의 김기춘과 제3의 조윤선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관련자에 대한 징계 0명의 조치와 2019년 국장급 관련자에 대한 대기발령 해제 시도는 서막에 불과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를 비롯한 현장 예술인들의 문제제기와 집단행동이 없었다면,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곳곳의 요직으로 복귀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되던 블랙리스트 2차 가해와 가해자의 화려한 복귀 시도는 2020년에도 이어졌다. 박근혜 정권기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과 차관을 역임했던 송수근의 경우, 작년 9월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 이어진 해당 대학의 학생과 교수, 현장 예술인들의 사퇴요구는 묵살됐고, 도리어 학내 비판에 대한 탄압이 가해졌다.

최근에는 경상남도가 블랙리스트 실행에 가담했던 양경학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원장 후보자로 추천하기도 했다. 송수근의 경우와 달리, 양경학의 경우에는 다행히 현장의 후보자 철회와 사퇴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했다. 하지만 후보자 사퇴의 변에서, 자신이야말로 ‘블랙리스트라는 낙인’의 피해자라며 오히려 후보자 사퇴를 요구한 현장 예술인들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2차 가해를 자행한다.

정권교체 4년차,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위한 정권의 핵심 공약들의 이행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가운데,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책임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떨어지고 떨어지다 마침내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도되기에 이른 것이다. 전 문체부 차관에서 산하기관 사무처장까지, 공직자로서 국가 폭력에 가담했던 과오에 대한 반성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명예와 고통이 우선이다. 반면 경상남도는 부적격한 인사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다.

12월 23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아니었다면,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함께 블랙리스트로 인한 2, 3차 피해 속에서 마무리했을 것이다. 마치 성탄 선물인 것처럼, 이날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지원배제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이었다. 2017년 4월에 헌법소원을 내고 거의 4년을 기다려 온, 당연하지만 반가운 결정이다.

핵심 내용만 보자면, 노동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좌파정당이나 박원순, 문재인과 같은 야당정치인에 대한 지지 정보를 수집하여 명단을 작성해 관리한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침해이며, 위와 같은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세월호 관련 반정부 선언 참여 또는 작품 활동을 이유로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의 침해이자 평등권 침해라는 결정이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위헌적인 폭력을 저질렀음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올해 1월 대법원 결정에 따라 내년 1월 열리게 될 김기춘과 조윤선 등의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죄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도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헌재의 결정 이후 순서는, 이 폭력 또한 엄연한 정책이었다고 항변하던 과거 집권세력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재 집권세력의 사과와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법의 제정일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블랙리스트 재발방지에 있어 관건은 제도와 체제의 변화다. 문화예술인을 정책 수요의 대상, 지원 시혜의 대상에 머물게 하는 한, 정권의 교체에 따라 블랙리스트는 또 다른 변종으로 재발되고 재확산될 것이다. 2021년에는, 문화예술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문화예술인이 단순히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고, 문화예술 지원 이전에 문화예술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 선행하는 제도를 마련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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