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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기본소득 검토보고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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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회의 기본소득 검토보고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기고] 기본소득 관련 사실관계가 틀린 상임위 검토보고서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20년, 코로나 19로 온 세계에 난리가 났다. 그 때문에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났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전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나누어준 재난지원금 또는 재난기본소득도 그 하나였다. 그것을 계기로 지난 2010년 무렵 무상급식 논쟁 이후 10년 만에 기본소득 논쟁이라는 의미 있는 사회정책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나아가 21대 국회 개원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기본소득 관련 법안이 네 개나 발의되기도 하였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발의한 '기본소득도입연구를 위한 법률안'('20.6.30.),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의 '기본소득법안'('20.9.16.), 민주당 소병훈 의원의 '기본소득법안'('20.9.24.), 그리고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며칠 전인 12월 22일에 발의한 '기본소득 공론화법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법안들은 발의가 되었지만, 실제로 이 법안들대로 기본소득이 도입되기에는 아직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법안 통과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가, 그래도 연말도 되고 해서 (며칠 전 발의된 용혜인 의원 법안은 차치하고) 이 법안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찾아보았다. 간단히 결과만 말하면, 성일종 의원안은 11월 18일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되어 논의가 있었으나,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 추후 재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된 조정훈, 소병훈 의원안은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만 제출되어 있고, 상임위에 상정되어 논의되지는 않은 상태다.

그런데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읽어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상임위원회의 검토보고서라면 해당 정책을 논의하는 중요한 기초자료인데, 그 가운데 기본소득에 관한 사실관계(fact)가 틀린 곳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정책이 이런 허술한 자료에 근거하여 논의되고 결정된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논조도 문제지만, 그것은 일단 논외로 하고, 몇 가지 틀린 사실관계만 확인해보자.

ⓒ연합뉴스

먼저, 몇몇 지자체의 기본소득 도입 현황을 소개하면서 서울시(청년수당), 경기도(청년배당), 해남군(농민수당) 등을 사례로 들고 있는데, 서울 청년수당은 1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만 19~29세 청년 가운데 가구소득, 미취업기간, 부양가족 수 등을 고려하여 선발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특성 중 자산조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보편성에 위배되어 기본소득이 아니다. 경기도 기본소득의 명칭은 '청년기본소득'이고, '청년배당'은 경기도 이전에 성남시에서 실시되던 기본소득의 명칭이다. 해남군 농민수당은 농민 개인이 아니라 농가에 지급되는 것으로 기본소득의 특성 중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개별성에 위배되어 기본소득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이 검토보고서는 기본소득의 기초적 개념조차 모르는 전문위원이 작성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둘째, 외국 사례에서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했는데, 그런 나라가 있다. 이란이 지난 2011년부터 전 국민에게 월 45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다가 재정 사정으로 2016년에 중단된 적이 있는데, 어쨌든 현재는 아니다. 그러나 스위스는 2000년부터 활성유기화합물(volatile organic compound: VOC) 배출을 감축하기 위하여 VOC 부담금을 징수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VOC 배당'(VOC-Dividende)으로 균등하게 전 국민에게 환급하고 있다. 또 2008년부터는 탄소배출을 감축하기 위하여 탄소부담금을 징수하고, 그 2/3를 국민에게 '탄소 배당'(CO2-Dividende)으로 균등하게 환급하고 있다. 이 VOC 배당과 탄소 배당은 공기라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유자산(자연적 공유부)을 훼손한 것에 대한 벌금으로, 또 그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교정적 목적으로 거두는 공유자산 수익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되돌려 주는 것으로서 전형적인 기본소득인 것이다.

셋째, 마찬가지로 스위스와 관련하여 "2016년 스위스는 모든 복지제도를 없애는 대신 전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29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고 하는데, 이 국민투표는 단지 헌법에 "국가는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것에 대한 투표였지, 2500프랑이라든가 모든 복지제도를 없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넷째, "2017년 1월 시작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실업자 2,000명에게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0만 원)를 지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2018년 4월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는데, 이 실험은 예정대로 2018년 12월까지 2년간 진행되었으며, 중도에 중단하기로 했다는 뉴스는 국제적인 오보 소동으로 핀란드 정부가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한 사안이었다. 이런 오보까지 국회 검토보고서의 주요 논거로 사용되는 것을 보니 참으로 허망한 느낌이 든다.

이 밖에도 이 검토보고서에는 특정 소득수준 이하의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 최소소득보장(minimum income guarantee) 실험에 불과한 캐나다 실험을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거론한 것을 비롯해 사소한 오류들이 더 있다. 아무튼 이렇게 틀린 사실관계를 흠뻑 담은 문건이 정책의 최종 결정기구인 국회의 핵심 참고자료가 된다는 것이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프레시안>의 몇몇 기고에서 수석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는 것, 그것은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때문에 국회의원이 입법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폐단은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관련기사 바로가기 : 믿기 어렵지만... 입법권한 없는 한국 국회), 그리하여 드디어 참여연대가 이처럼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것 (관련기사 바로가기 :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폐지 논의, 수면 위로) 등을 간간이 보아 왔다. 그렇지만 필자 같은 일개 연구원은 그저 문제가 많은 제도구나 라고 어렴풋이 느꼈을 뿐, 그 깊은 내막까지는 잘 몰랐었다. 그런데 이번에 검토보고서라는 것을 직접 보고 나니 그 폐해가 피부로 느껴진다. 이렇게 부실한 검토보고서로 저렇게 막강한 권한을 누리다니 얼마나 우려스럽고 위험한 일인지...

그렇다고 당장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소한 보건복지위원회의 이 검토보고서는 다시 작성되어야 한다. 사실관계의 오류들을 바로잡고, 기본소득과 관련한 사례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사례들만 열거할 것이 아니라 알래스카의 영구기금배당(석유 수익을 근거로 한 기본소득)이나 스위스의 탄소 배당 등 확고하게 정착된 제도와 나미비아, 인도 등 저소득 국가들의 긍정적 실험결과도 포함하여 균형 있게 다시 기술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원과 관련해서도 검토보고서는 단지 증세의 어려움만 기술하고 있는데, 그것을 넘어 기본소득이 공유부 수익에 대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이 원칙에 부합되는 다양한 새로운 재원의 발굴 가능성도 기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문은 조만간 용혜인 의원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할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에게도 적용된다. 사실 그 법안은 당장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1년 동안 국민들과 토론해 보겠다는 법안이고, 예산도 별로 들지 않는 법안인데, 어떤 검토의견을 보고할지 두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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