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경찰에서 제가 '명예훼손을 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비밀을 누설했다'라면서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했습니다. 참고인인 줄 알고 안 나가겠다고 했더니, 글쎄 제가 피의자라고 하더라구요. 어이가 없었어요. 회사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사원이 과장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는 등 하면서 신고를 한 일이 있었어요. 제가 뭘 아나요? 그런가보다 했지.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구요. '그 과장이 애가 둘이나 있는 유부남이긴 한데, 뭐 겉으로 봐도 그렇게 아저씨 같지 않고 일도 잘하거든요. 신입 일 가르쳐 주면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가 남자가 와이프한테 걸릴 것 같으니 거리를 뒀더니 성폭력 피해자라고 신고를 했다'고. 생각해 보니, 회사에서 그 신입사원이 자기네 과장에게 엄청 잘하고 눈웃음치고 했던 게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믿었죠. 술자리에서 얘기가 나오길래 아는대로 얘기한 게 전부예요. 아, 제가 사업부 간부들 단톡방에 올린 사진이요? 그건 뭐 회사 인트라넷에 다 나오는 사진인데요? 사람들이 누군지 다 아는데요 뭘. 근데 왜 올렸냐구요? 그거야 뭐, 여자애 얼굴이 궁금하다는 사람이 있길래…."
변호사 사무실에 꼭 피해자만 오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도 오고 가해자도 오고, 영문을 모르는 이들도 온다. 성폭력을 둘러싸고 영문을 모르겠다며 변호사를 찾는 이들의 사연에는 2차 가해 문제가 적지 않다. 제3자가 행하는 2차 가해 사안의 90% 이상이 '말'이다.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호기심에 혹은 재미 삼아 나눈 본질에서 벗어난 가쉽 거리(구설수)는, 종래에 피해자를 향한 가시가 된다. 그런데 대게의 사람들이 이런 '말'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둔감하다. 심지어 범죄가 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의 호소를 피해자로부터 듣는 경우는 더 많다. 상당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학교나 회사에 알리든 알리지 않았든 또는 고소와 같은 법적 다툼을 하든 하지 않든, 정말 다양한 구설수에 든 칼로 베이고 찔린 채 찾아온다. 피해자가 입은 본래의 성폭력 피해를 넘어 일상을 망치는 주범은 이런 '칼'이 든 말이다. 대게의 피해자들이 이처럼 말로 입은 피해를 호소하며 변호사나 사법기관을 찾으며, 그때마다 피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닌다.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원 사건만 대응에 이은 2차 피해와 관련해 법적 다툼에 나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구설수로 인한 가장 큰 후유증은 소위 명예훼손이라고 불리는 평판 하락이다. 피해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한 다툼에 나설 경우는 더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명예훼손 방식의 2차 가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실제 고소를 당했다며 당황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 또한 가해 대비 실생활에서 문제 된 경우는 적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2차 가해에 대해 느끼는 '잘못'이라는 인식도 현저히 떨어진다. 오히려 '어떻게 느끼는지는 마음의 자유가 아니냐'며 피해자에 대한 혐오와 경계를 강화하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대게 고소를 당하면 반성하기보다 '왜 내게만 시비냐'라면서 억울해한다.
그러나 이런 고소나 신고를 당했다면 두 가지를 꼭 돌아봐야 한다. 실제 문제가 되는 말을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유사한 취지로 한 사실이 있는지와 정말 피해자에게 좋지 않은 언동임을 스스로 몰랐는지다. 실제 고소당한 행위 여부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혹시라도 정말 하지 않은 일이면 부인을 하든, 할만한 사정이 있었다면 변론을 하든 할 테니 말이다. 특별히 신뢰할만한 사정이 있었거나 행위를 할 만한 정당한 사정이 있었다면 그 경위를 밝혀야 소명이 된다.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비밀 누설로 고소당한 대부분의 경우, 언동은 있는데 특별한 사정들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에게 좋지 않은 언동임을 정말 몰랐는지, 즉 고의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런데. 정말 피해자에게 좋지 않은 행위임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도 쉽게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지 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자극적인 이야기나 추측성 이야기, 피해자의 신분과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등에 대한 말이, 그 말을 나누며 소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미나 흥미 거리가 될지 몰라도 피해자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정작 당사자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나 사실관계에 대한 것인 척하지만, 출처를 정확히 댈 수 없는 말에는 그 안에서 회자되는 사람(피해자)에 대한 칼이 들어있다. 음성은 증발되지만, 음성을 통해 전달된 말에 든 칼은 증발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평판에 민감한 것은 비단 피해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외면하고 칼이 든 말, 독이 든 말을 뱉어내는 것은 '잘못'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분을 노출시키거나 명예를 훼손시킬만한 말을 하는 것 또한 범죄다. 양심과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 여러 사람에게 회자됐다고 해도, '잘못'이 희석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런 일로 고소나 신고를 당했다면, 스스로가 재수 없었다고 억울해하기보다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돌아봐야 한다. 고소를 당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고소에 나서기까지 자신이 피해자에게 준 고통의 크기는 훨씬 컸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과도, 양산한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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