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핵으로 삼은 수도권은 블랙홀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이 몰리면 주택수요도 증가한다. 부족한 주택을 위해 서울 주변으로 끊임없이 신도시가 계획된다. 신도시가 생기면 그에 비례해 자동차가 늘어나 도로를 채운다. 당국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새 도로를 뚫고 그만큼 자동차는 더 늘어나게 된다. 탄소배출의 무한순환구조가 탄탄해진다.
자동차 사회는 인간의 편안함을 위해 토지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린다.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동차 수송분담률을 획기적으로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기후 위기 대안을 모색하는 선진국들은 자가용 자동차를 모빌리티의 주역에서 배제하고 있다. 파리시는 더이상 도로 위의 주인공은 자동차가 아님을 선언하고 자동차 차로를 대폭 축소했다.
상젤리제와 바스티유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인 Rue de Rivoli 도로의 3분의 1은 버스 전용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자전거와 전기 스쿠터 전용이다. 파리시는 주차공간 50%를 없애는 일도 추진했다. 자동차 전체 운용 시간의 95%가 주차 시간이라는 통계에 따른 조치였다. 여기에 더해 차량 운행 속도를 30k/h로 제한했다. 파리에서 자동차를 타는 것은 인내심을 시험받는 일이 되었다.
올해 재선에 성공한 이달고 파리시장은 공해 방지 그랜드 플랜을 실시해 파리의 생태적 전환을 가속화 했다. 이달고 시장의 도시 생태화를 뒷받침 한 것은 공공보조 자전거 공유 서비스인 Vélib이다. 도시 전체에 퍼진 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Vélib는 빠르게 이용자를 넓히고 있다. Vélib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저렴한 요금이다. 한 달에 3.1€(약 4150원)만 내면 무제한 사용이 가능하다.
파리시는 디젤 자동차를 포기한 시민들에게 지하철과 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1년 짜리 교통카드를 제공하는 정책도 도입했다. 또한 디젤차 뿐만 아니라 2030년까지 모든 내연 차량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지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리보다 덜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페인 바로셀로나는 "슈퍼블록"이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수년에 걸쳐 확장되고 있는 슈퍼블록의 특징은 자동차를 몰아내 차 없는 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61 개 주요 도로 중 약 1/3이 바르셀로나 슈퍼 블록 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보행자와 자전거 전용의 "녹색 축"으로 전환된다. 21개의 대각선 교차로에는 새로운 시민 광장이 만들어진다. 내연 차량을 포기하는 차주에게는 3년간 지하철 – 버스 무료 교통카드가 지급된다.
벨기에 브뤼셀도 차량 속도를 내년 1월 1일부터 30km/h 이내로 제한한다. 브뤼셀 모빌리티 장관 Elke Van den Brandt은 지난 1월, "내년부터 브뤼셀 자동차 운전자들은 달리 명시되지 않는 한 시속 30km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30km/h가 예외인 오늘날의 상황과는 정반대입니다." 라고 밝혔다. 1년간의 적응 기간을 두고 시내 차량 운행 속도 30km/h 제한을 도입한 것이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영국, 이탈리아, 그리스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차량 운행을 금지하거나 속도 제한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이 갑자기 환경운동가가 되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상태가 계속될 경우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박한 위기감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줄어든 자동차 수송분담의 대안은 무엇인가? 친환경 이동 수단인 자전거와 철도와 같은 공공교통이다. 한국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위치가 주로 레저와 취미의 영역이라면 환경 선진국들은 당당한 주력 이동 수단의 하나이다. 도로 위의 자전거가 자동차 통행에 방해를 일으키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한국의 상황은 탄소 중립으로 가는 길과 반대로 달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동안 자전거 도로가 많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도심을 파고 들지 못했다. 그나마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것도 주차된 자동차나 시설물들로 인하여 제구실을 못한다. 자전거가 전용 도로에 안전하고 편리하게 진출입 할 수 있는 독립적 구조가 아니다 보니 수송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파격적인 자전거 우선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근시간 강변북로를 달리는 7000대의 차, 경의중앙선 전철 7편이면 끝.
자동차와 철도의 단위 면적당 수송효율성은 비교 불가대상이다. 경의중앙선을 운행하고 있는 전철 한 편성은 8량이 연결된 객차로 약156미터 길이다. 차내 혼잡률을 100%라고 한다면 1량 탑승 인원은 160여 명으로 한 편성에 1280명 정도 승차하게 된다. 이때 1인당 점유 면적은 38cm2에 불과하다. 만약 동물에게 이 정도 공간을 부여했다면 동물보호단체에 의한 고발감이 아닐까? 만약 이들 1280명이 아침 출근길 자동차 이용의 대표적 방식인 나홀로 차량을 몰고 나왔다면 준중형차 기준으로 5800여 미터를 점유하게 된다. 전동차 한 편성의 38배에 육박한다.
2019 서울시 교통량 조사자료에 따르면 출근 시간인 오전 7시에서 9시, 강변북로 한강대교 북단에서 동작대교 북단까지 교통량은 시간당 7천대에 육박한다. 경의중앙선 전동열차 7편성이면 수용하고도 남는다.
경의중앙선과 나란히 위치한 서울의 자동차 전용 도로인 강변북로 편도 4차선 10킬로미터 구간에 준중형차 기준 완전 밀착 정체시 8696대가 들어찬다. 도로에 갇혀 꼼짝도 못할 지경인 교통지옥을 전동차로 대체한다면 6.8편성 인원에 불과하다. 이 같은 사실 하나를 봐도 철도를 더 공급하고 기존 노선의 병목을 줄여 철도 수송분담률을 높여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국토연구원이 2018년 발간한 <지역별 생활교통비용 추정 및 격차 해소방안> 연구에 따르면 생활교통비용은 구입비, 유류비, 또는 운임 등의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인 시간가치비용으로 구성된다. 경기도의 교통수단별 한 달 생활교통비는 버스가 43만원, 승용차가 33만원으로 버스가 승용차보다 1.3배 높다. 대중교통보다 승용차가 더 큰 편익을 주는 구조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자동차 권하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당연히 대중교통 이용이 Door to door를 보장하는 승용차보다 불편하다. 그러나 수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서 교통혼잡, 도로유지비, 사고처리비용, 대기오염을 줄이고 탄소배출량 감소에도 기여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가 더 많은 생활교통비를 부담하고 있는 현실은 부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승용차 선택은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9 도로 교통량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승용차의 1일 평균 주행거리는 35.3km로 차종별 주행거리 통계 항목인 버스와 화물차와 비교해 전년 대비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였다. 버스가 0.9% 감소하고 화물차가 1.3% 증가한 반면 승용차는 3.3% 증가했다. 그 결과 승용차 72.2%, 버스 2.5% 화물차 25.3%의 구성 비율을 보여준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승용차 주행거리 감소 유도가 필요함에도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중교통의 수송분담률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 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대중교통 유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 유입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 확대도 요구된다. 지옥철로 대변되는 수도권의 교통 사정을 그대로 두고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할 수 없다.
또한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제1 방편으로 도로 건설부터 사고하는 행태를 탈피해야 한다. 철도와 지하철, BRT, 트램 등 대규모 운송을 보장하는 공공교통 체계를 기반으로 자전거 접근성을 확보하는 교통설계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이다. 자전거를 타고 철도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이제 시민들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환경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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