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 접종 시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12월 16일 자 'Coronavirus Vaccine Tracker')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관련기사 : <프레시안> 12월 9일 자 '文대통령 "터널 끝이 보인다…백신 접종 앞당겨 달라"') 대부분의 시선이 국가별 백신 확보량에 맞춰진 동안 주목받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백신의 가격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회 접종 기준 가장 저렴한 백신은 4달러(약 4400원)이고, 비싼 경우 37달러(약 4만400원)이다. 물론 가격이 얼마인지와 관계없이 하루빨리 사람들이 코로나19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현대 감염병의 속성상 전 세계 시민들이 모두 집단면역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일부 국가에서 유행이 종식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백신의 가격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백신 접근권의 측면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그렇다면 신약 혹은 백신의 가격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연구개발 과정에 투자된 비용의 차이 때문이라고, 또 일부는 개발 과정에 투자된 공적자금(세금 등)의 규모 차이라고도 한다. 한편에선 많은 전문가들이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연구개발 과정이 암흑 속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연구는 신약 개발에 투자된 금액 중 공적자금과 제약회사의 투자금 규모를 추정하여 바로 그 암흑상자를 열어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결핵은 기원전부터 인류와 함께한 질병이다. 전 세계의 결핵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소득 국가의 결핵이 급감했고 중·저소득 국가의 결핵은 그렇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새로운 결핵이 등장했다는 기사가 미국 일간지들을 장식했다. 다름 아닌 다제내성 결핵의 유행이었다. 이즈음부터 고소득 국가에서 결핵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늘어났다. 그 결과 2010년대에는 거의 50년 만에 새로운 결핵약이 2개나 연이어 등장했다. '미국'이 아닌 저소득 국가 어딘가에서 '새로운 결핵'이 등장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학의 승리였다. 그중 한 신약의 이름이 '베다퀼린(bedaquiline)'이다.
독립연구자와 의약품접근권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인 '트리트먼트 액션그룹(Treatment Action Group)'의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지난 9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베다퀼린이라는 결핵 신약이 개발되는 과정에 투자된 금액의 발자취를 추적한 논문을 실었다.(☞ 바로 가기 : 베다퀼린의 임상적 개발에서의 공적 투자) 연구팀은 크게 두 가지의 연구비 출처를 구분했다. 하나는 공적 자금이고, 다른 하나는 개발자(제약회사)의 투자금이다. 먼저 신약 개발 과정에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직접 임상시험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로다. 신약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거나, 환자 치료를 위해 일정량의 약을 기부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이런 방법도 정부가 제약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세금을 받지 않는 것이므로 공적자금 지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미국 FDA는 소외된 질병을 위한 신약 개발을 장려하기 위하여 2007년 우선심사 바우처(Priority review voucher)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제약회사가 우선심사 바우처를 받게 되면 이 바우처를 다른 기업에 팔아서 현금화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정부가 보증하는 자격이므로 공적자금으로 포함된다. 연구팀은 이런 모든 내역을 금액으로 환산하여 투입된 총 공적자금 규모를 추산해 보았더니, 약 5000억 원에서 8200억 원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개발자의 투자금을 확인했다. 제약회사에서는 총 개발비용이 약 5500억 원에 달한다고 연구팀에게 알려왔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공개된 자료를 활용해서 실제 임상시험 사례를 확인하고, 다른 연구에서 확인된 값들을 대입하는 방법으로 실제 개발비용의 근사치를 구해보았다. 그 금액은 약 1000억 원에서 2600억 원 정도로 추산되었다. 베다퀼린을 개발하기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의 규모와 제약회사 자체 투자금을 가장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공적 자금이 제약회사 투자금의 약 5배 수준이었다.
베다퀼린의 뒤를 이어 결핵 신약으로 승인된 약의 이름은 델라마니드(Delamanid)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개된 자료들만 살펴보더라도 델라마니드는 상대적으로 공적 자금 지원의 규모가 매우 낮은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이 두 약의 현재 운명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결핵과 같이 저소득국가에게 부담이 큰 질병의 진단과 치료제 보급에는 세계보건기구 중심의 조달 체계가 별도로 있다. '글로벌 드럭 퍼실리티(Global Drug Facility)'라는 기구인데, 이를 통해 저소득국가는 고소득국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제 등을 공급받을 수 있다. 현재 글로벌 드럭 퍼실리티에서 계약하여 제공하는 베다퀼린의 6개월 치료비용은 약 37만 원이다. 이에 반해 델라마니드는 같은 기간 약 186만 원의 치료비가 든다. 이 가격 차이는 자연스럽게 전 세계 결핵약 공급량을 결정한다. 글로벌 드럭 퍼실리티의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저소득 국가가 주문한 베다퀼린의 총량은 10만4776개이고, 델라마니드는 그 10분의 1 수준인 1만1821개였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두 개의 결핵 신약이 있다. 하나는 공적 자금 지원의 방법이 다양했고, 전체 개발비용에서 공적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약회사의 투자금보다 5배나 많았다. 다른 하나는 공적 자금 지원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예상된다. 두 약의 현재 가격 차이는 약 5배로 공적자금 지원이 활발했던 약이 더 싸고, 시장에서는 10배 이상 더 많은 주문이 들어온다.
결핵신약에 대한 연구에서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의약품 개발 과정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코로나19 백신의 개발에 지원된 공적 자금의 규모는 잘 모른다. 여기에도 암흑상자가 있는 셈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 공적자금은 바로 우리들의 세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제약회사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상황은 공정하지 못하다. 국경없는의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 보건의료운동단체들은 베다퀼린의 가격을 하루 1달러로 인하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코로나19 백신의 가격 접근권을 둘러싸고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미국이나 서유럽 시민들의 세금에 대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왜 (한국인이) 문제를 삼느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베다퀼린에 대한 논문에서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자금지원에 대한 것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추적해 보면, 우리의 돈도 찾을 수 있었다. 논문에 언급된 임상시험 중에는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가 수행하는 연구가 포함되어 있다. 논문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연구는 사실 파트너스 인 헬스가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국제의약품구매기구의 집행이사국으로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총 640억 원을 지원했다. 외국 제약회사가 개발한, 그것도 50년 만에 등장한 결핵 신약의 가격 인하 요구에 우리도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 서지정보
- Dzintars Gotham, Lindsay McKenna, Mike Frick, Erica Lessem (2020). Public investments in the clinical development of bedaquiline. PLOS ONE. September 18.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3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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