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카르텔이 아직 견고하다
작년 8월 조국의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전격적인 검찰 수사 이후로 일부 정치 검사와 친검 기자들이 합동으로 벌인 검란이 우리 사회 전반을 흔들고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코로나로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을 보듬을 정책이나 경제 개혁, 교육 개혁 등도 여론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러다 보니 홍세화 선생처럼 현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하는 '순수한' 진보 인사들이 나타났다.
홍세화 선생의 말처럼 "이젠 재벌개혁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고, 교육개혁은 이미 포기한 듯 관심 바깥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문제는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레카리아트'가 되는 일방통행의 길만 있을 뿐이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 현실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 아니다. 안 보이는 구조가 이런 현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지배하는 카르텔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생이 어렵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고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온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해방 이후 7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한 주류는 친일파와 독재 군부가 결합한 보수 정치 세력과 재벌이다. 이러한 부정부패의 정경유착을 뒷받침한 국정원/기무사/검찰/보수 언론의 카르텔이 아직 견고하기만 하다.
이 카르텔을 부수지 않고서는 언제라도 다시 보수 세력이 집권한다면 민생이 짓밟히고 노동자가 고통받는 세상으로 다시 복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사 후퇴를 우리는 이미 참여 정부가 이명박 정부로 바뀔 때 경험한 바 있다.
검언 카르텔을 부수는 것이 민생의 출발점이다
역사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로 보수 정치 세력이 지리멸렬해졌다. 탄핵을 반대한 태극기 극우 세력의 득세로 혁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보수 야당은 점점 재집권의 기미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을 필두로 검찰당이 출현하는 중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척결한 이후 군부는 민주적 통제 아래에 있다. 촛불 혁명 이후 현 정부는 국정원과 기무사가 개혁되었다. 이제 남은 카르텔은 재벌을 옹호하고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검언 카르텔이다. 이 카르텔을 부수지 않고서는 민생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현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 국정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카로움을 더해 비판해야 할 목표물이 있다. 검언 카르텔과 그 정점에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행태이다. 검언 카르텔을 비판하지 않고 현 정부만을 비판하는 태도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자신의 의도와 달리 그 검언 카르텔을 돕는 셈이다.
언제나 정치에서는 민생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역사의 현 국면에서는 윤석열 총장 사퇴를 촉구하고 검언 카르텔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이 민생의 출발점이다. 현 시국에서 이렇게 비판의 화살이 명확한데도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물론 다른 이슈를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고 당연히 해야 한다. 그렇지만 검언 카르텔 격파와 민생이 대단히 긴밀하게 연관되어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세화 선생은 언제가 검언 유착을 폭로하는 한겨레 사설을 비판하며 다음과 갈이 말한 적이 있다. "오늘 한국의 진보 세력은 그 대부분이 이념이든 상상력이든 진영 속에 묻은 채 검찰과 언론 한두 곳을 정조준하고 있다." 더욱이 "만약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기라도 하면 진보 세력의 할 일이 거의 끝날 듯한 놀라운 시절 아닌가?"
검언 카르텔을 깨트리는 것이 당연히 진보 세력이 해야 할 과제의 끝은 아니다. 도리어 출발점에 불과하다. 민생 개혁, 부동산 투기 억제와 공공 주택 건설, 재벌 개혁 등 경제 민주화, 보편 증세와 보편 복지의 선순환 구조 만들기, 교육 개혁과 사학의 공영화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는 문재인 정부 이후의 민주 정부에서도 계속 진행되어야 할 숙제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영국에서 브렉시트는 우리의 검란 사태만큼이나 블랙홀 같은 이슈였다. 영국 노동당 당수였던 제러미 코빈은 집권보다는 이념적 가치의 순수함에 더 의미를 둔 '턱수염 난 좌파(Bearded leftie)'의 전형이었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그는 당연히 작년 12월 총선에서 공공부문 재정지출을 늘리고,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한다는 '순수한 진보적'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총선에서 브렉시트의 벽을 넘지 못하고 브렉시트에 명확한 찬성 입장을 내건 보리스 존슨에게 참패했다. 결국 코빈이 내건 '민생에 좋은' 공약은 물거품이 되고 여전히 영국은 브렉시트와 코로나 19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순수한'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는 홍세화 선생께 묻고 싶다.
"지금 검찰을 개혁하지 않고 이를 두둔하는 친검 언론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언제 해야 되나요? 민생 문제가 여론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바로 언론의 난동 탓이 아닌가요? 당면 과제인 브렉시트에 집중하지 않은 채 전통적 진보 과제만을 고수하다 영국판 트럼프인 보리스 존슨에게서 정권을 가져오지 못한 코빈 당수의 오류를 다시 범할 것인가요? 과연 지금의 보수 야당이 집권하면 민생이 나아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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