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2005년 8월 18일 국회 법사위. 노회찬(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삼성 X파일'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옛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에서 삼성그룹의 뇌물('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떡값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다. 최경원, 김두희, 김상희, 김진환, 안강민, 홍석조, 한부환 등 7명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아온 것으로 밝혀진 '떡값검사'('떡검')의 이름이었다. 노회찬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법사위 회의장에서 노회찬은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와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의 대화록'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삼성 X파일' 사건이란 두 가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가지 사건은 1997년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나 15대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과 검찰 간부들에 대한 금품 제공을 논의하는 대화를 안기부 미림팀(팀장: 공운영)이 불법 도청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의 사건은 MBC 이상호 기자 등이 2005년 7월 22일 95분짜리 도청 테이프 대화 내용을 보도하고, 법사위 소속 노회찬이 2005년 8월 18일 삼성이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최고위급 검찰 간부 7명의 실명과 관련 도청 테이프 녹취록을 공개한 사건을 말한다.(책 <노회찬, 함께 꾸는 꿈>(노회찬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중 '삼성 엑스파일과 노회찬+박갑주' 146쪽)
X파일에는 1997년 4월부터 10월까지 시시각각 변해가는 당시 정국을 반영한 삼성 측의 전방위 로비 실태가 담겨있었다. 노회찬은 "X파일의 핵심은 이건희 게이트"라며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 검찰 등 사회지도층의 검은 유착 관계를 밝히는 것이 수사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떡값검사들이 득실대는 검찰이 '이건희 게이트'를 제대로 수사할 리 만무하다"면서 즉각 특검 도입을 거듭 강조했다. 노회찬은 "파일 내용을 알면서도 국민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직무유기라고 판단, 공개를 결심한 것"이라면서 "(명단 공개에) 법적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5년 9월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앞. 전국 11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삼성 불법뇌물 공여사건 등 정경검언 유착의혹 및 불법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각계 인사들과 시민, 학생 등 4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X파일 진상규명과 이건희 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노회찬은 "사건의 본질을 불법도청이라고 하며 덮어버린 노무현 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했다. 또한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바로 이건희의 지시에 의해 수백억 원이 정치권과 검찰, 언론을 주무르는 데 쓰였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검찰은 이번 수사를 진행할 자격이 없다"고 하며 "특검법과 특별법의 도입"을 주장했다. 특히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연정론을 포기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동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물밑 연정을 통해 이건희를 살려주는 야합을 단행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분리하고 회사를 정당한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발언으로 많은 갈채를 받았다.(☞ 관련 기사 : <에큐메니안> 2005년 9월 10일 자 '삼성 본관 앞에 밝혀진 촛불의 바다')
며칠 뒤인 9월 14일 삼성그룹 본관 앞. 1시간 30분간 'X파일' 길거리 특강에 나선 노회찬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탄식이 가득했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2005년 9월 14일 자 '노회찬 "국회내 '삼성장학생' 명단 꼭 밝혀내겠다"')
2005년 11월 21일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성균관대 학생위원회 주최로 '삼성공화국에 우리의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후안무치(厚顔無恥)
삼성 X파일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정경유착, 문민정부를 자청했던 김영삼 정부의 불법 도청 사실,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일상적으로 행해진 광범위한 불법 도청 문제, 사건 수사 기관 선정 및 수사 방법, 삼성그룹에 대한 소극적 수사, 국민의 알권리 충족 문제, 언론의 보도 경향, 재판의 불공정성 등이 도마에 올랐다.
법무부 장관(천정배)이 '건국 이래 최대의 정‧경‧검‧언 유착사건'이라고 말한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한 검찰의 태도와 법정의 판결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검찰은 불법으로 금품을 수수한 고위 검사들을 처벌하지 않고 노회찬과 이상호 기자를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프레시안>의 곽재훈 기자는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17년 1월 23일 자 '문재인과 '삼성 X파일' 문제, 왜 논란인가?')
그런 순간들은 검찰만이 아니라 법정에서도 이어졌다.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결국 도청테이프 녹취록을 공개한 MBC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주심 : 민영일 대법관). 노회찬은 '1심 유죄-2심 무죄-3심 유죄 취지 파기환송-서울중앙지법 유죄-대법원 원심 확정' 등 총 5번의 재판을 거쳐 결국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주심 : 박보영 대법관). 국가공무원법과 국회법 등에 따라 국회의원은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지적한 이상호와 노회찬 두 사람과는 달리 '뇌물제공 총책'인 이건희는 소환조차 받지 않았으며, '뇌물 배달책'인 홍석현은 형식적 조사를 통해 무혐의 면죄부를 받았다. "뇌물을 준 사람, 또 뇌물을 심부름한 사람, 또 뇌물을 받은 검사들"은 어느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상식 이하의 판결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내가 주목하는 첫 번째 물음이다.
"너무도 강고한 삼성의 힘"과 "유일하게 먼저 연락해온 국회의원"
2005년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직전 노회찬은 <프레시안>에 한 편의 글을 기고한다. 글의 제목은 'X파일의 본질이 '도청'이라고 말하는 자 누구인가?'이다.
노회찬이 글에서 말한 '악의 커넥션'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1심과 3심, 그리고 파기환송심 법정은 골리앗의 손을 높이 치켜 들어줬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 날, 이상호 기자는 <고발뉴스>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삼성그룹의 서울 서초동 출장소" 검찰의 "3부류 고객"
삼성 장학생. 당연히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장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삼성 X파일 폭로 이후 드러난 '삼성공화국', 아니 '삼성재벌왕국'에서의 삼성 장학생은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청와대, 국회, 검찰, 금감원, 재경부, 국세청 등 권력기관과 언론사 등에서 전방위에 걸쳐 오랜 기간 삼성의 불법적인 돈을 받으면서 삼성을 위해 일하는 인사들을 일컫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럼에도 삼성 장학생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는 데에는 메이저 언론사들의 침묵이 한몫하고 있다. 특히 삼성 장학생이란 단어조차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주류 언론 종사자들 역시 삼성 장학생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뉴스포스트> 2007년 12월 4일 자 '대해부/삼성장학생 현주소 - "삼성의 막강 파워 이유 있었네~"')
삼성 장학생이란 말은 삼성의 권력 장악 시도를 설명하는 명쾌한 말이다. 삼성의 돈으로 키워진 이들이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곳곳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14일 '안기부·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의 143일간의 수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황교안은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통해 폭로된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아,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를 "소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면조사로 마무리했다. '이건희 삼성회장 불구속 기소.' 이학수(삼성 부회장), 홍석현(중앙일보 회장) 등 불법로비 정황이 드러난 삼성 쪽 인사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횡령 혐의로 처벌하기 어렵고 뇌물공여 혐의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떡값을 받은 검사들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삼성그룹의 서울 서초동 출장소'라는 비아냥이 터져 나오는 등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황교안은 수사 결과 발표 이튿날 기자간담회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것 없는 수사를 했다고 검사들을 격려했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노동자연대> 198호(2017.2.28) '황교안의 수구보수적 경력들') 황교안의 하늘은 대다수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하늘과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노회찬이 공개한 '떡값검사'들은 당시 검찰의 주류로 분류되는 이들이었다. 이런 이유로 노회찬은 당시 검찰 주류들 사이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노회찬은 자·타칭 '엘리트' 검사들을 삼성 떡값이나 받아먹는 비리집단으로 전락시킨 그들의 '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황교안은 언론 브리핑 때 "경기고 동문들이 (녹취록 내용을 폭로한) 노회찬 욕을 많이 한다"는 말을 불쑥 꺼내기도 했다. 노회찬과 황교안은 경기고 72회 동기동창이었으며, 안강민, 홍석조 등 녹취록에 등장하는 검사들 중 상당수가 경기고 동문이었다. 당시 경기고 출신은 경북고와 함께 검찰 주류 중의 주류로 분류됐다.(☞ 관련 기사 : <한겨레21> 2018년 7월 30일 자 '노회찬, '떡값 검사' 공개로 '검찰의 적' 됐다')
노회찬은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변호사의 변론 요지에 가깝다"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혹평한다.
이어 "검찰은 이 사건의 몸통인 이건희 회장에 대해 완전한 면죄부를 줬다"고 성토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선언: "잘나가는 검찰 간부의 80% 이상이 '삼성 장학생'"
삼성 장학생의 실체와 현주소에 대해서는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 및 '떡값 리스트' 발표 등 양심 선언에서 가감 없이 드러났다. 그가 공개한, 전략기획실 팀장급 이상만 받는다는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밝힌 검찰 내 삼성 장학생의 실체를 요약하면 이렇다.(☞ 관련 기사 : '<시사인> 8호(2007.11.03) '검찰 최고위층에 삼성 장학생 있다')
김용철의 <신동아> 인터뷰에도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관련 기사 : <신동아> 2007년 12월 호 '김용철 변호사 2005년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에도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삼성이 검찰 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주나?'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노회찬이 폭로한 '떡값검사'들은 검찰 내 포진하고 있던 삼성 장학생 가운데 일부였다. 노회찬은 "검찰 내 이른바 삼성 장학생이 존재하기 때문에 X파일과 관련한 제대로 된 수사가 불가능하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특검을 소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우선 검찰의 방대한 조직과 인력을 이용한 수사 뒤 미진한 부분은 검찰 수사의 바탕 위에서 특검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 진상규명'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2005년 국정감사를 하면서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한 노회찬의 시도가 무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되자 노회찬은 "언론 검찰에도 삼성 장학생이 있는데 국회에 없겠느냐"며 "삼성 장학생이 국회에도 다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독재·삼성공화국'과 기로에 선 한국 민주주의
삼성 X파일을 공개한 바 있는 이상호 기자는 2006년 7월 31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개최한 '<시사저널> 기사 삭제 사태를 계기로 본 삼성과 언론 토론회'에서, "삼성의 질긴 인적네트워크에 한때 포획됐던 기자로서, 더 늦기 전에 참회의 심정으로" '삼성자본독재'의 실상을 이렇게 고발했다.
2007년 11월 6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최고 경영진을 불법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행위 등으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삼성 장학생이 아닌 검사들은 검찰 수뇌부의 얼굴에 스스로 침 뱉는 일을 방관하지 말라는 취지 아래 이들은 묻는다.
2007년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소장 조승수)에서 발행한 보고서('삼성공화국과 기로에 선 한국 민주주의')는 전체 7장으로 돼 있으며, 박상훈(후마니타스 대표), 조진한(진보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조현연(성공회대 교수)의 공동작업과, 김상조(경제개혁연대 소장), 최한수(경제개혁연대 팀장)의 특별기고를 담고 있다.
보고서의 들머리 격인 제1장과 제2장 조현연의 글('왜 삼성인가?', '삼성이 행사하는 지배력의 원천')은 각각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갖게 됐는가와 한국 사회에서 행사하는 지배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몇 가지를 옮겨보자.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는 일반적으로 다음 3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삼성그룹의 이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책 사안에 대한 로비스트의 기능이다. 둘째, 위기 시, 특히 불법행위 혐의와 관련된 법률적 위험에 대한 '방패막이'의 역할을 하는 기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재용 씨 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배임 혐의 고발․소송사건,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의 핵심 지배구조 연결고리에서 야기된 금융법 위반 혐의 등을 꼽을 수 있다. 셋째, 일상생활 영역에서 삼성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사회 전체의 바람직한 모델 내지 유일한 모델로 포장하고 이를 대변하는 기능이 있다. 이른바 '강소국론', '국민소득 2만불론', '위기경영론'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노회찬의 괘씸죄'와 기나긴 법정 공방, "삼성 총수를 건드리면 다친다"
노회찬의 삼성 X파일 떡값검사 명단 공개는 단순히 비위 검사의 이름을 폭로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삼성재벌 이건희 일가의 대한민국 장악 프로젝트'에 대한 공격의 의미를 함축한다. 삼성 일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것은 당연히 '괘씸죄'에 해당한다. 아니 일종의 '국가원수모독죄'와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꼼수다>(<나꼼수>) 27회(2011.11.7.)에서 정봉주가 "고등법원에서 무죄로 올라간 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것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괘씸죄가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오랜 시간 노회찬과 진보정당 활동을 같이 해 온 장석준은 ''제복권력'과의 긴 싸움, 노회찬은 전사했다'라는 글에서 '삼성'이라는 거대한 자본권력과 결탁한 검찰과 법원 등 '법복 권력', '제복 권력'과의 싸움을 "2005년부터 2016년까지 거의 10여 년 세월을 '삼성 장학생' 검사, 판사들의 그림자 속에서 고투했던 셈"이라고 갈파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저 '사법 적폐'란 노회찬이 맞서 싸우고 노회찬을 물고 뜯은 자들의 긴 목록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한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18년 7월 30일 자 ''제복권력'과의 긴 싸움, 노회찬은 전사했다')
2007년 5월 21일 검찰은 삼성 쪽 인사에 대한 불기소를 통해 면죄부를 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을 기소했다.
6개월 뒤인 2007년 11월 23일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제정, 통과(찬성 155인, 반대 17인, 기권 17인)되어 2007년 12월 10일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라 이른바 '삼성 특검'(특별검사: 조준웅 변호사)이 임명되어 수사가 개시되었다.
2008년 4월 18일 조준웅 특검은 삼성의 불법 상속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결론은 '이건희 삼성회장 불구속 기소'.
삼성특검은 이건희를 구속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009년 1월 19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노회찬에게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한다. 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3단독 부장판사 조한창은 "피고인이 임의로 떡값검사 7인의 명단을 작성해 공개한 것은 정치적 의혹제기의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고 허위사실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며, 노회찬에게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삼성이 특정 검사에게 떡값을 줬다는 주장은 (안기부 X파일) 녹취록에 의한 것인데 이는 떡값을 지급한 것이 아니고 예정한 것임에도 피고인의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돈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피고인이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자신의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조한창의 논리는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판결이 있기 얼마 전(2009.1.9.) 최후진술을 통해 노회찬은 "불법 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의 달은 바로 삼성 X파일이며, 불법 도청은 되풀이 돼선 안 될 위법행위지만 그렇다고 해서 X파일에 담긴 진실이 훼손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X파일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고 국가의 기강을 뿌리 채 뒤흔드는 범죄의 현장"이었음을, 따라서 공개가 불가피했음을 강조했다.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노회찬은 "거대 권력 횡포와 권력남용의 결정판이었던 안기부 X파일에 대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며 "오늘 1심 법원 판결대로라면 홍석현 전 주미대사는 사임할 이유가 없었고, 삼성그룹과 중앙일보는 대국민 사과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면서 항소를 통해 사법정의를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2009년 12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8형사부(재판장 부장판사 이민영·판사 박신영·판사 정성민) 항소심은 노회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피해자들이 삼성그룹에서 떡값을 받았다고 적시한 부분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에 대한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고, 노회찬도 허위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논리였다.
한편 2009년 12월 31일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관련 배임과 조세 포탈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회장직을 내놓았던 삼성 재벌 이건희 총수에 대한 '원 포인트' 단독 특별사면을 이명박이 감행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15회, 허정 2회, 박정희 25회, 전두환 18회, 노태우 7회, 김영삼 9회, 김대중 7회, 노무현 8회, 이명박 7회 등 총 98회에 걸쳐 특별사면이 단행되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서 사면은 헌법과 사면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79조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면·감형·복권을 명할 수 있고 이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건희 1인에 대한 특별사면은 법과 법정신에 근거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정신과 지위고하, 사회적 영향력,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근본가치가 또 한 번 무너졌음을 반증한 것이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이 법 앞에 평등한 사회, 그것이 바로 이명박 행정부가 이끄는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2011년 5월 13일 대법원 제2부(대법관 김지형/재판장, 양창수/주심, 전수안·이상훈)는 명예훼손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지만, 불법 도청 내용 공개를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약칭 통비법) 위반 부분은 유죄 취지로 해서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파기환송했다. 두 부분 모두 파기환송시키기에는 국민의 눈이 무서웠던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도 창피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주심인 양창수의 판결문은 이랬다.
한편 2011년 9월 4일 헌법재판소는 노회찬이 "타인간의 대화 내용 공개를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1항 제2호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7(합헌)대 1(한정위헌)로 합헌 결정을 내린다. 헌재는 "불법 취득한 타인간의 대화 내용을 공개한 자를 처벌함에 있어 형법 제20조(정당행위)의 일반적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규정을 적정하게 해석·적용함으로써 공개자의 표현의 자유도 적절히 보장될 수 있다"며 "형법상의 명예훼손죄와 같은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특별규정이 없어도 기본권 제한의 비례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강국 재판관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특별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고 있지 않아 통신비밀의 보호만을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보장을 소홀히 하고 있다"며 한정위헌 입장을 밝혔다.
2011년 10월 28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5부(재판장 양현주 부장판사)는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국회 외에서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기자나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노회찬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자 2013년 2월 5일 문재인(민주통합당 의원),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159명이 재상고심 선고를 연기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여야 의원 152명이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에 동의해 개정안도 국회에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과반이 넘은 여야 의원들의 탄원서와 개정안 상정은 무시되었고, 재상고심 선고는 통비법 개정 전에 기어이 진행되었다.
노회찬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입법권에 대한 사법권의 과도한 횡포이자 폭력"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국회를 떠나며: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
2013년 2월 14일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유죄 선고 논리는, 'X파일'에 실린 검사들의 이름을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면책 특권에 해당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알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통신비밀보호법에 근거하여 판결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노회찬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하루 전날인 2월 13일, 2005년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던 황교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당시 '떡값검사'로 이름을 올린 검찰 고위인사들 역시 영전하거나 대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등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던 날, 노회찬은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처럼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궤변인 유죄판결 판단의 논리에 대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회찬의 주장에 대한 생각을, 지금 이들 법관들에게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까? 여전히 당시의 판결이 타당했다고 말할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 103조 규정에 따른 것으로, 황교안처럼 하늘을 우러러 정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할까?
노회찬은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 개정 가능성이 높은 사항인데 왜 서둘러 선고했는지 모르겠다"며 "개정법에 의해 내가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을 대법원이 바라지 않는 듯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대법원은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다음날인 2월 15일 논평을 통해 "노 의원이 공개한 것은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검찰을 돈으로 관리하려고 모의하는 대화 내용이었으며, 그 대화에 거론된 검사들의 명단이었다"며 "공개한 내용에 보호돼야 할 사생활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재벌이 돈으로 검찰을 관리하려는 내용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으로서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고자 했던 노 의원의 행위는 모든 국회의원에게 권장돼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권력집단의 손을 들어 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며 규탄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한가?" 오랫동안 노회찬이 던진 질문이다.
그렇지 않은 한국의 현실이 역설적으로 증명된 것이 바로 '삼성 X파일' 사건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외쳤는데 도둑은 안 잡고 소리친 사람만 소란죄로 체포되는 것"이 바로 사건의 본질인 것이다.
2016년 10월 20대 국회 법사위의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노회찬은 물었다. 그리고 요청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 중에 '다윗과 골리앗'은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나 약한 쪽이 훨씬 강한 쪽을 이길 때 사용한다.(물론 구약성경의 권위자 조엘 베이든의 <꾸며진 영웅의 실제 생애>처럼 다윗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셀 수 없이 많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운 7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노회찬과 삼성 X파일>(이매진 펴냄) 2부 ''삼성'이라는 거대 권력과 맞서다-삼성 X파일 사건의 진실'에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장이 있다. 삼성 X파일 사건 과정에서 거대 카르텔과의 싸움을 노회찬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2009년 1월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앞두고 송영길(민주당 최고위원), 이종걸(민주당 국회의원), 권영길(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심상정(진보신당 대표) 등 여러 사람이 노회찬의 탄원운동 참여 요청에 발벗고 나섰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각계 인사 300여 명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 등 문화예술인 200여 명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는 이런 글귀를 담고 있었다.
삼성 X파일 사건 관련, 노회찬 변호인단에서 핵심 역할을 한 박갑주 변호사는 그때를 생각하며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정의의 골리앗"이라는, 의도적으로 뒤바꾼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언터처블 삼성공화국", 그러나 "'국민의 법정'에서 노회찬은 무죄다"
2011년 조희연(성공회대 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의 <프레시안> 기고글 ''국민의 법정'에서 노회찬은 무죄다'는 이렇게 말한다.
조희연의 말을 인용하자면, '현실의 법정'에서는 이건희 삼성 일가로 상징되는 '골리앗'이 이겼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법정'에서는 '다윗'으로 상징되는 노회찬이 이긴 것이 아닐까 싶다.
2014년 2월 14일 노회찬은 트위터에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내려졌던 자격정지가 정월 대보름 오늘부로 풀렸다. 이 길을 처음 떠날 때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자격정지 기간이 만료돼 정치적으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네티즌들이 보인 축하 반응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었다.
같은 날 김제남(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삼성 뇌물검사들의 명단이 담긴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내는 것은 괜찮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안 된다는 사법적 판단은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 지적하고 "삼성과 검찰의 검은 커넥션을 폭로한 노회찬 전 의원에게 적용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가 아니라 바로 괘씸죄"라고 비판했다.
왜 대한민국 법은 유독 삼성 앞에만 서면 힘을 잃는 것일까? 사카린 밀수와 부정축재를 벌였던 1대 이병철 회장도, 수백억 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수조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조세 포탈 혐의를 받은 2대 이건희 회장도 감옥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세 포탈,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등 삼성 총수들의 각종 범법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법의 칼날은 삼성 앞에서는 무뎌지기만 했다.
노회찬이 한 말이다. '언터처블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 기사 : <뉴스타파>, 2017년 1월 26일 자 '삼성은 구속되지 않는다')
나머지 271개 X파일의 행방은?
노회찬이 폭로한 X파일의 내용은 검찰이 공운영의 집에서 압수한 274개의 테이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009년 8월 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X파일 폭로 4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돌아보는 좌담회를 진보신당과 <한겨레21>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노회찬(진보신당 대표)과 김용철(변호사), 그리고 미국 연수중인 이상호 기자를 대신해 최상재(언론노조 위원장)가 참석했다. 사회는 홍세화('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가 맡았다. 김용철과 노회찬 모두 나머지 X파일 테이프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용철은 말한다.
노회찬은 말한다.
삼성 X파일 테이프는 삼성이 수백억대 뇌물을 대선 후보들에게 뇌물로 제공하고, 검찰 수뇌부와 언론을 돈으로 매수해왔음을 낱낱이 '자백'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다.
2005년 당시 공개된 파일의 숫자는 겨우 3개였다. 서울중앙지검에 있던,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공개해야 된다고 법안까지 냈던 '압수되었지만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X파일의 개수는 271개였다. 271개의 X파일은 지금 지금 어디에서 잠자고 있을까?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내가 주목하는 두 번째 질문이다.
미루어 짐작 못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행방과 내용에 대해 알고 싶다.
'법복 권력' 검찰과 법원, 스스로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정말 믿고 있을까?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가?' '검찰과 법원, 검사와 판사는 스스로를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정말 믿고 있을까?' 이 마지막 궁금증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것이었다.
법치국가의 역사적 어원을 보면, 절대군주가 마음대로 행정을 하던 경찰국가에 대하여, 행정은 미리 정립된 법률에 의해서만 시행되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에 의거하는 국가를 뜻한다. 법치주의는 근대의 산물로 신에 의한 지배나 사람(절대군주)에 의한 지배에서 법에 의한 지배, 법의 지배로 넘어가면서 등장했다. 그것은 국가의 통치 행위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의회에서 제정된 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로,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 보장, 국가 권력의 남용 방지, 국민의 법 앞의 평등 실현 등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법치국가에서 법과 법질서란 시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자나 권력기관을 통제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안전장치 또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한국 현대사는 이런 법치의 대명제가 훼손되어 왔음을, 그리고 그런 법치주의 훼손의 핵심에 '공익의 대표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도 아닌, '법복 권력'인 검찰과 법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보여줘왔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검사는 검찰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며, 검찰은 감사들로 이루어진 국가조직이다. 법률은 검사에게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해 범죄 수사와 기소, 재판과 형의 집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아울러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를 보면, 대한민국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6-②)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공익의 대표자'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피의자나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공익적 관점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법에 적힌 규정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기보다는 오로지 정치권력의 잇속만을 챙기는 검찰, 살아있는 권력의 의지만을 좇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골몰하는 검찰, 일종의 정치계급이 되어 자신들의 무소불위의 특권을 향유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검찰 등이야말로 바로 대한민국 검찰의 자화상이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검찰이 보여준 역사였다.
"검찰이 여전히 법에 의한 통제와 국민 감시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 권력이 괴물로 변할 경우 그 첨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검찰입니다"(<헌법의 풍경>(김두식 지음, 교양인 펴냄) 205쪽)라는 우려를 입증해 온 것이다.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절 권력의 중추였던 '남산'과 '보안사'가 퇴장하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검찰이었다. 이후 검찰은 국가권력의 첨병을 넘어 스스로를 국가권력 그 자체라고 믿으며 괴물이 돼버렸다.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일부 집단을 두고 흔히 관용적으로 '○○공화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불리는 대표적인 집단으로 삼성과 검찰을 꼽을 수 있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중략)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개탄(<김대중 자서전 2>(삼인출판사 펴냄))에 해당되지 않는 검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지금도 이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삼성은 영원하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하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자 검찰공화국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삼성과 검찰은 영원하다.'
그것은 '삼성 X파일'로 부상한 '개혁의 적기'를 발로 차버린 결과였다.
대한민국 대검찰청 사이트에는 검찰 CI(Corporate Identity)와 스스로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올라와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온갖 좋은 말, 좋은 가치들을 모아놓았다.
삼성 X파일 사건이 증명하듯이, 검찰이 오랫동안 보여준 실제의 행태는 위의 설명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이런 내용으로 바꾸는 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
대한민국 사법부 CI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대법정 출입문 위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위치하고 있다.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서구적인 이미지의 정의의 여신을 한국적인 느낌으로 재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서구와는 달리 안대를 쓰지 않은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대가 없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까지도 찾아내고 보호하겠다는 의미이며, 칼 대신 법전을 든 것은 말 그대로 '법전에 의한 법적용'을 뜻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스스로 만든 CI와 '정의의 여신상'이 표상하는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해 왔을까? '사법부 국민신뢰도 27%'를 지적한 노회찬과 나눈 다음 대화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2016년 6월 30일 '국회 법사위 대법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법원에서 전관예우에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겠다"는 법원행정처장의 발언에 대해 노회찬은 이렇게 물었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은 "자신있게 알파고보다 사법부를 더 신뢰할거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노회찬의 질타가 이어졌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법복 권력' 관련한 노회찬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게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검찰개혁 없이 민주주의 없다."
오랫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채 '법의 이름으로' 그 권력을 전횡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주역이 바로 검찰이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그만큼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노회찬이 계속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익의 대표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거듭난 검찰, '민주주의와 법치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법부를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촛불 정부'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과연 얼마나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 '노회찬과 한국 정치 여덟 장면 : 기록으로 톺아보기'를 선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