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업통상자원부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로드맵(안)’ 설명회가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분산에너지 시스템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정책이 아니다. 집단에너지나 구역 전기 사업이 분산에너지의 한 형태이고, 지역에서 마이크로그리드나 프로슈머를 통한 에너지자립섬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 최근 급속한 기후변화로 인한 에너지생산과 소비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면서, 분산에너지 활성화는 현 정부가 에너지전환 및 에너지분권 정책의 연장선에서 필요로 하는 로드맵이기도 하다.
에너지전환은 탈탄소화, 분산화, 디지털화로 요구되고 있다. 즉 에너지믹스, 특히 전원 믹스의 탈탄소화가 필요하고, 분산화를 통한 재생에너지 확대가 요구되며, 이는 전력계통 운영이나 변동성과 관련해 기술혁신과 수용성 확보가 중요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ICT나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아이디어에 기반한 양방향 소통과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불어 전력시장 개편이 필요한 일이다. 여당이 발의했지만 잠정적으로 반대에 부딪힌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의 경우, RE100과 재생에너지 확대의 전제조건이 될지, 전력시장 민영화로 인한 대기업의 특혜가 될지 여부 등 새로운 프레임의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공공재와 필수재로 여겨졌던 에너지가 가지는 공공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지역민과 이익을 공유하고, 에너지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전력시장은 어떻게 가능한지,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논의 없이 전력시장 개편은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도 여전하다. 이렇듯 전력시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산에너지시스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력시장과 전기요금에 대한 본격적이고 치열한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산업부에서 발표한 로드맵에는 분산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분산에너지 친화적인 시장제도로의 개편을 추진하며, 계통안정성 제고를 위한 인프라 확충 및 고도화를 진행하고, 지역주도의 분산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포함됐다. 세부내용을 보면 전력시장과 전기요금 조정 및 계통안정성, 독립적인 지역별 배전망 운영 등을 비롯해 열병합발전소와 ESS 지원, REC 조정, 한국형 통합발전소(가상발전소, VPP) 등 기술적·제도적 지원으로 기업이나 업계를 고려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으로 실증사업을 하거나 상향식 마이크로그리드를 통해 지역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에너지센터 등으로 지역주도의 분산에너지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선도적인 몇몇 지자체에서 분산에너지시스템 활성화 사업을 추진했을 때 겪었던 가장 큰 난관은 경제성과 법제도 미비였다. 로드맵의 기술적·산업적 시스템이 지역에서 실행되려면 제도적인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산업부는 (가칭)분산에너지법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 제도적 준비는 어느 정도인지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전에 지역에서 실패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잘 반영되어 제도적 제한 때문에 분산에너지시스템이 한계에 부딪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번 로드맵(안) 발표에서 기술·시장 측면의 분산에너지 시스템 준비에 비해 ‘참여·분권’ 측면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분산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가지는 ‘지역화’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현재의 중앙집중형 시스템이 가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산에너지시스템은 올해 초 17개 광역시도에서 일괄 수립한 ‘지역에너지계획’과 상호작용하면서 추진되어야 한다. 에너지분권과 시민참여는 최근 정부와 연구기관, 시민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어 그 내용을 적극적으로 로드맵 수립에 반영해야 한다. 산업계와 전문가가 중심인 두 번의 설명회를 통한 로드맵은 반쪽자리로 그칠 확률이 높다. 최소한 지금이라도 분산에너지 설비가 직접적으로 설치되는 17개 광역지자체의 기후에너지 담당자들, 지역 연구기관 기후에너지연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민들의 공감을 얻어, 지역의 특성을 살린 분산에너지시스템이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산업부는 지역주도의 에너지전환 및 그린뉴딜 등의 실현을 위한 거점으로서 지역(기후)에너지센터를 지자체 자율적으로 설립·운영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지자체에는 지역 중심의 에너지 거버넌스가 갖추어져 있고 이전의 경험이 쌓여 에너지분권과 분산에너지 시스템의 실행 역량이 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어쨌든 정책의 정당성과 수용성을 위해 에너지전환 정책이 지역과 협력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지역 중소기업, 협동조합, NGO, 프로슈머, 지역공기업, 지자체, 기후에너지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거버넌스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고, 이는 지역의 기후에너지센터를 통해 가능하다. 이 센터에 한전이나 발전공기업, 신재생에너지 사업자, 중개사업자, 수요관리 사업자, ICT 기업 등 소위 업계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함은 당연하고, 지역의 연구자와 시민사회의 의견이 반영된 지역에너지전환 정책이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기후)에너지센터의 운영 및 재정적 독립성을 보장하고 지역의 기후에너지정책의 거점, 그린뉴딜 실행의 거점, 갈등관리와 예방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역의 이해관계자들이 센터를 통해 네트워크를 쌓고, 센터를 통해 일을 하고, 센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센터를 통해 행정적 지원을 받고 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분산에너지특구, 마이크로그리드, 스마트시티, 그린뉴딜특구 등 탄소중립과 한국판뉴딜, 그린뉴딜과 관련한 다양한 실증단지가 제안되고 있다. 이런 특구를 통해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다양한 정책적 실험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구나 스마트시티는 분산에너지 설비만 설치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실증단지가 되어야 한다. 즉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원의 탈탄소화, 분산화, 디지털화가 동반되는 기후와 에너지 정책의 융합적인 실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의 행정은 중앙정부의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처럼 구분되어 있지 않다. 에너지전환, 온실가스감축, 기후재난 대비, 폐기물처리까지 종합적으로 진행된다. 부처별로 나뉘어진 실증단지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통합적인 실증단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경우 전기, 열, 가스, 수송이 융합하는 에너지정책이 실증되면 금상첨화다. 분산에너지 시스템이 또 하나의 갈등사례가 아니라 지역에너지전환이 도시계획과 연결되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스마트한 도시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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