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아마도 말 잘하는 정치인? 다들 인정하듯 노회찬은 말 잘하는 정치인이 맞다. '언어의 연금술사', '어록 제조기', '촌철살인의 웃음을 주는 정치인', '유머의 정치인', '토론과 소통의 달인' 등 생전 그에게 붙은, 말과 관련한 별명들이다. 맞는 말이다. <한겨레>는 '언어 유희왕'으로 호명하기도 했다. <한겨레>의 호명처럼 노회찬은 '언어 유희왕'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라는 '유희'의 사전적 의미 안에 노회찬의 말을 가두는 것은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노회찬마들연구소의 '마들명사초청특강'('2008, 우리시대의 난장이')에서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말은 생각이에요. 노회찬 전 의원을 두고 '스타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바보의 언어예요. 노회찬 전 의원이 다른 언어를 사용했어요. 노회찬 전 의원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었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들을 쓰고 있었어요. 뛰어난 언어였어요."
"변화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들". 조세희 작가가 꿰뚫어 본 것처럼 이것이 노회찬이 구사한 말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바쁜 일정 취소하고 현장에 와 있던 <오마이뉴스>의 구영식 기자는 노회찬마들연구소를 '지역명품특강의 산실'로 소개하면서, 이렇게 기사를 마무리한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2008년 12월 12일 자 '노회찬 형을 위해 한 가지는 해야겠네')
"우리는 아직도 '낙원동'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마도 조 작가는 노 대표가 그런 슬픈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김어준은 '회찬 씨, 농담도 잘하셔'(책 <진보의 재탄생> 중)에서 "어느 날, 정치적 은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풍자 화술의 달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대한민국 정치판에 갑자기 등장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사회주의 발상이라 공격하는 가공할 지적 수준의 포유류들이 주인 행세하는 이 땅에서 말이다"라면서 노회찬과의 만남 후기를 이렇게 적는다.
"진보적 결의와 인문학적 소양의 그 절묘한 동거. 이미 어린 시절 정치적 출가를 한 그가, 사욕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그렇게 오랜 세월 지켜내면서도 동시에 경쾌하고 발랄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유형의 진보 정치인이다."
노회찬의 말이 '어록'으로 묶이며 '핫'하게 떠오르던 2004년 어느 날. 정운영과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랜덤하우스중앙 펴냄) 142쪽)
정운영 : 노회찬 어록이 생길 만큼 언어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는데 선조의 유산입니까, 피나는 훈련의 결과입니까?
노회찬 : 생활 속에서 저절로 습득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관찰력, 분석력, 상상력의 발전적 조합이기도 합니다. 말이란 생각을 하는 수단이고 동시에 그것을 전달하는 수단이지요. 전달 대상에 대한 관심, 전달 그 자체에 대한 의지가 높을 때 전달 수단도 발전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풍자 화술의 달인' 노회찬의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글은 이른바 '노회찬 어록'으로 모였다. '삼겹살 불판'으로 상징된 노회찬 어록의 탄생 과정에 대해 함께 추적해보도록 하자.
'노회찬 어록'의 탄생
"17대 총선 성공의 최대 공신은 단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노회찬 사무총장이다. 16대 대선 때도 민노당의 선거대책을 총괄지휘했던 그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탄핵정국의 영향으로 당 지지도가 떨어지자 TV토론을 통해 이른바 '삼겹살 판갈이'론을 역설, 지지도를 다시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물론 미디어의 속성과 잘 맞아떨어진 측면도 없지 않지만 민노당 스스로 적극적인 TV토론 참여를 통해 '정책정당 이미지'를 알리려 했던 전략 때문에 가능했다."(☞ 관련 기사 : <신동아> 2004년 5월호 '민주노동당의 정파, 색깔 그리고 파워')
정치인 노회찬의 이름 석 자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였다. 그 시작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사무총장으로 출연한 TV토론을 통해서였다.
2004년 1월 9일 오후 7시 문화방송 본사 회의실. 노회찬은 '언론노조 중앙집행위 및 민주언론실천위 합동수련회'에서 '17대 총선과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아쉬운 심경을 담아 비판한다.
"<9시 뉴스>에서 매일 10초씩 나오면 민주노동당은 10명 당선된다. 1년 내내 30초씩 나오면 30명 당선되고 120초 나오면 120명 당선된다. MBC <100분토론>은 지난 6개월간 한 번도 민주노동당의 출연을 허용하지 않았다."
1주일 후인 2004년 1월 15일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자격으로 <100분토론>(사회: 손석희)에 참석한다. 두 달쯤 뒤의 "삼겹살 불판" 발언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 이날이야말로 '노회찬 어록' 탄생의 조짐을 보인 날이다.
"50년 동안 정치를 끌어온 분들, 지금 말이죠,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 정도로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유기정학 내지 무기정학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국민들이 보기에는 유기정학 내지 무기정학감이에요. 그러면 이번 선거 다 안 나와야 합니다. 한 4년 동안 유기정학 당해야 돼요. 그런데 왜 자꾸 나오려고 그래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판갈이를 해야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3급수에다 2급수를 타면 그게 2급수가 됩니까. 조금 더 나은 3급수지? 국민들은 1급수를 원하고 있어요."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은 두 번의 KBS <심야토론>에서 당시 거대 양당(한나라당,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정치사에 남을 촌철살인 비유를 날렸다. '노회찬의 어록'은 3월 20일 KBS <심야토론>(사회 : 정관용) '급변하는 민심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계기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50년 묵은 불판을 갈아엎자'는 판갈이론이 답답한 국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 놓은 것이다. '노회찬 어록'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노회찬의 속풀이 유머코드 어록은 이어졌다.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과 민주당 김경재 의원이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했다고 주장하면서 방송이 편파적이라고 비난하고 나서자 노회찬은 이렇게 연속 펀치를 날린다.
"촛불 집회의 배후는 열린우리당이나 노사모가 아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입니다", "사과할 일을 가지고 탄핵을 하다니, 그렇게 하찮은 일을 가지고 탄핵을 하다니, 제정신입니까?"
"193명 의원들이 탄핵을 다 잘한 일이라고 주장하셨잖습니까? 편파방송 운운하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운 탄핵 가결 화면을 TV에서 자주 보여주면 오히려 한나라당, 민주당에 유리한 것 아닙니까?"
"한국의 야당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죽인 것이 아니라 다 자살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님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이제 저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열린우리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은 길을 걷다가 지갑을 주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갑을 주었으면 경찰에 신고해야죠."
보름쯤 뒤인 2004년 4월 3일, 노회찬 어록을 탄생시킨 KBS <심야토론>에 다시 출연한 노회찬은 유시민(열린우리당 의원), 장광근(한나라당 의원), 정진석(자유민주연합 의원) 등과 함께 설전을 벌였다. 토론 주제는 '17대 총선 국민의 선택을 묻는다'였다. 토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노회찬의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란 말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서민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남긴다.
네티즌들은 이날 토론을 앞두고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서 '오늘의 노회찬 어록은 뭐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 네티즌의 기대에 부응하듯 노회찬은 톡톡 튀는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다. 간추린 4월 3일 판 노회찬 어록은 이랬다.
"50년 전에 잃어버린 지갑 찾으러 나왔습니다."
(장광근 의원이 "민주노동당이 아직 원내에 진출하지 못해 편하게 비판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라고 말하자 응수하며)
"왜 한나라당이 갑자기 노인복지를 거론하는가.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야기시킨 탄핵으로 우리 국민 평균 수명이 단축됐어요. 그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제일 가난한 민주노동당이 제일 번지르르한 건물을 쓰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폐공판장 당사,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를 비판하며)
"국민들은 사과받느라고 바쁩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대표들이 저마다 국민들에게 사과하느라 바쁘다"고 지적하며)
"선거 때만 되면요, 갑자기 어디서 산천어, 열목어 다 나타납니다. 다 깨끗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을 해봤지만은 깨끗하다는 산천어, 열목어 선택해봤자, 그 정당이 3급수, 4급수가 들어간 정당에다가 산천어, 열목어 넣어 버리면요, 곧 물고기가 죽습니다. 아니면 그 물고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살아남는 거죠."
(원내 정당들의 선거철 이미지 변신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 의심스럽다며)
"조금 전에 장광근 의원께서 '광풍이 불었다'고 하셨는데, 미친 바람인 거죠, 광풍이라는 게. 지금 민심을 미친 바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탄핵 때문에 분개했던 국민들이 한 번 더 분개할 일이 아닐까 하는 말씀을 한 번 더 드리고 싶구요."
(장광근 의원이 "탄핵 반대 여론은 광풍"이라는 표현을 쓰자 "국민 여론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비판하며)
"지금 지난 4년간 무슨 일을 했느냐를 가지고 졸업시험을 치는데, 갑자기 4년 동안 공부 안 한 학생이 팔씨름으로 시험을 대체하자, 그럼 됩니까, 그게?"
(총선이 탄핵에 대한 찬반 대결로 흐르는 것을 지적하며)
"'차떼기 야당', '탄핵 야당', '냉전 야당', '지역주의 야당', 이런 야당들은 이제 좀 물러서야 됩니다. 이제 역할이 거의 다 끝났거든요! 지금 야당은 면허 정지도 아닌 면허 취소 상태입니다. 그중에는 장롱 면허도 있습니다."
('야당 교체론'을 주장하며)
"올림픽 가 가지고 말이죠, 중국 보고 금메달 너무 많이 가지고 가지 마라, 우리나라도 좀 달라고, 그런 게 있습니까? 역사는 냉정한 겁니다. 역사에서 퇴장하라고 하면, 퇴장해야 되는 겁니다."
(정책 차별화 없는 '거여견제론'은 무의미하고, 기존 야당은 역사적으로 소멸될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며)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일꾼 뽑는 선거가 아닙니다. 공부하라고 서울 보냈더니 공부는 안 하고 시골 내려와서 농사짓겠다면서 농사조차도 제대로 안 짓는 그런 꼴입니다."
(정진석 자민련 의원의 "총선은 지역일꾼을 뽑는 마당"이라는 주장에 대해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추측건대, "삼겹살 불판"으로 상징되는 3월 20일 KBS <심야토론>의 발언이 없었다면 아마도 '노회찬 어록'은 탄생이 지체됐거나 탄생했어도 어쩌면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수그러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파장과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월 20일 KBS <심야토론>에 민주노동당 패널이 노회찬이 아니라 원래 정해진 대로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사실 민주노동당에서 원래 나가기로 한 사람은 노회찬이 아니었다. 당일 토론 4시간 전에 이루어진 선수교체 결정이 '노회찬 어록'의 빛나는 탄생에 결정적 디딤돌이 된 것이다.
노회찬이 당원게시판에 올린 3월 20일 '선대본 일기'(책 <힘내라 진달래> 중 '22시 KBS 심야토론 대기실에 갔다' 242~244쪽) 내용을 토대로 <심야토론> 시작 전 상황을 시간대별로 한 번 살펴보자.
"(3월 20일) 오후 4시 30분, 오늘 밤 타당 출연진이 바뀐 것이 확인되었다. 원래 이 토론은 한나라당, 열우당, 민주당 중진의원,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김기식으로 제안되었다. 19일 대변인은 이 토론의 주제와 중요성을 감안하여 선대본부장이 나가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다른 당 출연진을 보고 결정하자고 답하였다."
"19일 오후, 다른 당 출연진이 확정되었다. 한나라당은 공성진, 열우당은 김재홍, 민주당 최인호, 자민련 서준호 등이었다. 천영세 선대위원장과 의논하였다. 타당 출연진이 언론인, 교수, 법조인 등 비정치인 출신이므로 김석연 정책위원장 권한대행을 내보내기로 하였다."
(당초 방송사 측은 토론자로 교수, 언론인, 법조인 등 비정치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변호사이며 경제정책 전문가인 김석연은 적임자였다.)
"김석연 변호사는 개인 일정도 취소하고 오후부터 중앙당에 나와 토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 몇 시간을 앞두고 타당 출연진들이 바뀐 것이다. 한나라당 김영선, 열우당 송영길, 민주당 김경재 의원."
"'탄핵 반대' 100만 명 집회가 저녁에 있어서인지 모두 '싸움꾼'으로 변경되었다. 대변인, 정책실, 김석연 위원장 등과 긴급 논의를 하고 선대위원장과도 논의하였다. 17시 다들 지금 시점에서 일대격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선대본부장이 나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3월 20일은 '탄핵 반대' 촛불집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시청자들은 '토론'보다 '난타전'을 원했다. 각 당은 서둘러 '싸움꾼'으로 토론자들을 교체했다. 탄핵은 민주노동당으로서는 가장 곤혹스러웠던 이슈. 민주노동당은 정면 돌파를 해야 했고, 정책 제시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도 '정곡'을 찔러야 했다.)
선수 교체의 결과는 '예상 밖의' 대성공이었다. 선수 교체 당시의 심정을 노회찬은 이렇게 밝혔다.
"타당 토론자가 바뀌면서 내가 나갈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개인 일정도 취소하고 토론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김석연 부위원장에게 바꾸자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천영세 선대위원장과 기획조정팀과 상의를 했다. (타당 선수들이 바뀌었다면) 내가 나가는 것이 맞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김석연 부위원장에게는 나더러 말하라고 하더라.(웃음) 김 부위원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그때가 토론 4시간을 앞둔 상황이었다."(☞관련 기사 : <매일노동뉴스> 2005년 8월 24일 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애초 출연 예정된 김석연 변호사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회고한다.(10월 21일 전화 통화 내용)
"출연이 결정된 때부터 사실 심적 부담이 컸다. TV토론은 내가 나갈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당 출연진이 중량이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고 해서 부담이 더 커졌는데, 마침 선수교체 요청이 와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것도 있었지만, 당을 위해서도 그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회찬 총장이 나가면 잘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결과가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예기치 않은, 우연에 의한 선수교체가 총선 승리에 뜻밖의 큰 기여를 한 것이다."
TV토론의 성공 이후 노회찬은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노회찬은 어깨띠 하나 두르고 당직자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맞춰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 윤중로로 거리유세에 나섰다. 장석준은 그날의 풍경을 15년이 지나 이렇게 술회한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19년 4월 23일 자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국제표준어, 진보정치의 방향')
"의사당 옆 윤중로는 마침 식사를 마치고 산보를 하거나 벚꽃 축제에 나들이 나온 시민으로 가득했다. 이때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마치 유명 연예인이라도 본 듯 노회찬 후보 앞에 멈춰서고 환호성을 지르며 에워쌌다. 먼저 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진보정당에게는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TV 토론회에서 노회찬 후보가 일으킨 바람이 실감됐고, 대중정치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만 같았다."
노회찬은 "벚꽃 날리는 것이 표 내리는 것 같다"며 당시 분위기를 표현했다. 민주노동당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4년 3월 28일 자 노회찬의 '선대본 일기'는 "힘내라 진달래!"라며 이렇게 적고 있다.
"여의도 나들목 부근은 어느새 밀려온 봄꽃 천지다. 개나리가 듬뿍 피어 있고 벌써 곳곳에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 28일 아침 여의도.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꽃이 지금의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씩 상륙해 있다.
힘내라, 진달래. 가슴도 눈시울도 연분홍이다."
TV 토론, "보낼 곳은 많고, 선수는 부족하고"
사실 TV 토론을 나간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노회찬의 경우는 총선 이전부터 몇 차례 TV 토론에 나가면서 기본훈련을 이미 마친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운명의' 3월 20일 토론을 앞두고 한 케이블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최종 점검을 마친 '준비된' 토론자였다.
1인2표가 총선에 처음으로 도입된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TV 토론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2002년 대선에서 쌓은 인지도와 유권자들의 막연한 호감을 표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확실한 이미지 만들기가 필요했고, 이를 위한 유일무이한 방법이 TV 토론이었기 때문이다.
노회찬과 중앙선대본은 당시 TV 토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을 넘어 절감하고 있었다.
"특히 TV토론이 국민여론과 선거에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저희들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2002년 대통령선거 때 TV토론 나가면서부터 실제로 권영길 후보가 국민여러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국민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떻게 여론을 바꾸어내고 또 인지도를 높여내는가를 저희들이 실감을 했기 때문에 비록 저희들에게 많은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은 TV토론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관련 기사 : <폴리뉴스> 2009년 5월 13일 자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 노회찬②')
노회찬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TV토론을 "우리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장 주요한 선거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즉 "저희들이 지역에서 어차피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비례대표에서 의석을 늘릴 가능성이 더 높다면 정당득표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유력한 것이 TV토론"이라고 판단한 노회찬은 당 차원의 TV토론 참여에 큰 공을 들였다.
노회찬이 큰 공을 들였다는, 민주노동당의 TV 토론 참여는 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토론 참여를 위해 사이버 시위, 언론노조를 통한 압박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3월 20일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노회찬 어록'이 등장했고, 방송사 쪽의 출연 요구를 다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출연 요청이 당으로 쇄도했다.
문제는 방송 토론에 당장 나설 수 있을 만큼 훈련이 된 정치인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선대본 문명학 기획조정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TV 토론에 처음 나가서 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서 실수도 하고, 질타도 받으면서 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실수할 여유가 없었다. 매번 홈런을 쳐야 할 상황이었고, 실제로 매번 홈런, 최소한 장타를 쳤다. 그러고 나니까, 노회찬, 심상정 후보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안 나가려고 하더라. 막판에는 토론 나갈 사람이 없어서 고생했다."
방송토론 섭외와 일정 조정, 정책 제공의 실무를 담당했던 김홍석 기조실 부장은 "토론을 소화할 수 있는 정치인이 부족했다. 또 방송사들과의 실랑이 과정이 쉽진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방송사 쪽에선 단연 노회찬 의원의 출연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후보이자 선대본부장이었던 만큼 일정 조정도 어려웠고, 계속 한 사람만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다음으로 권영길 의원이 많았고, 심상정 의원, 김종철 대변인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본적으로 쇄도하는 방송 출연 요구를 수용할 만큼 '선수'가 많지 않았다. 방송국 관계자들과 말씨름해야 했던 내 입장에선 난처한 일이기도 했다. 토론자가 적절하지 않을 경우 당원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당장 방송사 쪽에서 항의를 많이 받게 된다. '왜 그런 사람을 내 보냈냐'는…."
"4월 15일 판갈아주세요"
민주노동당 기관지(편집위원장: 이광호)인 <진보정치> 173호를 보면 '민주노동당을 찍어주세요'란 제목 아래 각계의 지지 발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소설가 공선옥이 노회찬의 '50년 불판'을 불러낸다.
"장애인이 행복한 나라,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등 힘없고 가난한 민중의 편에 서는 것이 언제나 당연시되는 나라, 적어도 돈 없어서 공부 못 하고 돈 없어서 치료받지 못 하는 일은 없는 나라, 지역만 믿고 정치하는 정치인이 없는 나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고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나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합니다. 그러고 무엇보다, 수구 대 보수가 아니라 이제는 개혁 대 진보의 판이 열려야만 한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50년 불판'이라는 노회찬 선생의 말씀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 50년 불판,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4월 15일은 그 더러운 불판을 민주노동당이라는 새판으로 산뜻하게 '개비' 할 날입니다.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17대 총선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삼겹살 불판'과 '노회찬 어록'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만큼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전국의 민주노동당 총선 후보와 선거운동원, 활동가와 당원들은 노회찬 어록을 부지런히 이곳저곳 실어 날랐다. 이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대전시 선관위와 차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김성희 부대변인 이름으로, "선관위의 이러한 주장은 인터넷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사적 의사 표명이나 소통은 이제 모든 국민이 다 아는 보편적인 문화이다. 이를 선거법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무지를 넘어 궁극적으로 국민의 정치적 참여를 옥죄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선관위의 존재 이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선관위가 변화하는 사회와 확대된 온라인 문화에 대한 상식 수준의 이해를 갖춰주길 기대한다"는 논평을 낸다.
노회찬은 2004년 3월 30일 '선대본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MBC 'PD수첩'에서 찾아왔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과도한 법 해석으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에 대해 묻는다. 특히 최근 '노회찬 어록' 퍼나르기를 대전선관위가 불법으로 간주한 데 대한 의견을 묻는다. 임좌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면담에서 시정 약속받은 바를 설명했다."
대전시 선관위는 2004년 3월 22일 민주노동당 대전시지부 앞으로 '선거법위반 게시자료 삭제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게시문은 '바다로'라는 ID를 쓰는 네티즌이 퍼나른 '심야토론 노회찬 어록 화제'라는 제목의 <미디어다음>의 기사였다. 그러나 같은 날인 22일, 민주노동당 중앙당 언론보도 모음 게시판에 관리자가 게시한 '노회찬 어록 인기'라는 게시물은 삭제요청을 받지 않았다. 선거운동 권한을 가진 정당 사이트에 똑같은 게시물을 올리더라도 관리자가 올렸나, 일반 네티즌이 개인 자격으로 올렸냐에 따라 선거법 위반 여부가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김정진 변호사는 "이런 선관위의 해석은 한마디로 언론보도는 '합법'이지만 그 보도를 옮기는 네티즌의 행위는 '불법'이라는 작위적인 해석"이라며 "언론기관이든 일반 국민이든 정치적 표현의 권리가 다르지 않은데 개인의 의견 표현을 '선거운동'이라고 규정해서 원천봉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고 반박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04년 3월 23일 자 '선관위, "'노회찬 어록' 퍼나르기는 불법"')
"내 손으로 국회 교체 지금 당장 판을 갈자"
10년이 흐른 2014년 7.30 동작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노회찬은 "여의도에 새로운 '불판'을 깔겠다"며 '불판론'을 다시 들고나왔다. 출마 기자회견에서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10년 전에 '50년 된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이 진보정당 의원을 10명 당선시켜줬듯이 이번 재보선에서 오만한 새누리당과 무기력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모두를 환골탈태시키는 정치 판갈이를 할 수 있도록 저를 당선시켜 주십시오. 이번 7.30 재·보궐 선거는 한국 정치의 판갈이 시즌2의 신호탄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앞장서서 낡은 정치판을 바꾸겠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혁신을 위해 노회찬이 있는 국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기자회견을 마치고 노회찬은 현충원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난중일기>에 글을 올린다. 판갈이 된 한국 정치가 지향하는 바를 압축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날 첫걸음을 무명용사탑으로 정한 것은 이름 있는 사람 앞에 줄 서는 정치가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을 주인으로 모시는 정치를 펼쳐나가겠다'는 다짐의 뜻이다. 이름 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다리가 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여당의 실정과 야당의 무능함에 숨통을 트기 위해 출마했다고 밝힌 노회찬. 선거 결과 929표차로 낙선함으로써 노회찬발 '한국 정치의 판갈이 시즌2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데 실패하고 만다.
2020년 1월 8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 고기 불판을 든 정의당 당직자와 관계자들이 등장했다. 정의당이 '제21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 시민 선거인단 대국민 제안'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그가 떠나고 1년 6개월이 지난 뒤, '노회찬 불판'의 재등장은 '2004년의 승리와 영광'을 재현해보겠다는 뜻이 짙게 배어 있다.
심상정(정의당 대표)은 "기득권 양당체제를 교체하는 새 판을 짜기 위해선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가 필요하다", "시민의 뜻을 반영하는 개방형 경선제도인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시민선거인단 모집을 시작한다. 수십 년 동안 정치에서 배제된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국민들에게 마이크와 연단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선거인단 이름은 '판을 가는 사람들', 슬로건은 '지금 당장 판을 갈자 내 손으로 국회 교체'다. 2004년의 노회찬을 연상시키는 글귀다. 김종민(정의당 부대표)은 2004년 총선에서 노회찬이 "다 타버린 불판에 좋은 고기 올린다고 고기가 맛있지 않다. 불판을 갈아야 한다"라고 한 발언을 언급하면서 시민선거인단 이름을 '판을 가는 사람들'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당장 판을 갈자"고 했지만, 2020년 4월 15일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20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6석의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치고 만다. 언론의 조명도 많이 약해졌다.
16년 전 그날인 2004년 4월 15일 민주노동당은 10석의 의석을 확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44년 만에 당당히 원내에 진출했다.
과연 여의도 정치의 다 타버린 시꺼먼 불판을 누가, 언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 '노회찬과 한국 정치 여덟 장면 : 기록으로 톺아보기'를 선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