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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일가 대한항공엔 8천억 투입, KTX 통합엔 손 놓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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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일가 대한항공엔 8천억 투입, KTX 통합엔 손 놓은 정부

항공은 통합이 경쟁력이고 철도는 분리가 경쟁력인가

수서 고속철도, SR의 출발점은 이명박 정권이었다. 민영화 설계도를 바탕으로 추진되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우회로를 뚫은 것이 박근혜 정권의 SR 출범이었다. 국토부는 고작 60킬로미터의 지선 건설을 지렛대로 고속철도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명분은 "독점은 안 된다" 였다. 경쟁을 통한 효율화로 철도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논리였다. 국토부 보도자료를 그대로 지면에 옮긴 많은 언론들은 "117년 철도 독점체제 마감" 같은 헤드라인으로 나팔을 불었다. 그 사회적 의미나 파장을 다룬 언론은 소수에 불과했다.

독점은 악이란 상식이 존재한다. 수요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익을 독점기업이 차지하게 되면서 시장 질서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학 이론은 시장이란 링 위에서 벌어지는 기업 행위의 원인이자 결과로 발생하게 된다.

반면 철도와 같은 인프라 산업은 출발부터 자연 독점 형태였다. 역과 선로를 위한 대규모 토지의 필요, 기관차와 객화차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시설은 국가로 대변되는 공동체의 자원을 바탕으로 했다. 철도는 근대 산업사회의 이동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공익성을 내재적으로 담지하고 있다. 한국철도는 지배적 시장 사업자로 독점의 단 열매를 빨아들이는 비효율적인 악덕 기업이 아니라 시민과 물류의 이동을 책임지는 공적 서비스 제공 기업이다.

한국철도만 하더라도 영업행위는 100년에 이르는 과정에서 건설된 철도 시설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100년 전에는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파장을 일으켰지만 현재 많은 노선들은 도로에 경쟁력을 잃었다. 1세기 전의 토목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프라가 현대적 도로에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철도의 도약을 견인한 것은 고속 신선이었다. 철도 운임 또한 정부가 관리한다. 철도공사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마음대로 요금을 책정할 수 없는 구조이다. 한국철도의 독점 구조가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국토부의 논리는 독점은 나쁘다는 일반논리를 철도에 억지로 이식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결과 SR이 출범했고 한국철도는 그 만큼 더 나아질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토부 관료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철도 개혁과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철도 개혁을 위한 연구용역이 시작되고 한국철도와 SR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주무 부처 장관은 부동산의 늪에 허우적 거렸고 철도 개혁 논의는 관료들에 좌우 됐다. 국토부 관료들은 침대 축구 전술로 시간을 끌다가 개혁을 위한 연구용역까지 무산시켰다. 더 나아가 김현미 장관의 입에서조차 철도 개혁은 사라졌다. 장관까지 포섭한 관료들의 승리였다.

2020년은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듯 하다. 기후변화의 미끄럼틀은 그 각도를 더 깊게 하고 있는데 코로나 팬데믹은 세상을 동결시켰다.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이 유효하지 않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항공사들이 도산 위기에 내몰렸고 이미 여행업계는 빈사 상태다. 철도 역시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통합을 발표했다. 가족으로 구성된 경영진이 전근대적 갑질을 일삼았던 재벌 기업에 산은은 8천억원의 지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산은은 "지난 20년간 대부분의 국가가 1국가 1국적 항공사 체제로 재편됐다"면서 "이번 거래로 탄생할 통합 국적 항공사는 세계 10위 수준의 위상과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은의 판단에 따르면 2개 이상의 국적 항공사가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하나의 대형 국적 항공사로 국제 경쟁력을 갖는 게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아시아나 출범의 이유와 목적은 항공 독점을 해체해 경쟁체제로 항공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세계적 흐름과는 반대로 간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의 두 항공사를 심각한 경영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미 아시아나는 현대산업개발에 매각 절차를 진행하다가 코로나 심화로 매각이 무산되면서 회생의 희망도 놓치고 있었다. 그동안 두 항공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책은행이 지원한 돈은 아시아나 항공 3조5400억원, 대한항공 1조2000억원 으로 5조원에 육박한다. 더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와 두 회사의 통합과정에서 얼마나 더 많은 지원금을 보태야 할지 모른다.

위기에 빠진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수많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과 원칙은 일관되어야 한다. 항공이 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진즉에 통합의 당위성이 강조되고 있는 한국철도와 수서고속철도의 통합도 추진되어야 한다. 재벌 기업에 수조 원을 쏟아붓는 것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투자이고 공적 사업인 철도에 지원하는 것은 혈세 낭비인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 항공은 통합이고 철도는 분리체제 존속인가?

철도는 전 운행과정이 시설에 종속된 운영체제란 측면에서 항공보다 훨씬 더 인프라 연관성이 크다. 당연히 유기적 통합구조와 상호 조화가 중요한 산업이다. 이 같은 철도를 억지 논리로 분리해 회사를 차리고 부처의 자회사처럼 굴리는 일은 한국철도 발전에 아무런 득이 안된다. 더구나 남북을 잇고 대륙으로 달려 나갈 미래를 위해서는 중국, 러시아 같은 철도 강국과 경쟁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철도의 내실을 키우는 일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 철도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없는 사람들이 철도를 다루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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