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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전태일 평전'을 세상에 내보낸 젊은 편집자가 맞은 전태일 5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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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전태일 평전'을 세상에 내보낸 젊은 편집자가 맞은 전태일 50주기

[전태일 50년, 혁명인가 전환인가?] ① 문재인 정부와 삼성, 조선일보가 날마다 3명의 김용균을 죽이는 사회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1983년 돌베개출판사 편집장으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을 처음 출판했고, 전태일기념사업회 부설 구로노동상담소 간사,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대표로도 일을 했던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의 기고 글을 세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그는 지금은 박제된 기념이 아니라 고뇌하고 또 고뇌하다 직접 행동에 나섰던 1970년 당시의 전태일처럼 기후위기 시대 청년 민주주의 혁명과 전환의 직접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프레시안>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나는 실패자다

오는 11월 13일은 23살 전태일이 분신한 지 반세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전태일을 알게 되었다. 전태일에 이어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 사건도 접하게 되고, 노동자·농민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을 규정하는 사회구조 문제를 진지하게 내 삶의 문제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서울 지역 판자촌 주민 수만 명이 강제로 이주된 허허벌판에서 상하수도도 없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 참상의 르포를 나는 숨을 죽이며 읽었다. 나는 내 존재의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용암 같은 불길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 들끓던 분노의 감정은 지금도 여전히 내 가슴에 생생하다.

서울시가 100원에 수용한 땅을 이주민들에게 1만 원씩 내고 분양받으라는 터무니없는 사건을 계기로 민중항쟁을 일으켰던 광주대단지 사건은 내게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나도 그때 서울시가 영등포 지역 판자촌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시흥동 삼성산 밑 가파른 산동네의 판자촌 주민이었다. 그때 나는 곧바로 이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평등과 정의의 세상으로 뒤바꾸는 일에 삶을 바쳐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때 전태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던 20대 청년은 어디로 갔을까. 첫아들이 태어나자마자 택시노동자 박종만이 분신한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노트를 한 권 사서 내 아이가 성인이 되는 날까지는 이 불의한 세상을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일기까지 썼던 30대 젊은이는 어디로 갔을까.

이 글은 실패자의 글이다.

불평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등의 규모는 더 확대되고 이제는 대를 이어 불평등이 세습 고착되는 사회, 노동해방이란 말은 아예 사라져 버리고만 노동노예의 사회, 이것이 나도 참여해서 만든 현실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학생운동, 재야운동, 노동-농민운동 등 민주화운동이 586 기득권으로 도매금으로 조롱당하는 사회, 이것이 참담한 오늘의 현실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삶은 신기루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오직 마몬의 돈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20대 30대 청년의 취업과 내 집 마련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사회, 이것이 냉혹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기성세대가 만든 기후위기가 곧바로 자신들의 딸아들 손자손녀의 세상까지도 살해해 버리고 마는지도 모르고 세상을 멸망으로 폭주시키고 있는 사회, 이것이 끔찍한 역설의 현실이다.

1984년 돌베개출판사 편집장으로 나는 전태일평전을 출판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 돌베개출판사는 창업주인 이해찬(전 민주당 대표)의 제안으로 이해찬·임승남 사장, 그리고 편집장인 나 이렇게 세 사람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체제였다.

당연히 구속을 각오하고 있었다. 이해찬과 임승남, 이소선 어머니,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문익환 목사는 구속 걱정을 하면서도 출판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내 일생에서 유일하게 이 세상을 향해 의미 있는 일을 한 출판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당시 일이 늦어져 마포의 출판사 사무실 2층에서 새우잠을 잘 때 나는 늦은 밤이고 새벽이고 전국의 청년 노동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애써 울음을 참으며 혹시나 해서 전화 걸었다고 했다. 밤을 꼬박 새워 방금 책을 다 읽었고 이런 책을 내주어 정말 고맙다는 전화를 하는 그 노동자들 대부분은 조금 있으면 다시 출근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나보다 훨씬 일찍 세상을 등진 조영래 변호사가 들어야 할 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대신 들으면서 차곡차곡 가슴에 쌓아두었고, 나중에 조영래 변호사 묘 앞에서 비로소 전해줄 수 있었다.

▲전태일 동상 앞에 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프레시안(최형락)

매일 김용균 3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빡 않는 '선한' 대통령?

2020년 9월 10일 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 12월 10일 같은 회사에서 김용균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처참하게 죽은 지 꼭 21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부발전 사장에 대한 산재 사망사고 처벌은 무혐의였다.

지난 5월 13일 삼척시 삼표시멘트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죽었다. 이 공장에서는 지난해 1명, 올해 7월 등 연이어 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2명이 일해야 할 작업에 1명을 투입해 일어난, 명백한 기업의 살인 행위였다.

지난해 삼표시멘트의 산업재해 과태료, 즉 살인에 대한 벌금은 단돈 140만 원이었다.

명백히 노동부 관료와 검사, 판사가 공모해서 기업에 대해 살인 면허를 발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14년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자동 폐기되었다. 지금도 이 법은 여전히 여의도 어느 허공에선가 맴돌고 있는 중이다.

하루 3명 가까운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하루 40여 명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나라.

이게 전태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지난 50년 동안 싸웠다는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진면목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상화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지난 50년 동안의 산재 사망 노동자와 자살자들 영정 사진이 개미처럼 붙어 있는 초상화를 두 손 높이 쳐들어 올릴 것이다.

초상화의 뒷면에는 쪽방촌에서, 고시원 원룸에서, 지하 월세방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밑바닥 인민들의 얼굴 없는 사진들도 함께 붙어 있다.

한국의 손전화와 자동차, 반도체와 선박 생산이 전세계를 석권하고 있고, 코로나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K방역이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K팝의 선두로 전 세계 대중음악을 선도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자화상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나는 국가의 부와 국가주의가 과연 수많은 한국 청년들과 절대 다수 인민들의 나날의 삶을 얼마나 안전하고 풍성하게 했는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는 산재 은폐 사업주와 가담자 전원을 일벌백계하는 등 산재 사업장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1800시간대 노동시간을 실행에 옮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린다. 부당해고 노동자는 즉시 복직시키고, 90%의 중소 영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며 노동조합 가입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임기 내에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과연 지금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최악의 식량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전태일이 살았던 1970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55달러로 세계 119위였다. 가난한 나라였다.

2019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무려 3만2047달러나 된다. 한국은 세계 30위권 안의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지금 한국은 단군 이래 전무후무한 풍요를 누리는 잘사는 나라다.

그런데 이런 풍요는 그야말로 돈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한국의 풍요는 재벌과 언론, 엘리트 여의도 정치인과 고위 관피아를 비롯한 1% 상층 기득권의 풍요이지 결코 밑바닥 노동자들과 인민들의 풍요가 아니다. 2030대 청년들의 풍요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노동자 최저임금 시급이 커피 두 잔 값보다도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

불평등은 극에 달해 '헬조선'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그야말로 폭발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 이후 20대 청년들의 취업 기회는 아예 봉쇄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갈수록 정리해고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의 불평등이라는 속살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죽음 앞에 직면해야 하는 삶은 밑바닥 인생들이다.

55일 동안 이어진 역대 최장 장마는 우리에게 우리의 온몸을 휩싸고 있는 이산화탄소와 기후위기 현실을 강렬하게 일깨워 주었다.

기후위기와 재난은 곧바로 식량위기를 부른다.

1992년 구소련이 무너졌다. 그 직후 구소련은 거의 공짜에 가깝게 북한에 공급하던 석유를 더 이상 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은 화석연료 에너지를 논밭에 투입해 식량의 자급자족을 거의 달성한 석유농업 국가였다. 당연히 식량생산이 격감했다. 때마침 들이닥친 가뭄 피해와 수해가 겹치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북한은 1990년대 내내 최악의 아사 사태를 겪어야 했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그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

기후위기로 지금의 석유농업 식량생산 체제가 무너지면 식량수출국은 우선 신속하게 항구 봉쇄부터 한다. 식량위기에 대한 준비가 식량수입이라면, 이는 정말로 '밥이 없으면 떡을 먹으면 된다'는 식의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나 할 말이다.

2019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다. 쌀 자급률은 92.1%, 가축 사료까지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1%다.

한마디로 식량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참고로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90%대로 추정되고 있다.

적대적 공존에 속지 말자. 좌와 우, 문재인 정부와 삼성-조선은 한패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성장과 개발은 무더기로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굴뚝의 색깔이 붉은색이건 파란색이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은 똑같다.

성장과 개발은 이제는 처벌해야 할 범죄다. 이 기적의 행성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청소년들의 머리 위로 이산화탄소 집속탄 폭탄을 터뜨리는 행위다.

경제성장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관료, 언론인은 이제 이산화탄소 배출로 그 자신을 포함해 한반도 인민 전체의 목을 졸라 집단학살로 몰아가는 범죄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늘 쌈박질만 하는 정당정치가 사실은 여의도와 강남의 '스카이 캐슬'에서 적대적 공존으로 권력과 돈을 나누어 가지는 리얼리티쇼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엘리트 대의정'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언론과 최장집류의 헛소리 또한 적대적 공존에 기생하는 떡고물 챙겨 먹기 짓거리임도 알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과 기후위기, 불평등 앞에서 성장과 개발 패러다임에 갇힌 보수와 진보의 적대적 공존은 짝으로 묶인 범죄집단일 뿐이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적대적 공존의 이산화탄소 배출 공범자일 뿐이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와 삼성, <조선일보>는 한패다. 그 똑똑하고 잘난 상층 기득권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과 통장을 보라.

전태일 50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청년 김용균의 끔찍한 비명소리는 전선을 타고 끊임없이 환청처럼 우리의 귀를 후벼파며 이어지고 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피를 토하며 외쳤던 전태일의 절규는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기념행사에만 머무르지 못하게 하고 길거리로 나서게 만드는 가시방석이다.

세습 불평등과 양극화의 기득권 체제 개혁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좌우가 문제가 아니라 타이타닉호 내 상층과 하층으로 나뉜 상하 계급의 문제다.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서 터지고 있는 메탄가스 핵폭탄 앞에서 우리는 개혁을 훌쩍 뛰어넘어 혁명과 체제 전환에 나서지 않으면 그나마 생존할 가능성조차 없애고 만다.

각자도생은 불가능하다. 풀뿌리 인민들의 연대 연합을 통한 사고방식과 행동의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과 혁명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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