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2024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직접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아직 "헌법적 승리를 할 길도 남아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2020 대선 결과에 대해 법적 투쟁을 벌여 상원과 하원 등 의회에서 대선 승자를 결정지으려 획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선일 이후 침묵해오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서비스(SNS)를 통해 “끝난 게 아니다”라며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선거인단을 둘러싼 분쟁이 의회로 넘어갈 경우 결정권을 갖고 있는 상원의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들을 말이 아니다.
이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도 상원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 법적 시스템을 활용할 권한이 100% 있다"면서 대선 패배를 신속하게 인정하라는 민주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매코널은 재검표 등 적어도 5개 주의 개표 결과는 법적 분쟁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들은 이번 대선의 승부를 법적 절차로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프레시안>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나리오 '트럼프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비밀통로(Donald Trump's Stealthy Road to Victory)'라는 글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필자는 미국의 저명한 외교안보 전문가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교수다. 앨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비유로 미국과 중국이 원치 않는 전쟁으로 간다는 <예정된 전쟁>의 저자로 유명하다. 이 글은 지난 6일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더내셔널인터레스트(TNI)>에 게재됐다.
이번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고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결론을 내렸지만,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길 또다른 은밀한 통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년 1월 6일까지 대선의 승자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될 수 있다. 이날은 연방 의회 합동회의에서 선거인단 개표 결과를 승인하는 날이지만, 어떤 결정이 나오든 진 쪽에서 대법원으로 이 문제를 가져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분쟁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나의 결론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의 다음과 같은 분석을 반영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가 승리를 도모할 비밀통로는 분쟁이 있었던 역대 대선 중 특히 새뮤얼 틸든 민주당 후보와 러더퍼드 헤이스 공화당 후보가 맞붙은 1876년 대선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도 당시처럼 각 주는 1월6일 대선 당선자를 가리기 위해 의회에 보낼 선거인단을 결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 업무는 주 선관위가 맡아 선거인단 명부를 의회에 보낸다. 하지만 주의회가 투개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별도의 선거인단 명부를 보낼 헌법적 권한이 있다. 선거인단의 자격과 투표에 분쟁이 있을 경우 미국 수정헌법 제12조는 상원의장이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상원의장은 펜스 부통령이다. 펜스가 트럼프를 선택하면, 민주당은 대법원에 상소할 것이다.
만일 상원과 하원이 함께 모인 합동회의에서 유효표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거인단들로 인해 선거인단 과반을 뜻하는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후보 자체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하원이 투표로 당선자를 결정한다. 투표는 각 주를 대표하는 1표들로 행사된다. 현재 50개 주 중 26개 주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새 의회가 구성되어도 이 구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하원 투표를 해도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면 민주당은 대법원에 상소할 것이다.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결론을 반복해서 말하자면 수정헌법 제12조와 역사적인 선례로 볼 때 트럼프의 승리와 트럼프 재집권으로 갈 수 있는 은밀하고 복잡한 길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분쟁 끝에 트럼프가 승리할 확률은 20%로 본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수정헌법 제12조에 근거한 시나리오는 세간의 인식보다 공화당이 행동에 옮기기 쉽다.
-트럼프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끊임없이 우편투표의 합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대선 결과를 분쟁으로 가져가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지난 11월1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등 여러 주에서 대선일 이후에도 개표할 수 있도록 한 대법원 결정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선이 끝나는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대선결과에 대해 헌법을 동원해 다툴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보고받은 것이 분명했다. 지난 9월 26일 다른 곳도 아니고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트럼프는 "대법원에서 결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의회로 이 문제를 가져가면 우리가 유리하지만 의회에서 결정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주 당 한 표로 계산되는데 공화당이 26표, 민주당이 22표 정도 되기 때문에 우리가 유리하다. 기쁜 소식이다"라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선 결과가 하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과 은밀히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여러 주에서 선거인단 투표가 분쟁대상이 될 수 있지만, 펜실베이니아 주에 걸린 20명의 선거인단이 가장 유력하다. 1876년 대선 때도 선거인단 20명이 문제가 됐었다. 당시는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선거인단 전부, 그리고 오리건 주 한 명 등 4개 주에 걸쳐있었다.
-187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던 하원과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던 상원은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로 타협했다. 선관위는 하원, 상원, 대법원이 참여하는 초당적으로 구성돼 분쟁이 걸린 선거인단 표를 결정하기로 했다. 선관위의 결정을 두고 의회는 1877년 2월1일에 시작해 다음달까지 15번의 합동회의 끝에 헤이스 후보에게 한 표 차이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의회의 결정은 공화당이 대선승리를 가져가는 대신 미국 남부 흑인투표권을 보장하려는 정책을 중단한다는 이면협상의 결과였다.
-2020년 대선에서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민주당 소속)와 공화당이 다수인 주의회가 내년 1월6일 의회 합동회의에 서로 다른 선거인단 명부를 보낼 수 있다. 1876년 대선과 비슷하게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원과 민주당이 지배하는 하원이 선거인 명부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언론 환경에서 1876년처럼 이면협상으로 분쟁을 정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주당은 1876년 사태를 피하기 위해 1877년 제정된 '선거인계수법(Electoral Count Act)'이 주지사가 승인한 선거인 명부에 우선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현재 민주당 소속이기에 바이든에게 표를 준 선거인단 명부를 승인할 것이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주의회에 선거인 명부 승인 권한을 부여한 헌법 조항을 들어 선거인계수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의회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서 트럼프에게 표를 준 선거인 명부를 승인할 것이다.
-헌법에는 상원과 하원이 선거인 분쟁에 합의를 하지 못하면 해결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다. 헌법에는 대법원을 포함해 사법부에도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은 법과 역사적 선례를 근거로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상원의장이 상원과 하원이 대립할 때 선거인 명부를 확정할 유일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상원의장의 결정으로 선거인단 과반을 차지한 당선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하원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하원의 표는 한 주에 한 표씩이기에 공화당이 현재 26개 주에서 다수당인 현재의 구도를 유지한다면,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된다.
-또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1월6일 의회 합동회의에 민주당의 등원을 거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정헌법 제20조에 따라 그리고 의회가 정한 승계 순위에 따라 하원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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