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새로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미 간 주요 안보 현안이 트럼프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양측이 지난해부터 협상을 시작했으나 여전히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비 특별협정(SMA)을 비롯해 주한미군 주둔 문제, 전시작전권 전환 등의 논의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동맹국에 대한 일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10월 29일(현지 시각)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우리의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는,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이라며 주한미군을 볼모로 방위비를 대폭 인상하려는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정책을 펼칠 것임을 분명히했다.
지난 7월 27일(현지 시각) 민주당 정강위원회가 발표한 정책 요강에도 바이든 당선인의 동맹을 중시하는 입장이 드러나 있다. 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훼손했다면서, '동맹의 재창조'를 중요한 과제로 설정했다. 또 트럼프 정부의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훼손의 사례로 꼽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구성할 새 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역시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한국에 대한 압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는 지난 1월 15일(현지 시각) '중국과의 경쟁에서 국방부 역할'을 주제로 열린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한국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동맹국들과 비교했을 때 다른 어떤 나라보다 기여를 많이 하고 있다"며 "그들은 군사 작전 차원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지원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파트너다. 따라서 지나치게 압박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도 한국에 무리한 방위비 부담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부장관 재직 시절인 지난 2016년 4월 28일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한국 및 일본과 동맹 관계는 최강이며, 이들 국가가 미군의 현지 주둔을 상당히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블링컨 부장관이 이같은 발언을 한 데에는 당시 미국 국내 정치적 상황도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동맹국들로부터 더 많은 기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에 대해 반박하는 차원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맹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입장과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트럼프 정부처럼 '예년에 비해 5배 인상, 50% 인상'과 같은 파격적인 인상 조건을 내걸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 인상 자체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는 지난 10월 1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주관한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바이든 캠프에서 한국과의 방위비 등에 대해 큰 틀을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것 같지 않다"며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방위비 분담금이 증액돼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선 투표일 직후인 지난 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미 대선 이후 한반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연 전파포럼에 참석한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방위비 분담금을 50% 인상하는 식보다는 우선 이전 분담금 협정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박 교수는 바이든 당선인 역시 방위비 인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트럼프는 전례 없던 관세 카드까지 흔들면서 한국을 압박했는데, 바이든은 최소한 동맹을 존중하고 기본적인 협의를 통해 분담금 협상을 가져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위한 카드로 활용했던 주한미군 배치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 당선인과 민주당은 한국과 일본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바이든 당선인 캠프에서 외교 정책 고문을 맡았던 브라이언 매키언 전 국방부 수석부차관은 지난 10월 1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물론 매키언 고문은 "바이든이 취임하면 국제적 병력 태세 검토를 지시할 것이며 국내외 병력 태세의 어떤 조정도 검토 결과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주한미군 규모에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오늘날의 안보 상황을 보면 그가 중대 감축을 검토하리라는 것에는 매우 의문"이라며 그 수준에 대해서는 제한적일 수 있음을 밝혔다.
전작권 전환,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가능할까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주둔 이슈와 함께 한미 간 주요 안보 현안 중 하나인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에 있어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보다 더 신중하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0월 1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전작권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과정은 우리의 동맹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조기 전환을 강조한 서욱 국방부 장관과는 다소 다른 입장을 내놨다.
또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전작권 전환을 위한 3단계의 검증 평가 중 2단계 평가인 완전운용능력(FOC) 검증과 관련, "FOC 검증을 포함한 미래연합사로의 전작권 전환의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별다른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전시작전권을 전환한다는 이같은 합의는 바이든 당선인이 부통령을 지냈던 오바마 정부 때 이뤄졌다. 2014년 10월 23일(현지 시각)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2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제46차 SCM을 통해 "지속적인 북한 핵 미사일 위협을 포함한 역내 안보환경의 변화에 맞춰 한미 양국은 대한민국이 제안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명시하면서 그 구체적인 시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양측은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한미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구비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능력 구비 등의 조건이 완결됐을 때 전작권 전환이 가능하다고 합의했다. 이 사안은 한국 측의 제안이었다.
당시 한미가 시기가 아닌, 조건에 따라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기로 합의를 맺은 이유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 핵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합의를 했던 바이든 당선인 및 민주당이 2014년보다 북한의 핵 고도화가 더 진행된 2020년 현재 상황에서 이전 합의를 뒤집고 전작권 전환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자신들이 정부를 구성했을 때 세웠던 기준에 따라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볼 가능성도 있다.
물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전작권 전환은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려웠던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해외 주둔 미군의 전력을 조정하고 있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신호가 읽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SCM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라는 문구를 명시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주둔 규모를 연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군사 및 대외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동북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규모 및 방식을 변화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이에 전작권 전환 역시 전 세계 미군의 배치 및 주둔 방식의 변화에 맞춰서 이뤄질 수밖에 없고, 이런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대목은 아니기 때문에 전작권 전환은 그만큼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이 가능해 보인다.
박원곤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기본적으로 '왜 미국이 한국을 지켜줘야 하는가'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연내 전작권 전환도 가능했지만, 바이든은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 정책에 따라 현지 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며 "미국은 한국을 동맹의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만큼, 전작권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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