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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관아터인 내아‧동헌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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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관아터인 내아‧동헌 발굴

“명량대첩 전략회의 여기서 열렸다”

명량대첩 전승지 해남 전라우수영의 중심 관아터인 내아와 동헌, 진출입 시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전남 해남군은 올 5월부터 국가 사적 제535호인 해남 전라우수영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해남 전라우수영 원경ⓒ해남군

이번 발굴조사 결과 중심 관아는 웅장한 규모의 축대, 담장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우수사가 기거했던 관사인 내아(內衙)와 집무실인 동헌(東軒) 건물 일부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관아로 향하는 도로망의 진출입 시설과 건물 축조를 위한 토목과정과 중심 관아 영역 밖의 건물 등도 확인됐으며, 우수(右水)명 초기 백자와 함께 명문와, 막새류, 상평통보 등 유물 수백여점이 출토되었다.

해남 우수영은 조선시대 전라우수영이 위치한 곳으로, 세종 22년인 1440년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년)까지 약 450년 이상 유지된 군사적 요충지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도 연해지역 14관을 관할하는 본영으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의 대승을 거둔 울돌목 해협이 위치해 있다.

내아(內衙) 영역은 명량해협의 바다가 조망되는 능선 일부를 절개‧성토해 대지를 조성한 후, 외곽으로 계단식 축대와 담장을 둘러 주요 건물의 위상을 극대화했다. 초축 건물 2동은 온돌이 있는 구조로 15세기 후반에 큰 규모로 축조되며 16~17세기에는 대대적인 중창(重創) 과정을 통해 4동으로 확대된다. 중심 건물은 4칸 규모의 ‘ㅁ’자 형태로 한 가운데 마당(중정 中庭)을 갖추는 구조로 확인되었다. 주변 건물은 창고 같은 부속시설로 판단된다.

동헌(東軒) 영역은 현재 건물지 일부와 축대, 진출입로가 확인되었다. 건물은 잔존 5칸으로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행각(行閣 건물 입구 또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복도) 건물로 판단된다. 축대의 남쪽은 점판암재로 높고 웅장하게 축조하였으며 동쪽은 계단식으로 높게 하여 다른 영역과 구분했다.

▲동헌지 축대 및 행각으로 추정된 곳ⓒ해남군

진출입 시설은 우수영 내의 도로망 중심축으로 한곳은 남쪽 객사로, 다른 곳은 동문으로 향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동쪽 주 출입로는 근대까지 이용했던 곳으로 명량대첩의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수많은 장수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 위해 행차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출토된 유물인 분청 및 백자, 명문와, 동전 등을 통해 건물의 연대 및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초기 백자는 중앙 관요에서 생산한 것으로 여러 점에 우수명이 새겨져 있으며 지방 관요 출토품도 여러 지역에서 상납된 것으로 파악된다. 기와류는 막새류, 연호명 명문와((崇禎...六十...1688년 제작) 등이 함께 출토됨으로써 건물의 연대와 성격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발굴조사로 명량대첩의 배후인 전라우수영의 중심 관아터에 대한 실체가 확인되면서 전라우수영 경관 복원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해남군은 이와 관련 오는 11월 10일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한편 명현관 해남군수는 “전라우수영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으로서 해전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이순신 장군 유적의 중심지”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전라우수영의 전모를 추적하여 역사적 위상을 제고하고 대국민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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