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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환경부가 개발의 면죄부입니까?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37

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연재 바로가기

지난 일요일(10월2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송악산 자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정제주 송악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국감기간 내내 제주도 난개발이 이슈가 된 탓인지, 대권후보 지지율 1%의 힘인지, 원희룡 도지사는 갑자기 이런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주 난개발의 마침표를 찍겠다며 얼버무린 다른 사업과 달리 비자림로 공사는 법정보호종 보호와 환경저감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겠다며 분명한 강행의사를 밝혔습니다. 일면 “보호”와 “저감”이라는 단어가 비자림로 공사의 방향전환처럼 비치지만, 실상은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혼돈을 주는 원희룡 도지사가 내세운 단어, “법정보호종 보호와 그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법정보호종을 내쫓겠다는 겁니다. 말은 이주이지만 지금까지 이주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걸 보면 쫓아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겁니다. 포획해서 이주시키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멸종위기종 보호 대책의 실체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합법적인 일일까요? 먼저 대체서식지라고 부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에 동물들이 이주해서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고민해볼까요? 그리고 그 법적 근거를 조금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20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한국사회에도 갑자기 노숙자가 급증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직장에서, 가정에서 지내던 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이들을 위해 무료 급식소와 쉼터가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아는 분이 노숙자 쉼터를 연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어느 동네에 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왜 이런 동네에 터를 잡았느냐고 묻자 저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시설이 아니라 자유라고 했습니다. 관공서에서 노숙자 쉼터라고 건물을 짓고 문을 열어봤자 노숙자들이 찾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규율대로 움직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허름하고 좁더라도 각자 개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곧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는데 추위라도 피해야 살아가지 않겠느냐는 말씀에 노숙자에 대한 인간적 이해 없는 피상적 접근은 말짱 꽝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법정보호종을 이야기하면서 왜 노숙자 이야기를 하냐구요? 인간에 대한 몰이해로, 실효성 없는 건물만 덜렁 지어놓고 대책을 마련했다며 생색을 내는 것보다 훨씬 더한 정책들이 멸종위기종들에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종의 법정보호종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생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애당초 대체서식지를 만들어 이주시키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서 2018년 발간한 “멸종위기종 가이드라인 마련 및 대체서식지·생태통로 생태계 유지 기능 분석”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은 가능한 현지 내 보전을 우선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발간한 “생물서식(대체서식지) 제고를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연구”(2017.11) 보고서에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대체서식지를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서식지를 보전하라는 것입니다. 비자림로를 조사한 생태학자들도 입을 모아 보고서에 기록해뒀습니다. 비자림로의 멸종위기종에 대한 대책은 서식지를 보전하고 개발을 중단하는 것 이외에는 대책이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왜 이런 전문가들의 말은 무시한 채 대체서식지라는 이상한 괴물이 등장했을까요?

동물들에게 “지금부터 이곳은 도로 공사로 파괴될거니까 내일부터는 저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집으로 옮겨가서 살아. 진짜 너희 집이랑 비슷하게 만들어 뒀어”라고 하면, 동물들이 “오케이. 고마워. 내일부터는 그곳에서 살아볼께!”라고 할까요? 이것이 상식적인 생각일까요?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대체서식지가 공사 진행을 도와주기 위해 만든 수단일 뿐이라는 걸 눈치챘을 겁니다. 그런데도 원희룡 도지사는 한편에선 청정제주를 내세우며 비자림로 공사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하겠다고 합니다. 도로가 없는 곳도 아니고,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사업이 필수불가결한 일일까요? 그래서 멸종위기종을 쫓아내서라도 공사를 강행해야 할까요?

제주도가 막무가내로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환경보전을 우선으로 내세우는 환경부가 제 역할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묻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마지막에 믿을 곳은 환경부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환경부에 읍소라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멸종위기종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환경부 공무원들 명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명함의 한 면에는 멸종위기종을 다른 면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따위를 적어둡니다. 명함만 보면 멸종위기종은 절대 보호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멸종위기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홍보하는 환경부의 진짜 행동은 어떨까요?

비자림로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소규모환경영향평가라는 것을 사업자인 제주도가 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당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멸종위기야생동물은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습니다.

▲비자림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 결론 부분

그런데 비자림로 공사 시작 이후 십 여종의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었습니다. 시민들은 환경부에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가 거짓으로 작성되었다고 판정을 의뢰합니다. 그랬더니 환경부는 거짓이 아니라 부실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고의로 허위기재를 한 것이 아니다. 일부 자료가 부실한 점은 인정이 되지만 거짓은 아니라는 겁니다. 조사시점이 5년 전이니 그때는 없던 멸종위기종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은 움직이니까 그때 없던 동물이 올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는 현장조사를 비롯해 문헌조사, 탐문조사 등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절차로 해당 지역에 누락되는 동식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자림로 일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멸종위기종인 팔색조나 애기뿔 소똥구리 등은 예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탐문조사를 하지 않았거나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미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평가서를 작성한 업체는 거짓이 아니고 부실로 평가서를 작성했다고 판정받아 단, 3개월 영업정지 이후에 지금도 여전히 환경영향평가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비자림로의 애기뿔 소똥구리를 지키자는 피켓 ⓒ조아해
▲비자림로에 서식하는 팔색조 ⓒ나일 무어스

환경부는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판단을 하는 걸까요? 아마 대전제가 “우리는 개발의 보조수단이지 개발 여부를 결정하는 곳은 아니다”라는 입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뭐 이런 평가에 억울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환경부가 해 온 행태를 보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개발을 막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법을 해석한 적이 있었습니까? 오히려 개발을 부추기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일례로 지금 비자림로에서 일명 환경저감 대책으로 시행 중인 대체서식지를 법의 관점에서 살펴볼까요. 행정은 법에 근거해서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체서식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법은 아예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환경부에서는 “대체서식지 조성·관리 환경영향평가 지침”이라는 걸 억지로 만들어 개발업자들의 개발 편의를 봐 줘왔습니다. 하지만 이 지침마저 폐기 기한이 2015년 12월 31일로 이미 시효가 끝난 지침입니다. 그러니까 법적 근거가 너무나 미약한 대체서식지를 내세우는 건 개발업자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한편에선 근거도 없는 대체서식지를 만들면 멸종위기종이 서식해도 개발을 용인해주면서 다른 한편에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멸종위기종을 복원하겠다고 합니다. 비자림로 일대에 대량 서식하는 애기뿔 소똥구리는 거들떠보지 않은 채, 애기뿔 소똥구리 증식복원 사업이라면서 예산을 들여 제주도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이 매년 몇 백 마리의 애기뿔 소똥구리를 자연 방사하고 있습니다. 애기뿔 소똥구리의 서식지가 파괴되었는데 아무 곳에나 풀어준다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전국에 흔하게 분포하던 애기뿔 소똥구리가 제주지역에서만 흔히 볼 수 있다는데, 이제는 제주에서도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거짓이나 부실로 환경영향평가를 했거나,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라면 해당 사업을 막아야 하는 것이 환경부입니다. 그 제도가 환경영향평가법입니다. 이렇게 법에 따라 환경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에 대한 오래된 의구심이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전국 곳곳의 현장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라고 많은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제주 성산주민 김경배씨는 목숨을 내놓더라도 제주 제2공항에 대한 제대로 된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다섯 번째 단식을 강행하며 추운 날씨에도 세종시 환경부 청사 앞에서 노숙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이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감시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그나마 환경부가 조금이라도 살펴보게 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개발을 찬성하는 쪽에선 반대하는 이들이 우겨서 공사를 못하게 됐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 또 다른 현실입니다. 환경부의 엉터리 잣대가 만들어낸 사회 갈등입니다. 이미 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환경부 공무원의 선의를 기대하며 우리 모두의 자산인 환경을 맡길 순 없습니다.

멸종위기종 발견으로 인한 비자림로 공사현장의 사업중단은 당연한 일임에도 영산강유역환경청의 담당 과장은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심지어 청장은 자신은 공사를 중지시킬 권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법에는 공사 중지와 원상복구까지 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국 최고의 생태도로가 되도록 자신들의 자존심을 걸겠다고 했지만 지금 제주도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이 하는 꼴을 보니 말짱 꽝입니다.

비자림로에서는 애기뿔 소똥구리를 포획해서 이주하는 용역이 11월 15일까지 진행 중입니다. 제주도는 애기뿔 소똥구리 전문가 하나 없는 개발 전문 엔지니어링 업체에 이 용역을 맡겼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용역이 진행되는 기간에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선 자신들이 증식한 애기뿔 소똥구리 300마리를 제주도에 방사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쇼가 없습니다.

언젠가 모 환경부 장관이 쫓겨났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환경부의 가치를 지키려고 일을 열심히 해서 결국 환경부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정설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지금의 환경부 장관은 쫓겨나지 않으려고 환경부의 본질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자리 보존하는 이들이 똘똘 뭉쳐 있으면 말뿐인 환경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숲을 지키겠다고 골프장을 반대하던 고양의 환경운동가들이 징역형을 구형받았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환경을 지키려는 사람은 감옥 가거나 목숨 걸고 굶어야 하는 이런 세상에 언제까지 살아야 합니까? 팬데믹을 얘기하고 기후위기를 떠들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는 옛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좀 새로워졌으면 합니다. 환경영향평가를 엉터리로 한 업체는 퇴출시키고 해당 사업은 중지하도록 법을 강화해야 합니다. 멸종위기종이 나타나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해야 합니다. 환경영향평가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하자고 몇 년째 얘기하면서 왜 손대지 못합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건 개발업자들이 떠나는 게 아니라 속 보이는 정의를 외면하는 겁니다. 내일이 사라지는 겁니다!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도 환경영향평가서도 허위 작성을 근거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중 하나, 천연기념물544호 강정담팔수는 실제 위치가 공사예정지 아래 200미터 지점에 있고 입구쪽에 위치를 가리키는 간판이 있음에도 공사예정지 위쪽 450미터로 조작되었다. 공사 가부가 결정된 700미터 거리 오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엄문희
▲제주도관광공사 등 강정마을 소개의 글에 오래전부터 등장하는 원앙이 환경영향평가 당시 제대로 조사되지 못했다. 그 결과 공사 시작 후 원앙이 의문의 떼죽음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는 일대를 시민이 모니터링하며 환경 훼손 감시에 나선 상태다. 왜 이런 일이 시민의 몫이 되어야 하는건가 ⓒ엄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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