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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망치지 않는 여행을 선택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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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망치지 않는 여행을 선택할 권리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36

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연재 바로가기

40개 나라의 160여 개 도시와 마을을 여행하며 마음에 가장 진하게 남는 여행을 떠올리면, 대부분 그곳까지 찾아가는 여정이 참으로 힘들었던 곳들이다. 30일 여일 동안 두 발로 지구를 굴려야 닿을 수 있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반나절 출렁거리는 배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몰디브의 작은 섬마을, 그리고 인도 히말라야의 벽촌마을 칼랍과 같이 말이다. 특히 칼랍은 델리에서 8시간 버스를 타고 리시케시에 도착하여 하루 묶고, 다음날 버스를 타고 다시 데라둔으로 도착하여 지인의 집에서 또다시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지프를 타고 유타란찰 국립공원으로 간 다음, 4시간 산행을 한 후에 밤 9시가 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찾아가는 길이 어려웠기 때문’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곳에는 먼 길을 거쳐 도착한 손님들을 맞아주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가 있었다. 정말 많은 여행을 하고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자꾸 사람들이 떠오른다. 유명 미술관, 좋은 경치보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났던 기억, 환대의 마음, 그런 것들이 더 진하게 남아있다. 칼랍에서 마을사람들과 먹고 생활하며 1주일을 보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인도라는 단어만 보이면, 칼랍 사람들이 내게 전해주었던 선한 환대의 얼굴들이 가장 먼저 선명히 떠오른다.

그러나 지난 몇 년 한국에서는 여행자에 대한 환대의 마음보다는 질책과 원망의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모두의 발을 묶어버린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 작년까지 한국의 관광은 승승장구 중이었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한때 해외 입국자 수가 400만 명 가령 줄기는 했으나, 2018년 다시 빠른 회복세를 타고 2019년에는 1750만 명의 최대 입국자 수를 기록했다. 한국의 관광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되었는지는 그래프를 보면 더 확연히 느껴진다.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관광 통계를 보면 1975년 63만 명이었던 해외 입국자 수는 25년이 지난 2000년에야 500만을 넘겼다. 그러나 단 12년 만에 580만을 더해 한국 관광객 1,100만의 시대를 맞는다. 그리곤 또다시 단 4년 만에 610만을 더해 1,700만이 넘는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에 더해 국내 관광객 또한 꾸준히 늘어 그야말로 한국은 관광 대국의 시대를 맞았다.

한국 관광 해외 입국자수

언론은 늘어가는 관광객 수를 찬양했다. 관광은 지역의 개발을 성사시키는 데는 무적이었다. 지자체는 1,700만 관광객을 자신들의 도시로 불러들이기 위해 서둘러 관광 자원들을 재정비하고 지역을 개발시켰다. 문화 재생,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크고 작은 마을 개발 사업의 목표에는 ‘마을 여행 개발’이 단골로 등장했다. 미디어는 여행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SNS에는 관광객들이 서로 자신들의 여행을 자랑하기 바빴고, 다른 이들이 여행하고 남긴 감성 사진을 쫓아, 그곳이 어느 작은 마을에 있던, 어느 작은 골목에 있던 찾아내어 자신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올리기 바빴다.

그러는 동안 주민들의 시름은 늘어갔다. 별안간 관광지가 되어버린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집 앞에서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거나, 관광객들이 버리고 가는 골목의 담배꽁초와 쓰레기 때문에 고통스러워 민원을 넣었다. 교통 체증에 주차 문제까지, 사사로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점점 늘어갔다. 그러다 지쳐서 마을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스스로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형편이었다. 관광 상권이 되어버린 지역의 땅값은 급등했고, 그와 함께 월세도 올라 채소 가게, 세탁소, 철물점 등 동네의 삶을 함께 나누던 영세 자영업자들과 월세를 사는 주민들은 쫓겨나듯이 마을을 떠나야 했다. 관광의 개발 속도가 빨랐던 만큼, 주민들이 겪는 삶의 변화와 피해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세상은 ‘관광이 개발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관광은 설비가 필요하지 않고, 오염도 없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굴뚝 없는 공장이다.’라는 최면에 걸려있었다. 그러나 관광 찬양론을 깨우는 단어가 드디어 나타났다. 바로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이었다. 관광지의 수용력을 벗어나는 너무 많은 관광객이 방문으로 인한 부작용과 주민들의 피해 및 사회문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조건 없는 관광의 양적 팽창이 결코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12년 영국의 해롤드 굳윈(Harold Goodwin) 박사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말은 이미 바르셀로나, 베니스, 암스테르담, 파리 등 해외 유명관광지에서도 같은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2016년 서울공정관광국제포럼에서 해롤드 굳윈 박사와 함께 한국에서도 오버투어리즘 논의가 시작되었고 북촌, 이화마을, 전주, 부산 감천마을, 흰여울 문화마을 그리고 제주까지 그간 주민들이 받아왔던 고통은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로 발화되기 시작되었다.

주민이 겪는 오버투어리즘 문제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여행자로서 ‘너무 많은 관광객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정의되는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좀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 문제에 하나의 원인으로 일조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는 관광객은 이미 환대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증오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는 관광객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플랜카드가 걸리거나 그라피티를 그리고, 집회하는 일들도 일어났다. 오버투어리즘의 분노가 관광객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들은 ‘육지것들….’이라는 말이 괜스레 떠오른다. 그렇다면 정말 관광객이 문제이자 해결책일까?

주민이 화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정적인 주거 생활을 침해받기 때문이다. 아직 나의 삶의 범위, 주거의 영역을 관광객에게 내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관광지가 되어버렸거나 또는 예상했던바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빨리 빼앗겨 버린다면 나 또한 분노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지역이나 마을이 관광지가 되는 과정을 여행자가 부추길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관광지로 만들어 가는 계획과 선택 과정에 여행자가 개입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주민 또한 그 과정에 개입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관광과 여행은 먹고, 자고, 재화와 서비스를 사는 소비행위로 점철되어 있다. 즉 관광의 개발은 자본의 흐름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국가와 정부의 계획에 매우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관광은 주민의 주거권과 안정적으로 살아갈 권리보다 개인의 재산과 자본의 권리를 우선하는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적 힘을 바탕으로 2000년대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개발되어왔다. 그러니 오버투어리즘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돈을 가져다 주는 관광 개발 광풍에 주민의 의견따위는 받을 시간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크다.

도시와 마을을 변화시키거나 개발하는 것에 대한 결정권은 누구의 것일까?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그 곳의 문화와 환경을 만들어 온 사람의 것인가? 아니면 그저 땅 주인의 것일까? 아니면 국가의 절대적 권력인 것일까? 자연 생태계는 그물망 처럼 연결되어 있어 한 지역의 개발은 주변 지역 생태계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역의 개발로 인한 주변 생태계의 변화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공간, 생태계는 그저 토지 소유자의 것이 아니다. 이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모두가 함께 만들고 지켜온 공유재이다. 그러니 이 공유재를 어떻게 나누고 변화시킬지는 주민, 자본, 정부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제주도가 67만 제주도 인구에 1,500만 관광객을 들이게 될 때까지 도민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이 되었는지, 여행자와 공유재를 얼마나 나눌지 고민하고, 여행자를 환대로 맞이할 마음의 준비 시간은 주었는지 묻고 싶다.

이미 쓰레기, 오·폐수, 난개발, 땅값 상승, 교통 혼잡, 경관 사유화, 마을공동체 해체 등 모든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안고 있는 제주도에 이번에는 국가가 나서 제주 제2공항을 짓겠다고 한다. 이번에도 관광객을 앞세워 1,500만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2,250만(공항 이용자 4500만)이 제주에 오고 싶어 할 것이라고, 거대한 숫자를 제시하였다. 그러니 이 모든 관광객이 편히 제주도에 올 수 있도록 제2공항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자인 나는 더이상 제주를 망가트리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 성산의 마을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지어진 공항으로 편하고 빠르게 제주도에 도착하길 원하지 않는다. 기꺼이 2박 3일 고행을 하여 인도 칼랍에 올라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기억하였듯, 성산의 사람들을 만나고 기억하고 싶다. 비자림로와 금백조로의 생명을 죽이고 넓혀진 도로를 타고 공항으로 가고 싶지 않다. 가야 할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 혹여 비행기 수가 적어(ADPI 보고서를 통해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빠르게 올 수 없다면, 다음 비행기를 기다릴 것이고, 인천이든 목포든, 부산이든 찾아가 배를 타고서라도 제주로 갈 수 있다. 입도객을 제한해야 한다면, 감사히 기다렸다 갈 것이다. 그대들은 마을 사람들의 말마따나 제주를 아껴만 주시라. 제주를 지키는 여행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여행자는 기꺼이 그 여행법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니 또다시 제주를 망치는 죄책감을 여행자에게 전가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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