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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노동당·보수당 양립하는 영국 정치를 선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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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회찬, 노동당·보수당 양립하는 영국 정치를 선망하다

[음식天國 노회찬] <16> 배우들의 아지트 <성북동 막걸리>

1.

"정치인에게 낙선은 유배를 가는 것과 같다."

노회찬은 현실 정치인의 숙명을 잘 통찰하고 있었다. 선거를 통해 부름을 획득하는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2008년부터 노동진영의 부름을 받아 창원으로 내려간 2016년 총선 이전까지 8년 동안 노회찬은 서울에서 5번의 선거(정의당 당대표선거 포함)를 치러 4번 '유배형'에 처해졌다. 한번의 '입조'(2012년 19대 총선 노원병)마저 불과 8개월여에 그치고 말았으니 그가 유배지를 떠돈 기간은 7년4개월이다. 품은 뜻이 클수록 유배지의 시간은 더디 간다. 노회찬은 그 시간의 태형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지인들의 따뜻한 격려, 동지들의 굳센 믿음,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안의 술잔이 낙백(落魄)의 시간을 떠받친 아슬한 버팀목이었으리라.

박규님 노회찬재단 운영실장이 '음식천국 노회찬'팀에게 건넨 그 많은 주점과 밥집 주소들은 유배지에서 보내온 편지들처럼 유형의 시절을 떠올려 준다. 지역구 노원에서 중앙정치의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도성 북쪽 길목에도 그런 주소지가 하나 있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생선구이 막걸리 집 <성북동 막걸리>.

전철 4호선을 타고 대학로를 지나면 한성대입구역이다. 혜화동, 성북동, 삼선교, 동소문동 등 한양도성 북쪽의 유서 깊은 동네들이 주변을 이루고 있다. 5번 출구 쪽이 도성 방향이고, 반대편 2번 출구 쪽은 성북천이 청계천으로 흘러가는 방향이다. 이 성북천변에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선술집과 밥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먹자골목을 이루고 있다. 근래에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싼 월세나 전세를 찾아 낙산을 넘어온 대학로 연극 연습실, 배우 지망생들이 모여들면서 예술적인 분위기도 짙어져 가는 곳이다. <성북동 막걸리>는 이 천변에서 특히 "배우들의 아지트로 꼽힌다". 독립영화 감독이기도 한 주인장 부부가 11년 전 문을 연 뒤 동료 선후배 '쟁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노회찬도 노원과 여의도를 오가는 동안 가끔 지인들과 <성북동 막걸리>에 들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재기의 기운을 충전하곤 했다.

ⓒ 일러스트 김경래

2.

기백만큼은 충천한 젊은 예술가들 틈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을 이루어주었을 노회찬을 그리며 몇몇 사람들과 <성북동 막걸리> 집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면면을 소개한다. 2007년 말 비례대표 임기를 마치고 진보정치의 서울 지역구 의원 배출 교두보 마련을 위해 노원에 정착할 때 노회찬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당시 지역시민 활동가 두 분(이지현 당시 마들주민회 대표, 박윤경 당시 마들여성학교 교장)과 성북구청장을 재선하고 지난 4월 21대 국회의원(민주당 성북갑)이 된 김영배 의원이 아내 이지현 씨의 '부군 자격'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 근무 시절 '노무현 키즈'로서 노회찬의 정치를 존경했던 정치 지망생"이기도 했다. 2010년 7월 김 의원이 성북구청장에 당선된 직후 노회찬이 마련해준 따뜻했던 축하 자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멀리 영국 런던에서 오신 강한록 박사(영국 의회 산하 싱크탱크인 '빅 이노베이션 센터'의 펠로)는 2014년 동작을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에게 석패한 노회찬을 영국에 초청해 강연 기회를 마련해 준 뒤 노회찬 사람의 일원이 된 분이다. 민환기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과 최우근 작가도 자리를 함께 했다. 노회찬과 생전에는 면식이 없었으나,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 예정인 첫 노회찬 전기영화의 감독과 시나리오를 맡은 분들이다. <성북동 막걸리> 집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모인 분들이 다양하다보니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 바다로 가다가 때론 공중에 흩어져버리기도 하였지만, 노회찬을 추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선 기쁜 소식인 노회찬 전기영화 제작 이야기부터. 영화사 명필름(대표 이은)과 노회찬재단이 공동제작하는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가제)>가 내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2021' 지원작으로 선정돼 제작에 들어간다고 한다. 메가폰을 잡게 될 민환기 감독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2009), <제주노트>(2018)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온 다큐 디렉터. 주인장이 오늘의 막걸리 1번으로 추천한 '송명섭막걸리'로 참석자 일동이 축하의 건배를 했다.

- 기대된다. 어떤 영화가 나올지

"심사를 받을 때 물어보시더라. '노회찬 유명세를 업고 거저먹으려는 거지?' 나 역시 그럴 생각은 없었다. '사회주의자 노회찬'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그에 관한 책과 자료들을 읽다 보니, 노회찬은 일관되게 사회주의의 가치를 우리 사회에 실현해 보려고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국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사람이 동시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걸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1억 원을 주겠다고 하시더라. 얼른 받았죠."(일동 박수)

- 좀 우문이지만, 이 연재로서는 본질적인 질문 같은데, 사회주의자가 미식가여도 되는 건가?

"왜요? 안 되나요? 제가 영국에 유학을 갔던 해 영국 노동당이 이런 말을 하고 있더군요. "크리스마스엔 빵보다 포도주를…." 마르크스가 천착한 이론 가운데 3분의 1이 미학 이론입니다. 사회주의와 음식이야말로 오히려 분리될 수 없어요."

"이런 점도 영화에서 다뤄졌으면 한다. 극우적인 성향의 사람들까지도 노회찬을 좋아하는데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과거 언젠가 자신이 가졌던 모습, 또는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던 모습, 그런 걸 노회찬에게서 보는 게 아닐까?"

"연극을 보다 보면 잘 못 만들었거나 재미없거나 나쁘거나 한데도 별로 욕을 안 하는 연극이 있어요. 뭔가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죠. 이걸 나쁘게 얘기하는 순간 자기 스스로를 욕하는 게 되는 상황 같은 거. 노회찬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연극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도 이 영화에 '고용'된 뒤 그에 관한 기록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노회찬이란 사람은 남을 원망하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해야 나의 비전을 좀 더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자기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만큼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도 클법한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그런 면이 저는 참 멋있게 느껴졌다. 저도 예술을 한답시고 하지만, 자기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게 그렇게 쉬운 경지가 아니거든요."

"고(故) 정운영 선생과의 인터뷰에서 정 선생이 국회의원이 된 노회찬에게 배지를 단 뒤 달라진 것은 무엇이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변하지 않은 것은 목표이고 변한 것은 외모'라는 답변을 하고 있어요. 저는 노회찬이 견결한 이념을 지닌 사람이면서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와 위트를 잃지 않는 여유로운 지성인이었다는 점이 특히 좋았어요."

- 어떤 영화가 나올지 참 기대가 됩니다.

"내년 전주영화제 때 '가맥집'에서 다시 모이지요."

"제가 전주시장님과 좀 친해요. 저녁 자리에 꼭 모셔오겠습니다."

"이렇게 짐이 무거운 줄 알았으면 감독 안 한다고 했을 거예요."

ⓒ노회찬재단

3.

노회찬이 가장 선망한 정치는 노동당과 보수당이 양립하는 영국 의회정치이다. 특히 노동당 역사를 깊이 공부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첫 해외 강연(1996)이 옥스퍼드대학 코리아포럼 초청 강연이었고, 강 박사 주도로 이뤄진 2014년 9월 영국 교민회 초청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런던대 등의 강연도 노회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국 방문이었다.

당시는 해외교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고 18대 대선 경합(문재인-박근혜)으로 한국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교민사회에서도 충만해진 때였다. 강 박사는 1999년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해 정치학을 공부했다. 노회찬은 동작을 보궐선거에서 3파전 끝에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에게 929표 차로 아쉽게 패한 상태였다. 선거에 졌음에도 초청 강연이 예정대로 이뤄진 것은 그만큼 노회찬과 진보정치에 대한 영국 교민사회의 기대와 관심이 컸음을 의미한다. 강 박사 부부의 주도로 교민회에서는 노회찬을 위한 정치후원금 모금도 이뤄졌는데, 노회찬은 이 돈을 고스란히 당에 맡겼다. 강연 주제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와 진보정치의 역할'. 박근혜 정부의 등장에 실망한 교민사회 내 진보 지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강 박사의 부인으로 초청 강연을 준비했던 김미희 씨는 당시 교민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진보정치와 정의의 상징인 노회찬 의원을 초청하여 직접 듣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감사하다. 영국에서도 관심 높았던 동작 보궐선거 이후 노 의원의 근황을 많은 교민들이 정말 궁금해해서 초청하게 되었다. 노 의원을 존경하는 팬들이 교민사회에도 많다."

런던 근교 뉴몰든 지역에는 2만여 명의 교포와 유학생 등이 한인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교민 가운데는 6.25 한국전쟁 언저리에 시간이 멈춘 듯한 사고 방식의 교민이 있는가 하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민주진영 지지자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 타계 때 분향소를 차리자 2만여 한인교포 중 조문객이 1만여 명에 이르렀다. 강 박사도 이때 일을 계기로 교민사회에서 정치활동 아닌 정치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위해 '나꼼수'를 초청했을 때 초청 강연 헌금을 거절한 식당 주인이 2년 뒤 노회찬 초청 강연 때는 1000만 원이란 큰돈을 선뜻 내놓았다. '아니, 사장님, 노회찬은 빨갱이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노회찬 같은 빨갱이는 필요해' 그러시더군요. 옥스퍼드대에는 20여 분의 한국 포스트닥이 계셨는데, 이분들도 노 의원님과 2시간 동안 간담회를 한 뒤 놀라워했다. 생각밖으로 대단히 합리적인데다 인문사회적인 소양이 풍부한 게 웬만한 영국 정치인 못지 않았다는 거다. 케임브리지대 강연 때는 보수성향의 포닥 한 분이 강연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강연 당일 날엔 피켓 시위까지 했다. 강연이 무사히 끝난 뒤 유학생 대표가 제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노회찬이 맞고 포닥이 틀렸다.'"

- 영국은 1997~2010년 노동당이 집권했고, 이후 10년째 보수당이 집권 중이다. 영국 민심의 보수회귀인가?

"영국은 우리가 책에서 알고 있는 사회주의 이념의 많은 부분이 이미 현실 사회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는 나라다. 보수당은 이름이 보수당이지 정책은 대단히 탄력적인 정당이다. 예를 들어 영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책이 교육 분야인데 이걸 주도하고 있는 정당이 바로 보수당이다. 영국은 최고 명문대인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신입생의 60% 이상을 전체 고교의 9%에 불과한 사립학교 출신이 차지해온 나라다.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이걸 바꾸고 있다. 신입생 중 사립 출신이 50%를 넘으면 그 대학 지원예산을 절반으로 깎아버린다(영국은 기본적으로 모든 대학이 국가의 예산 지원을 받는 국립 형태이다). 이 결과 혁명이 일어났다. 옥스퍼드대 학생의 68%, 케임브리지대 학생의 70%가 공립고교 출신이다. 옥스퍼드 로열아카데미의 레이디 마가렛홀은 내년부터 아예 사립고교 출신을 받지 않기로 했다. 영국은 요즘 사립에서 공립으로 전학을 가고 있다."

- 놀라운 일이네요.

"'출발선이 다른 사람을 같이 평가할 수 없다', 이게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영국 보수당을 우리나라 국민의힘 같은 정당으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보수당에는 노동당 못지않게 진보적인 의원들이 많다. 이들이 이 교육 정책을 주도한다. 대체로 자수성가한 사람들, 공립 출신들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명문사립 출신이지만, 부잣집이 아니라 장학생으로 갔다. 총리 보좌진들은 총리만 빼고 죄다 공립고교 출신이다. 상대적으로 노동당이 더 명문사립 출신이 주도한다. 머리는 좌파, 몸은 대(大)부르주아·귀족 집안 출신이 많다. 우리도 '강남좌파'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는데,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치권은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의 '강남좌파' 현상을 잘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영국 정치에 대한 노회찬의 관심과 존경은 남달랐다. 노회찬은 '놀고 있던 시절', 故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억대 지원의 유명 미국 연수 펠로십을 받아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노회찬을 도와주려는 선의가 명백했지만, '민주당 입당, 아니면 적어도 민주당 친화적'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 내키지 않았던 노회찬은 완곡한 거절의 핑계로 영국을 댔다. "영국 펠로십이라면 고려해 보겠다." 가능하다면 영국에 오래 머물며 노동당을 비롯한 영국 정당들을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배우고 싶었던 마음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국 역사와 정치를 잘 알고 계셨다. 초청 강연 오셨을 때 마침 올리버라는 총리 보좌관의 부인이 한국인이라 이 부부를 가이드로 붙여드렸더니 혀를 내둘렀다. 다른 의원들을 가이드할 땐 인증샷 찍어주기 바쁜데 노회찬은 방문지마다 자기가 직접 설명하기 바빴다는 것이다. 올리버는 대학에서 영국 역사를 전공한 사람인데도 자신이 모르는 역사를 노 의원이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10년간 영국 총리를 지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사실은 스코틀랜드 출신이란 걸 모르는 영국인들이 많은데 노 의원이 그걸 알고 있더라고 하면서."

강 박사에 따르면 요즘 영국은 브렉시트, 스코틀랜드 분리 요구 문제 등에다 코로나19까지 겹쳐서 엄청난 국가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집권 보수당과 노동당 등 주요 3개 정당이 '현재의 국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공동 주제를 놓고 한 곳에서 각기 전당대회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 한국 정치판과 너무 비교가 되는군요.

"좌파에는 열차 좌석도 계급이라며 좌석에 앉지 않고 열차 바닥에 앉아가는 지도자(제레미 코빈)가 있는가 하면, 우파에는 20년째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지도자(보리스 존슨)가 있는 나라죠. 한국과 비교 자체가 무리죠. 더구나 이제는 노 의원도 안 계시니…."

- 이 자리에선 김영배 의원님이 유일한 현역 정치인이신데….

"초선 의원으로 정치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내게 주어진 이런 큰 권력과 힘을 어떻게 써야 옳은가…. 겁이 나서 손을 빼고 싶은 유혹에 휩싸이기도 하고요.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송곳처럼 찌를 때가 많아요."

"처음이니까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될 겁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래서 정치가 '여럿이 함께'하는 게 아닌가요? 생전의 노회찬 의원님에게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게 많은 걸 혼자 감당하려 하신 거예요. 혼자서 지고 가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진보정치 안에 노회찬과 짐을 나누어지고 갈만한 '한 편'이 없었다는 게 안타깝지요."

▲ 故 노회찬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4.

막걸리의 명주라고 해야 할 남원의 '송명섭막걸리'에서 해남의 유명한 '해창막걸리'를 거쳐 김포 '선호막걸리'에 이르러 대화는 취중 토크의 수준에 이르렀다. 여러 화제 가운데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홍정욱'이라는 인물이었다. 부유한 영화계 인사의 아들, 하버드와 스탠퍼드 로스쿨 출신의 '엄친아', 18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과 4년 만의 정계 은퇴, 2008년 진보정당의 서울 지역구 의원 배출 작전을 좌절시킨 바로 그 홍정욱. 노회찬의 영국 초청 강연을 주도한 뒤 노회찬과 인연을 맺은 강 박사는 홍정욱의 '절친'으로 선거 당시 홍정욱 캠프에 있었다고 한다. 묘한 인연이다.

"원래는 정욱이를 영입하고 싶어 했던 분은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였다고 한다. 비례대표 1번을 제안해왔다고 하니. 당시 정욱이는 진짜 가고 싶어 했고, 나도 당근, 가라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새누리당으로 돌았다. 정치를 할 거면 새누리당에서 해야 한다며 어머니가 단식투쟁하다시피 반대했다. 정욱이가 엄마 말이라면 꼼짝 못 하는 효자다. 그 뒤 (아마도 부모님이)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과 연결돼 동작구에 선거사무소까지 차렸는데, 내내 연락이 없다가 공천 마감 1시간 전에서야 이상득 씨 쪽에서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안 찾아와 괘씸했다면서. 그때 이상득 쪽에서 동작은 안 되고 노원병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노회찬과 악연이 맺어졌다."

"당시 새누리당에 정욱이에게 붙여준 것이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의 한 팀이었다. 정욱이가 부잣집 아들에 하버드 출신이니 교육과 부동산 등 '강남형 이슈'를 일으켜 아파트 주부 표심을 공략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결국 먹혀들어 앞서가던 노의원이 역전패당했다. 이 팀은 정욱이의 당선표 수까지 정확히 맞췄다. 정치공학의 승리 같은 느낌이어서 뒷맛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선거 끝나고 친구들끼리 술을 먹는데 누가 그랬다. '이거, 괜히 끼어들어 역사의 죄인이 된 거 아냐?' 제가 나중에 노 의원 영국 초청에 발 벗고 나선 것도 이 선거의 부채의식이 조금은 작용했던 것 같다."

- 홍정욱 씨는 노회찬 의원과 붙은 것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

"정욱이는 착하고 생각이 많은 친구다. 선거 운동할 때 전철역에서 양쪽이 마주쳤을 때였다. 정욱이 아버지가 배우라 충무로 배우들이 잔뜩 나와서 선거 운동을 벌이는데, 노회찬 쪽은 문소리 씨하고 몇 분 정도여서 너무 비교가 돼 자신조차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둘이서 악수하고 이야기도 좀 나눴는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정욱이는 노원구에 가서 생전 처음 달동네를 가보고는 '내가 여기에서 국회의원을 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욱이는 국회의원이 되고 6개월쯤 지나서 처음 정치란 것에 회의를 품었고, 두 번인가 이상득 씨에게 불려 다니는 과정에서 정치를 그만둘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 그게 언제?

"첫 번째는 2009년 2월 이명박 정권의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 후보자를 날카롭게 추궁했다가 불려갔다. 두 번째는 2009년 말 여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를 반대하다가 눈물을 쏟은 당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위로했던 사건이었다. 처음에도 모멸감을 느꼈지만, 이때는 '그럴 거면 당을 옮기지'라는 식의 비아냥 섞인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의원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던 한-EU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 때 당론을 거슬러 기권표를 던졌을 때가 최종 결심이었던 것 같다. 저한테도 '초선 만하고 관둘 거야', 그랬으니까요."

-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로 나올까요?

"아마, 아닐걸요."

"그러고 보니 저도 생각나는 게 있네요. 당시 선거 때 우리(노회찬) 캠프에 제보라며 어떤 정보가 들어온 게 있었어요. 홍정욱 후보의 미국 유학 중 사생활 관련이었어요. 내용도 꽤 구체적이었고. 그런데 노 의원님이 그걸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런 걸로 선거 운동해선 안 된다시며. 역시 노회찬이였어요."

▲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5.

<성북동 막걸리>라는 동명의 단편(29분) 뮤지컬 영화가 있다. 소개 글을 소개하면, '대학로 변두리의 조그만 막걸리 집 <성북동 막걸리>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웃고 울고 떠드는 얘기다. 1년 만에 재회한 옛 연인, 알바생 '막걸리의 여신'에게 구애하는 죽돌이들, 연습 중인 연극에 대해 토론하는 배우들, 혼술하는 아저씨, 그리고 주인장과 주방 이모 등이 제각각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한다. 소망과 회한을 담은 이들의 노래는 흥겹게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막걸리에는 그런 힘이 있나 보다.'

2016년 제1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Talent M&M' 뮤지컬영화 제작지원작인 이 영화의 박상준 감독이 <성북동 막걸리> 주인장이시다. 11년 전 "예술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 막걸리 집을 차렸다. 애초엔 배우인 부인이 샌드위치 가게를 생각했으나, 박 감독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샌드위치는 별로여서" 자신이 좋아하는 막걸리 집을 택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막걸리학교'까지 다닌 나름 자부하는 막걸리 소믈리에. <성북동 막걸리>는 감독이 자기 가게를 무대로 삼아 비용을 절약하며 만든 따뜻하고 순정한 영화였다. 이 집의 대표 안주는 임연수 구이. 영화에서도 오프닝 장면을 장식한다. 영화는 다음이나 카카오TV에서 볼 수 있다. 앞으론 가게 벽에 화면을 설치하고 손님들에게도 종종 영화를 틀어주었으면 좋겠다.

(…) 그래도 저기 어디쯤 사람들이 있잖아 / 그래도 저기 어디쯤 사람들이 웃잖아 / 사람들이 노래하네 / 제각기 다른 운명 속에서 / 사람들이 춤을 추네 /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 그래도 저기 어디쯤 사람들이 살잖아 / 모두 말할 순 없어도 / 그저 온기를 나누고 싶어 / 사람들이 노래하네/사람들이 춤을 추네 (…)

취중 토크는 영화의 따뜻한 엔딩처럼 밤이 깊도록 흥겹게 이어졌다. 구수한 입담의 주인공 노회찬도 있었으면 더없이 행복한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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